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이 곽연철을 대신해서 나설 것이 분명했다.출자해서 제왕그룹의 지분을 사들이는 것은 첫걸음일 뿐.충분한 성의를 보이며 자신과 합작을 진행한 곽연철을 자신이 어떻게 서운하게 할 수 있겠는가?저녁에 무진은 김남수를 데리고 북성의 한 고급 바에 있는 강일헌을 찾아 갔다.김남수는 항상 무진의 주위에 몸을 숨긴 채로 무진의 안전을 지켜온 고수였다.평상시에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김남수이지만, 이번에 특수한 성격의 임무를 맡기고자 무진이 불러냈다.손건호는 최근에 긴급히 처리해야 할 다른 일로 빈번히 출장을 다니는 바람에 불러내기가 쉽지 않아 김남수를 대신 불러낸 참이다.강일헌은 이 순간에도 화끈한 몸매의 미녀 둘을 양쪽에 껴안은 채 비몽사몽 술에 취해 있었다. 마치 신선이라도 된 듯한 지금의 생활이 우쭐거릴 정도로 마음에 들었다.주위는 온통 그를 향해 아부하는 사람들로 가득해 더 의기양양한 기분이었다.강일헌이 한창 사치스러운 환락을 즐기고 있을 때, 난데없이 소파에서 강제로 끌려내려 왔다.바로 인상을 쓰며 노발대발하던 강일헌이 고개를 들자 자신의 눈앞에 서 있는 강무진이 보였다.싸늘한 얼굴의 무진은 암암리에 숨기고 있던 냉기를 온몸으로 뿜어내고 있었다.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느낀 강일헌은 그저 입술을 떨기만 할 뿐 한마디도 입밖으로 꺼내지 못했다.무진을 본 사람들은 슬슬 눈치를 보더니 하나 둘 자리를 떴다.어디까지나 저 위 세계 신들의 싸움, 두 사람 누구에게도 밉보이는 건 좋지 않으니, 아무래도 멀리하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을 터.순식간에 룸 안이 텅텅 비어 버렸다.무진이 강일헌을 향해 바로 경고를 날렸다.“오늘부터 제왕그룹은 WS그룹 소속이야. 만약 한 번 더 감히 제왕그룹에 손을 댄다면 더 이상 날 원망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강일헌은 여전히 억지를 부리며 아무것도 모르는 척했다.“헤이, 무진 형, 지금 우리 둘째, 셋째 일가가 강씨 집안에서 떨어져 나온 지가 언제인데, 이제 와서 뭘 어쩌시려고? 굳이 우리 둘째, 셋째 일가 사람들을
팅팅 부은 얼굴로 강일헌이 집으로 돌아왔다. 옷에 묻은 먼지와 얼룩도 지우지 못한 채.거실에 앉아 있다가 형편없는 모습을 한 강일헌을 본 강명재는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내가 온종일 밖에서 고군분투하며 이런저런 방법을 짜내고 하는 게 모두 누구를 위한 건데?’‘그런데 내 아들이 이렇게나 변변치 못하다니.’테이블을 두드리며 아들 강일헌을 향해 분노를 터트렸다.“이런 꼴로 또 어디에 가서 빈둥거린 게냐?”평소라면 아들 강일헌이 어떻게 논다 해도 상관없었다.그러나 지금은 은성그룹의 일거수일투족을 강무진이 지켜보고 있는 아주 중차대한 시기가 아닌가.어디에서든 아주 사소한 실수만 저질러도 성공을 눈앞에 두고 실패할 수 있었다.그런데 아들 강일헌이 이런 중차대한 상황에서 짜증나게 하는 것이다.‘하, 어쩌다 이런 쓸모없는 아들을 낳았는지?’안 그래도 강무진에게서 수모를 당하고 들어온 차에, 아버지 강명재가 자신에게 분노를 터트리자 강일언은 더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스물이 훌쩍 넘은 사내대장부가 눈가가 붉어진 채 아버지에게 미주알고주알 자초지종을 털어놓으며 변명했다.강명재는 강일헌의 얼굴이 강무진의 작품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그리고 사실 강일헌과 강진성 두 사람이 제왕그룹에 가서 소란을 피운 것도 따지고 보면, 강명재, 강명기 두 어른의 지시에 따른 것.강무진 또한 그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그러나, 강무진은 전혀 자신들의 입장을 생각해 주지 않았다!강명재는 어두운 얼굴로 강일헌을 힐끗 쳐다본 후에 입을 열었다.“어서 가서 상처를 처치하지 않고 뭐해! 강무진과 붙어서 이런 꼴이나 되다니, 그 놈과 맞설 생각은 다시는 하지도 마. 그야말로 망신스럽다!”아버지 강명재의 허락이 떨어진 후에야 강일헌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옷을 갈아입고 상처를 치료했다.거실에 혼자 있던 강명재는 다른 생각이 들었다.이번에 강무진이 한 일을 보면 정말이지 이쪽에 인정사정 봐주지 않은 셈이다.즉 다시 말해, 앞으로 은성그룹과 WS그룹은 서로를
