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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6화

이서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휴대전화를 사이에 둔 두사람은 모두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잠시 후, 이서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사실 H선생님이 저를 아시는지 아닌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기억을 잃은 제가 너무도 자연스럽게 H선생님의 번호를 입력한 걸 보면, 제게 있어서 H선생님은 틀림없이 중요한 사람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머리를 살짝 젖힌 지환은 뒤통수를 차가운 시멘트벽에 기댔다.

그는 입가에 맴도는 무수한 말을 차마 꺼낼 수 없었다.

“하나가 말해주지는 않았지만, 잃어버린 제 기억 속에 있는 사람을 떠올리지 못하게 하고, 제가 잃어버린 기억이 무엇인지 말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만큼은 저도 느낄 수 있었어요. 아마 제가 자극받는 걸 원치 않았기 때문이겠죠. 그래서 H선생님께서도 확실한 대답을 하지 않으시는 거고요. 그렇죠?”

이서는 지환의 확답을 기대하지 않았다.

“H선생님, 앞으로는 H선생님이 누구인지 묻지 않을게요. 그러니까 앞으로도 제 전화 받아주세요, 네?”

이서도 자신의 마음을 알 수 없는 듯했다.

‘기억을 잃은 내가 누구냐고 묻는데 아무렇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거야.’

‘불안하고 두려워.’

‘H선생님이 앞으로는 내 전화를 받지 않겠다고 하시면 어쩌지?’

[알겠어요, 무슨 일이 있어도 Y양의 전화는 받을게요.]

지환은 간신히 일렁이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한 글자 한 글자 대답했다.

이서의 한 마디 한 마디는 날카로운 칼이 되어 지환의 마음속을 헤집어 놓는 듯했다.

“정말 좋은 분이시네요.”

이서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두 사람은 더 많은 대화를 이어 나가지는 않았으나, 전화를 끊으려 하지 않았고, 오랜 시간을 흘러 보냈다.

문밖에서 들려오는 발걸음 소리가 두 사람의 따스한 침묵을 끊었다.

“은철이가 돌아왔나 봐요.”

이서가 아쉬운 듯 입을 열었다.

“오늘은 이만 전화를 끊어야 할 것 같아요.”

[...그래요.]

그렇게 전화는 끊겼다.

날카로운 칼이 여전히 지환의 심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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