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누구나 첫사랑을 품는다. 첫사랑은 사람마다 시작되는 순간도 다르고, 기억하는 방법도 다르고, 또 끝맺음도 다르다. 하지만 이상하게 오래도록 마음 속에 남아 가끔씩 들춰지는 사랑. 서둘렀기에 전하지 못했고 어렸기에 놓쳐 버렸던 그 첫사랑을 8년 만에 다시 만났다. 그것도 비를 쫄딱 맞아 길바닥에서 얼어 죽을 뻔한 채로. “..... 살려줘.” 8년 만에 만난 서로의 첫사랑 차윤호 X 홍여림.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던 지난 8년이 무색하게 그날 이후로 자꾸만 우연이 겹치며 서로 얽히기 시작한다. 이건 피하라는 뜻일까, 아니면 다시 한번 마주하라는 뜻일까. 가장 풋풋했던 사랑을 다시 성숙하게 사랑하기까지. 두 번째 첫사랑이 시작된다.
View More“홍여림. 이제 너 말해 봐.”
“응?”
“네 첫사랑은 언제야?”
첫사랑이라... 여림은 앞에 놓인 강냉이를 입에 넣으며 곰곰이 생각했다.
‘자. 이거 가져.’
‘이거 진짜 주는 거예요?’
‘갖고 싶다며 내 명찰.’
아, 그 순간. 억지로 깊숙이 묻어뒀던 기억이 떠올랐다.
“첫사랑은 얼어죽을.”
여림은 강냉이를 하나 더 들다 말고 도로 내려놓으며 손을 털었다.
“왜 그래?”
“그냥. 잊고 싶은 기억이 떠올라서.”
친구의 말에 여림은 대충 넘기며 비어 있는 맥주잔을 채웠다.
“아니, 그래서 첫사랑이 언제냐니까? 네 첫사랑 궁금해. 왠지...”
“왠지 낭만적일 거 같다고?”
또 다른 친구가 말했다.
모든 첫사랑을 낭만이라 포장하는 친구였다. 대본 같은 말에 여림은 고개를 저었다.
이루어지지 않은 첫사랑이 뭐가 낭만적인 건지. 마음이 닿기도 전에 사라져버린 첫사랑을 뭣하러 추억하는지. 괜히 그때의 초라한 제 자신만 떠올리는 일 아닌가.
첫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은 날, 여림은 다짐했다. 다시 만나도 절대 다시 사랑에 빠지지 않을 것이라고.
“그런 거 없어.”
“에이, 그런 게 어딨어?”
“여깄다.”
없어. 첫사랑 같은 거 정말 없어. 있어도 없어.
여림은 지루한 표정으로 컵에 담긴 맥주를 털어넣었다.
‘오빠 오늘 오는 거지?’
그리고 테이블에 맥주잔이 쿵.
‘미안, 못 가.’
아, 이건 또 왜. 여림은 입가를 쓸어내렸다.
한 번 시작한 회상은 끝도 없이 여림의 머릿속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몇 년을 잊고 있었는데. 고작 이거 한 번으로?
“미안, 못 가?”
자신도 모르게 화가 났다. 8년이 지났어도 오랜만에 떠올린 감정은 어떻게 이렇게 무르익지도 않는지.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다.
“뭐? 어딜 못 간다고?”
“어? 아, 아 나 2차 못 간다고. 피곤해. 집 갈래.”
갑자기 기분이 팍 다운됐다. 오늘은 얼른 집으로 도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너 진짜 가?”
“응. 피곤해졌어. 다음에 봐.”
오랜만에 만난 대학 동기들은 직장인이 되어도 여전했다. 쓸데없는 이야기를 나누는 게 친구라고 어떤 교수가 그랬는데. 여림의 친구들이 딱 그랬다.
여림은 가방을 챙겨 가게를 나섰다. 얼른 집에 가서 심신의 안정을 취해야했다.
“하, 비도 와?”
운도 없다. 하필 집에 갈 때 비가 쏟아지다니.