외출하려던 송아연은 갑작스럽게 초대장 한 장을 받았다.고급스럽게 포장된 초대장에서 송아연을 초대한 곳도 아주 고급 장소였다.하지만 서명은 없었다. 송아연은 누군가 강진성의 기분을 맞춰가며 붙어있는 자신을 보았나 하고 생각했다. 예전에 무시하던 사람들도 이제는 자신에게 잘 보이려 들었다.‘나에게 들킬까 봐 이런 방법을 쓴 거겠지?’나르시시즘적 생각에 빠진 송아연.‘어차피 집에서도 심심하기만 한데, 초대 장소로 가 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안 그래도 지금 자신의 곁에 팔다리 노릇을 해줄 이가 없어 걱정이던 참이다. 그런데 이렇게 바로 눈앞에 온 제의를 거절할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그런 생각을 하며 송아연은 초대 장소로 갔다.룸 넘버를 확인하고 들어가자 아주 아름다운 여자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아무리 생각해도 눈앞의 여자에 대한 기억이 자신에게는 없었다.송아연이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심을 지닌 채 물었다.“실례지만, 누구시죠?”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할까 봐 예의를 갖추어 입을 열었다.앞에 있는 여자가 입은 옷들은 모두 명품이었다. 게다가 동작 하나하나에서 기품이 느껴지는 게 보통 만만한 여자가 아니게 보였다.“왔어요? 앉아요.” 송아연을 초대한 사람은 바로 소지연.송성연을 처리할 좋은 방법이 생각난 소지연은 송아연에게 먼저 손을 쓸 생각이었다.먼저 송아연을 조사해서 돈에 눈이 먼 된장녀라는 사실을 알아냈다.이런 사람은 부추기기 가장 좋은 부류다. 돈이라면 뭐든 아무렇지 않게 다 할 수 있으니.또한 소지연은 여태껏 돈이 부족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고.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송아연은 소지연의 맞은편에 앉았다.송아연은 소지연이 자신을 초대한 목적이 무언지 알 수 없었다.음료 두 잔을 주문한 소지연이 한 잔을 송아연에게 건넸다. 그다지 마실 생각이 없던 송아연은 바로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실례지만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또 무슨 목적으로 날 부른 거죠?”소지연도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고 싶지 않았다. 어쨌든 송아연 같은 무뇌
소지연은 자신의 말에 동의하는 송아연을 바라보았다. 예상했던 그대로였다.송아연은 자존심 강하고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었다.성연이 오기 전까지 온갖 애정과 관심 속에서 작은 공주처럼 지내던 송아연이었다.학교에서도 말없이 따르는 꽤 많은 추종자들을 거느렸다.그러나 송성연이 온 후, 송아연의 모든 위선과 가면이 벗겨지며 남은 게 아무것도 없게 되었다.심지어 송성연 때문에 강제 낙태 수술을 받기도 했다.그러니 송아연이 송성연을 미워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송아연은 송성연에게 복수할 수 있는 기회라면 절대 놓치지 않을 것이다.소지연은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송성연에 대한 송아연의 증오가 깊을수록 자신의 계획이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지니까.아니나 다를까, 자신의 말 몇 마디에 송아연이 성공적으로 넘어왔다.소지연이 계속해서 말했다.“송성연은 곧 대학 진학을 위해 유럽으로 갈 거예요. 그때 송아연 씨도 가세요. 손을 쓰기 편하게.”송아연은 반신반의의 눈빛으로 소지연을 응시했다.“유럽에서 대학에 다니는 데에는 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요. 나는 그 돈을 낼 형편이 안되고요.”송씨 집안은 말할 것도 없다. 아버지 송종철은 위태로운 회사를 살리기 위해 매일 분주하게 쫓아다니며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그 사이 폭삭 늙은 임수정은 별다른 능력도 없어 온종일 집에서 살림만 하는 처지였다.그러니 집에 돈이 나올 구멍이 어디 있겠는가.게다가 강씨 집안에서의 생활도 그리 넉넉치 않아서 언제나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었다. 강진성은 자기 기분 내킬 때만 송아연에게 돈을 주었다.강진성이 밑도 끝도 없이 그녀에게 돈을 대줄 리가 없었다.그러니 유럽에 가는 일은 돈이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다.“그 점은 걱정 말아요. 학비, 기숙사비 및 생활비까지 모두 내가 다 책임지겠어요. 돈은 별 문제 아니에요.”소지연이 호탕하게 말했다. 동시에 마음속으로는 송아연을 깔보았다.‘역시 서민 가정 출신은 어쩔 수가 없다니까.’ ‘속으로 돈 생각밖에 안 하네. 일이 성공하고 송성연을
