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누구 약혼녀가 되었다고 들었는데, 사실이야?”그는 일부러 ‘누구’라는 두 글자에 힘을 주고 말했지만 성연은 알아차리지 못했다.무진이 언급되자 성연의 입가에 저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얼굴에 행복한 표정까지 지은 성연이 고개를 끄덕였다.“사형, 나 축복해줄 거죠?”목현수의 눈이 잠시 반짝였지만 성연의 말에 대답하지는 않았다.순식간에 저기압이 되었지만 목현수는 이내 그 기운들을 깨끗이 씻어냈다. 그리고 얼굴에 미소가 띠며 말했다.“그래, 내가 너를 축복해야겠지.”성연은 손가락으로 커피잔에 꽂힌 빨대를 휘휘 저으며 탄식했다.“지금 내 노트북에 들어있던 자료가 분실되었어요. 빨리 찾아야 해요. 그 안에 비밀 처방전들이 들었어요.”스승님의 물건이 다른 사람의 수중에 들어간 후로 성연은 잠시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 안에 든 비밀 처방전들은 많은 사람을 구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해칠 수도 있었다.어쩌면 안나는 약 처방전으로 자신을 위협하려 했을지도 모른다.다만 이렇게 넓은 유럽에서 어디에 가서 사람을 찾는다는 말인가?목현수가 느릿느릿 대답했다.“조급해하지 마, 그 안나라는 여자의 거처를 알아. 오늘 밤에 너를 데리고 갈게.”“좋아요, 사형. 근데 그 여자 너무 예뻐서 그렇게 유심히 본 거예요?” 성연이 놀리는 표정을 지었다.목현수가 기가 차다는 듯이 이마를 짚었다.“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지난 번에 다른 일을 조사하면서 같이 알게 된 사실인데, 정말 네 머릿속에 뭐가 들어 있는지 모르겠군.”성연이 어깨를 으쓱거렸다.“그냥 농담이에요!”“안돼, 그 농담 하나도 안 웃겨! 나 화낼 거야!” 목현수가 정색을 했지만, 진짜 화가 난 것은 아니었다.성연은 조금도 겁내지 않았다. 사형은 아무리 화가 나도 자신에게 화를 내지 않을 것이기에.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성연에게는 특별히 경험이 있었기에 목현수 앞에서는 유난히 믿는 구석이 있었다.“그나저나 사형, 신부는 언제 찾아요? 그 연세가 되니 날마다 걱정입니다.” 성연이 일부
성연은 목현수와 함께 그가 말한 장소로 갔다.목현수가 모는 차 안은 무척 편안했다.안나의 은신처는 바다에 인접한 별장으로 환경이 꽤 괜찮았다.사위가 조용한 것이 성연은 이런 인테리어 스타일이 마음에 들었다.차를 구석진 곳에 세운 목현수가 고개를 돌리니 성연이 멍하니 있는 게 보였다.목현수가 손을 들어 성연의 눈앞에서 움직였다.“가자, 왜 멍하니 있어?”성연이 즉시 정신을 차렸다.“이 별장이 너무 예쁘다는 생각을 했어요.”“아이고, 우리 어린 공주님, 지금 그런 말을 할 때가 아니랍니다. 네 마음에 들면 다음에 너에게 선물해 줄 테니 지금은 얼른 들어가서 안나가 있는지 보자.” 목현수는 좀 어이가 없었다.성연이 차에서 뛰어내렸다. 방금 전 별장을 보면서 성연은 사실 지형을 관찰했다. 내내 멍청하게 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그리고 안나가 있는 이곳의 방어 시스템이 상당히 괜찮은 것 같아서 들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목현수는 감시카메라를 피해 올라갈 수 있는 곳이 있는지 주위를 살펴보기 시작했다.그러다가 뒤편의 한 곳을 찾은 후에 성연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목현수가 먼저 벽을 타고 넘자 성연도 날렵한 동작으로 뛰어넘었다.두 사람은 안나의 별장에 소리 없이 잠입했다.별장은 매우 컸다. 목현수가 앞장을 서고 성연이 그 뒤를 따랐다.그런데 갑자기 저 앞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목현수가 얼른 먼저 숨었고, 성연도 즉시 정신을 차리고 다른 곳에 숨었다.한 무리의 사람들이 이쪽을 순찰 중이었다.사람이 없는 것을 본 그들은 다른 방향으로 걸어갔다.발자국 소리가 완전히 사라지자 성연과 목현수가 구석에서 걸어 나왔다.목현수가 조용히 욕설을 퍼부었다.“왜 순찰하는 사람이 아직 있는 거야? 진짜 목숨이 아깝긴 한 모양이네.”“안나는 킬러처럼 단순하지 않아.”성연도 의심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어떤 일반인이 이렇게 많은 보디가드들을 집 주변에 풀어서 지키게 하겠는가.그만큼 안나가 죽음을 겁내고 있다는 의미.“아직은 명확하지 않지