“이 정도 비면...”
가게 천막 아래 서서 손을 내밀었다. 빗줄기가 제법 굵었다. 그럭저럭 맞고 가도 될 만한데 문제는 바람이었다.
휙.
바람이 한 번 불어오자 빗줄기가 사선으로 휘며 사람들의 우산은 제 기능을 잃기 시작했다.
2월에 이 정도 비가 내릴 수 있나. 추운데 비까지 내리니 온 몸이 떨렸다.
도저히 그칠 비가 아니었다. 여림은 하는 수 없이 대충 가방으로 머리를 가리고 옆 편의점으로 향했다.
“네? 우산이 없다고요?”
“그게, 갑자기 내린 비라서 방금 막 우산이 다 나갔어요.”
하긴. 예고에 없던 비였다. 이렇게 추운데 누가 비가 올 것이라 예상했겠는가.
상심하며 다시 창밖을 바라볼 때.
“혹시... 우비는 있는데, 이거라도 괜찮으시면 구매하시겠어요?”
“...... 네, 그러죠 뭐.”
지금 찬 물, 더운 물 가릴 처지인가. 비에 젖은 생쥐 꼴보다 낫겠다고 생각했다.
여림은 포장지를 뜯어 우비를 입어보았다. 다행히 꼭 맞았다.
“... 하는 수 없지.”
고민도 잠시. 여림은 바로 우비를 꺼내 입었다.
가방을 멘 상태에, 바지 밑단을 차례로 걷어 올렸다. 다행히 면바지를 입어서 망정이지. 청바지를 입었다면 우비 마저 소용 없을 뻔 했다.
그리고 머리까지 높게 모아 묶고는 마치 전쟁에 나가는 용사 마냥 숨을 한 번 크게 내쉬며 말했다.
“가자.”
마지막으로 우비에 딸린 모자를 뒤집어 썼다.
쏴아아ㅡ. 순식간에 우비 위로 비가 쏟아졌다. 하지만 지금 길 위를 걷고 있는 사람 중에는 여림이 가장 보송할 것이다.
여림은 고개를 푹 숙이고 빗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아쉽게도 장화는 없어, 신발은 포기했다.
그렇게 몇 분 쯤 걸었을까.
고개를 숙이고 걷던 여림의 발걸음이 천천히 느려지다 어느 가게 앞에 멈추었다.
“... 어?”
문을 닫은 가게 앞에는 천막에 제법 깊게 나와 있었고, 비를 피하기에는 충분했다.
그리고 그 밑에는.
“아니, 왜 저러고 있어.”
쭈그려 앉은 사람이 있었다. 이미 홀딱 젖은 몸으로 고개를 푹 숙이고는 추위에 몸이 떨리는 모양새로.
술에 취한 사람인가. 아니면 어디 아픈 사람? 여림은 잠시 고민하다가 그대로 지나쳤다.
이상한 사람이면 어떡해. 엮이면 곤란해질 뿐이었다.
“......”
하지만 그냥 지나치자니 신경이 쓰였다.
비가 좀 오는 게 아닌데 이런 날씨에 저렇게 길바닥에 있다니. 여림은 자신이 가진 우산이라도 건네줄 심정으로 천천히 뒷걸음질을 쳤다.
“저기요...”
조용히 그 남자에게 다가선 여림은 빗소리에 묻힐 만큼 작은 목소리로 남자를 불렀다.
반응이 없었다.
여림은 조금 더 고개를 숙여 말했다.
“저기요. 여기서 이러고 계시면 감기,”
그때.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고개를 숙이고 있던 남자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
두 눈이 마주쳤고.
“어......”
여림은 남자의 정체에 놀라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빗물에 젖은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난 얼굴. 마주치는 시선. 너무 익숙한 얼굴이었다.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차윤호.....”
여림은 자신도 모르게 그 이름을 입 밖을 뱉어버렸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아, 내가 드디어 미쳤나. 그거 잠깐 회상 좀 했다고 길바닥에 비 맞고 있는 사람이 차윤호로 보인다고?