지난번 소지연이 무진의 침대 위에 누워 있었던 일로 성연은 여전히 기분이 나빴다.소지연에 대해 계속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성연은 수하를 시켜 소지연의 행적을 조사하게 했다.이 일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자니 마음이 놓이지 않았던 성연은 결국 가장 믿을 수 있는 수하 서한기에게 시켰다.며칠 소지연의 행적을 쫓던 서한기가 성연에게 보고했다.“소지연의 행적에서 아무런 이상도 발견하지 못했어요.”눈살을 찌푸린 성연은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그날 휴양지 리조트에서 보여준 모습을 봤을 때, 소지연은 자신의 진짜 목적을 숨길 생각도 없었다.또 자신에게 선전포고를 한 마당에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는 건 말이 안된다.성연이 성질을 참으며 서한기에게 계속 물었다.“그럼 요 며칠 소지연은 뭘 하고 있어?”서한기가 대답했다.“주로 WS그룹 밑에서 지켜봤는데, 소지연은 며칠째 강무진 대표를 찾아가지 않았어요. 회사 로비에서 그녀의 그림자조차 본 적이 없어요. 소지연은 부모님과 쇼핑을 하거나 아니면 친척과 친구를 만나며 지냈어요. 전혀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없었어요.”소지연 스스로 이제 막 귀국한 참이라 부모님과 많은 시간을 보낼 거라고 말했었다. 친구를 만나러 나가는 것 또한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일.그러나 무진에 대한 소지연의 집착을 생각했을 때, 며칠이 지나도록 무진을 만나러 가지 않았다는 건 말이 좀 안 되지 않나?성연은 소지연, 이 여자가 반드시 무슨 일을 저지를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그녀는 절대 겉으로 드러나는 것처럼 그렇게 순진하고 착하지 않았다.폰 건너편에서 성연의 대답이 들리지 않자 서한기가 놀렸다.“보스, 무슨 일인데요? 소지연, 이 여자가 보스의 연적이에요?”“그런 셈이지, 어차피 무진 씨를 놓고 딴 생각을 품고 있으니까.” 성연이 담담하게 대답했다.그날의 일에 대해 서한기에게는 말하지 않기로 했다.서한기의 호들갑스러운 성격에 소문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른 사람들이 알게 되면 더 수습하기 어렵게 될 터.조직의 사람들은
소지연에 대한 성연의 예상이 맞았다.소지연은 절대 가만히 앉아서 기다릴 생각이 없었다.확실히 곧바로 움직임이 있었다.소지연 갑자기 성연을 찾아와 식사에 초대하며 기어코 성연에게 밥을 사겠다고 했다.소지연이 웃으며 말했다.“성연 씨, 지난번에 초대하고 싶었지만, 성연 씨가 시간이 없다고 했잖아요. 오늘 보니, 성연 씨 게임을 하고 있으니 시간 있죠?”그 말은 이제 거절할 이유가 성연에게 없다는 것.소지연은 이미 집으로 방문한 상태.뭐라고 거절하든 성연이 가지 않으면 말이 좀 안 되는 상황이다.게다가 성연은 무진을 곤란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전적으로 강무진 때문이었다. 그래서 성연이 소지연에게 대답했다.“한끼 식사일 뿐이니까, 모처럼 소지연 씨가 여기로 왔으니 내가 가는 게 맞겠죠.”소지연이 저 멀리서 여기까지 달려온 까닭이 바로 자신에게 밥 한 끼 사려는 것이라니.그 말은 성연도 믿지 않았다.그러나 소지연이 무슨 목적으로 그러는지 알 수가 없었다.성연의 승낙을 들은 소지연의 얼굴에 웃음이 더 진해졌다.“그럼 이렇게 해요. 오늘 내가 차를 몰고 왔으니까 내 차를 타고 같이 가요.”성연은 거절하지 않았다. 같은 장소에 가는데 누구의 차를 타든 무슨 차이가 있을까.소지연의 차에 탄 성연은 바로 뒷좌석에 앉아 소지연과의 거리를 벌렸다.가는 동안 두 사람 중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레스토랑에 도착한 후, 소지연이 장소 선택에 일가견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주변 환경이 아주 깔끔하면서도 아름다운 인테리어를 자랑하는 곳이었다.만약 오늘 함께 온 사람이 소지연이 아니었다면, 이곳을 아주 좋아했을 것이라고 성연은 생각했다.자리에 앉자 소지연이 메뉴를 성연에게 내밀었다.“성연 씨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겠네. 성연 씨가 직접 주문해요. 사양할 필요 전혀 없어요.”성연은 앞에 있는 메뉴판은 건드리지도 않은 채 말했다.“나는 뭐든지 다 괜찮으니까 소지연 씨가 주문하세요.”“아이참, 성연 씨는 무진 오빠의 약혼녀예요.
