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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엄진우는 재빨리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 검은 그림자를 손바닥으로 세게 공격했다.

그런데 상대는 겨우 일여덟 보 후퇴했을 뿐이다.

엄진우는 깜짝 놀랐다.

비록 엄진우는 자기 공력의 10분의 1밖에 쓰지 않았지만 용국을 통틀어 그의 이 한방을 감당할 수 있는 자는 극히 드물다.

“고수네? 예우림 이 여자는 대체 누굴 건드린 거야?”

상대는 전혀 엄진우와 대치할 생각이 없어 보였으며 바로 2층으로 올라갔다.

엄진우는 갑자기 두피에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큰일이다.

만약 상대가 2층으로 올라간다면 예우림은 반드시 죽은 목숨이다.

그런데 예우림은 엄진우에게 절대 2층으로 올라오지 말라고 명령했고 엄진우는 망설이기 시작했다.

에잇! 모르겠다. 사람 목숨이 중요하지.

욕하겠으면 욕하라고 해!

엄진우는 번개처럼 2층으로 올라갔고 그때 그 검은 그림자는 이미 예우림의 방으로 들어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부대표님! 조심하세요. 누가 부대표님 방으로 들어갔어요!”

문을 박차고 들어간 엄진우는 눈앞의 광경에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

금방 샤워를 마치고 욕실에서 나온 예우림은 온몸에 샤워 수건만 두른 채 젖은 머리를 닦고 있었다.

화끈하고 육감적인 몸매가 엄진우의 시야에 들어왔다.

갑자기 들이닥친 엄진우는 하필 그 수건에 손이 닿았고, 그의 움직임과 함께 수건은 그대로 떨어져 버렸다.

화르르.

예우림의 야한 몸매가 그대로 노출되었다.

순간 공기는 얼어붙었고 예우림의 아름다운 눈동자에서는 불이 뿜어져 나왔다.

“부대표님, 저......”

“해고하기 전에 당장 꺼져!”

예우림은 두 손으로 중요한 부위를 가리고 살기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

엄진우는 하는 수 없이 방에서 나왔고 예우림은 문을 쾅 하고 닫았다.

문밖에서, 엄진우가 다급히 외쳤다.

“부대표님, 저 일부러 그런 거 아니에요. 부대표님 방에 강도가 들어왔을 수도 있다고요!”

이때 문이 다시 열렸고, 예우림은 실크 잠옷을 입고 싸늘하게 말했다.

“5분 줄 테니 잡아. 그게 아니라면 나 너 가만 안 둬.”

예우림의 방은 대략 30평으로 꽤 컸다.

엄진우는 하는 수 없이 그녀의 방으로 들어가 살펴보기 시작했고, 이내 베란다에서 수상한 움직임을 발견했다.

그는 빠른 걸음으로 베란다로 나갔고 걸려있는 빨래에 두 눈이 황홀했다.

하얀 캐릭터 팬티, 레이스 브래지어, 그리고 초미니스커트......

예우림에게 이런 모습이 있었다니.

피가 솟구치는 느낌이 찾아오는 그때 검은 그림자가 다시 나타났고 엄진우는 반사적으로 그 그림자를 쫓았다.

“거기 서!”

검은 그림자는 베란다에서 뛰어내렸고 엄진우도 그 뒤를 바짝 쫓았다.

1분도 안 되어 그는 검은 그림자를 따라잡았는데 찬찬히 보니 화가 나기도, 우습기도 했다.

“용이 너였어?”

조각처럼 빛나는 외모의 그림자가 몸을 돌리더니 한 쪽 무릎을 꿇으며 인사를 올렸다.

“부하 청용, 명왕님께 인사드립니다.”

“넌 이젠 용국의 최연소 전쟁의 신이야. 전신 청용은 나 같은 퇴역 군인에게 무릎을 꿇을 필요가 없어.”