“아니야, 그럴 리가 없지.”
여림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남자를 다시 봤다. 여전히 자신을 올곧게 바라보고 있는 시선.
“......”
여전히 차윤호였다.
길바닥에 길고양이처럼 앉아 있는 사람이 정녕 자신의 첫사랑이 맞다니.
“... 미쳤네.”
하필 오늘. 하필 비 오는 날. 하필 첫사랑 생각을 하다가 집에 가는 길에.
그것도 이런 길바닥에서.
여림은 현실을 부정하듯 두 눈을 질끗 감았다.
그때, 아래에서 낮은 목소리가 힘겹게 한 마디를 뱉었다.
“홍여림...”
그 소리에 여림은 질끈 감았던 한 쪽 눈을 살며시 떴다.
왠지 정말 길고양이 마냥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윤호. 여림은 꿈인지 현실인지, 아니 그냥 자신이 하는 망상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살려줘.”
그 말에 여림은 한 쪽 눈을 마저 뜨며 윤호를 똑바로 내려다봤다.
“아니, 왜 여기 이러고.”
여림은 하늘을 한 번 올려다봤다. 여전히 세차게 쏟아지고 있는 비.
그리고 다시 윤호를 보았다.
“하......”
여림은 이마를 짚었다. 얼굴은 또 왜 이리 창백한 건지, 여기에 이러고 있은지 얼마나 된 건지. 이러다 얼어 죽을 것만 같이 보였다.
8년 만에 만난 첫사랑이 홀딱 젖은 고양이 마냥 하는 말이 살려달라는 말이라니.
이런 식의 재회는 여림이 생각했던 백만 가지 재회 시나리오 어디에도 없는 것이었다.
며칠 뒤.윤호는 요 근래 잠을 통 제대로 자지 못했다. 잠들었다 싶으면 깼고, 잠들었다 싶으면 깨는 일상이 반복됐다.“요새 잠을 잘 못 주무세요?”“네?”“아니, 요즘 유독 피곤해 하시길래.”연우는 윤호의 책상에 놓인 진한 커피를 보며 말했다. 컵 표면에는 ‘2샷 추가’ 라고 적혀 있었다.“요즘 좀 잠이 안 오네요.”“그래요? 무슨 고민 있어요?”고민이라.‘그럼 우리 이제 볼 일 없겠네.’그 순간, 여림의 말이 스쳤다. 그날은 맞는 말이 반박할 수 없었다. 더 인연을 이어 나가려면 한쪽이 노력해야 했다. ‘미안, 못 가.’하지만…. 어떻게, 어디서부터 다가가야 할 지 모르겠다. 이제 정말 못 만나는 걸까.한 번만, 한 번만 더 우연히 만나게 되면.“없어요, 고민. 그냥 설칠 때 있잖아요. 뭐, 그런 거죠.”“그래요? 그래도 커피 너무 독하게 먹지 마요. 몸 상할라.”연우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아, 그리고. 이번에 오프비트 콘서트 모먼트로 바뀐 거 알고 있죠?”“맞다. 얘기 들었어요. 스케줄에 문제 생겼다고.”“거기 미팅이 얼마 안 남았어요. 제가 오늘 일정 정리해서 넘겨드릴게요.”두 사람은 사담도 잠시, 둘이 같이 하게 된 오프비트 단독 콘서트 건으로 이야기가 넘어갔다.대화를 마치고 연우는 텀블러를 가지고 자리르 떴다.연우가 자리를 비우자마자 윤호는 눈가를 문질렀다. 설친 잠이 많아지자 눈이 뻐근했다.“…… 하.”그리고 작은 한숨이 터지듯 흘러나왔다.***한편.“아, 거기 있어요? 그럼 제가 오늘 퇴근하고 찾으러 갈게요!”여림은 누군가와 통화 중이었다.“감사합니다!”그리고 밝은 표정으로 통화를 끊었다.“무슨 일 있어요?”그때, 현재가 양 손에 커피를 들고 다가왔다. 그리고 한 잔을 여림에게 건넸다.“감사합니다. 그게 그 현재 님이랑 밥 먹은 날, 제가 거기 목걸이가 떨어졌었나 봐요.”“목걸이요? 근데 그거 며칠 됐잖아요.”“제가 그날 술 마셔서 잘 기억이 안 나가지고. 집 안만 다 뒤지고