말 한마디 할 때마다 소지연은 술을 한 잔씩 마셨다. 결국 그녀의 얼굴은 새빨개져 이미 취한 듯이 보였다.성연의 안색이 변한 것을 본 소지연은 속으로 기뻤다.‘역시, 송성연, 신경이 쓰이겠지?’자신과 강무진의 관계는 누구도 뛰어넘을 수 없는 것이다. 영원히. 소지연은 눈을 게슴츠레하게 뜬 채 정신이 없는 척하며 말했다.“성연 씨, 나 취해서 솔직하게 한 말이니 신경 쓰지 말아요.”성연 또한 이를 갈며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했다.“괜찮아요, 신경 안 써요.”술에 취했다는 핑계로 소지연은 성연에게 ‘하소연’을 하기 시작했다.“무진 오빠와 성연 씨 정말 잘 어울려요. 무진 오빠의 성격이 성연 씨와 잘 맞나봐요. 무진 오빠, 예전에는 그 많은 여자들 모두 마음에 두지 않더니, 성연 씨한테는 신경을 쓰네요.”소지연은 마치 무진을 아주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말했다.마치 무진의 과거에 함께 한 자신이 무진을 대표할 수 있는 것처럼.이런 표현방식이 성연은 무척 싫었다.설령 소지연의 말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해도, 성연은 여전히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무진 오빠 부모님이 세상을 떠났을 때, 무진 오빠 혼자 WS그룹을 책임져야 했어요. 아무도 몰라요. 오빠가 얼마나 대단한 지, 성연 씨는 당연히 몰라요. 이렇게 오랫동안 표면적으로 WS그룹을 경영하는 사람은 할머니였지만, 사실 무진 오빠가 뒤에서 관리하고 있었어요. 회사는 오빠 손에서 일사불란하게 성장해서, 과거 그 누구도 닿지 못했던 높이까지 올라갔어요. 무진 오빠에게 더 필요한 사람은 옆에서 잘 보좌할 수 있는 여자예요.”이 말을 하며 소지연은 성연을 뚫어져라 응시했다.마치 성연은 무진에게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듯이.사실, 소지연의 생각은 바로 그랬다.무진의 가슴속에는 큰 그림이 있었다. 그리고 이후 무진의 지위는 지금과 비교할 수도 없을 것이다.강무진은 WS그룹을 이끌고 한 단계 더 성장할 것이다.그러나 송성연이 무진의 곁에 남아 있으면, 그저 거추장스럽기만 할 뿐이다. 전혀 도움
성연은 대답하지 않았다. 좋은 마음을 가진 게 아닌 소지연에게 고맙다고 과장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자신은 정말 그렇게 도량이 넓지 않았다.근데 소지연은 술을 핑계로 미친 척 연기했다.이런 말 저런 말들을 하면서 벌써 술을 반 병이나 마셨다.도수가 꽤 높은 술인데 말이다.성연에게 바로 대답을 듣지 못하자, 소지연은 잠시 멈칫했다가 다시 혼자 늘어놓기 시작했다.“성연 씨는 모르죠? 내가 무진 오빠와 스킨십을 할 뻔했던 거.” 그 시절을 회상하는 소지연의 눈에 그리움의 빛이 어렸다.‘맞아,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 나와 무진 오빠만 있고 아무도 없던 그때로.’강무진은 자신의 정신적 지주였고, 모든 염원이었다.강무진을 쫓아 가려고 죽을 힘을 다했다.그러나 그 결과는 무엇인가? 무진이 마음을 다른 여자에게 줘버리지 않았냐는 말이다.그러니 소지연이 어떻게 참을 수 있겠나?분명 무진의 옆 자리는 자신의 것이었다.성연보다 무진을 안 지 더 오래되었다. 또 오랫동안 계획을 세우고 기회만 기다렸다.그런데 자신이 없는 동안에 송성연이라는 계집애가 나타나 자신의 자리를 차지해 버렸다.소지연의 성격은 평상시 절대 송성연 같지 않았다.그러나 강무진에게 송성연이 차지하는 비중을 알고 나니 가만히 두고 볼 수가 없었다.송성연을 강무진의 곁에서 조금씩 뽑아내야 했다.성연은 소지연이 또 무엇을 하려는 지 알 수가 없었다.그저 턱을 괴고서 무료한 표정으로 소지연을 응시하기만 한 채 입을 열지 않았다.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소지연도 그 전처럼 즐겁게 떠들었다.어차피 이 말들 역시 소지연이 일부러 성연에게 들려주려던 것이다.“18살 때, 학교에서 몇몇 애들이 나를 쫓아다니며 괴롭히고 술도 강제로 먹였어요. 당시 무진 오빠가 나를 위해 모두 쫓아내 줬죠. 그런데 그때 비가 와서 무진 오빠와 나는 나란히 건물 처마 밑에서 앉아 비를 피했어요. 무진 오빠가 코트를 벗어서 나에게 주었고요. 무진 오빠를 냉담한 사람이라고 생각지 말아요. 사실 속마음은 무척 따
‘그런 예민주가 이렇게 몰락할 줄 누가 알았겠어?’‘결국 5년 동안이나 무진 씨 애인 노릇에 만족해 있었다니!’‘심지어는 오늘 같은 이런 악랄한 짓까지 저지를 정도가 되었으니. 스승님이 아시면 얼마나 섭섭하시겠어.’“송성연, 너 지금 미쳤어! 완전히 미쳤어!”예민주가 언제 이런 억울한 일을 당했을까? 연거푸 따귀를 맞은 데다가, 지금은 또 성연의 냉소와 신랄한 조롱을 들어야 했다.큰 소리로 호통을 치는 예민주의 눈빛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원래의 정돈된 헤어 스타일과 잘 차려 입은 옷차림은 이미 엉망이 되어 있었다.온몸에 지금 낭패한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회의실. 두 시간의 긴 회의가 마침내 끝났다. 무진이 회의실을 나서자마자 당황한 표정의 손건호가 휴대전화를 들고 다가왔다.무진은 미간을 찌푸리면서 짜증스러운 표정이었다.‘평소라면 손건호가 절대 이렇게 침착하지 못한 모습을 보이지 않을 텐데...’“보스, 예민주 씨가 맞았습니다!”사람들이 모두 나가자 손건호가 급히 보고했다.“뭐라고?” 무진이 되물었다.“보스, 빨리 사무실로 가 보십시오.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습니다.”방금 회의가 끝나갈 때, 손건호는 자료를 찾으러 먼저 회의실에서 나왔다.뜻밖에도 부리나케 달려온 비서실의 비서가 이 일을 알려주었다.무진의 눈동자가 어두워지면서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왜 아무도 막지 않았어?”무진이 왜 아무도 막지 않았냐고 물었지만, 손건호도 대답하기가 곤란했다.‘막고 싶어도 막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지요!’ ‘대표실은 원래 아무나 드나들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게다가 사모님(!)이 갑자기 뛰어들어갔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전혀 대비도 하지 못했어요.’‘안에서 예민주의 비명 소리가 들려서 막으려고 했지만, 이미 안에서 문을 잠궜기에 들어갈 수도 없었어요!’그러나 결국 손건호는 입을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대표실 앞으로 다가간 무진의 귀에 울음 소리와 함께 자기도 모르게 눈살이 찌푸리게 되는 소리를 들었다.
