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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9화

Author: 류한나
백승엽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는 곽승재가 전화를 받으면서 비상문을 열고 나오는 것을 보고 얼른 말했다.

“승재야, 유미가 이렇게 큰 고통을 받았는데 네가 꼭 범인을 찾아내야 한다!”

곽승재는 고은서를 바라보았고 고은서는 무표정으로 그의 시선을 받아드렸다.

고은서는 백승엽의 입에서 일의 자초지종을 대충 알아들었다.

산장에서 백유미는 곽승재가 사다 준 약을 먹고 탈이 나서 병원에 실려 와 위를 씻었고 백승엽은 고은서가 이 일을 저지른 거로 생각하고 있었다.

‘승재가 부랴부랴 나갔던 건 백유미가 병원에 실려 갔기 때문이었구나. 그리고 날 병원으로 부른 것도 백유미 때문이고.’

“아버지, 오해가 있었던 것일 수도 있어요. 승재를 난감하게 하지 말아요.”

백유미는 또 허약한 목소리로 말했다.

“유미야, 다른 사람을 그렇게 생각해줄 필요 없어!”

백승엽은 마음이 아팠다.

“예전부터 이 고은서 씨가 몇 번이고 널 해코지해서 다치게 했던 거 기억 안 나? 저번에 너의 외숙모한테서 듣지 않았더라면, 난 네가 그런 억울함을 당했는지도 몰랐어!”

백유미는 아픔을 참으며 말했다.

“크게 다친 것도 아닌데요. 별일 아니었어요. 그리고 승재도 은서 씨 대신 사과했고요.”

“크게 다치지 않았기는, 내가 바보인 줄 알아? 네가 머리를 맞아서 피를 흘렸고 목도 졸려서 파랗게 멍들었잖아. 승재가 제때 도착하지 않았더라면, 넌 이미 저 여자 손에 죽었을 거야!”

백승엽이 말했다.

“이번에 어떻게든 죄를 물어야겠어!”

말을 마치고 백승엽은 기세등등하게 고은서를 노려보았다.

마침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곽승재는 담담하게 말했다.

“아저씨, 우리 일단 병실에 가서 얘기해요.”

“그래. 승재 말대로 하자.”

백승엽은 화를 억누르며 백유미의 침대를 밀고 엘리베이터에 탑승하려고 했다.

그러나 엘리베이터 옆에 서 있는 고은서는 발을 움직이지 않았다.

곽승재는 놀라지 않고 그녀를 한눈 쳐다보며 말했다.

“같이 병실에 가자.”

고은서는 냉소하며 말했다.

“이 일이 나랑 무슨 상관이고 날 왜 여기로 부른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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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게인, 비긴   제230화

    곽승재가 말했다.“그 구석은 사각지대라 CCTV에 찍히지 않았어.”고은서는 참다못해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그 말은 내가 구석에서 약을 몰래 훔쳐다가 차 안에서 백유미 씨의 약과 바꿔치기 했다는 거야?”곽승재의 대답을 듣지 못한 고은서는 퉁명스럽게 했다.“내가 바꿨다 쳐. 근데 난 백유미 씨가 어떤 약을 사야 하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미리 상극 약품을 준비해?”“왜 준비 못 해? 유미는 이마의 상처에 염증이 난 거잖아. 당신이 좀만 머리를 쓰면 소염제를 살 거로 생각하겠지!”백승엽이 화를 내며 말했다.그 말을 들은 고은서는 미간을 찌푸리고는 차가운 눈빛으로 곽승재를 보며 말했다.“당신도 그렇게 생각해?”곽승재가 눈썹을 찡그리고 말을 하지 않았지만, 백승엽은 참지 못하고 말했다.“고은서! 네가 그렇게 못돼먹은 사람이잖아! 우리 유미가 도대체 뭘 잘못했길래 네가 몇 번씩이나 해치는 거야!”말을 마치고 백승엽은 손을 들어 고은서의 뺨을 때리려 했다. 근데 백승엽이 고은서에게 다가가기도 전에 곽승재는 그를 가로막으며 말했다.“아저씨, 흥분하지 마세요.”“내가 흥분하지 않게 생겼어! 나에게 딸이라고는 유미밖에 없어. 게다가 우리 유미가 성격이 얼마나 온순하고 여태껏 누구와 얼굴을 붉힌 적도 없는데 너의 아내가 왜 유미를 그렇게 못마땅하게 여기고 해치려는 거야! 불쌍한 내 딸, 몸이 아파도 널 방해할까 봐 저절로 응급 전화를 걸어서 병원에 실려 왔어! 그러다가 너무 아프니까 하는 수 없이 나에게 전화한 거고...”백승엽은 갑자기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오늘 밤에 유미에게 문제라도 생겼다면 난 죽은 우리 유미 엄마를 볼 낯짝이 없어...”“아버지, 그만 말하세요.”백유미는 흐느끼며 말했다.“저 지금 별일 없잖아요.”“그건 네가 명이 길어서 그렇지! 의사 선생님의 말씀 못 들었어? 네가 응급실에 제때에 실려 와서 다행이지, 아니면 너 이미 죽었을지도 몰라!”백승엽은 말을 할수록 뒤끝이 두려워서 다시 고은서에게 달려들어 책임을 따졌다.