아래층의 사람들을 다 해치운 후에 성연과 목현수는 바로 위층으로 올라갔다.안나는 이곳에 숨어 있으면 안심할 수 있을 거라고, 아무도 자신을 찾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얼굴에 마스크팩을 쓰고 있는 모습이 어찌나 여유만만해 보이는지.실내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리자 안나는 번쩍 눈을 떴다.성연과 목현수를 본 그녀의 눈빛은 비할 데 없이 평온했다.“이곳을 찾아낼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성연이 먼저 앞으로 나와 안나에게 손을 내밀었다.“내 물건 돌려줘.”목현수에의 장침에 부상을 입은 안나의 팔에는 붕대가 감겨 있었고 약간의 핏자국이 배어 나와 있었다.팔짱을 낀 채 벽에 기댄 목현수가 안나를 향해 나른하게 말했다.“네 상태로는 우리를 이길 수 없어. 시간이 지나면 네 결말이 더 비참해질 수밖에 없어. 얼른 물건을 내놓는 게 좋을 거야.”성연은 안나를 바라보며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갔다.“빨리 물건을 내놔.”안나는 자신이 도망가지 못할 것을 예상한 듯 휴대폰을 들어올리더니 바닥을 향해 세게 내리쳤다.휴대폰을 부숴서 안에 들어있는 자료들도 못쓰게 하려는 속셈.성연은 말도 없이 성큼성큼 다가가 안나의 손을 잡아 비틀며 뒤로 꺽었다.저항할 힘이 완전히 빠진 안나는 휴대폰을 부수기 직전에 성연에게 제압당했다.성연은 안나가 빠져나가지 않도록 밧줄로 안나를 꽁꽁 묶었다.이 모든 것을 과정을 마친 후에 성연이 안나의 몸을 더듬기 시작했다.결국 성연은 안나의 몸을 더듬어 USB를 찾아냈다.그와 동시에 얼굴 인식으로 잠금을 해제하고 안나의 휴대폰을 켰다.안나는 자신감이 넘친 나머지 아무도 자신의 실력을 쫓아오지 못할 거라 생각했나 보다.그런데 순식간에 성연과 목현수의 손에 당한 것이다.그래서 연락처에 따로 잠금 장치도 하지 않아서 성연은 찾으려던 물건을 바로 찾을 수 있었다.그는 휴대폰의 연락처와 메시지 기록을 자세히 살폈다. 그리고 안나를 고용해서 자신의 자료를 훔치게 한 이는 바로 MS가문의 제이슨임을 확인했다.채팅 기록을 살펴보던 성
“밥은 아무거나 먹어도 되지만, 말은 아무 말이나 해서는 안되지.” 성연이 미간을 찌푸리며 얼른 목현수와 관계에 선을 그었다.두 사람의 선후배 관계를 저 여자가 어찌나 애매하게 말하는지.성연은 목현수가 기분 나쁠까 걱정이었다.목현수의 눈에 한 줄기 어두운 빛이 스쳐가며 은근한 시선으로 성연을 쳐다보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 자신을 속이지 마.” 안나는 목현수의 눈빛을 통해 간파했다. 성연이 못 알아봤다고 그녀도 못 알아볼 거라고 생각해서는 안되는 법.‘이 남자는 송성연을 후배로만 대하는 게 아니야.’성연은 이 여자의 허튼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 계속해서 안나와 MS가문이 결탁했다는 증거가 더 있는지 방 안을 돌아다니며 수색했다.성연이 저쪽으로 가자 안나는 더 거리낌 없는 눈빛을 하며 목현수에게 말했다.“인정해.”목현수는 냉기 가득한 눈빛으로 안나를 바라보았다.“입 닥쳐.”“아예 놀 수 없을 정도는 아니지만, 저런 젖비린내 나는 계집애가 뭐가 좋다고. 나는 네 외모가 아주 마음에 드는데, 나랑 한번 해 볼래?”안나가 말하면서 유혹의 눈빛으로 목현수를 바라보았다.목현수는 두말없이 바로 은침을 꺼내 안나에게 날렸다.순간 온몸에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입술도 새파랗게 질릴 정도로 통증을 느낀 안나는 그 고통을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안나를 바라보는 목현수의 눈빛은 마치 죽은 사람을 보는 듯하다.“감히 네가 그녀를 헐뜯는다고? 네가 뭔 자격으로!”이미 아파서 한마디도 할 수 없었던 안나는 목현수에게 경멸의 눈빛을 던지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성연은 안나의 비명소리에 무슨 일이 생긴 줄 알고 다른 방에서 뛰어왔다.안나의 몸 혈자리들에 장침이 꽂혀 있었다. ‘이건 사형 목현수의 작품이 분명해.’목현수는 아무런 설명도 없이 성연에게 말했다.“물건을 찾았으면 가자. 여기서 너무 오래 머물지 않는 게 좋겠다.”성연은 고개를 끄덕인 후 목현수와 함께 별장을 떠났다.차에 탄 후에야 목현수가 성연에게 말했다.“내가
북성에서의 일을 아직 다 처리하지 못했지만, 무진은 정말이지 기다릴 수가 없었다.가까스로 손에 들고 있던 리스트를 끝낸 즉시 비행기표를 예매하고 성연을 방문하기 위해 유럽으로 향했다.이날 성연은 아무리 해도 무진과 통화가 되지 않아 하루 종일 초조함을 억누를 수 없었다.성연은 자신도 모르게 상상하기도 두려운 몇 가지 가능성을 떠올렸다.혹시 무진에게 사고라도 났을까 무척 걱정스러웠다.휴대폰을 들고 손건호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손건호 또한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입술을 씹고 있는 성연의 기분이 푹 가라앉았다. ‘강무진,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섣불리 할머니 안금여에게 전화를 걸 수도 없었다. 무진이 정말 사고가 나지 않았다 해도 할머니는 마음속으로 감당할 수 없을 터였다.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침대에 앉아 기다리는 것뿐. 계속 무진과의 연락을 시도하며.똑똑똑-호텔 객실 문을 누군가 두드렸다.성연은 미간을 좁혔다. 객실 서비스 시간은 지금 이때가 아님이 기억났다.그리고 음식을 주문하지도 않았다.심지환과 목현수라면 찾아오더라도 미리 알려주었을 터.그럼 입구에 서 있는 사람은 도대체 누구?