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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이상언은 수술침대와 거리가 있어 위에 누워있는 여자의 얼굴을 똑똑히 보지 못했고, 하은철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세계 최고의 신장 전문의에게 이런 수술은 식은 죽 먹기였다.

그가 외국에서 돌아와 이 수술을 맡게 된 것은 하지환의 부탁 때문이었다.

“그럼 먼저 갈게요, 여긴 이 선생님에게 맡길게요.”

하은철은 또 그에게 몇 마디 인사를 하고서야 몸을 돌려 떠났다.

이때.

사무소 앞.

하지환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많은 사람들의 주의를 끌었다.

그는 명품을 입지 않았고, 차도 평범했지만 외모가 출중한 데다 멋지고 완벽한 몸매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만인의 주목을 받고도 하지환은 담담하게 사무소 앞에 서서 손목을 들어 팔근육을 드러냈다.

이미 9시 10분이 되었는데도 윤이서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지각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핸드폰을 꺼내 윤이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계속 전화를 걸다 롤스로이스 한 대가 멀지 않은 곳에서 오는 것을 보았다.

북성은 한국의 메인 도시로서 고급차가 도처에 널려 있었다.

그래서 이는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진정으로 하지환의 주의를 끈 것은 자동차 번호판이었다.

[A0XXXXXX]

이 번호판을 사용하는 사람은 기필코 하씨네 가문 사람일 것이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차가 사무소 입구에서 멈추는 것을 보았다.

다음 순간, 차문이 경호원에 의해 열리더니 깔끔한 흰색 양복을 입은 하은철이 의기양양하게 차에서 내렸다.

주위 사람들은 하은철이라는 것을 보고 미친 듯이 비명을 질렀다.

“아아아아, 하은철이다!”

“우와, HS 그룹의 도련님이 여기에 오다니!”

“윤씨 집안 아가씨랑 결혼하는 건가?”

“…….”

많은 사람들의 질문에 하은철은 웃으며 말을 하지 않았고 경호원의 호위를 받으며 빠른 걸음으로 사무소로 향했다.

그리고 이때, 그는 군중 속에 서 있는 하지환을 발견했고, 즉시 놀라서 빠른 걸음으로 하지환 앞으로 걸어갔다.

“둘…….”

어르신의 당부를 생각하자 하은철은 얼른 말을 바꿨다.

“또 뵙네요.”

하지환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하은철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사무소에 들어갔다.

구경꾼들이 문 밖에서 들어오지 못하자 하은철은 드디어 하지환의 곁에 다가가 목소리를 낮추어 물었다.

“둘째 작은아버지께서 여긴 어쩐 일이에요?”

하지환은 대답하지 않고 반문했다.

“너는?”

하은철은 하지환에게 숨기지 않았다.

“당연히 혼인 신고하러 왔죠.”

하지환은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누구랑?”

하은철이 대답했다.

“전에 말씀드린, 할아버지께서 오래전에 손주며느리로 정하신 그 여자요.”

“너 그 여자를 싫어한다고 하지 않았어?”

하지환은 이 조카에 대해 그다지 깊은 감정은 없었지만, 하은철이 하지환을 매우 존경해서 그와 혼약 이야기를 한 적이 한두 번 아니었다.

하은철의 입에서 나온 윤이서라는 여자는 온갖 나쁜 짓을 다 하는 여자였다.

그리고 그는 절대로 그녀와 결혼하지 않을 것 같았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거든요.”

하은철은 너무 많은 말을 하고 싶지 않아 화제를 돌렸다.

“참, 작은아버지는 여기 왜 왔어요?”

하지환은 하은철을 쳐다보았다.

“그 여자는?”

하은철은 영문을 몰랐다.

“누구요?”

하지환은 갑자기 다가와 하은철의 옷깃을 잡아당기며 눈빛은 음산했다.

“마지막으로 묻겠어, 윤이서는 어디에 있지?”

강한 카리스마에 하은철은 거의 숨이 막혔다.

그는 마침내 질문의 의미를 깨닫고 서둘러 말했다.

“병원에요, 신장 이식 수술 중이에요.”

하지환의 동공이 움츠러들더니 팔뚝에 핏줄이 불쑥 솟아올랐다.

그는 이를 악물었다.

“뭐라고?!”

하은철이 결국 윤이서를 수술대에 올려놓았다니!