  • 어게인, 비긴   제231화

    간호사가 허겁지겁 달려오며 말했다.“환자 안색이 너무 안 좋습니다. 다시 응급실로 보내서 의사 선생님에게 보여야 합니다.”곽승재는 백유미를 침대 위에 올려놓았다. 너무 아픈 나머지 백유미의 입술은 백지장처럼 하얘졌으며 허약한 목소리로 말했다.“나 괜찮아. 아버지부터...”간호사는 그녀의 병상을 응급실로 밀고 갔다. 곽승재는 재빨리 바닥에 있는 백승엽을 부축하여 일으켜 세웠다.“유미야, 유미야. 너 왜 그래? 너 아빠를 놀라게 하지 마!”백승엽은 비틀거리며 백유미의 병상을 쫓아갔다.곽승재는 백승엽이 다시 쓰러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그를 부축하여 같이 앞으로 걸어갔다.고은서는 제 자리에 선 채, 손바닥의 아픔이 찌릿찌릿 전해져왔다.그녀의 남편인 사람이, 박지연이 아주 확신하며 말한 이혼하기 아쉬워한다는 곽승재가 지금, 아주 조급하게 백유미를 따라갔다. 심지어 고개를 돌려 그녀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더구나 고은서가 아픈지 걱정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피 한 방울이 바닥에 뚝 떨어졌다. 고은서는 가방에서 휴지를 꺼내 상처를 꾹 누르면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그녀는 주민기가 주차해놓은 방향으로 가지 않고 병원의 출구에서 나오자마자 택시를 잡고 떠났다.“아가씨, 어디로 가실 건가요? 괜찮으세요?”기사님은 고은서가 한참 동안 말이 없는 것을 보고 재차 물었다.고은서는 피로 붉게 물든 휴지를 보면서 말했다.“아무 진료소나 가주세요.”기사님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뻔했다.‘여기가 병원인데 왜 나오자마자 또 진료소를 가려는 거지?’“병원은 접수 절차를 밟을 게 너무 많아요.”고은서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진료소가 더 편해요.”기사님은 고은서의 말을 믿었다.“아가씨가 다행히도 저 같은 현지인을 만나서 여기 부근에 24시간여는 진료소가 있다는 것을 알지, 아니면 이렇게 늦은 시간에 문을 여는 진료소가 어디 있어요?”“감사합니다.”얼마 지나지 않아 기사님이 말한 진료소에 도착했다. 고은서는 기사님에게 만 원을

  • 어게인, 비긴   제232화

    고은서는 애써 미소를 짓고는 대답하지 않았다.“그런 놈은 좀 내버려 둬야 해요. 아내가 다쳤는데도 곁을 지키지 않고 다른 사람한테 가 있다니!”여의사는 고은서에게 약을 발라주고는 또 붕대로 그녀의 손바닥을 빙 둘러쌌다.“물이 닿지 않게 조심하시고 제때 약을 발라주세요. 안 그러면 흉터가 져서 보기 흉해요.”“고맙습니다. 알겠어요.”고은서가 비용을 지급할 때, 핸드폰이 다시 울렸다. 그녀는 여전히 전화를 끊어버리고 곽승재의 카톡을 차단하기까지 했다.예전의 그녀라면 절대 곽승재를 차단하기 아쉬워했을 것이었다. 그때는 생각하기만 해도 받아들이기 힘들 정도였다.하지만 지금, 차단하면 차단했지, 아무렇지도 않았다.어떤 일들은 그저 마음먹기 어려울 뿐이지 실제로 행동에 옮기는 데 2초밖에 걸리지 않았다.진료소에서 나온 고은서는 바로 택시를 불러 예원 별장으로 갔다.곽승재가 박지연에게 연락해 민폐를 끼칠 것을 방지하기 위해, 차 안에서 그녀는 미리 박지연에게 메시지를 남겼다.[지연아, 나 어깨가 아픈데 약을 안 챙겨서 먼저 들어가 볼게. 너랑 온 닥터 두 사람 오붓한 시간 보내.]메시지를 남긴 뒤, 고은서는 핸드폰에 반짝이는 전화번호를 보며 아예 핸드폰을 꺼버렸다.저녁에는 길에 차가 적었기에 낮에 올 때보다 시간이 적게 걸렸다.대략 한 시간 반 뒤에 고은서는 예원 별장에 도착했다.뜻밖에도 이미숙이 아직 안 자고 있었다.“사모님, 도련님과 같이 단체워크숍에 가신 거 아니셨습니까? 왜 갑자기 돌아오셨습니까? 조금 전 도련님이 전화해서 사모님을 물어보셨습니다.”고은서는 이미숙에게 길게 설명을 늘어놓을 기분이 아니었다.“놀다가 지쳤어요. 밖에서 자는 것이 너무 불편해서 먼저 돌아왔어요. 아줌마, 저 먼저 들어가서 쉴게요. 그 누가 전화를 해도 절대 저를 부르지 마세요.”“네.”이미숙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고은서는 침실로 걸어 들어가 토끼 모양의 무드 등을 보고는 바로 쓰레기통에 넣어버렸다.방문을 잠근 뒤, 고은서는 침대에 웅크린 채 조