안나라는 선례가 있어서 성연의 경계심이 높아졌다.은침을 꺼내며 문을 여는 순간, 문 앞에 섰던 사람이 와락 품에 끌어당겨 안았다.성연이 막 발버둥쳐 벗어나려던 순간 누구보다 익숙한 향이 났다.은침이 다시 천천히 소매 안으로 말려들어갔다. 성연이 고개를 들어 보니 아니나 다를까 누구보다 잘생긴,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성연의 마음은 놀람과 기쁨으로 가득찼다.“무진 씨 어떻게 왔어요?”“보고 싶어서 왔지.” 무진이 조금 뒤로 물러서며 성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무진은 성연의 이목구비 하나하나 뚫어져라 살폈다. 마치 아무리 봐도 부족한 듯이.무진의 시선에 성연은 부끄러움을 느꼈다. 수줍은 마음에 볼이 연분홍으로 물들었다. 볼그스름하게 달아오른 성연의 볼을 바라보던 무진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숙여 성연의 입술을 물었다.성연은 거절
무진이 금방 씻고 돌아오자 성연이 준비해 둔 드라이어로 무진의 머리를 말렸다.이리저리 바람 몇 번을 쇠어준 후 침대에 올라 간 무진은 성연을 품에 안고서 성연에게서만 나는 청신한 약향을 맡았다. 그러자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지더니 결국 잠의 세계에 빠졌다.무진이 잠든 후에 숨소리도 점차 고르게 변했다.몸을 옆으로 굴린 성연은 그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콧등을 살짝 눌렀다.그녀는 마음속으로 탄식했다.‘이 남자,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들어.’어쩌면 무진의 깊은 품속이 너무 편안했는 지도 모른다. 무진을 바라보던 성연 역시 졸음을 참지 못하고 그의 품에 안겨 잠들었다.두 사람이 다시 깨어났을 때 밖은 이미 날이 밝은 상태.성연이 깨어났을 때 무진은 이미 눈을 뜨고 성연을 바라보고 있었다.성연이 먼저 무진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얼른 일어나요. 오늘 소개해 줄 사람이 있어요.”그 한마디가 무진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평소 성연은 무슨 일이 생겨도 대부분 자신에게 감추고 먼저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무진은 이것이 성연의 신분과 관련이 있음을 눈치챘다.성연에 대한 신뢰와 애정으로 어느 것도 따져 묻지 않았다.성연이 이렇게 진지한 모습으로 자기에게 사람을 소개하겠다고 한 것은 이번이 처음.무진은 갑자기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혹여 어른이 나와서 자신을 마음에 들지 않을까 걱정이 되면서.성연은 무진의 마음속 걱정을 알지 못한 채 먼저 침대에서 내려와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욕실에서 나온 성연이 방으로 돌아오자, 무진이 이어서 세수하러 갔다.욕실 세면대 앞의 거울로 자신의 슈트를 한 번 더 점검했다. 옷차림이 부적절하지 않는지도 살폈다.성연이 소개하는 이라면 필시 성연에게 중요한 사람일 터.무진이 방으로 돌아오자 성연이 그에게 미소를 지으며 팔을 잡고 밖으로 나갔다.성연과 그들이 약속한 고급 레스토랑.도착했을 때 목현수는 이미 룸 안에 앉아 있었다.성연이 열정적으로 두 사람을 소개했다.“무진 씨, 여기는 제 사형 목현수예요.”성
식사를 마친 후에 목현수가 계산하러 나갔다. 무진도 화장실에 갈 생각으로 룸에서 나왔다.목현수는 아직 카운터에 가지 않았다. 마치 일부러 무진이 나오길 기다렸던 듯하다.목현수는 기질이 온화한 편이지만 눈빛이 날카로워 마치 예리한 검처럼 웃으며 사람을 찌를 것 같았다.그리고 무진은 기질 자체가 서늘해서, 거기에 서 있기만 해도 말이 필요 없다. 눈빛 하나로 사람들을 벌벌 떨게 만들었다.두 사람 모두 강렬한 카리스마를 뿜어내며 서로에게 지지 않았다.목현수가 미소를 지으며 무진을 향해 먼저 입을 열고 담담하게 말했다.“WS그룹은 확실히 국내에서는 무척 대단하지요. 그러나 전 세계에서 본다면 그저 그런 수준이죠.”이 말은 분명 무진을 안중에도 두지 않는다는 뜻.무진의 체면을 전혀 생각지 않은 말이다.입술을 단단히 오므린 무진의 새카만 눈동자에서 짙은 냉기를 뿜어냈다.목현수는 무진의 기세에 눌리지 않았다. 오히려 얼굴 표정 하나 바뀌지 않은 채 입술에 호선을 그었다.“당신은 나를 이길 수 없으니 허세를 부릴 필요가 없습니다.”“그럼 목 선생은 똑똑히 알고 계셔야겠습니다. 당신 것이 아니었던 것은 영원히 당신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을요.” 무진도 차가운 음성으로 받아쳤다.목현수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건 두고 볼 일이죠.”무진은 결국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어쨌든 성연의 사형이었다. 자신이 지나치게 말하는 것도 좋지 않을 터.그리고 자신과 성연 사이에는 깊은 신뢰와 애정이 있으니 걱정할 게 없었다.목현수, 마음이 있으면 얼마든지 해 보라지.자신은 여태껏 두려워 물러난 적이 없다.한 차례 설전을 벌인 두 사람은 서로가 눈에 거슬리자 헤어져 각자의 볼일을 봤다.화장실을 다녀오던 무진은 마침 계산을 마치고 돌아오는 목현수를 다시 만났다.목현수를 먼저 룸에 들여보낸 후에 무진도 따라 들어갔다.성연은 두 사람이 앞뒤로 나란히 들어오는 것을 보고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어째서 이렇게 오래 걸렸어요?”“계산하러 나가면서 강 대표님과
