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휴대전화를 사이에 둔 두사람은 모두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잠시 후, 이서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사실 H선생님이 저를 아시는지 아닌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기억을 잃은 제가 너무도 자연스럽게 H선생님의 번호를 입력한 걸 보면, 제게 있어서 H선생님은 틀림없이 중요한 사람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머리를 살짝 젖힌 지환은 뒤통수를 차가운 시멘트벽에 기댔다. 그는 입가에 맴도는 무수한 말을 차마 꺼낼 수 없었다. “하나가 말해주지는 않았지만, 잃어버린 제 기억 속에 있는 사람을 떠올리지 못하게 하고, 제가 잃어버린 기억이 무엇인지 말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만큼은 저도 느낄 수 있었어요. 아마 제가 자극받는 걸 원치 않았기 때문이겠죠. 그래서 H선생님께서도 확실한 대답을 하지 않으시는 거고요. 그렇죠?” 이서는 지환의 확답을 기대하지 않았다. “H선생님, 앞으로는 H선생님이 누구인지 묻지 않을게요. 그러니까 앞으로도 제 전화 받아주세요, 네?” 이서도 자신의 마음을 알 수 없는 듯했다. ‘기억을 잃은 내가 누구냐고 묻는데 아무렇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거야.’ ‘불안하고 두려워.’ ‘H선생님이 앞으로는 내 전화를 받지 않겠다고 하시면 어쩌지?’ [알겠어요, 무슨 일이 있어도 Y양의 전화는 받을게요.] 지환은 간신히 일렁이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한 글자 한 글자 대답했다. 이서의 한 마디 한 마디는 날카로운 칼이 되어 지환의 마음속을 헤집어 놓는 듯했다. “정말 좋은 분이시네요.”이서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두 사람은 더 많은 대화를 이어 나가지는 않았으나, 전화를 끊으려 하지 않았고, 오랜 시간을 흘러 보냈다. 문밖에서 들려오는 발걸음 소리가 두 사람의 따스한 침묵을 끊었다. “은철이가 돌아왔나 봐요.”이서가 아쉬운 듯 입을 열었다.“오늘은 이만 전화를 끊어야 할 것 같아요.” [...그래요.] 그렇게 전화는 끊겼다. 날카로운 칼이 여전히 지환의 심장을
하씨 가문의 고택.눈앞에 놓인 흰목이버섯 죽을 바라보던 이서가 의심스럽다는 듯 물었다. “이거... 정말 네가 직접 끓인 거야?”‘은철이가 직접 죽을 끓여주다니.’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걸까?’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잖아.’ ‘물론 이전에도 은철이 꿈을 꾼 적은 있지만, 그건 기껏해야 은철이가 내가 준비한 식사를 만족스러워하는 꿈이었잖아.’ ‘그런데 그런 은철이가 나를 위해서 직접 식사를 준비했다는 거야?’ “당연하지.”은철은 선뜻 믿지 못하는 이서의 모습에 가슴이 저려오는 듯했다.“먹어봐, 처음이라서 맛있지는 않을 거야.” 이서가 달콤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은철이 네가 만들었으니까 틀림없이 맛있을 거야.” 이서가 죽을 한 입 맛보았다. 과도하게 삶아진 흰목이버섯이 형태를 찾아볼 수 없이 으스러졌고, 불쾌한 비릿함이 입 안을 가득 메웠다. 고개를 숙인 이서는 오랫동안 고개를 들지 않았다. 이를 지켜보던 하은철은 얼른 휴지 한 장을 꺼내어 이서에게 건네주었다.“못 먹겠으면 뱉어도 돼.” 고개를 든 이서의 눈에서는 굵은 눈물방울이 후드득 떨어지고 있었다. 죽이 맛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이 흰목이버섯 죽으로 인해 잃어버린 기억의 일부를 되찾았기 때문이었다. 이서는 마음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누군가가 날 위해서 식사를 준비해 준 적은 있지만, 그 사람은 분명 은철이가 아니었어.’ ‘그리고 그 사람이 준비해 준 식사는 맛도 아주 훌륭했다고.’ ‘물론 처음부터 훌륭했던 건 아니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훌륭해졌었지.’ 이서는 그 사람의 실루엣과 이름을 떠올리기 위해 애썼으나, 끝내 생각해 내지는 못하는 듯했다.“이서야, 울지 마. 내가 잘못했어. 다음부터는 아주머니께 부탁드릴게, 응?” 이서가 우는 것을 본 은철은 허둥지둥했다. 이서가 고개를 들어 은철을 바라보았다.“앞으로는 네가 안 해줄 거야?” “응, 앞으로는 내가 안 하고 아주머니께 부탁드릴게. 그 아주머니께서 하신 것도 마음에 안들면 다른 아주머니께