  • 어게인, 비긴   제233화

    비록 외할아버지의 몸 상태가 아직 건장한 편이지만 고은서는 그래도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고은서는 외할아버지가 조금이라도 불편한 것이 있으면 바로 전화해 달라고 특별히 오춘식에게 당부했었다.고은서는 오춘식의 전화인 것을 보자마자 바로 긴장되었다.“아저씨, 외할아버지한테 무슨 일이 생겼나요?”“아니야, 괜찮아.”오춘식은 고은서를 달래주었다.“어르신께서 오늘 옛친구를 만나러 외출할 거라고 하셨어. 아마 며칠 정도 지내다가 올 거 같은데 네가 걱정할까 봐 미리 너한테 알리는 거야.”“외할아버지가 어디로 가는데요? 무슨 친구를 만나는데요? 왜 미리 저한테 얘기해 주시지 않으셨어요?”고은서는 꼬치꼬치 캐물었다.“어제 결정하신 거야. 어르신께서 해찬시로 가신다고 하셨어. 엄청 오랫동안 못 본 옛친구가 아파서 문병하러 가시는 거라고 했어. 이번에 못 보면 앞으로 영영 볼 기회가 없을 것 같다고 얘기하셨어.”‘해찬시!’고은서는 갑자기 떠올랐다. 전생에서 외할아버지는 해찬시로 갔을 때 사고를 당해서 다리를 치었다.그때 외할아버지는 별로 아프지 않아 크게 신경 쓰지 않았고 해찬시에서 돌아오고 나서도 상세한 검사를 받아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할아버지가 화초에 물을 주던 도중 다리가 갑자기 아파서 돌바닥에 쓰러지게 되었다.병원에 실려 가서 검사를 해보니 그제야 다리에 신경이 손상되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가장 좋은 치료 시기를 놓친 데다가 쓰러지면서 분쇄 성 골절까지 초래하게 되어서 아무리 치료한다고 해도 외할아버지의 다리는 더는 걸을 수 없게 되었다. 그저 영원히 휠체어에 앉아 있어야 했다.“은서야, 걱정하지 마. 내가 어르신을 잘 보살필게.”오춘식이 말했다.“별다른 일이 없으면 이만 끊을게. 난 어르신을 도와 짐을 마저 싸야 해.”“아저씨, 언제 출발하세요?”고은서가 물었다.“오후 2시 비행기를 예약할까 해. 점심을 먹은 뒤 바로 공항으로 가면 되잖아.”“그럼, 외할아버지 신분증을 저한테 보내주세요. 제가 비행기 표를 예약해드릴게요.

  • 어게인, 비긴   제234화

    고은서는 웃었다.“그래. 넌 꼭 그 생각을 유지하길 바라.”박지연은 뜬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왜 얘기가 나한테로 넘어왔어? 아직 네 얘기가 끝나지 않았잖아.”“더 얘기할 게 뭐가 있어. 백유미의 목적은 승재로 하여금 내가 심보 악랄한 사람이라고 오해하는 것이잖아. 지금 백유미가 목적을 이뤘으니 이 일은 이렇게 끝이 났지. 어차피 나는 승재랑 이혼할 거니까 그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난 전혀 상관없어. 됐어. 나 진짜 급해. 끊어!”박지연에게 말할 기회를 주지 않은 채 고은서는 전화를 끊어버렸다.드레스 룸에서 옷 몇 벌을 꺼내고 또 여행용 화장품 세트를 넣은 뒤, 고은서는 캐리어를 닫고 화장실로 갔다.다행히 다친 곳이 왼손 손바닥이어서 세수하는 데 별 지장이 없었다.세수를 마치자마자 밖에서 이미숙의 목소리가 들렸다.“사모님, 일어나셨습니까? 아침 식사가 준비되었습니다.”고은서가 문을 열자, 이미숙이 밖에 서 있었다.“사모님, 손이 왜 그렇습니까?”이미숙은 이상함을 눈치챘다.고은서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괜찮아요. 별문제 아니에요. 아줌마 먼저 내려가 있어요. 저도 금방 내려갈게요.”“그리고 승재한테는 제 손 얘기하지 마세요.”고은서가 또 말했다.이미숙은 이해가 안 갔다.“사모님, 다치셨습니까? 왜 도련님한테 얘기하지 말라는 겁니까? 도련님께서 어젯밤에 사모님이 돌아오신 것을 안 뒤, 도련님도 돌아오셨습니다. 게다가 저한테 사모님의 상황까지 물어보셨습니다.”고은서가 대답했다.“그저 조금 까진 것뿐이에요. 지금은 이미 다 나았어요. 말할 필요가 없어요.”고은서는 곽승재의 그 어떤 관심도 필요 없었다. 그녀에게 너무 쓸데없는 것들이었다.이미숙이 내려간 뒤, 고은서는 또 자신을 한바탕 꾸몄다. 시간을 보니 이미 아홉 시 반이 되었다.외할아버지 집으로 가는 데 한 시간이 걸렸다. 그녀는 외투를 왼손에 걸친 채, 오른손에 작은 캐리어를 들고 계단을 내려갔다.아래층에는 곽승재가 보였으며 의외로 아직 집에 있었다. 그는 때마침 소

  • 어게인, 비긴   제235화

    ‘돌아오라고?’예원 별장이 정말로 고은서의 집인 것처럼 말했다.곽승재의 이런 아무 의미 없는 질문에 고은서는 마음속으로 냉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말없이 바로 떠났다.주방에서 나온 이미숙은 급급히 고은서를 불렀다.“사모님, 어디 가십니까? 아직 아침도 안 드셨습니다.”“제가 시간이 빠듯해서 아침을 못 먹을 거 같아요.”말을 마친 뒤 고은서는 문을 나섰다.고은서는 어깨가 채 낫지 않은 데다가 손바닥까지 다쳐서 직접 운전을 하기에는 무리였다.그녀가 핸드폰을 꺼내 들어 콜택시를 부르려고 한순간, 곽승재가 집 안에서 성큼성큼 걸어 나와 알 수 없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외할아버지댁까지 데려다줄게.”“아니...”“외할아버지의 얼굴도 볼 겸, 드릴 물건도 있어서 그래.”고은서가 거절의 말을 꺼내기도 전에 곽승재는 그녀에게 거절할 수 없는 이유를 제기했다.이때 주민기는 비싼 보양식 선물 박스를 몇 개 들고나왔으며 이미숙은 그녀에게 줄 도시락을 두 통 들고 나왔다.“사모님, 아무리 시간이 급하다고 해도 아침을 안 먹으시면 안 되십니다. 이 안에 디저트들을 준비해 놨습니다. 차 안에서 배 좀 채우시기를 바랍니다.”기사님은 차를 그들의 앞에 세웠다.고은서는 재차 거절하지 않았다. 그녀는 주민기가 선물 박스와 그녀의 캐리어를 트렁크에 넣는 것을 지켜보고는 이미숙이 주는 도시락을 건네받고 뒷좌석으로 들어갔다.얼마 지나지 않아, 차는 예원 별장을 나섰다.차 안에서 그 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 않았으며 분위기는 조금 이상했다.기사님은 운전에 집중하느라 별말을 하지 않았지만, 주민기는 이런 분위기가 조금 어색했다.그는 심지어 후회되었다. 곽승재는 그더러 사물함에서 선물 박스를 조금 챙기라고 했지, 반드시 꼭 같이 가야 한다고 말하지는 않았다.주민기는 물건만 놔두고 핑계를 대서 몸을 빼기 조금 난처했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덩그러니 바보처럼 차 안에서 이 정적을 즐기게 되었다.또 한창 지났을 때, 주민기는 고은서가 주동적으로 입을 열기는 불가능하다는