지금 아이의 몸에 난 상처는 보기만 해도 가슴이 아팠다.그리고 이런 상황에 직면하자, 성연은 범인이 바로 예민주라고 생각했다.‘방금 전에도 애들 앞에서 그렇게 헛소리를 지껄였어. 눈앞에 두 아이만 있는데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지.’‘그런 여자가 뭘 못하겠어?’‘이 순하기만 한 두 녀석은 엉뚱한 짓을 한 적이 여태까지 한 번도 없었어.’‘충분히 사랑을 받았지만, 그걸 믿고 교만했던 적은 없었어.’‘밖에서는 더 영리하고 깜찍해서 누구나 좋아해. 척 봐도 좋아할 수밖에 없어.’‘그런데 여기에 와서 온몸에 멍이 들다니!’성연의 가슴에서 다시 분노가 폭발했다.딸아이를 가볍게 내려 놓은 성연은, 여전히 따뜻한 눈빛으로 사무를 보면서 말했다.“동생을 잘 보고 있어. 너희가 당한 억울한 일을 엄마는 절대 그냥 넘기지 않을 거야!”“엄마, 저 아줌마는 나쁜 사람이야! 엄마가 반드시 혼내줘!”여전히 품에 안긴 채, 사진은 재빨리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두 눈에 가득한 억울함을 지금 열심히 엄마에게 표현하려고 했다.“걱정 마. 엄마가 저 여자를 혼내줄게!”바로 일어선 성연이 성큼성큼 예민주 쪽으로 걸어갔다.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예민주는 성연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습을 보았다.서한기로부터 벗어나려 발버둥쳤지만, 예민주가 어떻게 훈련으로 단련된 남자의 적수가 될 수 있겠는가?“놔! 너희들 뭐 하려는 거야?”예민주의 눈빛에는 걱정과 당황한 기색이 가득했다. 불안한 마음에 가슴은 두근거리면서 발걸음마저 비틀거렸다.짝! 짝!“이건 네게 주는 교훈이자 경고야. 내 아이는 절대 네가 건드릴 수 없어!”“네가 뭔데? 무진 씨 옆에 이미 5년이나 있었지만, 아직도 내 자리를 대신하지 못했지. 그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겠어!”“이건 첫 번째이자 마지막 경고야! 아이들은 바로 내 마지노선이야. 네가 또 손을 대면 절대 지금 이 정도로 끝나지 않아!”성연은 목소리는 마치 서릿발 같았다. 온몸에서 뿜어내는 싸늘한 기운에 무더운 날씨조차 얼음 세상으로 변하는 듯했
“오빠, 아빠가 정말, 정말로 우리를 안 받아들일까? 우리가 방금 아빠를 찾았는데.”작은 얼굴에 슬픔을 가득 담은 채, 사진은 간절한 시선으로 오빠를 바라보았다.예민주는 지금 자신의 말을 자화자찬하며 한껏 득의양양한 표정이었다.팔짱을 낀 채 아이들을 내려다보는 눈빛에는 승자의 기운이 가득했다.잠시 후 자신에게 벌어질 참상을 알았다면 절대 그러지 못했겠지만...대표 집무실 바깥.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성연은 결연한 눈빛으로 대표실을 향해 다가갔다.쾅-단숨에 집무실 문 앞에 선 성연은 아무런 노크도 없이 바로 방문을 열었다.“너 이 새끼, 정말...”아이 앞에서 거침없이 내뱉는 예민주의 말이 성연의 귀에 몹시 거슬렸다.“예민주, 뭐 하는 거야!”자신의 아이들이 눈물 자국이 가득한 채 구석에서 서로를 안고 있는 모습을 보자, 엄마의 본능이 단숨에 뿜어져 나왔다.“내 애들에게 무슨 짓을 했어!”단숨에 앞으로 나아간 성연은 두 손으로 예민주의 멱살을 움켜쥐었다.한 손으로 멱살을 쥔 채 다른 한 손으로는 바로 예민주의 따귀를 때렸다.“네가 뭔데 내 아이를 혼을 내? 너는 그럴 자격이 없어!”성연의 차가운 눈빛은 분노로 활활 타올랐다. 온몸의 분노가 곧 폭발할 듯이!잇달아 따귀를 때렸지만 때리는 소리는 오히려 점점 더 커져갔다.“엄마!” 성연이 다시 손을 들고 예민주의 뺨을 때리려고 할 때, 문득 익숙한 여린 목소리가 들렸다.순간 성연의 손에서 힘이 빠졌다.잠시 멈칫하던 성연은 계속 두드려 맞느라 이미 반쯤 정신이 나간 예민주를 밀쳐낸 뒤 딸아이를 품에 안았다.“아가, 엄마가 늦게 와서 미안해.”성연은 두 손으로 사진을 꼭 껴안은 채 자책했다. 지금 마음속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 방금 전 예민주를 때릴 때의 그 무시무시한 기세도 모두 사라졌다.슬퍼하는 성연을 보면서, 사무는 두 주먹을 꼭 쥔 채 여전히 경계심이 가득한 모습이었다.그러나 엄마가 온 뒤에는 그래도 많이 풀어진 모습이었다. 자신이 든든한 후원자가 있기에.성연이
