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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주원의 차

Author: Jino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18 16:32:51

『오늘 일정: 목요일 밤, 가족 식사 뒤 귀가』

“원래 알던 사이는 아니에요.”

나는 무릎에 놓인 가방을 당겼다. 손잡이에 끼인 안감이 다시 접혔다.

주원은 뒤집어 놓은 흰 휴대폰에서 손을 뗐다.

“아니면 됐고.”

“왜 물어요?”

“삼촌이 식사 자리에서 일 얘기를 먼저 꺼내는 게 드물거든. 할아버지 장부까지 맡겼다니까 궁금해서.”

“회장님이 먼저 물어보셨어요. 오래된 장부도 고칠 수 있느냐고요.”

“그럼 제대로 사람 찾으셨네.”

주원은 안전띠를 당겨 보고 차를 출발시켰다. 대문이 열리는 동안 나는 앞유리를 봤다. 현관 쪽에는 아무도 없었다.

차가 언덕을 내려갔다. 주원이 방향을 틀자 가방이 무릎에서 조금 밀렸다. 손잡이를 잡고 자세를 고쳐 앉는데 코끝에 냄새가 닿았다.

본가에 올 때도 맡았던 향이었다. 주원에게서 나는 것보다 달았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조수석 등받이에서 더 짙게 났다.

나는 코트 깃을 내려놓았다.

“더워?”

“조금요.”

주원이 히터를 줄였다. 그래도 냄새는 그대로였다. 내가 송풍구 방향을 돌리자 주원이 조수석 쪽을 봤다.

“향수 냄새 나?”

“네.”

주원은 버튼을 눌러 내 쪽 창문을 2cm 내렸다. 찬바람이 귀 아래로 들어왔다.

“이 정도면 괜찮아?”

“네. 고마워요.”

“창문을 좀 열어 둘걸.”

주원은 앞을 보며 말했다. 누구의 향수인지는 말하지 않았다. 나도 묻지 않았다.

차가 신호 앞에 멈췄다. 주원은 운전대 위에서 손가락을 폈다 접었다.

“오늘 우리 아버지 얘기 때문에 기분 나빴지?”

“저희 공장을 안 쓰는 땅으로 말씀하셨잖아요.”

“응. 들었어.”

“그런 얘기는 앞으로도 제가 그냥 웃고 넘기기는 어려워요.”

주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에 또 그러시면 내가 먼저 말할게.”

“제 앞에서만 안 하시는 건 소용없어요.”

주원은 대답하기 전에 옆 차선의 차를 확인했다. 신호가 바뀌고 차가 움직였다.

“그것까지 내가 다 막을 수 있다고는 못 하겠네.”

나는 가방 손잡이에서 손을 놓았다.

“못 하는 걸 하겠다고 안 하셔도 돼요.”

“그럼 그 말부터 할까.”

주원이 송풍구를 하나 닫았다.

“우리 둘 다 이 약혼 좋아서 한 건 아니잖아.”

◈

나는 주원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주원은 앞차와 간격을 벌리고 말을 이었다.

“어른들 앞에서는 그런 말 못 하니까. 오늘도 네 아버지 얘기가 나왔는데 다들 밥만 먹고 있고.”

“주원 씨도 계셨죠.”

“그래서 지금 하는 말이야. 나도 거기서는 입 다물고 있었으니까.”

주원이 입술을 한번 눌렀다.

“그렇다고 내가 이 약혼을 없던 일로 할 수는 없어.”

“저도 알아요.”

“서로 필요한 게 있어서 하는 거지. 우리 마음이 어떻든.”

내 휴대폰 화면이 가방 안에서 켜졌다. 지퍼 틈으로 빛이 보였다가 꺼졌다. 나는 꺼내지 않았다.

“거래라는 말씀이세요?”

“다른 말로 부르면 좀 나아져?”

“아뇨. 달라지는 건 없죠.”

“그래. 그럼 우리끼리는 편하게 하자.”

주원이 내 쪽을 잠깐 봤다.

“결혼 전까지 서로 사생활은 건드리지 말자.”

바람이 들어와 귀 옆의 머리카락을 흔들었다. 나는 머리를 귀 뒤로 넘겼다. 주원은 대답을 재촉하지 않았다.

“사생활이면 어디까지요?”

“누굴 만나는지, 어디서 뭘 하는지. 그런 거 일일이 확인하지 말자는 거야. 휴대폰 들여다보거나 연락 안 된다고 사람 찾고.”

“약속한 자리에도 안 나와도 되고요?”

“그건 아니지. 같이 가기로 한 데는 가야지.”

“저 혼자 기다리게 하고 나중에 사생활이라고 하시면 곤란해요.”

“그건 내가 잘못한 거고.”

주원은 운전대에서 손을 떼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늦으면 미리 연락하고. 못 가면 먼저 말하고.”

“작업하는 동안에는 바로 답 못 할 때가 있어요. 젖은 종이 만지다가 전화 받을 수는 없으니까요.”

“그건 알겠어. 대신 급한 일이면 문자 남길게.”