하은철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하지환은 그를 밀어내며 성큼성큼 문앞으로 걸어갔다. 금방 몇 걸음 걷다, 그는 문득 고개를 돌렸다. 핏빛으로 물든 눈동자는 자식을 보호하는 짐승같이 무서웠고, 그는 하은철의 멱살을 꼭 쥐며 말했다.

“그 여자한테 무슨 일 생기면, 너도 무사하지 못 할 거야.”

말을 마치자 그는 고개를 돌려 가버렸다.

하은철은 하지환이 떠나는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서야 반응했다.

둘째 작은아버지는 왜 이러는 것일까?

그는 윤이서와 본 적도 없는데, 왜 그렇게 화를 내는 거지?

마치…… 그의 사람을 다치게 한 것처럼?

……

수술실.

윤이서의 목은 쉬었고 손목의 살도 닳았지만 수술실 대문은 여전히 굳게 닫혀 있었다.

그녀가 절망할 즈음에 대문이 열렸다.

수많은 의료진이 몰려들어왔다.

윤이서의 눈빛에 다시 희망이 나타났다.

“이거…… 놔요…….”

“언니, 그만 발버둥 쳐.”

아름다운 목소리가 울렸다.

“감정이 격해지면 수술하는 데 안 좋으니까.”

윤이서는 윤수정을 보았다.

그녀는 침대에 누워 윤이서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윤이서는 분노하여 주먹을 꽉 쥐었다.

“윤수정, 나는 너에게 신장을 주지 않을 거야!”

윤수정은 그녀의 말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윤이서, 넌 정말 네가 어르신의 귀여움을 받고 있다 해서 우리가 너를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니? 은철 오빠야말로 미래의 하씨 주인이란 거 잊지마.”

윤이서의 손톱은 살을 푹 파고들었다.

그녀는 눈을 들어 윤수정을 보았고 눈동자는 차가웠다.

“만약 내가 잘못 기억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아직 신장 일치한지 아닌지 검사한 적이 없는 것 같은데, 너는 나의 신장이 네 것과 일치하지 않을까 봐 두렵지도 않니?”

윤수정은 이 말을 듣고 웃었다.

그녀는 윤이서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또박또박 말했다.

“아니.”

윤이서는 멍해졌다.

그녀는 줄곧 하은철이 결혼하려면 신장을 내놓으라고 그러는게 신장이 매치하는지를 검사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그녀는 이 화제로 시간을 끌려고 했다.

뜻밖에도 또 다른 비밀을 발견했다니.

“안 해봤는데 왜…….”

윤이서의 목소리는 뚝 멈추었고, 무서운 생각이 머리속에서 솟아올랐다. 그녀는 놀라서 윤수정을 바라보았다.

“너희들은 신장 이식 수술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수술대에서 죽길 원하는 거였어!”

그녀가 죽기만 하면, 혼약은 자연스레 없던 일이 될 것이다.

그럼 윤수정과 하은철 사이에는 더 이상의 장애물은 없을 것이다.

윤수정은 그녀를 경멸하며 웃었다.

“너 멍청한 편은 아니네.”

윤이서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녀는 힘껏 팔을 움직이며 말했다.

“너희들 정말 미친 놈들이야!”

함께 있기 위해 한 사람의 목숨을 이렇게 가져가다니.

윤수정은 하하 웃었고 웃음소리는 무척 날뛰었다.

“그래, 나는 미친 놈이야. 미친 듯이 너를 질투한다고. 왜 넌 태어나자마자 하씨 집안 아씨고, 왜 그 사람은 나일 수 없는 거지? 나도 윤씨 집안 딸인데, 왜 내가 몇 년 늦게 태어났기 때문에 모든 것을 너에게 양보해야 하냐고!!”

윤이서는 눈앞의 윤수정을 믿을 수 없단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녀는 윤수정이 자신을 그렇게 미워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단지 하나의 터무니 없는 혼약 때문이었다.

바로 이때, 수술실 문이 다시 열렸다.

의사 몇 명에게 둘러싸인 이상언이 들어왔다.

“수술 시작.”

“마취 준비.”

이 말을 듣고 윤이서는 갑자기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당황하여 이상언을 향해 소리쳤다.

“나는 강요를 당한 거예요! 나를 놓아줘요! 제발!”

이상언은 눈썹을 찌푸렸고 시선이 윤이서의 몸으로 향했다.

그 창백한 얼굴을 보니 그는 문득 낯이 익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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