사진은 눈앞의 이 여자가 호의를 가지고 있지 않고, 절대로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원래 예민주의 말은 걸러서 생각했지만, 그래도 아직은 역시 어린아이였다.“오빠, 우리 아빠가 정말 우리를 이렇게 싫어해?”눈물이 그렁그렁한 여동생의 모습은 보기만 해도 마음이 아팠다.“당신은 어른이면서 어떻게 이렇게 어린아이와 말다툼을 하는 겁니까? 당신이 뭔데, 여기서 우리 아버지를 대신해서 결정을 내리는 겁니까?”지금 예민주 때문에 완전히 분통이 터진 사무는, 온몸에 철갑을 두른 듯한 기세로 똑바로 예민주를 노려보았다.사무의 눈빛에 대해서 예민주는 처음부터 아주 적대적인 태도를 취했다.‘매번 저 자식의 눈을 볼 때마다, 정말 무진 오빠의 눈빛과 너무나도 닮았어. 무진 오빠하고 그야말로 판박이야.’사무가 거기에 서 있을 때는 그야말로 무진의 축소판이었다. 무진의 모습뿐만 아니라 행동 하나하나에도 성연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몇 번 사무 저 새끼와 눈이 마주쳤을 때도 정말 아이러니했어.’‘처음 만났을 때 빨리 도망칠 걸. 정말 후회가 되네.’‘5년 전에 분명히 전혀 상관이 없는 사이가 됐는데, 왜 두 사람 사이에 애가 있는 거야?’‘송성연은 왜 이 두 아이를 낳았지? 무진 씨에게 이미 버림받았는데, 해외에서 편하게 지내면 얼마나 좋아?’‘그 여자의 능력이라면 낯선 나라에서도 여전히 잘 지낼 수 있어.’‘왜 운성시에 미련이 남은 거야?’“나를 보지 말고 고개를 돌려!” 결국 예민주는 참을 수가 없었다.사무는 아직 그런 내막을 잘 몰랐기 때문에 여전히 분노한 상태였다.“내 여동생에게 사과하세요!”“이 새끼, 너 지금 나한테 농담하는 거야?”예민주는 태연한 표정으로 사무를 조롱했다.“아무도 원하지 않는 사생아 주제에, 아직도 여기서 나한테 이렇게 날뛰다니! 주제도 모르고 설치는 것 아니야?”“이 못된 아줌마!”사진은 지금 지쳤지만 이 여자와 오빠가 이렇게 싸우는 소리를 듣자, 화가 나서 큰 소리로 따라서 외쳤다.
예민주는 곧바로 기분이 나빠졌다.원래 길을 잃은 두 아이가 펑펑 울게 만든 다음에, 무진에게 아이들이 그다지 순하지 않다는 걸 보여줄 생각이었다.그러나 예상 외로 아이들은 영리한 데다가 일찌감치 철도 들었다. 졸지도 떠들지도 않은 데다가 얌전하게 장난감을 가지고 놀 줄 어떻게 알 수 있을까!무진은 오후에 회의가 있어서 점심 휴식 시간이 제한적이었다.어떻게 해야 아이들을 여기에 좀 더 머물 수 있게 할 수 있을지, 예민주도 아직 좋은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두 아이가 이렇게 영리한 핑계를 댈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그들 부자 세 사람만 지낼 기회를 절대 줄 수가 없었기에.결국 세 사람이 대표 집무실에 함께 있게 되었다.“어떻게 된 거야? 이건 그렇게 둘러댈 일이 아니야.”“너 계속 큰소리로 말하지 마! 이렇게 시끄러운 것도 몰라?”이제 세 사람은 이미 오후 내내 함께 있게 되었다. 특히 지금 무진은 회의를 하러 갔기에, 대표실에는 그들 세 사람밖에 없었다. 예민주는 이미 싫어하는 기색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나른한 자태로 소파에 기댄 예민주의 얼굴에는 온통 경멸하는 표정만 가득했다.집에서도 이렇게 엄하게 꾸지람을 들은 적이 없었기에, 사진은 정말 억울해서 입을 열었다가 다시 예민주에게 말려들곤 했다.사진이 낮은 소리로 울먹이면서 말했다.“그런데 아줌마, 우리는 그냥 게임을 하고 있었어요.”예민주는 이제 숨기지 않고 냉담한 목소리로 바로 호통을 쳤다. “조용히 해! 아무도 너희들 응석을 받아주지 않아!”예민주의 말투는 아주 야박해서 두 아이가 감당할 수 있을지도 전혀 꺼리지 않았다.역시나 예민주의 말이 막 떨어지자, 사진은 이미 엉엉 울기 시작했다.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가뜩이나 초롱초롱한 사진의 두 눈은 지금 완전히 눈물에 젖은 가련한 모습이었다.사무는 평소 집에서는 여동생을 싫어하는 듯한 모습이었지만, 사실은 몹시 마음이 아팠다.한 손으로 여동생을 가볍게 안고 달래면서 말했다.“괜찮아, 괜찮아. 좀 있다가 아
