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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Author: 류한나
“승재가 다쳤다고 해서 한 번 와봤어. 오해하지 마, 은서 씨.”

백유미는 뭔가 떠오른 것처럼 황급히 설명했다.

“승재가 사인해야 할 서류가 있는데 승재 사무실에 갔다가 주 비서에게서 승재가 다쳤다는 소식을 들었어. 승재가 먼저 얘기해준 건 아니야!”

‘내가 무슨 말을 했다고 오해하지 말라는 건지.’

고은서는 입꼬리를 당겼다.

“백유미 씨, 건의 하나 할게. 오해받고 싶지 않으면 오해받을 만한 일을 하지 않는 게 좋아. 예를 들면, 이 남자에게 아내가 있다는 걸 알면서 그의 아내가 집으로 초대하지도 않은 상황에 이렇게 집에 찾아오지 마. 집에 오게 됐다고 해도 손님으로서 예의를 지켜야지. 다른 사람의 남편이랑 같이 앉아있을 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 하지 않겠어?”

백유미는 그녀의 말에 얼굴을 붉히더니 서둘러 소파 끝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은서 씨, 난...”

“그렇게 다정하게 부르지 말아줬으면 좋겠네.”

고은서가 그녀의 말허리를 잘랐다.

“나랑 고은서 씨는 성 떼고 이름만 부를 정도로 친하지 않은 것 같은데 말이야. 날 사모님이라고 부를 생각이 없다면 고은서 씨라고 불러줬으면 좋겠는데.”

“고은서, 적당히 해.”

곽승재가 경고했다.

‘벌써 편을 들어준다고?’

고은서는 피식 웃었다.

“내가 뭐 틀린 얘기 했어? 왜 적당히 하라는 건데?”

“승재야, 은서 씨... 고은서 씨 말이 맞아. 내가 그런 것까지는 신경을 못 썼어.”

백유미는 무안함을 느끼면서도 부드럽게 화를 내려는 곽승재를 달랬다.

“고은서 씨, 언짢게 했다면 미안해. 나 지금 당장 갈게.”

백유미가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그럴 필요 없어.”

고은서가 그녀를 말렸다.

“가야 할 사람은 나니까.”

“고은서!”

곽승재가 또 한 번 입을 열었다.

그러나 고은서는 그를 무시하고 가방을 챙겨 집을 나섰다.

이틀 전 있었던 교통사고 때문에 고은서는 택시를 탔다.

외할아버지 고준석은 교외 쪽에서 살고 있어서 차로 한 시간 반은 가야 했다.

마당에서 정정한 모습으로 꽃에 물을 주고 있는 외할아버지를 보았을 때 고은서는 코끝이 찡해서 눈물을 뚝뚝 흘렸다.

“외할아버지...”

고은서는 울먹거리면서 감격에 겨워 외쳤다.

“은서야, 왜 울어?”

고준석은 물뿌리개를 내려놓고 빠른 걸음으로 자신의 귀한 외손녀에게 다가갔다.

그리움과 후회에 휩싸인 고은서는 말 한마디 하지 못한 채 외할아버지의 널따란 품에서 엉엉 울었다.

다시 외할아버지를 보다니, 너무 행복했다.

고은서는 아빠가 없었고 태어날 때부터 어머니와 함께 외할아버지 집에서 자라며 외할아버지의 성을 따랐다.

외할아버지는 고은서를 애지중지했고 그녀가 원하는 거라면 뭐든 들어줬다.

그러나 전생에 고은서는 외할아버지의 속을 많이 태웠다.

심지어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마지막으로 그의 얼굴 한 번 보지 못했다.

“은서야, 대체 왜 그러는 거니? 설마 곽승재 그놈이 널 힘들게 했어?”

고준석은 화가 나고 마음이 아팠다.

고은서는 항상 오만하고 자부심 넘쳐서 쉽게 울지 않는다. 정말 억울한 일을 당한 게 아니라면 말이다.

고은서는 천천히 울음을 그치고 붉어진 눈시울을 한 채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냥 외할아버지가 너무 보고 싶었어요.”

“너도 참.”

고준석은 헛웃음이 났다.

“외할아버지가 보고 싶으면 돌아오면 되지. 뭘 이렇게 울어? 정말 곽승재 그놈 때문이 아니야?”

“아니에요. 제 삶에 곽승재만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에요. 외할아버지가 보고 싶어서 울었어요.”

여전히 우기기 좋아하는 외손녀의 모습에 고준석은 그제야 마음이 조금 놓였다.

“알겠다. 내가 보고 싶었다니 그러면 오늘은 외할아버지랑 같이 있자꾸나.”

“네!”

그렇게 고은서는 하루 종일 고준석과 같이 있었다.

그와 함께 꽃에 물을 주고, 운동을 하고, 붓글씨를 썼다.

고준석은 외손녀와 함께하는 것이 무척 기뻤지만 고은서와 곽승재 사이에 문제가 있다는 걸 눈치채고 있었다.

그게 아니라면 고은서가 하루 종일 곽승재의 이름은 입밖으로 꺼내지도 않을 리가 없었다.

“은서야, 외할아버지한테 얘기해 봐. 곽승재랑 무슨 일 있었니?”

고은서는 먹을 갈면서 대수롭지 않다는 어조로 물었다.

“외할아버지, 제가 곽승재랑 이혼하면 저 응원해 주실 거예요?”

“이혼?”

고준석은 깜짝 놀랐다.

그의 외손녀는 외할아버지인 그조차도 질투할 정도로 곽승재를 좋아했다.

그런데 이혼 생각을 한다니?

“곽승재가 널 괴롭혔니? 내가 그놈 혼내주마!”

“아뇨, 아뇨.”

고준석이 보기에 고은서와 곽승재는 서로를 사랑하는 부부였기에 이혼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고은서가 시험 삼아 물은 것이다.

그러나 그의 화를 내는 모습에 고은서는 서둘러 그를 달랬다.

“그냥 장난이었어요.”

“별일 없으면 이런 장난은 하지 말거라.”

“알겠어요.”

...

저녁때, 고은서는 식탁 위 음식들을 바라보며 군침을 흘렸다.

“와, 맛있는 게 엄청 많네요? 저 오늘 폭식하고 갈래요!”

고준석은 자애로운 표정으로 말했다.

“예전처럼 먹성이 좋네. 이젠 다이어트 안 하니?”

고은서는 갈비 하나를 입 안에 넣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안 해요. 다이어트는 절대 안 할 거예요. 그것도 하고 싶은 사람이 해야죠!”

“그렇지. 널 좀 봐, 이렇게 말랐으면서 매일 다이어트를 입에 달고 살잖아!”

두 사람이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고은서는 문가에서 인기척을 들었다. 고개를 돌린 순간, 고은서의 안색이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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