나는 휴대폰을 꺼냈다. 아버지가 집에 언제 오느냐고 물어 놓았다. 가는 중이라고 답하고 화면을 껐다.

주원이 내 손에서 시선을 거뒀다.

“누구냐고 안 물을게. 그런 뜻이야.”

“아버지예요.”

“말 안 해도 된다니까.”

“말하고 싶은 건 할 수 있잖아요.”

주원이 짧게 웃었다.

“그것도 그렇네.”

나는 휴대폰을 가방 안쪽에 넣었다.

“저도 조건 있어요.”

“응.”

“제 작업실에는 미리 연락하고 와 주세요. 손님이 계실 수도 있고, 건드리면 안 되는 책도 있어요.”

“약혼자가 불쑥 찾아오는 건 싫다?”

“누가 와도 같아요.”

“알았어. 연락할게.”

“그리고 제 일정을 먼저 정해서 어른들께 말씀드리지 마세요. 맡은 책을 언제까지 돌려드릴지 약속한 게 있어요.”

“우리 엄마한테도 그렇게 말해.”

“제가 말씀드리면 주원 씨가 옆에서 괜찮다고 해 주실 수 있어요?”

주원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차가 고가도로 아래를 지났다. 앞유리에 비치던 불빛이 사라졌다가 다시 들어왔다.

“내가 잡은 약속이면 내가 바꿀게. 엄마가 잡은 건 네가 먼저 말해. 내가 옆에서 다른 소리는 안 할게.”

“그 정도면 돼요.”

“나한테도 하나만 해 줘.”

나는 주원을 봤다.

“부부처럼 보이려고 너무 애쓰지는 말자. 어른들 앞에서 손잡고 사진 찍는 것까지는 하겠는데, 없을 때도 계속 그러면 피곤하잖아.”

식탁에서 주원이 내 접시에 놓아 주던 생선살이 떠올랐다. 나는 무릎 위에서 손을 모았다.

“저도 그러려고 한 적 없어요.”

“미리 말하는 거야. 혹시 나중에 서운할까 봐.”

“서운할 거라고 먼저 정하지는 마세요.”

“응. 그건 취소.”

주원이 대답하고 나서 차 안이 조용해졌다. 창문 틈으로 바깥 소리가 들어왔다.

나는 조금 전의 말을 다시 짚었다. 주원이 누구를 만나도 묻지 말 것. 내게도 묻지 않겠다는 것. 주원은 내가 어떤 대답을 할지 기다리고 있었다.

“동의해요.”

내가 말하자 주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 간섭 안 하는 걸로. 그치?”

“대신 제가 싫다고 말씀드리는 건 들어 주세요. 약혼했으니까 참으라는 말은 안 하셨으면 해요.”

“그 말은 안 할게.”

주원이 기어 옆에 놓인 흰 휴대폰을 수납칸으로 옮겼다. 그 아래 있던 검정 휴대폰도 함께 밀어 넣었다.

“오늘 얘기는 우리 둘만 아는 걸로 하고.”

“네.”

나는 가방의 지퍼를 닫았다.

◈

창문으로 들어온 바람에 손이 차가워졌다. 코트 소매 안으로 손끝을 넣자 주원이 물었다.

“이제 닫아도 돼?”

“조금만 더요.”

“응.”

주원은 제 쪽 송풍구를 돌렸다. 따뜻한 바람이 내 무릎에 닿았다. 냄새가 옅어지자 나는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약혼식 전날 호텔 로비에서 봤던 여자의 손이 떠올랐다. 주원의 허리 뒤로 돌아가 있던 손이었다.

물어볼 기회는 있었다. 지금 누구를 만나느냐고 해도 주원은 적어도 질문이 뜻하는 바는 알 터였다.

나는 창밖을 봤다. 버스 정류장에 서 있던 사람들이 차 뒤로 멀어졌다.

주원은 그날 호텔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향수가 누구 것인지도 덧붙이지 않았다. 내가 동의한 뒤에 변명을 듣고 싶지는 않았다.

“이쯤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돼요.”

“이 길도 집으로 가?”

“큰길보다 신호가 적어요.”

주원이 방향지시등을 켰다. 차가 돌아가는데 뒷좌석에서 종이봉투가 미끄러졌다. 나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봉투 입구에서 과자 상자가 나와 있었다. 내가 들고 간 것과 같은 가게 포장이었다.

“그거 엄마가 챙겨 준 거야. 차 마실 때 먹으라고.”

“제가 드린 거랑 같은 거네요.”

“응. 엄마가 그 가게 좋아해.”

나는 상자를 봉투 안으로 밀어 넣었다. 바닥에 작은 상자가 더 있었다. 같은 포장인데 크기만 달랐다.

“아, 밑에 하나 더 있네요.”

“그건 네 거. 위에 건 내가 가져가래.”

“그럼 봉투를 나눠야겠어요.”

“그냥 통째로 가져가. 난 차에서 먹으면 다 흘려.”

“주원 씨 것까지 제가 가져가면 어머님이 나중에 물으실 텐데요.”

“그럼 잘 먹었다고 하면 되지.”

