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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하수희의 난처한 표정을 보아하니 이들 모녀가 강제로 쳐들어온 것이 분명했다.

엄진우의 안색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뻔뻔한 사람을 많이 보긴 했지만 이 정도로 뻔뻔한 사람은 처음 본다. 그것도 모녀가 쌍으로 말이다.

만약 엄진우가 그녀의 말에 긍정한다면, 이들 모녀는 반드시 예우림이라는 돈줄을 잡기 위해 엄진우에게 거머리처럼 들러붙을 것이다.

엄진우는 아예 진실과 거짓을 반반 섞어서 말했다.

“이것 참, 실망시켜 드려서 죄송하네요. 예우림은 제 상사고요, 어제는 급한 업무 때문에 찾아오신 것뿐이에요. 일 얘기만 하고 바로 헤어졌어요.”

엄진우의 말에 진미령과 최란화는 안색이 확 달라졌다.

“뭐야? 그러니까 고작 상사라는 거야? 내가 그럴 줄 알았지. 예우림 같은 여자가 너 같은 빈털터리한테 눈길이나 주겠어?

“그러니까. 괜히 좋아했네. 가자, 엄마!”

모녀는 욕설을 내뱉으며 가지고 온 선물까지 다 챙겨서 나갔다.

이때 청용에게서 문자가 왔다.

“명왕님, 명왕 카드에 1조를 입금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감히 명왕님의 허락도 없이 부동산을 구입했습니다. 명왕 카드로 마음껏 지배하십시오.”

엄진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청용 이 자식, 여전하네.

하수희는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들, 신경 쓰지 마. 근데 너 밤새 어디 있었어?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 줄 알아?”

엄진우가 웃으며 대답했다.

“엄마, 걱정하지 마. 내가 그렇다고 밖에서 잤겠어? 근데 우리 아직도 2천만 원 빚 있는 거 맞지? 일단 내 돈으로......”

하수희는 갑자기 몸을 움츠리며 말했다.

“아들, 쥐꼬리만한 월급 받는 평범한 회사원이 무슨 수로 그 빚을 갚는다는 거야? 너 설마 나쁜 짓 하고 다니는 거 아니지?”

엄진우가 다급히 말했다.

“엄마, 엄마 아들이 그런 사람이야?”

“그래, 아니라면 다행이고. 네 아빠도 큰돈 번다고 불법 광산으로 갔다가 결국 죽었으니 넌 같은 길 걸으면 안 돼.”

하수희는 노파심에 신신당부했다.

“돈 문제는 우리 같이 고민하면 되니까 너무 스트레스받지 마.”

엄진우는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라도 하수희가 집요하게 돈의 출처를 따질까 봐 그는 명왕 카드의 돈을 쓰려던 생각을 접었다.

하수희를 달랜 후 엄진우는 다급히 지하철을 타고 출근했다.

그는 지성그룹 홍보팀의 작은 부서에 있었는데, 규모는 작았지만 실적 압박은 아주 컸다.

부서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몇몇 동료가 과장인 서정민에게 혼나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늬들 병신이야? 두 달 연속 판매실적이 꽝이잖아! 머리는 장식으로 달고 다녀?”

혼나고 있는 두 사람은 엄진우의 친구, 이미현과 김종민이다.

심지어 이미현은 뺨을 맞고 얼굴이 부어있었다.

엄진우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과장님, 직원에게 폭행, 폭언은 안 된다고 회사 규정에 명백히 적혀 있습니다.”

서정민은 악랄한 눈빛으로 엄진우를 노려보았다.

“엄진우? 정직원도 아닌 인턴 주제에 감히 나한테 대들어? 네 실적도 꽝이야. 알고 있어? 너 회사 그만두고 싶지?”

“진우야, 하지 마. 우리 괜찮아.”

이미현과 김종민이 다급히 엄진우를 말렸다.

두 사람은 정직원이기에 기껏해야 폭행과 폭언에 시달릴 테지만 엄진우는 아직 인턴이라 함부로 서정민을 건드렸다가는 당장에라도 해고당할 수 있다.

하지만 엄진우는 여전히 단호하게 말했다.