  • 어게인, 비긴   제236화

    곽승재가 물었다.“왜 운호 산장에 돌아가지 않은 건데?”고은서는 대답하기 싫다는 듯 입을 꾹 다물었다.그러자 곽승재의 표정이 굳어지며 불쾌한 기색이 감돌았다.“약을 바꿔치기 한 일이 너랑 관련이 있는지는 일단 내버려두고, 네가 아저씨를 차서 허리를 다치게 했으면 그렇게 무책임하게 가버리면 안 되는 거 아니야?”그 말을 들은 주민기는 머리가 지끈거렸다.큰일 났다.곽 대표가 이렇게 말하면 둘 사이가 더 어색해질 텐데.아니나 다를까 고은서는 그 말에 참고 있던 화가 폭발했다.“내가 뭘 잘못했는데? 네가 병원에 오라 해서 왔건만. 꼬치꼬치 캐묻고는 그것도 모자라서 이젠 돌아도 못 가게 하는 거야? 아주 그 자리에서 나한테 죄명을 씌워줄 때까지 기다려야 했었나봐? 아저씨랑 백유미한테 무릎 꿇고 사과라도 해야 한다는 거야?”“...”곽승재는 그녀의 말에 순간 말문이 막혔다.주민기는 이 상황을 도저히 지켜볼 수 없어 운전기사에게 급히 신호를 보냈다.어서 칸막이를 내려야만 이 불똥이 자신에게 튀지 않을 테다.칸막이가 내려가자 곽승재도 억누르고 있던 분노를 더는 참지 못했다.“고은서, 지금 이 상황에서도 네가 억울하다는 거야?”“약봉지에 네 지문이 없다고 단정할 수 있어? 아니면 약국에 가기 전에 백유미가 나타난 데에 화가 난 적도 없다고 말하는 거야?”역시 곽승재는 이미 지문 검사를 했던 것이다.“백유미는 GS그룹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일 뿐이야. 이사 자리에 있는 것도 그만한 실력이 있어서고. 본사에 와서 원하는 자리를 고르라고 기회를 줬는데 네가 거절했잖아. 그런데 지금 와서 또 백유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설치고. 대체 원하는 게 뭐야?”곽승재가 물었다.“그쪽이랑 거리 두는 게 내가 원하는 거라고. 대체 몇 번을 말해야 아는데?”고은서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네가 서류에 도장 찍는 걸 미루면서 애매하게 구니까 백유미가 계속해서 이런 자극적인 행동을 하는 거잖아!”“자기 몸과 생명을 걸고 장난칠 사람이 어디 있어?”“있잖아. 백

  • 어게인, 비긴   제237화

    곽승재의 걱정이 담긴 목소리는 고은서의 귀에 비웃음처럼 들릴 뿐이었다. 고은서는 입술을 꾹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어떻게 된 거라뇨? 자갈이나 깨진 유리가 살 속으로 박힌 것 같은데 짚이는 군데 없어요?”의사가 고은서 대신 대답했다.곽승재는 그제야 무언가 떠오른 듯 말했다.“혹시 쓰레기통 위에 있던 방화용 자갈에?”고은서는 여전히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의사는 그녀를 타이르듯 말했다.“아가씨, 손을 이렇게 다쳤으면 조심했어야죠. 겨우 아물어가던 상처가 다시 찢어져서 얼마나 아프겠어요. 괜히 고생을 두 번 하잖아요.”“아내가 다친 줄 몰랐습니다. 내가 너무 세게 잡았어요.곽승재는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 돌렸다.의사는 고개를 들며 곽승재를 쳐다보았다.“아내라면서 다친 것도 모르셨어요?”평소 자신감 넘치던 곽 대표도 그 순간 의사의 한 마디에 얼굴이 뜨거워졌다.그는 헛기침하며 변명하듯 말했다.“당시 상황이 좀 급해서요.”“그럼 현장에 있었다는 얘기네요? 그런데도 아내가 다친 걸 몰랐어요?”의사는 더 놀란 듯 물었다.“아내가 다친 것보다 더 급한 일이 뭐가 있길래요?”곽승재는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고은서는 그런 그를 보며 속이 시원했다.예전 같았으면 분명 곽승재 대신 해명해 주었겠지만, 지금은?잘 됐다. 이렇게 당해도 싸지.“혹시 강제로 결혼하신 건 아니죠? 평소에도 저렇게 무관심한가요?”의사는 조심스레 고은서에게 물었다.고은서는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그런 셈이죠.”비록 맞선으로 만난 건 아니지만 곽승재가 그녀와 결혼한 건 할머니의 뜻을 거스르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가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 것도 사실이었다.“지금 진료하시는 겁니까? 아니면 험담하는 겁니까?”곽승재는 눈살을 찌푸리며 의사에게 말했다.“환자 진료나 제대로 보시죠.”의사는 다시 한번 곽승재를 훑어보았다. 그의 큰 키와 기품 있는 외모를 보며, 작게 속삭였다.“아가씨, 남편 고를 때 이렇게 겉만 멀쩡한 사람 말고 진짜로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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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게인, 비긴   제1104화