은철은 황급히 아래층으로 내려가 가정의를 호출했다. 하지만 가정의가 무슨 방법이 있겠는가. 그는 즉시 결단을 내렸다. “정신과 의사가 필요합니다.” 은철은 정신과 의사를 호출하기 위해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이서는 길을 잃은 탓에 거대한 거미줄에 걸려버린 작은 곤충처럼 거세게 발버둥 치고 있었다. 밀려오는 고통은 바닷물이 되어 그녀의 온 몸 구석구석을 파고드는 듯했다. “아!!”이미 아래층으로 달려간 은철 또한 이서의 고통스럽고 날카로운 비명을 들을 수 있었다. 한쪽 귀를 틀어막은 하은철이 수화기 너머의 정신과 의사에게 말했다.“지금 바로 와주세요!” 말을 끝낸 은철이 전화를 떨어뜨렸다. 상황을 지켜보던 주 집사가 앞으로 나아가 조심스럽게 말했다.“도련님, 이서 아가씨께서 저렇게까지 고통스러워하시는데, 약을 드시게 하는 건 어떨까요?” “그걸 제외한 고통을 완화활 방법이라면...” 지환을 떠올린 하은철이 주 집사에게 호통을 쳤다.“그렇게 잘났으면, 주 집사님이 직접 올라가 보시지 그래요?!” 주 집사는 멍해지는 것을 느꼈다. ‘왜 이렇게까지 화를 내시는 거지?’ “도련님...”“그만하세요!”은철이 깊은숨을 들이마셨다.“오늘은 이만 퇴근하세요.” 주 집사는 어쩔 수 없이 퇴근할 수밖에 없었다. 주 집사가 떠난 거실에서는 홀로 남은 은철만이 메아리치는 이서의 처량한 울음소리를 듣고 있었다. 은철이 고개를 들어 2층을 바라보았다.‘작은 아빠가 여기 계셨다면 틀림없이 방법이 있었을 텐데.’ ‘아니야, 작은 아빠만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 나도 이서를 잘 돌볼 수 있다고!’ ‘할 수 있어.’‘나도 충분히 할 수 있어.’하은철은 스스로를 다스리며 정신과 의사를 기다렸다. 이서의 방에 다다른 정신과 의사는 미쳐버리기 일보 직전인 이서의 모습에 잠시 넋을 잃은 듯했다. 그는 뒤에 있던 은철이 자신을 밀치는 것을 느끼고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이런 환자는 처음 봅니다. 어떤 상황인지 간략히
은철이 휴대전화를 흘겨보았다. 저장조차 되어 있지 않은 낯선 번호였다. 그는 즉시 통화 거절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 [전화 받으시죠. 안 받으시면 후회하실 겁니다.] 또다시 전화가 걸려 왔고, 화면을 메운 빨간색 버튼과 초록색 버튼 사이에서 망설이던 하은철은 끝내 전화를 받았다. [하은철 씨, 받지 않으실 줄 알았는데요.] “누구시죠?”수화기 너머에서 건방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껏 이토록 건방진 말투로 은철을 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내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중요한 건 내가 하은철 씨 마음의 한을 해결해 줄 수 있다는 거죠.] 은철이 냉소했다.“사기꾼 주제에 감히 내 머리 위에 오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오래 살고 싶지 않은 모양이죠?” [하하.]수화기 너머의 사람이 조롱이 섞인 웃음을 뱉어냈다. [하은철 씨, 윤이서 씨와 결혼하고 싶으셨던 거 아니에요?] 안색이 어두워진 은철이 목소리를 낮추었다.“당신, 도대체 누구야?” [방금 말씀드렸는데요, 내가 누구인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요. 난 하은철 씨가 윤이서 씨와 결혼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어요.] “웃기지 마, 당신이 뭔데 이서를 조종할 수 있다는 거야?” 수화기 너머의 사람이 또 한 번 나지막한 웃음을 뱉었다.[예전과 같았으면 이런 허풍도 떨 수 없었겠지만, 지금은 윤이서 씨가 기억을 잃었잖아요?이런 상황에서 두 사람이 결혼할 수 있도록 돕는 건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은철이 책상 모서리를 지그시 누르며 말했다.“자신 있다는 겁니까?” [그럼요.]수화기 너머의 사람이 웃음을 지어 보였다. “원하는 게 뭡니까?”은철이 물었다.‘엄청난 걸 요구할 게 분명해.’ 그러나 수화기 너머에서는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고, 은철은 매우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런 거 없어요.]‘이게 웬 떡이야?’ 은철은 믿을 수 없는 듯했다. “나를 도우려는 이유가 뭡니까?” [하은철 씨랑 윤이서 씨가 결혼해야지만, 내가