내가 지금 뭐하는 거지? 따라가서 도대체 뭘 할 건데.하지만 복잡한 생각과는 다르게 몸은 이미 결정을 한 듯 핸들을 꺾었다. 도로를 달려 도착한 곳은 윤호가 사는 빌라였다. 주차를 마친 윤호는 뒷좌석에 있는 쇼핑백을 챙겨 내렸다. 그리고 곧바로 주변을 살폈다.“……”시선이 자연스럽게 옆 빌라로 향했다. 그곳은 자신이 며칠 전, 신세를 졌던 여림의 집이었다.비가 쏟아지던 날, 여림에게 정신없이 끌려오다시피 따라왔을 대 알았다. 바로 옆 빌라였다는 것을.“하…….”불이 꺼진 여림의 방을 올려다 보았다.벌써 도착해서 이미 자고 있는 건가. 아님 아직 도착을 안 한 건가. 지금 내가 뭘 하는 거지. 몰래 남의 방을 들여다 보며 괜한 추측만 하고 있고.뒷머리를 박박 긁으며 발만 굴리던 때, 골목 안으로 차 한 대가 천천히 들어왔다. 헤드라이트가 정면으로 쏟아졌다. 윤호는 눈을 찡그리며 손으로 빛을 가렸다.차가 부드럽게 정차했다. 그리고 운전석에서 내린 사람은 자연스럽게 조수석 문을 열었다.“천천히 내려요, 괜찮죠?”“으응…….”거기서 모습을 보인 사람은 여림이었다.여림은 현재의 팔을 잡고 간신히 차에서 내렸다.“길을 잘못 들어서 좀 늦었어요, 얼른 들어가서 쉬어요.”“괜찮아요, 감사합니다…….”여림은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중얼거렸다. 현재가 그런 여림의 팔을 잡아 부축했다. “업힐래요?”“아니요! 저 진짜 잘 걸을 수 있다니까요….”현재가 웃으며 여림의 팔을 잡고 부축하며 걷기 시작했다.그리고 이 모든 것을 지켜보던 한 사람. “……”빌라 기둥에 기대어 보던 표정은 서서히 굳었고, 쇼핑백을 쥔 손에는 강한 힘이 들어갔다.하지만 자신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무슨 권한으로 저 사이를 갈라 놓을 수 있겠는가.아니, 그렇다고 해도 회사 동료끼리 저렇게 가까이 붙어 있어도 되나. 아무리 봐도 저 눈빛 수상한데.그렇게 온갖 생각이 엉켜 머릿속이 복잡해질 때.“어?”여림과 눈이 탁 마주쳤다.여림은 손가락으로 윤호를 가
하필 오늘 같이 기분 좋은 날 그가 또 눈 앞에 나타났다.타이밍 한 번 참 거지 같았다.나 오늘은 회식이 잡혀서 안 될 거 같아내일 안 될까?그렇게 보내놓고 이렇게 마주치다니.게다가 회식이란 것 치곤 너무 단둘이 먹고 있는 그림이었다.“여림 님?”“아.”그제야 여림은 현재의 팔목을 붙잡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아, 죄송해요.”급하게 손을 놓았다.현재가 팔목을 내려다보았다. 희미하게 붉어진 자국이 남아 있었다.“제가 너무 세게 잡았죠, 그러려고 그런 게 아니라…….”“아니에요, 무슨 일이에요? 안색이….”현재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여림을 살폈다.여림은 슬쩍 다시 현재의 뒤를 보았다.“…!”그러자 또다시 윤호와 눈이 마주쳤다.“아무 것도 아니에요.”또다시 여림이 시선을 피하자 윤호는 아무 말도 않고, 자신의 일행이 있는 테이블로 돌아갔다.하지만 여림의 시야에는 여전히 앉아 있는 윤호의 뒷모습이 걸렸다.보이는 걸 안 볼 수도 없고, 그렇다고 계속 보이니 눈이 가는 어떻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현재 님, 죄송한데.”“네?”“조금만 오른쪽으로 옮겨주실 수 있을까요?”여림은 양손을 앞으로 내밀고 허공에 보이지 않는 선을 그었다.“오른쪽이요?”“네, 조금만.”