“예민주가 무슨 일인들 못하겠어?” 성연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차갑게 내뱉었다. 예민주의 모습을 떠올리자, 한바탕 구역질이 났다.클래식한 파텍필립 손목시계를 힐끗 보고서, 다음 순간 성연은 이미 성큼성큼 방문을 나섰다.“빨리 안 따라오고 뭐 해!” 문 앞에 도착한 성연이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는 서한기를 보면서 소리쳤다.10여 분 후, WS그룹 1층.두 손으로 운전대를 꼭 잡은 채, 성연은 아주 멋진 드리프트 솜씨로 차를 건물 입구에 세웠다.주차 도우미 직원과는 불과 1미터도 채 안 되는 거리만 남았기에, 직원은 이미 쓰러질 지경이었다.“무즌 주차를 이렇게 해요?” 이렇게 거친 주차 방식을 보자, 직원은 마음속으로 화가 났다.무의식적으로 차 안에 있는 사람을 가리키면서, 한바탕 퍼부으려고 했다.그러나 바로 그때, 운전석의 차문이 열리고 성연이 차에서 내렸다.자신에게 다가온 직원의 눈길을 마주하고서 매서운 눈빛으로 쏘아보았다.한바탕 퍼부으려던 직원은 성연의 깊은 눈빛을 마주하자 결국 말문이 막혔다.“차는 주차장으로 옮기지 말고 여기에 그래도 놔 둬요! 만약 내가 돌아왔을 때 차가 다른 곳에 있다면, 당신은 이 일을 계속할 수 없을 겁니다!”“하지만 아가씨, 이건 규정에 맞지 않습니다.”성연은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거리낌 없이 말했다.“나를 믿어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에요.”말이 끝나자, 성연은 대답할 기회도 주지 않은 채 안으로 걸어갔다. 마치 뒤에 천군만마가 있는 것처럼 당당하고 기세 등등한 걸음걸이였다.성연의 곁에는 아무도 다가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1층의 안내 데스크.“대표님은 지금 어디에 계신가요?”데스크의 여직원은 계속 그 자리에 있었기에, 방금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두 한눈에 볼 수 있었다.하지만 지금은 당황스러운 마음을 억누른 채 최선을 다해 응대할 수밖에 없었다.“약속을 하셨습니까?”성연은 입술을 오므린 채 가볍게 웃었다.“대표님은 어디 계세요?”“죄송합니다만, 대표
‘그 여자는 분명히 그 다른 쪽이라고 했어. 즉, 그 여자가 알려준 건 잘못된 방향이었어.’‘만약 그 여자가 방향을 몰랐다면, 위치를 말하지 않았을 거야. 그러나 그 여자는 그렇게 자신있게 위치를 말했어.’‘그건 자신이 있다는 말이야!’이렇게 생각하자, 예민주에 대한 사무의 인상은 더욱 좋지 않았다.다음 순간, 턱을 살짝 든 사무가 두 여자를 바라보며 차분하게 말했다.“제 여동생이 아직 저쪽에 있어요. 잠깐만요, 제가 가서 여동생을 데리고 올게요.”여동생이 있다는 말을 듣자 좀 놀랐지만, 소년이 돌아서는 걸 보자 그제서야 비로소 대답했다.“아, 여동생! 그래, 그래.”화장실에 간 후, 사무와 사진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 못된 여자가 혹시 함정이라도 파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기에.하지만 아버지가 아직 거기에 있다는 걸 떠올리자, 앞으로는 더 조심해야 한다는 첫 교훈도 얻게 되었다. 이 놀이는 오후 내내 계속되었다.한편 다른 한쪽. 시재 백화점에 갔다가 별장으로 돌아온 성연은 양 손에 큰 봉투 두 개를 들고 있었다. 그 안에는 온갖 장난감이 가득했다.이것들은 모두 성연이 업무를 마친 뒤에 특별히 아이들을 위해 고른 장난감이다. ‘요 며칠 동안 정말 너무 바빴어. 집에 돌아오면 이미 늦은 밤이거나, 좀 일찍 집에 돌아와도 저녁을 먹고 다시 일하느라 정신이 없었지.’성연은 여전히 아이들에게 빚을 진 듯한 느낌이었다.집을 열자 거실은 조용했다. 위층에서도 별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우리 사진이, 사무? 엄마가 돌아왔어!”눈살을 살짝 찌푸리면서 성연이 말했지만, 아이들의 열정적인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사진아? 사무야? 너희들 집에 있니?”“사무야?”아래층에서 계속 몇 번이나 소리쳐도 여전히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이렇게 큰 집에 성연 자신의 목소리만 울릴 뿐.“보스, 아이들은 지금 집에 없습니다.”이때 서한기가 부랴부랴 달려왔다.“집에 없다니?” 성연이 눈썹을 바짝 세웠다. 순간 마음속에