    박지연은 계속해서 불만을 터뜨렸다.“내가 보기엔 여시은은 태생이 못돼먹었어!”“이번에 그렇게 크게 당했으니 더더욱 널 원망할 거야. 너 조심 좀 해.”박지연이 걱정스럽게 당부했다.고은서는 고개를 끄덕였다.이미 각을 세우기로 마음먹었기에 여시은과 평화롭게 지낼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앞으로는 여시은을 더 철저히 경계할 것이다.“듣자 하니 곽승재가 내내 널 감싸줬다며? 너한테 점점 마음이 가는 모양이야.”박지연이 코웃음을 쳤다.어젯밤 곽승재가 고은서를 계속 도와줬던 건 사실이었다. 증거를 공개하자고 제안한것도 곽승재의 생각이었고 마지막에 그녀를 집까지 데려다줬다. 곽승재가 고은서에게 큰 도움을 준 셈이었다.하지만 고은서는 곽승재에 대한 이야기를 박지연과 깊이 나누지 않았다.잠시 다른 이야기를 하던 중 박지연이 고은서에게 뜬금없는 소문 하나를 전했다.“우리 과장님한테서 들었는데, 어제 혜린 씨가 다니는 병원에 조 여사님이 찾아가서 난리를 쳤대. 혜린 씨 남자관계가 복잡하다고, 다른 남자랑 팔짱 낀 사진까지 들고 와서 공개하면서 혜린 씨랑 그 자리에서 머리끄덩이 잡고 싸움 났대!”고은서는 지난번 소동 이후 손자를 중시하는 조수연이 한동안은 조용할 거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고작 며칠 만에 또 난리를 친 거였다. 조수연의 전투력은 엄청 대단했다.“아니, 그러다 혜린 씨 혹시라도 애를 지우기라도 하면 어떡하려고 그래?”고은서가 물었다.박지연은 말했다.“조 여사님 말로는 혜린 씨 뱃속 애가 자기 아들 애가 아닐 수도 있다고 의심해서 혜린 씨를 끌고 가서 친자 확인하자고 했대. 그래서 둘이 몸싸움까지 벌어져서 이미지도 최악이라 혜린 씨는 한 달 정직당했어.”“혜린 씨 배속에 애가 온승준 씨 애가 아니라고? 그럼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그 집에 들어가려고 애쓰는 거야? 그냥 진짜 애 아빠랑 결혼하면 될걸...”고은서는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았다.“소문엔 그 남자가 유부남에 애까지 있다고 하더라. 자세한 건 나도 몰라. 그냥 과장님이 흘린 얘기야.”

  • 어게인, 비긴   제1103화

    여시은은 여전히 여재훈의 다리를 붙잡고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그럼, 아빠가 생각하시는 해결 방법은 뭐예요?”여재훈은 여시은에게 홍보팀을 통해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공개 사과하고, 개인적으로 고은서에게 직접 진심으로 사과한 뒤 집에서 2주 동안 자숙하라고 말했다.“제 회사는 아직 개업식도 제대로 안 했는데 공개 사과를 하라뇨? 그럼 모든 사람들이 저를 웃음거리로 볼 거 아니에요!”여시은은 눈이 퉁퉁 부은 채 애원했다.“아빠, 저 은서한테 개인적으로 사과만 하면 안 돼요? 저도 아직 경험이 부족해서 사람들을 이끌기 힘든데, 공개적으로 사과하면 앞으로 누가 저를 믿고 따르겠어요?”“안 된다.” 여재훈은 단호하게 말했다.“이 일은 이미 파장이 커졌고 많은 사람들이 너를 지켜보고 있어. 그러니 모든 사람에게 확실하게 해명해야 한다.”“시은아, 잘못을 저지른 건 무서운 일이 아니야. 진심으로 뉘우치고 성실하게 사과하면 은서 씨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너에게 다시 기회를 줄 거다.”여재훈은 계속해서 말했다.“사람은 자기가 저지른 잘못에 책임질 줄 알아야 한다. 네가 잘못했는데 내가 덮어주면 그건 너를 망치는 거야. 그러니까 이 일은 이렇게 결정된 거다!”여시은은 그 말을 듣자 속으로 분노가 치밀었다.‘고은서를 그저 연못에 좀 빠지게 했을 뿐인데 이게 뭐 그렇게 큰일이라고 이렇게까지 일을 키운단 말인가?’‘공개 사과라니, 이제 예전처럼 모두에게 존경받고 칭찬받던 모습은 끝이라는 거잖아.비록 인터넷의 영상은 지워지더라도 사람들이 나에 대한 나쁜 인상은 지워지지 않을 거란 말이야!’오늘 밤 그렇게 많은 부유층과 정재계 인사들이 있는 자리에서 그녀는 그들에게 최악의 인상을 남겼을 것이다. 해성에서 쌓아온 그녀의 완벽한 이미지가 단번에 무너진 셈이다.예전엔 그녀가 울기만 하면 여재훈은 안쓰러워하며 뭐든지 다 용서해 줬었다.‘지금은 무릎까지 꿇었는데도 아빠는 고은서 때문에 자신의 딸을 벌하려 한다니, 정말 나를 딸로 생각하긴 하는 걸까?’