“아무에게도 부하직원에게 욕설하고 폭행할 권리는 없습니다. 과장님, 당신이 상사라도 그건 안되니까 당장 사과하세요!”

평소 서정민은 부서에서 늘 제멋대로 행동하고 신입사원을 괴롭혔으며 여직원을 희롱했다.

엄진우는 그동안 못 본 척했지만 자기의 친구에게 무례하게 행동하는 것은 도무지 참을 수 없었다.

그 말에 서정민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뭐? 사과? 내가 잘못 들은 거 아니지? 네가 뭔데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야?”

엄진우는 담담하게 상대했다.

“회사 규정에는 직급을 막론하고 서로를 존중해야 한다고 명백히 적혀 있습니다. 그런데 과장님, 당신이 회사 규정보다 더 대단합니까?”

서정민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깟 종이 한 장으로 날 협박해? 좋아, 네가 이 두 병신 대신에 나설 거란 말이지? 그렇다면 3일 시간 줄게. 3일 안에 이 두 사람이 기본 판매 실적에 도달할 수 있도록 어디 한 번 노력해 봐! 하지만 해내지 못한다면 넌 바로 아웃이야!”

김종민이 창백한 얼굴로 말했다.

“형, 말려들지 마! 이번에 출시한 건강 관리 제품인데 아직 홍보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 판매량이 전혀 없어!”

그런데 서정민은 두 사람에게 월 2억 원의 기본 판매액을 실현하라고 했다.

이미현과 김종민은 혼신의 힘을 다하다가 결국 위출혈로 병원까지 들락날락했지만 결국 2천만 원밖에 판매하지 못했다.

3일에 두 사람의 기본 판매 실적에 도달하라고? 즉 4억 원?

이건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엄진우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그러다가 제가 하루 만에 끝내면요?”

서정민은 멈칫하더니 배를 끌어안고 웃기 시작했다.

“하루에 4억? 하하하! 너 이 자식 지금 마블 게임인 줄 알아? 만약 네가 하루 만에 4억의 실적을 낸다면 내가 너한테 허리 굽혀 사과하지.”

엄진우가 말했다.

“그러면 5분 안에 끝내면 저한테 절이라도 하면서 미안하다고 사과할 겁니까?”

그 말에 전체 부서 직원들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이 상황을 설명해야 할지......

평소에 착하고 조용하던 그 인턴 맞는가?

서정민은 머리에 핏대를 세우며 말했다.

“너 지금 나한테 시비 거는 거야?”

이미현과 김종민은 옆에서 횡설수설했다.

“진우야, 진정해! 5분에 4억이 말이 돼?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꿈조차 꿀 수 없는 말이다.

엄진우가 또박또박 말했다.

“전 한다면 하는 사람입니다. 과장님, 설마 겁나세요?”

상대의 갑질은 엄진우의 심기를 제대로 건드렸다.

엄진우는 단지 불을 줄였을 뿐, 끄지 않았다.

“하하! 그래, 네가 아주 죽고 싶어서 환장했구나. 어디 한번 해 보자고. 5분 내로 4억의 실적을 낸다면 내가 바로 무릎 꿇고 사과하지!”

서정민은 음모가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

사실 이 모든 것은 그가 꾸민 함정이다. 아침에 예정명이 갑자기 그를 호출해 2억을 던져주며 엄진우를 회사에서 쫓아내라고 했다.

하여 그는 일부러 이런 상황을 꾸며냈다.

그런데 엄진우가 자발적으로 함정에 뛰어내릴 줄이야. 정말 하늘이 준 좋은 기회다.

서정민은 휴대폰을 꺼내더니 타이머를 눌렀다.

“엄진우, 5분은 금방이야.”

여태 엄진우의 실적은 그저 겨우 기본에 도달할 뿐 심지어 이미현보다 고객 자원이 더 별로였다.

서정민은 이번 판은 반드시 이 인턴의 아웃으로 끝날 거라고 확신했다.

엄진우는 창해시에 지인이 있었는데 어쩌면 그가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태연하게 휴대폰을 꺼내 들더니 상대에게 전화를 걸었다.

“조문지, 나 엄진우인데 처리해 줘야 할 일이 생겻어.”

조문지?!

그 말에 모두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조문지라면 설마 창해시 시장 조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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