나는 봉투 손잡이를 세워 뒷좌석에 놓았다. 종이가 눌린 데를 펴다가 손을 멈췄다.

“어머님은 주원 씨랑 저랑 잘 지내는 줄 아시죠?”

“싸운 건 아니잖아.”

“방금 한 얘기를 들으시면 그렇게 생각 안 하실 것 같아서요.”

주원은 앞차가 멈추자 천천히 속도를 줄였다.

“엄마한테 말할까?”

“아뇨.”

“나도 말할 생각 없어.”

주원이 신호등을 올려다봤다.

“우리가 정한 것까지 다 설명할 필요는 없잖아.”

나는 가방을 무릎 가운데로 옮겼다. 주원은 내 대답이 없는 것을 보고 덧붙였다.

“불편한 건 말해. 사생활 안 묻는 거랑 말 안 하고 사는 건 다른 거니까.”

“주원 씨도요.”

“응.”

나는 창문을 올렸다. 닫히기 직전까지 바람이 들어왔다. 주원은 히터를 올려도 되느냐고 물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집 앞까지 들어가도 돼?”

“여기서 내려도 돼요. 안쪽은 돌려 나오기 어려워요.”

“그래도 봉투 있잖아.”

“무겁지 않아요.”

주원은 길 가장자리에 차를 붙였다. 아직 집까지는 걸어야 했다. 내가 안전띠를 풀려고 하자 주원이 수납칸에서 검정 휴대폰을 꺼냈다.

“장부 보러 가는 건 언제가 편해?”

나는 안전띠 버튼에서 손을 뗐다.

“토요일 오전은 비워 둘 수 있어요.”

“오후에는?”

“작업실에 찾아오시기로 한 손님이 있어요. 낮에는 돌아와야 해요.”

주원은 화면을 눌렀다.

“오전 10시 괜찮지? 너무 이른가?”

“괜찮아요. 그런데 회장님 일정도 확인해야 하지 않아요?”

“집에 계신대. 아까 식사 끝나고 물어봤어.”

주원은 문자를 쓰다 말고 나를 봤다.

“할아버지한테 직접 전화하면 길어져. 내가 엄마한테 전해 놓을게.”

“그럼 토요일 오전 10시로 부탁드려요.”

“도구 무거우면 연락하고. 차 보내 달라고 할 테니까.”

“아직 장부를 못 봐서 많이 가져갈 필요는 없어요.”

“알았어.”

주원은 문자를 보냈다. 나는 안전띠를 풀었다. 버클이 풀리는 소리가 났다.

본가 식탁에서는 주원의 옆에 앉아 고개를 끄덕일 때가 더 많았다. 차에서는 내가 안 된다고 할 때마다 주원이 듣고 대답했다.

나는 가방을 들고 뒷좌석의 종이봉투를 집었다.

“오늘 데려다줘서 고마워요.”

“토요일에는 나 못 갈 수도 있어. 호텔에 일이 있어서.”

“괜찮아요. 장부 상태만 보고 오면 돼요.”

“엄마가 뭐 먹고 가라고 붙잡으면 약속 있다고 해.”

“네.”

차 문을 열자 밖의 찬 공기가 들어왔다. 나는 내리다 말고 몸을 돌렸다.

“주원 씨.”

“응?”

“아까 공장 얘기요. 다음에도 말씀하신 대로 해 주세요.”

주원은 운전대 위에 놓았던 손을 내렸다.

“응. 기억할게.”

나는 문을 닫았다.

주원은 창문을 내리고 과자 봉투가 기울었다고 알려 줬다. 상자 모서리가 손잡이 밖으로 나와 있었다. 나는 봉투를 고쳐 들었다.

차가 골목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보고 집 쪽으로 걸었다.

◈

휴대폰을 꺼내 아버지에게 거의 다 왔다고 보냈다. 손이 차가워 글자가 하나 잘못 눌렸다. 지웠다가 다시 쓰고 전송했다.

가방 안에서 도구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집에 가면 바늘부터 꺼내야 했다. 내일 작업에 쓸 실도 골라 놓지 않았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봉투가 코트 자락에 닿았다. 나는 손잡이를 손목에 걸었다. 주원이 사생활을 건드리지 말자고 하던 말이 다시 떠올랐다.

수장고에서 실장님에게 했던 질문도 생각났다. 다친다는 게 무슨 뜻인지, 확인되면 알려 달라고 했었다. 그 뒤로는 연락이 없었다.

나는 휴대폰을 껐다. 그 말을 핑계로 먼저 연락할 일은 아니었다.

집 앞에 이르러 가방에서 열쇠를 찾았다. 안쪽 주머니에 손을 넣는데 길 건너 차의 실내등이 켜졌다.

검은 세단이었다.

나는 열쇠를 쥔 채 멈췄다. 차 옆을 지나 현관으로 가려면 운전석 앞을 지나야 했다.

운전석 창문이 내려갔다. 식탁 맞은편에 앉았던 얼굴이 보였다. 나는 주원의 차가 나간 골목부터 돌아봤다.

“회장님 장부, 저도 같이 봅니다. 토요일 10시.”

(7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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