밖으로 나오자 무진이 말했다.“여기 온 뒤로 놀기만 하는 거 아니야? 아직 학교에 안 가봤지? 마침 잘됐다. 내가 데려고 갈까?”무진은 성연의 의견을 구하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도 사심도 숨어 있었다. 자신이 직접 성연을 데리고 학교에 가면서 목현수를 떨궈내고 싶었다.누군가 그들 두 사람의 세계에 끼어 들어 방해하지 않도록.무진의 뜻대로 하고 싶지 않은 확실했던 목현수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이러는 건 어때? 마침 가는 길인데, 지금 내가 살고 있는 Y국에 가보는 건. 오늘 차를 직접 몰고 와서 바람도 쐴 겸 드라이브하는 것도 좋겠다. 학교는 너무 급하게 서두르지 않아도 돼.”성연은 이 제의가 그런대로 괜찮다고 생각했다. 고개를 들어 무진을 바라보았다.그러나 무진이 고개를 살짝 저으며 말했다.“우리 전용비행기를 타자. 그러면 빨리 갔다 올 수 있어.”그는 단 1분도 목현수와 같이 있고 싶지 않았다.성연은 또 유럽을 좀 둘러보고 싶었다. 파리에서 Y국 사이에는 오래된 관광명소가 아주 많아서 한 번 구경하고 싶었다.그래서 성연이 대답했다.“급하지 않아요. 한 번 둘러보면서 바람 쐬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거기 경치가 정말 아름답대요.”말하면서 성연은 무진의 소매를 잡아당겨 흔들기도 했다. 그 동작은 무의식적인 애교의 표현이었다.무진은 어쩔 수 없이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언제든 성연 앞에서는 어떻게 할 방법이 없는 무진.때로는 세상의 진귀한 모든 것들을 성연에게 주고 싶었다. 그런데 성연에게서 이런 눈빛을 언제 받아볼 수 있단 말인가? 도저히 자신이 거절할 수 없는 애교였다.“그렇게 오래 차를 타면 피곤하지 않아?” 무진이 친절하게 물었다.차를 잠깐 타는 건 괜찮지만, 시간이 길어지면 불편하다.무진이 성연을 개인 비행기에 태우려는 주된 이유다.물론 목현수와 동행하고 싶지 않은 것도 일부 있지만.“괜찮아요. 무진 씨도 나를 너무 우습게 보는거예요?” 성연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알았어, 이따가 불편하면 말해줘.”
‘그런 예민주가 이렇게 몰락할 줄 누가 알았겠어?’‘결국 5년 동안이나 무진 씨 애인 노릇에 만족해 있었다니!’‘심지어는 오늘 같은 이런 악랄한 짓까지 저지를 정도가 되었으니. 스승님이 아시면 얼마나 섭섭하시겠어.’“송성연, 너 지금 미쳤어! 완전히 미쳤어!”예민주가 언제 이런 억울한 일을 당했을까? 연거푸 따귀를 맞은 데다가, 지금은 또 성연의 냉소와 신랄한 조롱을 들어야 했다.큰 소리로 호통을 치는 예민주의 눈빛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원래의 정돈된 헤어 스타일과 잘 차려 입은 옷차림은 이미 엉망이 되어 있었다.온몸에 지금 낭패한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회의실. 두 시간의 긴 회의가 마침내 끝났다. 무진이 회의실을 나서자마자 당황한 표정의 손건호가 휴대전화를 들고 다가왔다.무진은 미간을 찌푸리면서 짜증스러운 표정이었다.‘평소라면 손건호가 절대 이렇게 침착하지 못한 모습을 보이지 않을 텐데...’“보스, 예민주 씨가 맞았습니다!”사람들이 모두 나가자 손건호가 급히 보고했다.“뭐라고?” 무진이 되물었다.“보스, 빨리 사무실로 가 보십시오.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습니다.”방금 회의가 끝나갈 때, 손건호는 자료를 찾으러 먼저 회의실에서 나왔다.뜻밖에도 부리나케 달려온 비서실의 비서가 이 일을 알려주었다.무진의 눈동자가 어두워지면서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왜 아무도 막지 않았어?”무진이 왜 아무도 막지 않았냐고 물었지만, 손건호도 대답하기가 곤란했다.‘막고 싶어도 막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지요!’ ‘대표실은 원래 아무나 드나들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게다가 사모님(!)이 갑자기 뛰어들어갔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전혀 대비도 하지 못했어요.’‘안에서 예민주의 비명 소리가 들려서 막으려고 했지만, 이미 안에서 문을 잠궜기에 들어갈 수도 없었어요!’그러나 결국 손건호는 입을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대표실 앞으로 다가간 무진의 귀에 울음 소리와 함께 자기도 모르게 눈살이 찌푸리게 되는 소리를 들었다.