  • 어게인, 비긴   제1102화

    여시은은 그 말을 듣자 눈이 시뻘게지면서 큰 소리로 외쳤다.“아빠, 제가 한 게 아니라니까요! 고은서가 일부러 저를 함정에 빠뜨린 거예요. 왜 저를 믿지 않으세요!”“시은아!”여재훈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며 난생처음으로 이토록 차가운 눈빛으로 딸에게 화를 냈다.“너는 어쩌다 이렇게 뻔뻔하게 거짓말만 하는 사람이 됐니!”“내가 사람을 시켜서 확인해 봤어. 연회장 CCTV 꺼놓은 거, 그거 네가 시킨 거더라.”여재훈은 딸을 억울하게 만들까 걱정돼 CCTV 관련 내용을 직접 조사했다.그런데 정말로 여시은이 꺼놓았던 것이었다.“네가 정말 은서 씨를 해치려는 의도가 없었다면 왜 CCTV를 미리 꺼놓은 거냐?”여재훈은 냉정한 태도로 물었다.여시은은 자신이 고은서의 계략에 걸려든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고은서는 일부러 도발적인 눈빛으로 여시은을 자극했고 곧바로 테라스로 이끌어냈던 것이다. 모두 여시은한테 엿 먹이려는 행동이었다!여시은은 고은서가 쿠아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격동적으로 행동해 자신을 밀칠 거라 확신했었다.왜냐하면 고은서는 지난번엔 쿠아를 다치게 한 일로도 크게 충격을 받았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이번엔 반전이 생겼다.고은서는 오히려 침착하게 반격했고 지난번 농장에서의 ‘물에 빠진 사건’ 증거까지 들고나왔다.일이 이렇게 커져 버린 이상 여시은은 더 이상 변명할 여지가 없다는 걸 알았다.그녀는 결국 울음을 터뜨리며 여재훈을 향해 소리쳤다.“맞아요! 저 고은서가 너무 꼴 보기 싫었어요! 왜 아빠는 맨날 걔만 칭찬하세요? 이러니깐 제가 질투 나서 그런 거 아니에요? 그냥 고은서한테 꼽 주고 싶었어요!”“어차피 이미 벌어진 일이에요. 전 잘못한 거 없어요! 후회도 안 해요!”“너!”여재훈은 손을 번쩍 들어 여시은의 뺨을 때리려 했지만, 그녀의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보고는 차마 때릴 수가 없었다.“시은아, 아빠가 평소에 너를 어떻게 가르쳤니? 사람은 자기 양심에 떳떳해야 하고 올곧게 살아야 한다고 했잖아! 근데 너는 어떻게 질투심에 눈이

  • 어게인, 비긴   제1101화

    이미숙은 유튜브 영상을 보고 있었는데, 바로 여시은이 고은서 머리끄덩이를 잡아당겨 연못 가까이로 끌어당기는 장면이 재생되고 있었다.그 영상은 누군가가 휴대전화로 촬영해 올린 것 같았고 화질이 너무 좋은 건 아니지만 전반 상황을 알아보는 데에는 충분했다.영상의 끝에는 고은서와 여시은의 얼굴을 비춘 장면도 담겨 있었다.다소 초라해진 고은서는 곽승재의 부축을 받으며 옆에 서 있었다. 여시은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눈빛엔 분노와 원망으로 가득했다.그 와중에 영상의 제목이 더욱 눈길을 끌었다.[재벌가 아가씨, 두 얼굴의 진실!]“사모님, 저 여자는 어쩜 저리 독하대요. 이렇게 심하게 괴롭히다니. 누가 폭로해 줘서 다행이지! 이제 세상 사람들 다 그 여자 피해서 다니겠어요!”이미숙은 화가 난 듯 말했다.고은서는 이번 일이 오래 퍼지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여시은 뒤에는 여재훈이 있기 때문이다.하지만 이번 일로 여시은이 보기 좋게 망신을 당했고, 여재훈 역시 자신의 딸이 그렇게 순진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테니, 이번 목적은 어느 정도 달성되었다.고은서는 이미숙의 휴대전화 영상에 대뜸 ‘좋아요'를 눌렀다.한편, 여씨 가문에서.여시은 역시 유튜브 영상을 확인했다. 분노에 찬 그녀는 휴대전화를 바닥에 내던졌다.밖에 서 있는 박미화가 조심스럽게 말을 전했다.“시은 아가씨, 회장님께서 지금 바로 서재로 오시래요. 할 말씀이 있으시답니다.”이번이 박미화가 세 번째로 말을 전하러 온 것이었다.여시은은 곧바로 얼굴에 드리워진 분노와 짜증을 숨기고는 일부러 슬프고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방문을 열었다.박미화는 방안에서 반응이 없자 방문을 열려고 하였다. 때마침 여시은이 문을 열고 나오는 것을 보고 급히 손을 거두며 사과했다.여시은은 박미화의 손을 움켜쥐었다. 조금 전에 분노로 인해 물어뜯은 날카로운 손톱이 그녀의 살을 깊이 파고들었다. 그리고는 여시은은 울먹이는 말투로 물었다.“미화 언니, 아빠가 나한테 화 많이 나신 거야? 나 어떻게 해야