살금살금 문을 열고 들어와 침대 옆에 앉은 은철이 이서의 손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이서야, 앞으로는 내가 너를 지켜줄게.”은철이 몸을 숙여 이서의 이마에 입을 맞추려던 찰나, 깊이 잠들었던 이서가 눈을 떴다. 깜짝 놀란 은철은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이서는 막연하게 하은철을 바라보고 있었다.“은철아, 왜 그래?”이서의 목소리에서는 기운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은철이 고개를 저으며 이서의 창백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아니야, 너는 좀 어때? 이제 좀 괜찮아?” 머리가 울리는 듯한 통증을 느낀 이서가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다. “응, 다른 데는 괜찮은데, 머리가 좀 아프네. 그나저나, 방금 무슨 일 있었어? 내가 뭘 꺾었다고 했던 것 같은데...” “아니야, 아무 일도 없었어.” 몸을 일으킨 하은철이 이서의 곁에 앉아 수줍게 입을 열었다.“이서야, 내가 할 말이 있는데...” “뭔데?”이서가 윙윙거리는 머리를 계속해서 문질렀다. “우리 결혼할까?”은철이 긴장한 표정으로 이서를 바라보았다. 머리를 문지르던 동작을 멈춘 이서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하은철은 바라보았다. 이서는 한참이 지나서야 입을 열었다.“은철아,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확실히 알긴 하는 거야?” “그럼, 당연하지.”다소 격앙된 듯한 은철이 이서의 손을 붙잡으며 말했다.“이서야, 우리 결혼하자!”이서가 손을 빼내며 말했다.“은철아, 조금 진정해 봐.”“이서야, 네가 줄곧 바라던 거잖아. 나도 너랑 결혼하고 싶어. 혹시... 마음이 바뀌기라도 한 거야?” 은철의 이 질문은 이서의 정곡을 찔렀다.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은철이와의 결혼, 내가 간절히 바라던 거잖아.’ ‘자그마치 8년 동안!’ ‘그런데 왜...’ ‘결혼하자는 은철이의 말을 들어도 전혀 기쁘지 않은 거지?’ “은철아, 결혼은 장난이 아니잖아. 조금 진정해 봐.” 이서가 이불을 잡아당기며 말했다.“시간이 늦었어. 오늘은 그만 네 방으로 돌아가.
이서의 방에서 나온 하은철의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역시 예전이랑 똑같아.’ ‘윤이서, 날 진심으로 거부하고 있는 거라고.’ ‘그런 게 아니라면, 작은 아빠를 기억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나의 결혼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리가 없어.’ ‘작은 아빠!’지환의 얼굴을 떠올린 은철이 참지 못하고 주먹을 꽉 쥐었다. ‘이서가 작은 아빠를 잊으면 무슨 소용이야...’ 주먹을 들어 벽을 세게 내려치려던 은철의 눈에 아래층에 세워진 차 한 대가 보였다.하씨 가문에는 수많은 고급 차량이 있었기 때문에, 그가 하씨 가문의 모든 차량을 다 안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그 차량은 분명 하씨 가문 소유의 차량이 아니었다. 하은철이 입꼬리를 세우고 아래층에 세워진 차량을 향해 서서히 걸어갔다. 차량에 앉아 있는 사람은 역시 하지환이었다. “작은 아빠!”은철이 의기양양하게 차창을 두드렸다. 차창이 열리고, 지환의 초췌한 얼굴이 드러났다. 눈 밑의 검은 다크서클은 그가 며칠 동안 제대로 휴식을 취하지 못했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내가 작은 아빠가 사랑하는 사람을 훔친 거구나.’못 알아볼 정도로 야윈 지환을 본 은철이 한 생각이었다.은철을 흘겨본 지환이 연거푸 술을 들이켰다. 술이 지환의 섹시한 목젖을 타고 흘러내렸다. “작은 아빠 너무 상심은 마세요. 모든 걸 원래 있던 자리로 되돌리려는 것일 뿐이니까요.”은철이 말했다. “이서는 원래 저의 약혼녀였잖아요.”은철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지환이 그의 넥타이를 잡아당겼다. 지환의 힘은 무서우리만큼 강력했다. 은철은 저항할 새도 없이 지환을 향해 끌려갔다. 날카로운 칼날과 같은 지환의 눈빛을 본 은철이 숨을 죽였다. “작은 아빠...”“하은철.”지환의 두 눈동자가 두 갈래의 죽음이 되어 하은철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똑똑히 들어. 이서는 아주 잠시 네 곁에 머무는 것일 뿐이야. 차차 모든 기억을 되찾고, 작은아버지에 대한 기억까지 떠올린다면, 다시 내 곁으로 돌아올 거라고.” 살