지금 아이의 몸에 난 상처는 보기만 해도 가슴이 아팠다.그리고 이런 상황에 직면하자, 성연은 범인이 바로 예민주라고 생각했다.‘방금 전에도 애들 앞에서 그렇게 헛소리를 지껄였어. 눈앞에 두 아이만 있는데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지.’‘그런 여자가 뭘 못하겠어?’‘이 순하기만 한 두 녀석은 엉뚱한 짓을 한 적이 여태까지 한 번도 없었어.’‘충분히 사랑을 받았지만, 그걸 믿고 교만했던 적은 없었어.’‘밖에서는 더 영리하고 깜찍해서 누구나 좋아해. 척 봐도 좋아할 수밖에 없어.’‘그런데 여기에 와서 온몸에 멍이 들다니!’성연의 가슴에서 다시 분노가 폭발했다.딸아이를 가볍게 내려 놓은 성연은, 여전히 따뜻한 눈빛으로 사무를 보면서 말했다.“동생을 잘 보고 있어. 너희가 당한 억울한 일을 엄마는 절대 그냥 넘기지 않을 거야!”“엄마, 저 아줌마는 나쁜 사람이야! 엄마가 반드시 혼내줘!”여전히 품에 안긴 채, 사진은 재빨리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두 눈에 가득한 억울함을 지금 열심히 엄마에게 표현하려고 했다.“걱정 마. 엄마가 저 여자를 혼내줄게!”바로 일어선 성연이 성큼성큼 예민주 쪽으로 걸어갔다.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예민주는 성연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습을 보았다.서한기로부터 벗어나려 발버둥쳤지만, 예민주가 어떻게 훈련으로 단련된 남자의 적수가 될 수 있겠는가?“놔! 너희들 뭐 하려는 거야?”예민주의 눈빛에는 걱정과 당황한 기색이 가득했다. 불안한 마음에 가슴은 두근거리면서 발걸음마저 비틀거렸다.짝! 짝!“이건 네게 주는 교훈이자 경고야. 내 아이는 절대 네가 건드릴 수 없어!”“네가 뭔데? 무진 씨 옆에 이미 5년이나 있었지만, 아직도 내 자리를 대신하지 못했지. 그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겠어!”“이건 첫 번째이자 마지막 경고야! 아이들은 바로 내 마지노선이야. 네가 또 손을 대면 절대 지금 이 정도로 끝나지 않아!”성연은 목소리는 마치 서릿발 같았다. 온몸에서 뿜어내는 싸늘한 기운에 무더운 날씨조차 얼음 세상으로 변하는 듯했
“오빠, 아빠가 정말, 정말로 우리를 안 받아들일까? 우리가 방금 아빠를 찾았는데.”작은 얼굴에 슬픔을 가득 담은 채, 사진은 간절한 시선으로 오빠를 바라보았다.예민주는 지금 자신의 말을 자화자찬하며 한껏 득의양양한 표정이었다.팔짱을 낀 채 아이들을 내려다보는 눈빛에는 승자의 기운이 가득했다.잠시 후 자신에게 벌어질 참상을 알았다면 절대 그러지 못했겠지만...대표 집무실 바깥.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성연은 결연한 눈빛으로 대표실을 향해 다가갔다.쾅-단숨에 집무실 문 앞에 선 성연은 아무런 노크도 없이 바로 방문을 열었다.“너 이 새끼, 정말...”아이 앞에서 거침없이 내뱉는 예민주의 말이 성연의 귀에 몹시 거슬렸다.“예민주, 뭐 하는 거야!”자신의 아이들이 눈물 자국이 가득한 채 구석에서 서로를 안고 있는 모습을 보자, 엄마의 본능이 단숨에 뿜어져 나왔다.“내 애들에게 무슨 짓을 했어!”단숨에 앞으로 나아간 성연은 두 손으로 예민주의 멱살을 움켜쥐었다.한 손으로 멱살을 쥔 채 다른 한 손으로는 바로 예민주의 따귀를 때렸다.“네가 뭔데 내 아이를 혼을 내? 너는 그럴 자격이 없어!”성연의 차가운 눈빛은 분노로 활활 타올랐다. 온몸의 분노가 곧 폭발할 듯이!잇달아 따귀를 때렸지만 때리는 소리는 오히려 점점 더 커져갔다.“엄마!” 성연이 다시 손을 들고 예민주의 뺨을 때리려고 할 때, 문득 익숙한 여린 목소리가 들렸다.순간 성연의 손에서 힘이 빠졌다.잠시 멈칫하던 성연은 계속 두드려 맞느라 이미 반쯤 정신이 나간 예민주를 밀쳐낸 뒤 딸아이를 품에 안았다.“아가, 엄마가 늦게 와서 미안해.”성연은 두 손으로 사진을 꼭 껴안은 채 자책했다. 지금 마음속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 방금 전 예민주를 때릴 때의 그 무시무시한 기세도 모두 사라졌다.슬퍼하는 성연을 보면서, 사무는 두 주먹을 꼭 쥔 채 여전히 경계심이 가득한 모습이었다.그러나 엄마가 온 뒤에는 그래도 많이 풀어진 모습이었다. 자신이 든든한 후원자가 있기에.성연이