현재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의자를 끌어 옆으로 옮겼다.“딱 그 정도요.”여림은 한쪽 눈을 감고 현재와 자신의 시선을 번갈아 확인했다.드디어 윤호의 모습이 완전히 가려지자 여림은 몰래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왜 그러세요?”현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아, 아니에요……. 아무것도…….”현재에겐 미안하지만 말할 수 없었다. 차윤호 얘기를 어떻게 하느냐 말이다.여림은 어색하게 웃으며 맥주잔을 들었다.“혹시 저, 한 병만 더 마셔도 될까요…….”현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맥주 한 병을 더 시켜주었다.***[알겠어 내일 보자]무슨 월요일부터 그 회사는 회식을 하냐. 윤호는 운전대에 머리를 기대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뒷좌석에 놓인 쇼핑백
콘서트 기획 일정에 맞추려면 생각보다 기간이 빡빡했다. 전해 듣기론 이 프로젝트가 처음부터 모먼트에 왔던 게 아니라고 했다.그렇기 때문에 정해진 일정에 맞추려면 생각해보다 빠르게 움직여야 했다. 그래서 제일 먼저 한 일은. “자, 우리 잘해봅시다!”정예 멤버를 꾸리는 것이었다.비록 멤버를 뽑은 것은 하영이었지만.“첫 PM이시죠 여림 님?”재훈이 웃으며 말했다.“네…. 부족한 게 많겠지만, 잘 부탁드립니다.”“아니에요. 우리가 한두 번 같이 일한 것도 아니고.”모먼트가 그렇게 큰 회사는 아니기 때문에 이미 얼굴을 다 익힌 사이였다.“아, 제가 첫 PM 맡은 기념 밥이라도 쏠까 싶은데!”“오늘이요?”“아, 오늘? 어… 전 가능한데, 다들 괜찮으세요?”오늘을 딱히 생각한 건 아니지만 언젠가 첫 PM을 맡으면 꼭 밥을 쏴야지 생각했었다.“저는 오늘 와이프랑 저녁 먹기로 해서…….”공연장 세트 제작과 기술 업체 담당인 재훈이 곤란한 듯 이야기했다.“아, 신혼이시지…. 어쩔 수 없죠 뭐.”얼마 전, 결혼한 새신랑이었다. 여림은 아쉬운 듯 고개를 끄덕이며 휙 재훈의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전 오늘 퇴근하고 친구 취업 축하 파티가…….”홍보 및 마케팅 담당 가은 역시 난감한 듯 말끝을 흐렸다.“취업도 어쩔 수 없죠. 과반수가 안 되면 그냥 다음에 쏠게요!”하긴, 요즘 같은 시대에 누가 당일 회식을 잡아. 나라도 없는 약속 만들어가면서 안 갔을 게 뻔한데.“그럼 일단 다음 기획안 미팅 때 봬요!”여림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가은과 재훈은 고개를 숙이고는 미팅실을 나갔다.그때, 책상에 올려두었던 휴대폰의 화면이 반짝였다.[길바닥]ㅡ 오늘 옷 돌려줄까?윤호로부터 온 연락이었다.저도 모르게 화면을 눌러 읽어버렸다. 너무 바로 본 탓에 쉽게 답장도 하지 못하고 빤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뭐라고 답장하지?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됐는데. 여림은 시계를 바라봤다. 퇴근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준비되지 않은 마음. 왜 이렇게 심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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