  • 어게인, 비긴   제1100화

    얼마 지나지 않아 운전기사가 차를 라이트문 아파트 앞에 세웠다.고은서와 곽승재는 위층으로 올라갔다. 고은서는 샤워하기 위해 자신의 방으로 직행했고 곽승재는 거실에 남았다.샤워를 마치고 나온 고은서는 의외의 광경을 목격했다. 곽승재가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고 테이블 위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차 한 잔이 놓여 있었다.“왜 또 왔어? 할 말 있어?”고은서가 물었다.곽승재는 태연하게 대답했다.“논의할 게 있어서. 그전에 이 콜라 생강차부터 마셔. 아주머니께서 특별히 준비하신 거야.”“사모님, 콜라 생강차는 감기 예방에도 효과적이거든요. 어서 드세요!”이미숙이 차를 가져오며 말했다.고은서는 감기에 걸릴까 봐 걱정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녀는 잔을 들어 올리더니 이상한 듯 물었다.“아줌마, 제가 방금 들어온 걸 보지도 못하셨을 텐데 어떻게 제가 감기 걸릴 줄 아시고 미리 차를 준비하셨어요?”이미숙의 눈가에는 잠시 당황한 기색이 스쳤다.곽승재가 자연스럽게 말을 이었다.“내가 알려줬어. 일단 마셔.”고은서는 고개를 숙여 생강차를 내려다 볼뿐 이미숙의 표정 변화를 주의 깊게 보지 못했다.물론 곽승재의 눈에 비친 기대감도 보지 못했다.생강차의 냄새를 맡아보니 생강 향이 꽤 진했다.고은서는 생강차를 조심스럽게 한 모금 마셨다. 콜라의 단맛과 생강의 톡 쏘는 맛이 어우러져 생각보다 맛이 나쁘지 않았다.“맛이 어때요?”이미숙이 물었다.“좋네요. 그런데 오늘은 생강을 좀 많이 넣으신 것 같네요. 예전에 만드신 것보다 더 매운데요.”이미숙은 잠시 망설이다가 급히 대답했다.“생강 양을 조절하지 못했네요. 주의할게요.”고은서는 더는 따지지 않고 다시 마시려던 참이었는데 곽승재가 말을 건넸다.“맛이 별로면 안 마셔도 돼.”고은서는 그를 흘겨보았다.“누가 맛없다고 했어? 아줌마가 정성스럽게 준비해주신 건데 끝까지 마셔야지.”“사모님, 도련님과 얘기 나누세요. 저는 할 일이 남아서 먼저 가보겠습니다.”이미숙은 두 사람의 언쟁을 피하려는 듯 급히 자

  • 어게인, 비긴   제1099화

    고은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곽승재에게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그녀는 친구에게 부탁해 적절한 시기에 감시 카메라를 끊어놓도록 준비해두었다.하지만 여시은이 먼저 참지 못하고 로비의 카메라를 꺼버린 것이다.고은서가 감히 감시 카메라의 확인을 제안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녀는 자신만의 준비를 했을 뿐만 아니라 여시은 역시 감시 카메라를 조작할 것이라는 점까지 예측했다.“만약 여시은이 참고 끝까지 널 찾지 않았다면 어떻게 할 작정이었어?”곽승재가 물었다.고은서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개업식이 끝난 후 대형 스크린에 공개할 계획이었어.”곽승재가 눈썹을 추켜세웠다.“네가 앞서 백스테이지 주위를 둘러본 것도 동영상을 공개할 준비를 했던 거야?”고은서는 고개를 끄덕였다.“여시은이 일부러 나를 물에 빠뜨리고 향수로 나를 함정에 빠뜨렸을 뿐만 아니라 쿠아까지 학대했어. 내가 당연히 가만히 있을 수 없지! 그리고 시은이가 인내심을 가졌다고 해도 난 개업식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을 거야.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러지 못했지. 시은이는 결국 참지 못하고 테라스에서 쿠아의 죽음을 언급하며 나를 자극했고 다시 같은 수법을 쓸 참이었던 거지. 나는 그저 시은이가 파려던 함정을 그대로 돌려준 것뿐이야.”곽승재는 고은서가 준비를 해왔을 거라 예상했지만 이런 고육지계를 공개적인 자리에서 펼칠 줄은 몰랐다.게다가 그녀의 연기는 너무나도 실감 났다.고은서가 바닥에 넘어져 흐트러진 모습을 보는 순간 곽승재는 정말로 여시은의 소행일 것으로 생각할 정도였다.고은서는 곽승재의 생각을 읽었는지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가여운 척 한 거 아니야. 백유미와 여시은이라는 고수들 덕분에 나도 한 수 배웠을 뿐이지.”백유미의 과거 행동을 떠올린 곽승재는 가슴을 죄는 듯한 자책감이 밀려왔다.곽승재는 진지하게 사과했다.“은서야, 미안해.”무심코 흘린 말에 곽승재가 사과하는 모습을 본 고은서는 잠시 당황했다.“사과할 필요는 없어. 당신도 백유미 씨에게 속았을 뿐이잖아. 어쨌든 ‘목숨의 은인'

  • 어게인, 비긴   제1098화

    “시은아!”영상 속 장면에 충격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재훈은 걱정된 목소리로 딸을 불렀다. 그리고 뒤이어 멀리 있는 부하들에게 명령했다.“어서 따라가서 시은이를 보호해! 무슨 일이라도 생기게 해서는 안 돼!”부하들이 여시은의 뒤를 쫓아 나간 뒤 여재훈은 스크린을 힐끗 바라보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고은서에게 사과했다.“제가 딸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습니다. 이 일은 제가 시은에게 직접 확인한 뒤 여은서 씨께 해명해 드리겠습니다.”고은서는 목적을 달성했으니 더는 그곳에 머물 생각이 없었다. 그녀는 옷을 갈아입어야 한다는 이유로 자리를 떠나려 했다.“여 대표님, 제가 은서 씨를 모셔다드리겠습니다.”곽승재가 말했다.송민준 역시 함께 가겠다고 전했다.여재훈은 당연히 거절하지 않았다. 개업식에서 이런 소동을 일으킨 이상 누구라도 축하할 마음이 없을 터였다.고은서 일행이 떠나자 여재훈은 참석자들에게 직접 사과하며 홍보팀에 현장 수습을 지시했다.호텔 앞 광장에서 곽승재와 송민준의 운전기사들이 각각 차를 대기시켜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송민준은 고은서를 배웅하려는 태도를 보였으나 곽승재가 고은서를 부축하면서 예의를 갖추어 말했다.“번거로울 텐데 제가 은서 씨를 모시고 가겠습니다.”송민준은 자기가 고은서의 파트너로 왔기 때문에 그녀를 집까지 모셔다드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설득했다.곽승재는 송민준의 이런 친근한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억지로 고은서를 안아 들어 자신의 차에 태우고 싶었지만 고은서가 화를 낼 것을 잘 알고 있었다.그는 입을 오므리다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선택권을 고은서에게 넘겼다.고은서는 당연히 송민준과 함께 갈 생각이 없었다.“오빠, 오늘은 고마웠어. 오늘 승재 오빠의 차를 타고 갈게. 어차피 길도 같으니까. 내일 다시 연락할게.”고은서의 반응에 송민준은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알겠어. 집에 도착하면 연락해.”곽승재는 고은서를 차에 태운 뒤 트렁크에서 깨끗한 외투를 꺼냈다.차 안에 앉자 곽승재는 고은서의 어깨

