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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Author: 별구
서정민은 마치 따귀를 얻어맞은 듯 머릿속이 뗑 해졌다.

사무실은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

이미현과 김종민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진우야, 너 진짜 대박이다!”

엄진우는 어깨를 으쓱했다.

조문지는 역시 세상 물정에 훤하다. 4억만 해결하라고 했는데 엄진우에게 잘 보이기 위해 화끈하게 40억 원어치 질러버렸다.

“과장님, 전 말한 대로 했으니 약속 지키시죠?”

서정민은 입꼬리를 실룩이더니 이내 쌀쌀하게 말했다.

“아니! 넌 분명 4억이라고만 했어. 하지만 시장님은 40억을 주문하셨으니까 이건 액수가 맞지 않아!”

김종민은 화가 솟구쳤다.

“과장님!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설마 번복하시는 겁니까?”

서정민은 콧방귀를 뀌었다.

“이건 우연이야! 이 자식이 무슨 수로 시장님을 대동해? 어디서 주워들은 소식으로 날 속이려는 속셈이 분명해.”

그래! 어디서 소식을 주워들었으니 감히 4억이라는 내기를 한 거야!

이건 분명 우연이고 엄진우는 그걸 자기의 힘으로 둔갑시킨 거야.

서정민의 말에 사람들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사회 사람들조차 만나기 힘든 조문지를 엄진우 같은 인턴이 어떻게 대동할 수 있단 말인가?

엄진우는 미간을 찌푸리고 말했다.

“과장님, 무릎 꿇기 싫으시면 솔직하게 말씀하시지. 어차피 과장님이 졌다는 건 사실입니다. 그러니 무릎 꿇고 머리 숙이세요.”

서정민은 콧방귀를 뀌었다.

“허세 그만 부려, 엄진우. 네가 시장님을 내 눈앞에 직접 모셔 온다면 내가 믿어 줄게. 아, 맞다. 듣자 하니 네 엄마 젊었을 때 아가씨였다며? 시청에서 근무하는 옛 애인이라도 있어서 소식 들었나 보지. 쯧쯧, 역시 대단한 엄마를 둬서 아주 소식이 빠르군.”

그 말에 엄진우는 바로 서정민을 발로 걷어차 버렸고, 순간 서정민은 십여 미터나 날아갔다.

벽은 그대로 움푹 파여들어갔고, 서정민은 머리가 깨져 피를 철철 흘렸다.

“감히 우리 엄마를 모욕해?”

엄진우는 살기 가득한 눈으로 서정민을 노려보았다.

가족은 그의 역린이다. 누가 감히 건드린다면 절대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엄진우 씨가 과장님을 날려버렸다니!”

“무슨 일이야?”

이때 차장 고인하가 인기척을 듣고 큰 배를 이리저리 뒤흔들며 들어오더니 서정민의 비참한 몰골에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누가 저랬어?”

“접니다.”

엄진우는 고인하를 바로 알아봤다.

어제 예우림의 사무실에서 나오다가 수상쩍은 고인하를 발견했었다.

“차장님, 이게 어떻게 된 거냐면요. 과장님이 먼저......”

이미현과 김종민은 엄진우를 위해 나서려고 했다.

하지만 고인하는 버럭 화를 내며 그들의 말을 잘라먹었다.

“어떤 이유에서든 부하직원이 직원들 앞에서 상사를 폭행하는 건 회사 규정을 위반하는 일이야! 그러니 반드시 해고야! 엄진우, 차장으로서 널 해고한다. 그러니 당장 짐 싸서 회사 나가!”

회사 사람들 모두가 서정민이 고인하의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서정민을 폭행하는 것은 고인하에게 반기를 드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여 고인하는 반드시 엄진우를 해고할 거라고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이미현과 김종민은 안달이 났다.

“차장님, 진우가요......”

“됐어. 그만해.”

엄진우는 담담하게 웃어 보였다.

“이깟 인턴 자리 하나 가지고, 뭐. 난 괜찮아. 두 사람에게는 가족도 있는데 나 때문에 괜히 일자리 잃지 마.”

이미현과 김종민은 하마터면 울 뻔했다.

“진우야, 미안해. 괜히 우리 때문에 네가......”

고인하는 옆에서 싸늘한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회사 규정상 퇴직자는 한 달 치 월급 보상을 받을 수 있지만, 넌 서 과장을 폭행했으니 보상도 없어!”

하지만 직원들은 알고 있다.

고인하는 이 기회에 엄진우가 마땅히 받아야 할 보상을 가로채버렸다.

“당신 마음대로 하세요.”

엄진우가 사원증을 벗어던지려는 그때, 갑자기 새침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누가 감히 엄진우 씨를 해고해요?”

고개를 돌려보니 크리스탈 힐을 신고 있는 아름다운 그림자가 눈에 들어왔다.

갸름한 얼굴에 애플 힙, 입체적이고 정교한 오관, 그리고 스타킹을 신은 가늘고 긴 다리가 특히나 눈에 띄었다.

아주 보기 드문 미인이다.

게다가 온몸에서 고귀하고 우아한 기품이 흘러넘친다.

“소 비서님!”

고인하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앞으로 달려갔다.

상대는 바로 예우림의 비서 소지안이다.

소지안은 정색해서 말했다.

“고 차장님. 부대표님의 최신 지시를 전달하러 왔습니다. 홍보팀의 인턴 엄진우 씨는 인턴기간이 만료, 우수한 실적으로 오늘부로 정규직으로 발령되었습니다.”

그 말에 고인하는 깜짝 놀랐다.

“네? 부대표님의 지시요?”

“왜요? 제 말 이해가 안 가십니까?”

소지안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말했다.

“아니요! 알겠습니다. 바로 실행하겠습니다!”

고인하는 순식간에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바삐 움직였다.

부대표인 예우림은 직접 홍보팀과 재무팀을 관리하며 그야말로 지성그룹의 황제 같은 존재이다.

모두 멍하니 소지안과 엄진우를 번갈아 보았다.

한낱 인턴의 정규직 발령을 굳이 부대표의 비서가 직접 와서 발표하다니.

어쩐지 서정민을 개 패듯 패더라니 역시 믿는 구석이 있었다.

일 시에 동료들은 엄진우에게 부러움과 질투의 눈길을 보냈다.

하지만 정작 엄진우는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이것은 예우림과 거래한 결과일 뿐이다.

......

소지안은 엄진우의 정규직 발령을 통보하고 부대표 사무실로 들어왔다.

예우림은 흰색 투피스를 입고 열심히 업무를 보고 있었다.

그 모습에 소지안은 살며시 예우림의 뒤로 다가가 그녀의 허리를 잡고 다리를 만지작거렸다.

“지안아, 이러지 마!”

예우림은 순간 얼굴이 빨개지더니 다급히 소지안의 손을 밀쳤다.

“만지려면 네 몸이나 만져.”

절친인 소지안은 다 좋은데, 이런 고약한 취미가 있었다.

소지안은 사악하게 웃어 보였다.

“우리 애기 몸매가 여전한데?”

예우림이 정색했다.

“본론만 말해.”

“홍보팀에 엄진우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라고 통보했어.”

소지안은 깔깔 웃어댔다.

“근데, 남자라면 그렇게 혐오하던 네가 어떻게 그런 평범한 남자한테 반한 거지? 대체 어디가 맘에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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