‘하지만 작은 아빠는 신분을 속이고 이서와 결혼한 거잖아.’ 은철의 마음속에 피어오르던 양심의 가책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듯했다. ‘이서가 작은 아빠의 여자였다니.’ 지환을 바라보는 은철의 눈빛이 더욱 냉랭해졌다. 이때, 지환은 마침내 방금의 충격에서 정신을 차린 듯했다. 철로 된 대문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간 그가 은철을 바라보며 한 글자 한 글자 말했다. “방금 한 말, 다시 지껄여 봐.” 철문을 사이에 두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은철의 심장은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저... 저는 단지... 제가...” 펑!큰 소리가 울려 퍼졌다. 철문은 지환의 주먹 한 방으로 단번에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이 찌그러졌으며, 이를 본 은철의 얼굴은 순식간에 종잇장처럼 창백해졌다.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던 은철은 입술만을 부들부들 떨고 있을 뿐이었다. “다시 지껄여 보라고!” 지환은 마치 우레와 같이 날뛰는 짐승과 같은 모습으로 은철을 뚫어지게 노려보고 있었다. 하지만 은철이 어찌 감히 말을 이어 나갈 수 있겠는가.‘함부로 지껄였다가는 저 철문이 내가 될지도 몰라.’ 바로 이때, 2층에서부터 경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은철아, 왜 그래? 뭐가 깨진 거야?” 이서의 목소리였다. 은철이 얼른 위층을 향해 말했다.“괜찮아, 별거 아니야. 너까지 내려올 필요는 없어.”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외투를 걸친 이서가 달빛을 밟으며 천천히 걸어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당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을 본 이서가 이상하다는 듯 은철을 바라보며 말했다.“은철아, 방금 들린 큰 소리는 어디서 난 거야?” 은철이 불안한 눈빛으로 이서의 시선을 따라 바라보았고, 그제야 철문 뒤에 서 있던 지환이 자취를 감추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과거의 이야기로 죽을 만큼 고통스러워하던 이서의 모습을 떠올린 은철이 곧 무언가를 깨달은 듯 입꼬리를 치켜세웠다.“아무것도 아니야. 정말이야. 괜찮으니까 올라가서 쉬어.” “정말 괜찮은 거야?” 이서가 뒤틀린 철문
‘하마터면 잠깐의 동정으로 목숨을 잃을 뻔했어.’ 은철이 비틀거리며 휴대전화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전화를 건 사람이 뜻밖에도 이전에 전화를 걸어왔던 낯선 여자라는 것을 깨달은 그가 즉시 휴대전화를 들고는 모든 화를 그녀에게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서는 기억을 잃었으니, 반드시 나랑 결혼하게 될 거라고 하지 않았어요? 결혼 이야기를 꺼냈는데도 불구하고 승낙은커녕 퇴짜를 맞았다고요!” 멍하니 은철의 이야기를 듣던 수화기 너머의 여자가 웃음을 터뜨렸다.[그거야 하은철 씨가 너무 급했으니까 그렇죠. 내가 말했잖아요, 다 방법이 있다고. 내일 다시 전화할 테니까 윤이서 씨를 데리고 나오기만 하세요.] “확실한 방법인 거 맞습니까?” 수화기 너머 여성의 말을 들은 은철은 화가 거의 가라앉은 듯했다. ‘그래도 마음을 완전히 놓을 수는 없어.’ [걱정하지 마세요. 내 방법은 반드시 성공할 테니까요. 거절할 여자는 아무도 없을 거예요.]수화기 너머의 여성은 꽤 자신만만한 듯했지만, 은철은 여전히 반신반의했다. “이서가 작은 아빠를 잊은 건 확실하지만, 온 신경은 내가 아닌 다른 곳을 향하고 있다고요. 본인의 신경이 향하는 곳이 어디인지를 모를 뿐이죠. 이런 상황에서도 정말 이서가 내 청혼을 받아줄 거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여자가 짜증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그래서, 윤이서 씨와 결혼을 하고 싶다는 거예요, 아니라는 거예요?] “당연히 하고 싶죠!” 은철은 전혀 망설이지 않았다. [그런 거라면, 내가 시키는 대로 내일 윤이서 씨를 데리고 나오기만 하세요.] 여자의 명령하는 듯한 말투에 불쾌감을 느낀 은철은 눈살을 찌푸렸지만, 이내 이서와 결혼할 수 있다는 생각에 냉큼 입을 열었다.“알겠습니다.”수화기 너머의 여성은 확신에 찬 은철의 대답을 듣고서야 만족스럽다는 듯 입꼬리를 치켜세우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녀가 핸드폰을 내려놓자, 커다란 의자에 앉아 있던 하지호가 천천히 의자를 돌려 앉았다. “왜? 은철이가 이서랑 결혼하겠대?” 박예솔이 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