사진은 눈앞의 이 여자가 호의를 가지고 있지 않고, 절대로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원래 예민주의 말은 걸러서 생각했지만, 그래도 아직은 역시 어린아이였다.“오빠, 우리 아빠가 정말 우리를 이렇게 싫어해?”눈물이 그렁그렁한 여동생의 모습은 보기만 해도 마음이 아팠다.“당신은 어른이면서 어떻게 이렇게 어린아이와 말다툼을 하는 겁니까? 당신이 뭔데, 여기서 우리 아버지를 대신해서 결정을 내리는 겁니까?”지금 예민주 때문에 완전히 분통이 터진 사무는, 온몸에 철갑을 두른 듯한 기세로 똑바로 예민주를 노려보았다.사무의 눈빛에 대해서 예민주는 처음부터 아주 적대적인 태도를 취했다.‘매번 저 자식의 눈을 볼 때마다, 정말 무진 오빠의 눈빛과 너무나도 닮았어. 무진 오빠하고 그야말로 판박이야.’사무가 거기에 서 있을 때는 그야말로 무진의 축소판이었다. 무진의 모습뿐만 아니라 행동 하나하나에도 성연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몇 번 사무 저 새끼와 눈이 마주쳤을 때도 정말 아이러니했어.’‘처음 만났을 때 빨리 도망칠 걸. 정말 후회가 되네.’‘5년 전에 분명히 전혀 상관이 없는 사이가 됐는데, 왜 두 사람 사이에 애가 있는 거야?’‘송성연은 왜 이 두 아이를 낳았지? 무진 씨에게 이미 버림받았는데, 해외에서 편하게 지내면 얼마나 좋아?’‘그 여자의 능력이라면 낯선 나라에서도 여전히 잘 지낼 수 있어.’‘왜 운성시에 미련이 남은 거야?’“나를 보지 말고 고개를 돌려!” 결국 예민주는 참을 수가 없었다.사무는 아직 그런 내막을 잘 몰랐기 때문에 여전히 분노한 상태였다.“내 여동생에게 사과하세요!”“이 새끼, 너 지금 나한테 농담하는 거야?”예민주는 태연한 표정으로 사무를 조롱했다.“아무도 원하지 않는 사생아 주제에, 아직도 여기서 나한테 이렇게 날뛰다니! 주제도 모르고 설치는 것 아니야?”“이 못된 아줌마!”사진은 지금 지쳤지만 이 여자와 오빠가 이렇게 싸우는 소리를 듣자, 화가 나서 큰 소리로 따라서 외쳤다.
예민주는 곧바로 기분이 나빠졌다.원래 길을 잃은 두 아이가 펑펑 울게 만든 다음에, 무진에게 아이들이 그다지 순하지 않다는 걸 보여줄 생각이었다.그러나 예상 외로 아이들은 영리한 데다가 일찌감치 철도 들었다. 졸지도 떠들지도 않은 데다가 얌전하게 장난감을 가지고 놀 줄 어떻게 알 수 있을까!무진은 오후에 회의가 있어서 점심 휴식 시간이 제한적이었다.어떻게 해야 아이들을 여기에 좀 더 머물 수 있게 할 수 있을지, 예민주도 아직 좋은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두 아이가 이렇게 영리한 핑계를 댈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그들 부자 세 사람만 지낼 기회를 절대 줄 수가 없었기에.결국 세 사람이 대표 집무실에 함께 있게 되었다.“어떻게 된 거야? 이건 그렇게 둘러댈 일이 아니야.”“너 계속 큰소리로 말하지 마! 이렇게 시끄러운 것도 몰라?”이제 세 사람은 이미 오후 내내 함께 있게 되었다. 특히 지금 무진은 회의를 하러 갔기에, 대표실에는 그들 세 사람밖에 없었다. 예민주는 이미 싫어하는 기색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나른한 자태로 소파에 기댄 예민주의 얼굴에는 온통 경멸하는 표정만 가득했다.집에서도 이렇게 엄하게 꾸지람을 들은 적이 없었기에, 사진은 정말 억울해서 입을 열었다가 다시 예민주에게 말려들곤 했다.사진이 낮은 소리로 울먹이면서 말했다.“그런데 아줌마, 우리는 그냥 게임을 하고 있었어요.”예민주는 이제 숨기지 않고 냉담한 목소리로 바로 호통을 쳤다. “조용히 해! 아무도 너희들 응석을 받아주지 않아!”예민주의 말투는 아주 야박해서 두 아이가 감당할 수 있을지도 전혀 꺼리지 않았다.역시나 예민주의 말이 막 떨어지자, 사진은 이미 엉엉 울기 시작했다.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가뜩이나 초롱초롱한 사진의 두 눈은 지금 완전히 눈물에 젖은 가련한 모습이었다.사무는 평소 집에서는 여동생을 싫어하는 듯한 모습이었지만, 사실은 몹시 마음이 아팠다.한 손으로 여동생을 가볍게 안고 달래면서 말했다.“괜찮아, 괜찮아. 좀 있다가 아
