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44. 피차일반

Author: 공자영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29 22:28:44

윤호는 묵묵히 앞만 보며 핸들을 단단히 움켜쥐었다.

조수석에 앉은 여림은 숨이 막힐 듯 어색하고 찌릿한 공기를 견디지 못하고, 조수석 앞 수납함을 조심스레 열었다.

그 안에는 윤호가 자신을 위해 챙겨둔 새콤달콤한 젤리들이 담겨 있었다.

말없이 젤리 하나를 꺼내 우물거리던 여림은, 가만히 옆을 지나치는 밤풍경을 보다가 슬그머니 젤리 하나를 윤호 쪽으로 슥 내밀었다.

나름대로 먼저 냉랭한 기류를 풀고 화해의 손길을 내미는 옹졸하지 않은 사과였다.

“너 먹어.”

하지만 돌아온 것은 시큰둥하고 무미건조한 음성 뿐이었다.

“…… 됐어. 안 먹어.”

예상치 못한 단칼의 거절에 여림의 입술이 저도 모르게 억지로 팍 찌그러졌다.

젤리를 도로 봉지에 넣고는 가방 깊숙이 묻어버렸다.

간신히 가라앉히려 했던 서운함이 다시 밀물처럼 차올랐다.

“치, 그렇게 아무 말도 안 하고 갈 거면 뭐 하러 데리러 와?”

차에 탈 때부터 퉁명스럽게 굴고, 화해하겠다고 내민 손까지 거절했다.

그 말에 윤호는 핸들을 쥔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ocked Chapter

Latest chapter

  • 얼어 죽을 첫사랑   48. 질투 대마왕

    전화를 끊은 수진은 한동안 핸드폰을 손에 쥐고서 멍하니 침대에 파묻혀 있었다. 심기가 꽤나 불편했다. 본의 아니게 큰 죄라도 지은 거 같았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그 틈에 끼인 수진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아까 길에서 현재를 바라보던 윤호의 눈빛은. “그때랑 똑같네 진짜.” 수진은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었다. 10년 전, 까마득한 고등학교 시절의 일이 머릿속에서 선명하게 떠올랐다. 어차피 저 둘은 지독하게 깊은 사랑을 할 것이고 결국엔 헤어지더라도 다시 또 만날 것이다. 하지만 유치한 질투와 사랑 싸움에서 의도치 않게 끼이는 수진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둘은 진짜 나중에 결혼할 때 나한테 혼수 풀 세트로 해줘야 된다.” *** 열여덟의 빼빼로데이 전날 밤이었다. 한창 기업의 상술에 놀아나지 않겠다며

  • 얼어 죽을 첫사랑   47. 너만큼 질투해

    “망고 빙수 어때요?” 수진이 조잘거리며 셋이 걸어가는데, 여림의 주머니 속 휴대폰이 위잉하고 요란하게 울렸다. 윤호인가 싶어 서둘러 화면을 확인한 여림은 기대와 다른 재난 문자인 것을 확인하곤 휴대폰을 도로 넣었다. 바로 그때, 고개를 든 여림의 눈앞에 익숙한 얼굴이 희미하게 보였다. “어.” 여림의 걸음이 멈추자 옆에 있던 두 사람도 따라 걸음을 세웠다. 북적이는 군중 속에서도 여림은 윤호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윤호도 자신을 봤는지 사람들 사이를 성큼성큼 걸으며 다가오기 시작했다. “어? 선배다!” 윤호가 가까워지자 수진도 윤호를 알아보며 손을 번쩍 흔들어보였다. “오빠가 여기 왜 있어?” 여림은 반가움과 놀라움이 섞인 눈으로 물었다. 그러자 윤호는 보조배터리가 꽂힌 휴대폰을 슬쩍 보여주며 대답했다. “근처가 당구장이었어. 충전 맡겼는데 하나도 안 돼서 연락을 못했어.”