  • 어게인, 비긴   제1097화

    여시은은 고은서의 말에 더욱 어리둥절해졌다.‘갑자기 왜 또 농장 일을 다시 꺼내는 거지?’여시은은 속으로 불길한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그녀는 생각할수록 점점 더 억울하고 분했다.“은서야, 왜 나를 이렇게 모함하는 거야? 내가 언제 너를 물에 빠뜨렸다고 그래? 네가 나를 밀었잖아! 내가 우리 아빠를 생각해서 참고 넘어갔는데 이제 와서 또 나에게 뒤집어씌우다니!”여시은은 여재훈을 바라보며 눈시울을 붉혔다.“아빠, 저는 항상 사람을 보는 안목이 없는 것 같아요... 은서가 이런 사람일 줄은 정말 몰랐어요... 너무 속상해요...”여시은의 슬프고 안쓰러운 모습에 여재훈은 점차 진지해졌고 고은서를 보며 물었다.“고은서 씨, 시은이가 은서 씨를 물에 빠뜨렸다는 증거라도 있어요?”“물론 있죠.”고은서는 이미 곽승재의 부축을 받아 일어난 상태였다. 그녀는 휴대폰을 꺼내 송민준이 보낸 영상을 찾았다.현장에 있던 사람들 모두 다가가지는 않았지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고은서가 진짜 증거를 가지고 있다는 소식을 듣더니 그들의 호기심을 더욱 자극했다.이때 곽승재가 제안했다.“여 대표님, 모두가 보는 앞에서 영상을 공개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모두가 직접 보면 진실이 명백해질 테니 나중에 왜곡되는 일도 없을 겁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여시은은 고은서가 미리 준비한 듯한 태도를 보이자 불안감이 더욱 커졌다.고은서가 이렇게 계획적으로 행동할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증거를 손에 넣었을지도 모른다.여시은이 고은서를 과소평가했던 것이다.여시은은 붉어진 눈으로 소리쳤다.“도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거에요! 이미 개업식 시간이 다 됐는데 계속 이러쿵저러쿵하며 일을 벌이다니! 고의로 우리 개업식을 방해하는 거 아니에요?”“아빠, 오늘 이분들은 분명히 좋은 의도로 온 게 아닌 것 같아요. 그냥 쫓아내는 게 낫겠어요!”“여시은 씨, 말씀이 참 지나치군요. 우리는 단지 진실을 알고 싶을 뿐입니다.”송민준이 여재훈보다 먼저 입을 열

  • 어게인, 비긴   제1096화

    구경하는 사람들도 송민준을 쳐다보았다. 그들은 도대체 왜 그의 여자 파트너가 곽승재의 품에 안겨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송민준은 사람들의 의문스러운 시선을 받고 있었지만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여시은 씨, 저는 단지 사실을 말했을 뿐입니다. 은서와 여시은 씨의 사이에 아무런 원한도 없는데 은서가 왜 그런 행동을 하겠습니까?”“아빠, 정말 제가 한 게 아니에요! 저 사람들은 같은 편이라서 일부러 저를 괴롭히려는 거예요!”여시은은 억울함을 참지 못하고 그녀의 아버지에게 도움을 청했다.여재훈은 눈물 글썽이는 딸을 바라보더니 온몸이 흐트러진 고은서를 향해 물었다.“고은서 씨, 사실대로 말해보세요. 방금 무슨 일이 있었는지.”고은서는 감정을 어느 정도 추스렸지만 이런 일을 당하면 당연히 난처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최대한 평온한 어조로 대답했다.“여 대표님, 제가 뭘 말해도 소용없을 겁니다. 시은이와 저는 각자 주장이 다르기 때문에 누구도 판단하기 어려울 겁니다.”고은서는 로비 주위를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여기 곳곳에 감시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어요. 직원들을 시켜 감시 카메라를 확인해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러면 진실도 드러나겠죠.”이 말을 듣자 여시은의 얼굴색이 확 변했다.고은서가 여시은보다 먼저 바닥에 넘어졌는데 감시 카메라의 확인까지 제안하다니!‘설마 은서가 이 시간대에 감시 카메라를 꺼뒀다는 걸 알고 있는 건 아니겠지?’“시은아, 너의 생각은 어때?”고은서는 고개를 들어 여시은에게 물었다.여시은은 분노를 꾹 참고는 여전히 억울하고 순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좋아! 하지만 개업식 시간이 다가오고 있는데 감시 카메라는 확인하는 동안 내가 먼저 개업식을 진행하고 나중에 이 문제를 논의하는 게 어때?”“안 돼.”고은서의 작은 얼굴에는 단호한 표정이 담겨있었다.“이 사건은 반드시 바로 조사되어야 한다고 봐.”고은서는 다시 여재훈을 바라보며 말했다.“여 대표님, 폐를 끼쳐 죄송합니다. 제가 시은이 만큼 귀하지는 않지만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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