“예민주가 무슨 일인들 못하겠어?” 성연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차갑게 내뱉었다. 예민주의 모습을 떠올리자, 한바탕 구역질이 났다.클래식한 파텍필립 손목시계를 힐끗 보고서, 다음 순간 성연은 이미 성큼성큼 방문을 나섰다.“빨리 안 따라오고 뭐 해!” 문 앞에 도착한 성연이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는 서한기를 보면서 소리쳤다.10여 분 후, WS그룹 1층.두 손으로 운전대를 꼭 잡은 채, 성연은 아주 멋진 드리프트 솜씨로 차를 건물 입구에 세웠다.주차 도우미 직원과는 불과 1미터도 채 안 되는 거리만 남았기에, 직원은 이미 쓰러질 지경이었다.“무즌 주차를 이렇게 해요?” 이렇게 거친 주차 방식을 보자, 직원은 마음속으로 화가 났다.무의식적으로 차 안에 있는 사람을 가리키면서, 한바탕 퍼부으려고 했다.그러나 바로 그때, 운전석의 차문이 열리고 성연이 차에서 내렸다.자신에게 다가온 직원의 눈길을 마주하고서 매서운 눈빛으로 쏘아보았다.한바탕 퍼부으려던 직원은 성연의 깊은 눈빛을 마주하자 결국 말문이 막혔다.“차는 주차장으로 옮기지 말고 여기에 그래도 놔 둬요! 만약 내가 돌아왔을 때 차가 다른 곳에 있다면, 당신은 이 일을 계속할 수 없을 겁니다!”“하지만 아가씨, 이건 규정에 맞지 않습니다.”성연은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거리낌 없이 말했다.“나를 믿어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에요.”말이 끝나자, 성연은 대답할 기회도 주지 않은 채 안으로 걸어갔다. 마치 뒤에 천군만마가 있는 것처럼 당당하고 기세 등등한 걸음걸이였다.성연의 곁에는 아무도 다가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1층의 안내 데스크.“대표님은 지금 어디에 계신가요?”데스크의 여직원은 계속 그 자리에 있었기에, 방금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두 한눈에 볼 수 있었다.하지만 지금은 당황스러운 마음을 억누른 채 최선을 다해 응대할 수밖에 없었다.“약속을 하셨습니까?”성연은 입술을 오므린 채 가볍게 웃었다.“대표님은 어디 계세요?”“죄송합니다만, 대표
‘그 여자는 분명히 그 다른 쪽이라고 했어. 즉, 그 여자가 알려준 건 잘못된 방향이었어.’‘만약 그 여자가 방향을 몰랐다면, 위치를 말하지 않았을 거야. 그러나 그 여자는 그렇게 자신있게 위치를 말했어.’‘그건 자신이 있다는 말이야!’이렇게 생각하자, 예민주에 대한 사무의 인상은 더욱 좋지 않았다.다음 순간, 턱을 살짝 든 사무가 두 여자를 바라보며 차분하게 말했다.“제 여동생이 아직 저쪽에 있어요. 잠깐만요, 제가 가서 여동생을 데리고 올게요.”여동생이 있다는 말을 듣자 좀 놀랐지만, 소년이 돌아서는 걸 보자 그제서야 비로소 대답했다.“아, 여동생! 그래, 그래.”화장실에 간 후, 사무와 사진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 못된 여자가 혹시 함정이라도 파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기에.하지만 아버지가 아직 거기에 있다는 걸 떠올리자, 앞으로는 더 조심해야 한다는 첫 교훈도 얻게 되었다. 이 놀이는 오후 내내 계속되었다.한편 다른 한쪽. 시재 백화점에 갔다가 별장으로 돌아온 성연은 양 손에 큰 봉투 두 개를 들고 있었다. 그 안에는 온갖 장난감이 가득했다.이것들은 모두 성연이 업무를 마친 뒤에 특별히 아이들을 위해 고른 장난감이다. ‘요 며칠 동안 정말 너무 바빴어. 집에 돌아오면 이미 늦은 밤이거나, 좀 일찍 집에 돌아와도 저녁을 먹고 다시 일하느라 정신이 없었지.’성연은 여전히 아이들에게 빚을 진 듯한 느낌이었다.집을 열자 거실은 조용했다. 위층에서도 별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우리 사진이, 사무? 엄마가 돌아왔어!”눈살을 살짝 찌푸리면서 성연이 말했지만, 아이들의 열정적인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사진아? 사무야? 너희들 집에 있니?”“사무야?”아래층에서 계속 몇 번이나 소리쳐도 여전히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이렇게 큰 집에 성연 자신의 목소리만 울릴 뿐.“보스, 아이들은 지금 집에 없습니다.”이때 서한기가 부랴부랴 달려왔다.“집에 없다니?” 성연이 눈썹을 바짝 세웠다. 순간 마음속에