  • 얼어 죽을 첫사랑   46. 긴급 재난 문자

    노릇노릇한 장어 향과 함께 술잔이 오가며, 어색함은 순식간에 화기애애해졌다. 소주병이 비워질 때마다 친화력이 남다른 수진과 현재의 대화는 거침없이 흘러갔다. “아, 그럼 여림 님이랑 꽤 오래된 사이시구나.” “네. 중학교 때부터 알았으니까요. 3년 내내 같은 반이라 안 친해질래야 안 친해질 수가 없었죠.” 수진이 술잔을 비우는 동안, 깍두기처럼 끼어 앉은 여림은 조용히 휴대폰을 확인했다. [나 수진이랑 장어 먹고 있어][오빠는 저녁 먹었어??] 현재에 대한 이야기를 할까 하다가 괜히 신경 쓰이게 만들고 싶지 않아 관뒀다. 윤호와의 대화창에는 여전히 1이 지워지지 않은 채 정적만이 흘렀다. 아직도 지언 선배랑 당구 치고 있나. 오래 답장이 없는 윤호에 여림의 얼굴엔 걱정 어린 그늘이 드리워졌다. “여림 님, 얼른 드세요. 식으면 맛없어요.” 그때, 현재가 노릇하게 익은 장어 한 조각을 여림의 앞접시에 올려주었다. “아, 감사

  • 얼어 죽을 첫사랑   45. 장마 예보

    “그런 일이 있었다고?”서울의 한 당구장.탁, 탁, 탕!파란색 당구대 위에서 알록달록 당구공들이 경쾌한 마찰음을 내며 이리저리 굴러다녔다.훌륭한 길을 따라 설계해놓은 대로 공들이 굴러 부딪히자, 지언이 기쁜 표정으로 주먹을 불끈 쥐며 세레머니를 해보였다.오랜만에 맞춰진 주말 휴일.여림이 수진을 만난다고 하자, 윤호 역시 지언의 부름에 흔쾌히 밖으로 나왔다.간만에 찾은 당구장에서 지언은 지난번 점심 시간에 연우와의 상담 이후의 일들을 꼬치꼬치 물어보았고, 윤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지난 일을 털어놓았다.“근데 그 직장 동료라는 사람, 네 여자친구 좋아하는 거 맞지?”“딱 보면 알잖아. 여림이가 그걸 알고 있는지 모르는지까지는 모르겠지만.”“하여간 무서운 놈. 난 아직 여림 씨 얼굴도 못 봤는데, 하도 들어서 그런가 아주 수년은 알고 지낸 동네 동생 같다야.”입만 열었다 하면 ‘여림이’ 타령을 해대는 윤호 덕에 지언은 어느새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여림에게 묘한 내적 친밀감마저 쌓인 상태였다.지언이 큐대에 초크를 문지르며 피식 웃었다.