“그 여자는 이전에 엄마하고 알고 지냈던 것 같아. 다만 아직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모르겠어.”“그럼 이따가 우리 어떡하지?” 사진이 약간 지친 듯한 기색으로 말했다.오전 내내 이곳을 왔다갔다했으니 아이에게는 에너지 소모가 컸다.그리고 방금 위층으로 올라갈 때, 아이들은 여전히 아주 자신있게 서한기보고 먼저 가라고 했다. 그때는 자신감이 가득했지만 지금은 ‘후회막심’이다.‘지금 아직 한기 아저씨가 있다면. 바로 집에 가서 편하게 누워서 쉴 텐데.’“일단은 우리 계획대로 그 여자한테 엄마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마. 우리가 아빠를 찾으러 온 건 그 여자하고 상관이 없어.”원래 신중한 사무지만, 지금 사무의 말은 오빠라는 사무의 입장과 아주 딱 맞게 진지했다.두 아이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앞으로 걸어갔다. 방금 전에 화장실에 가겠다고 한 건 핑계였지만, 막상 바깥에 나오자 화장실에 가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하지만 한참을 가도 식당 창문이나 작은 방은 곳곳에 있는데, 예민주가 말한 화장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그 여자가 우리를 속인 건 아니겠지?”억울한 듯이 분홍색 입술을 삐죽 내민 채 사진은 움직이기도 귀찮았다.여동생의 이런 모습을 보자, 사무는 그 자리에 선 채 눈을 반짝이며 한 바퀴 둘러보았다.“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딴 데 가지 말고. 알았지?”말을 마친 사무는 왔던 길을 다시 달려갔다.“오늘 가지는 좀 맛이 없어.”“그래도 괜찮은데. 먹기 싫으면 나한테 줘.”사무는 식사 중이던 두 아가씨의 앞으로 갔다.“누나, 실례합니다. 여기 화장실이 어디에 있어요?”목소리는 여리지만 태도는 아주 공손했다.밥을 먹고 있던 두 아가씨는 그 말을 듣자 먹던 동작을 멈췄다. 사무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갑자기 눈빛을 반짝였다.‘어디서 이렇게 귀여운 아이가 온 거야?’ ‘뚜렷한 이목구비에 심플한 검은색 스웨터만 입었는데도 잘 어울리는 걸.’‘얼굴의 통통한 젖살이 큐티 작살인데!’‘그야말로 너무나 귀여운 아이야!’사무는
두 아이를 보면서 예민주는 더욱 초조했다.마음속에 잘 기억해 놓은 뒤, 예민주의 노기는 빠르게 수그러들었다. 다시 아이들을 바라볼 때는 이미 이전의 온화한 모습을 회복했다.“사진아, 너희들은 이전에 외국에서 잘 살았다면서? 그런데 왜 갑자기 귀국한 거야?”마치 큰 언니가 아이들을 배려하는 듯 예민주는 아주 잘 알고 있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러나 지금 두 아이는 이미 이 여자의 목적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다. 당연히 경계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엄마의 집이 바로 여기에 있어요. 엄마가 한번 가보자고 해서 돌아왔어요.”목소리는 아직 어린 티가 나지만, 깊이를 알 수 없는 해맑은 눈빛으로 쳐다보면서 또박또박 말하는 사진의 대답은 가히 ‘예술의 경지’라 해도 좋을 정도였다.‘아까까지만 해도 술술 잘 말하더니, 갑자기 왜 이렇게 빈틈이 없어진 거야?’예민주는 기분이 좀 꿀꿀했지만 그래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이번에 돌아와서 낯선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니? 너희들이 오늘 이곳에 와서 아빠를 찾는 것 같은데, 누가 너희들에게 뭔가 말한 거 아니야?”예민주는 최대한 목소리를 낮춘 채 계속 집요하게 물었다. 무진이 자신의 모습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무진에게 등을 진 채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사진은 혼란스러운 모습으로 눈썹을 찌푸린 채 예민주를 쳐다보았다.“아줌마, 우리하고 함께 여기서 논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왜 계속 그런 거만 물어봐요?”“맞다. 아줌마, 우리 엄마 알지요? 우리 엄마한테 지금 데리러 오라고 하면 안 돼요?” “오늘 우리를 괴롭힌 사람들을 엄마가 꼭 혼내 주게요!”“맞아요, 맞아요! 누가 우리를 괴롭힌 걸 알면, 엄마가 반드시 호되게 혼을 내줄 거예요.”두 아이가 서로 주고받으면서 한 마디씩 하는데, 호흡이 기가 막히게 잘 맞았다. 예민주는 표정이 붉어졌다는 것도, 심지어 심장박동도 빨라졌다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이 두 녀석의 말을 들으니, 송성연이 이 두 녀석을 아주 진지하게 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