“그 여자는 이전에 엄마하고 알고 지냈던 것 같아. 다만 아직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모르겠어.”“그럼 이따가 우리 어떡하지?” 사진이 약간 지친 듯한 기색으로 말했다.오전 내내 이곳을 왔다갔다했으니 아이에게는 에너지 소모가 컸다.그리고 방금 위층으로 올라갈 때, 아이들은 여전히 아주 자신있게 서한기보고 먼저 가라고 했다. 그때는 자신감이 가득했지만 지금은 ‘후회막심’이다.‘지금 아직 한기 아저씨가 있다면. 바로 집에 가서 편하게 누워서 쉴 텐데.’“일단은 우리 계획대로 그 여자한테 엄마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마. 우리가 아빠를 찾으러 온 건 그 여자하고 상관이 없어.”원래 신중한 사무지만, 지금 사무의 말은 오빠라는 사무의 입장과 아주 딱 맞게 진지했다.두 아이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앞으로 걸어갔다. 방금 전에 화장실에 가겠다고 한 건 핑계였지만, 막상 바깥에 나오자 화장실에 가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하지만 한참을 가도 식당 창문이나 작은 방은 곳곳에 있는데, 예민주가 말한 화장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그 여자가 우리를 속인 건 아니겠지?”억울한 듯이 분홍색 입술을 삐죽 내민 채 사진은 움직이기도 귀찮았다.여동생의 이런 모습을 보자, 사무는 그 자리에 선 채 눈을 반짝이며 한 바퀴 둘러보았다.“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딴 데 가지 말고. 알았지?”말을 마친 사무는 왔던 길을 다시 달려갔다.“오늘 가지는 좀 맛이 없어.”“그래도 괜찮은데. 먹기 싫으면 나한테 줘.”사무는 식사 중이던 두 아가씨의 앞으로 갔다.“누나, 실례합니다. 여기 화장실이 어디에 있어요?”목소리는 여리지만 태도는 아주 공손했다.밥을 먹고 있던 두 아가씨는 그 말을 듣자 먹던 동작을 멈췄다. 사무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갑자기 눈빛을 반짝였다.‘어디서 이렇게 귀여운 아이가 온 거야?’ ‘뚜렷한 이목구비에 심플한 검은색 스웨터만 입었는데도 잘 어울리는 걸.’‘얼굴의 통통한 젖살이 큐티 작살인데!’‘그야말로 너무나 귀여운 아이야!’사무는
두 아이를 보면서 예민주는 더욱 초조했다.마음속에 잘 기억해 놓은 뒤, 예민주의 노기는 빠르게 수그러들었다. 다시 아이들을 바라볼 때는 이미 이전의 온화한 모습을 회복했다.“사진아, 너희들은 이전에 외국에서 잘 살았다면서? 그런데 왜 갑자기 귀국한 거야?”마치 큰 언니가 아이들을 배려하는 듯 예민주는 아주 잘 알고 있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러나 지금 두 아이는 이미 이 여자의 목적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다. 당연히 경계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엄마의 집이 바로 여기에 있어요. 엄마가 한번 가보자고 해서 돌아왔어요.”목소리는 아직 어린 티가 나지만, 깊이를 알 수 없는 해맑은 눈빛으로 쳐다보면서 또박또박 말하는 사진의 대답은 가히 ‘예술의 경지’라 해도 좋을 정도였다.‘아까까지만 해도 술술 잘 말하더니, 갑자기 왜 이렇게 빈틈이 없어진 거야?’예민주는 기분이 좀 꿀꿀했지만 그래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이번에 돌아와서 낯선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니? 너희들이 오늘 이곳에 와서 아빠를 찾는 것 같은데, 누가 너희들에게 뭔가 말한 거 아니야?”예민주는 최대한 목소리를 낮춘 채 계속 집요하게 물었다. 무진이 자신의 모습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무진에게 등을 진 채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사진은 혼란스러운 모습으로 눈썹을 찌푸린 채 예민주를 쳐다보았다.“아줌마, 우리하고 함께 여기서 논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왜 계속 그런 거만 물어봐요?”“맞다. 아줌마, 우리 엄마 알지요? 우리 엄마한테 지금 데리러 오라고 하면 안 돼요?” “오늘 우리를 괴롭힌 사람들을 엄마가 꼭 혼내 주게요!”“맞아요, 맞아요! 누가 우리를 괴롭힌 걸 알면, 엄마가 반드시 호되게 혼을 내줄 거예요.”두 아이가 서로 주고받으면서 한 마디씩 하는데, 호흡이 기가 막히게 잘 맞았다. 예민주는 표정이 붉어졌다는 것도, 심지어 심장박동도 빨라졌다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이 두 녀석의 말을 들으니, 송성연이 이 두 녀석을 아주 진지하게 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