  • 얼어 죽을 첫사랑   44. 피차일반

    윤호는 묵묵히 앞만 보며 핸들을 단단히 움켜쥐었다.조수석에 앉은 여림은 숨이 막힐 듯 어색하고 찌릿한 공기를 견디지 못하고, 조수석 앞 수납함을 조심스레 열었다.그 안에는 윤호가 자신을 위해 챙겨둔 새콤달콤한 젤리들이 담겨 있었다.말없이 젤리 하나를 꺼내 우물거리던 여림은, 가만히 옆을 지나치는 밤풍경을 보다가 슬그머니 젤리 하나를 윤호 쪽으로 슥 내밀었다.나름대로 먼저 냉랭한 기류를 풀고 화해의 손길을 내미는 옹졸하지 않은 사과였다.“너 먹어.”하지만 돌아온 것은 시큰둥하고 무미건조한 음성 뿐이었다.“…… 됐어. 안 먹어.”예상치 못한 단칼의 거절에 여림의 입술이 저도 모르게 억지로 팍 찌그러졌다.젤리를 도로 봉지에 넣고는 가방 깊숙이 묻어버렸다.간신히 가라앉히려 했던 서운함이 다시 밀물처럼 차올랐다.“치, 그렇게 아무 말도 안 하고 갈 거면 뭐 하러 데리러 와?”차에 탈 때부터 퉁명스럽게 굴고, 화해하겠다고 내민 손까지 거절했다.그 말에 윤호는 핸들을 쥔 손마디에 툭 하고 힘을 주었다.사실 윤호의 속은 이미 복잡하게 꼬여 있었다.하루 종일 연락도 못하고 눈 코 뜰 새 없이 일에 치이다가, 퇴근하자마자 한달음에 달려왔건만.본 광경은 현재와 웃으며 다정하게 대화하는 모습이었으니 속이 썩어 문드러질 판이었다.또 그 웃는 모습은 너무나도 예뻐서 표정 관리가 잘 되지 않았다.그럼 데리러 오지 마? 왜, 오늘 현재 님이 데려다주신다고 했는데 내가 와서 방해한 거야?당장이라도 삐딱한 말들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어차피 지금 여림의 남자친구는 자신인데, 이런 일로 질투를 부리는 제 모습이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 속 좁아 보여서 꾹 짓눌러 삼키는 중이었다.그리고 직장 동료끼리 퇴근길에 웃으며 인사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이렇게 머리로는 수백 번 이해하려 애쓰면서도, 터져 나오는 서운함까지 완전히 숨기지는 못했다.대신 윤호가 툭 내뱉은 진심은 저도 모르게 습관처럼 다정함이 묻어나는 목소리였다.“그럼 내가 어떻게 안 데리러

  • 얼어 죽을 첫사랑   43. 안 무섭거든

    너무해도 너무했다.아니, 어떻게 하루종일 연락이 없을 수 있어?일은 일이고, 나랑 연락은 해야 할 거 아니야!여림은 애꿎은 휴대폰을 책상 위로 툭 던지듯 내려놓으며 의자에 털썩 앉았다.퇴근 시간이 다 되어가도록 윤호에게선 감감무소식이었다.연애 두 달 차, 한창 연락 문제에 예민한 시기였다.시침이 6시를 훌쩍 가리키고 있었지만, 평소라면 칼같이 ‘오늘 언제 끝나?’ 하고 날아왔어야 할 휴대폰이 거짓말처럼 고요했다.“저 오늘 부모님 결혼기념일이라 먼저 가볼게요.”그때, 가음이 짐을 챙겨 들며 여림에게 다가왔다.“아, 네. 조심히 들어가요.”꾸벅 고개를 숙이고 등을 돌리려던 가은이 문득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어…… 여림 님도 빨리 들어가세요. 얼굴이 엄청 피곤해 보이세요.”“아니에요. 저 이것만 마무리하면 오늘 좀 일찍 들어갈 거 같아요.”여림의 말에 가은이 옅게 미소를 지으며 사무실을 떠났다.***분명 할 일이 산더미였는데.평소에는 끝이 보이지도 않던 일이 오늘은 왜 이리 빨리 끝나는지.여림은 짐을 챙기며 휴대폰을 확인했지만 여전히 윤호에게서 연락은 없었다.결국 속으로 툴툴거리며 가방을 챙겨 들던 그때였다.지이잉ㅡ[오늘 갑자기 일이 터져서 연락을 못 했어][나 이제 퇴근하는데 어디야?]어디긴 어디야, 회사겠지.연락을 보자마자 속으로 중얼거렸다.아마도 급하게 보내느라 두서가 없었을 것을 알지만.여림은 툭 튀어나온 입술을 집어넣으며 일부러 읽씹을 한 채로 홀로 엘리베이터로 향했다.바지 주머니에 넣어진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려댔지만 여림은 받지 않을 결심을 했다.어차피 말이 예쁘게 나오지 않을 거 같았다.기다리던 승강기가 도착하고, 문이 열리자마자 여림은 안으로 성큼 들어갔다.그리고는 그제야 폰을 열어 답장을 톡톡 치기 시작했다.[이제 퇴근하려고]퉁명스러운 말투가 가득 담긴 문자.전송을 누를까 말가 고민하던 그 찰나였다.“잠시만요!”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누군가 승강기의 문을 확 붙잡았다.“휴, 하마터면 놓칠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