엄진우가 한숨을 내쉬며 말하자 청용이 공손하게 말했다.

“저와 오백만 북강 장병들에게 당신은 영원한 명왕입니다. 하지만 서방을 공포에 몰아넣고 권세가들도 쩔쩔매게 하는 명왕님이 이 작은 도시에서 회사원이나 하고 계실 줄 상상도 못했습니다.”

엄진우는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화가 나면 온 도시를 피바다로 만들었던 명왕이 왜 평범한 회사원이 됐는지 궁금해서 날 시험하려고 한 거야?”

그 말에 청용은 식은땀을 흘리며 말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명왕님. 부디 노여움을 가라앉히십시오. 당장 팔을 잘라 사죄하겠습니다.”

엄진우가 말했다.

“그럴 필요 없어. 난 이미 모든 권리를 포기했고, 더는 명왕이 아니야. 근데 왜 갑자기 나타난 거지? 나와 담소를 나누기 위해 온 건 아니겠고.”

수많은 사람은 그를 시신을 밟고 명왕의 자리에 오른 냉혈하고 악랄한 마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권력의 절정에 이르자 엄진우는 한없이 외로워지기 시작했고 심지어 마성이 솟아나는 것 같았다.

하여 그는 스스로 모든 권리와 재부를 내려놓고 홀연히 고향으로 돌아왔다.

더는 살육이 지겨웠던 엄진우는 그저 가족의 옆에서 그들의 온기를 느끼고 싶었다.

지금은 일부러 몸속의 마성을 억누르는 바람에 그도 성격이 많이 달라진 건 사실이다.

청용이 진지하게 말했다.

“맞습니다, 명왕님. 사실 제경 큰 인물들의 부탁을 받고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워낙 그들은 모든 권리를 손에 쥔 명왕님을 꺼렸는데 명왕님이 떠나자 해외에 잠복해 있던 암흑세력이 이 빈틈을 노리고 쳐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세력이 큰 뷔젠트는 용국에 몰래 침투해 언제라도 국가안보를 위협할 수 있거니와 이미 여러 명의 전신을 해친 상태입니다.”

여기까지 말한 청용은 약간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제경의 망나니들은 이미 넋이 나갔고, 악랄한 뷔젠트를 제압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명왕님뿐입니다.”

엄진우가 정색해서 말했다.

“그렇다면 전해. 내가 나설 거야. 하지만 그들을 위해서가 아닌, 용국의 국민을 위해서야. 상세한 건 나중에 얘기할 테니 넌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빨리 떠나.”

“네.”

엄진우가 다시 명왕으로 나선다는 말에 청용은 감격에 겨워 주먹을 불끈 쥐고 말없이 떠났다.

떠나기 전 그는 명왕의 카드를 엄진우에게 돌려주었다.

별장으로 돌아온 후.

예우림은 침실 문 앞에 서서 싸늘하게 말했다.

“강도는?”

엄진우는 난감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없어요. 제가 착각한 것 같아요.”

그와 청용의 대화는 엄밀히 군사기밀이라 밝힐 수 없기에 그는 대충 핑계를 댈 수밖에 없었다.

엄진우의 말에 예우림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착각? 착각 때문에 내 방으로 갑자기 들어왔다고? 엄진우, 핑계를 대도 그럴듯한 핑계를 대야지. 너 정말 역겨운 사람이구나?”

만약 오늘 엄진우의 도움을 받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반드시 엄진우를 쫓아냈을 것이다.

“경고하는데 두 번은 없어. 다음에 또 이러면 나 너 가만 안 둬!”

말을 끝낸 예우림은 뒤돌아 방으로 들어가더니 방문을 잠그고 엄진우의 손이 닿았던 샤워 수건을 쓰레기통에 그대로 버리며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사람을 잘못 봤다.

본성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남자들은 다 똑같다. 역겨워!

엄진우도 굳이 예우림의 오해에 신경 쓰지 않았고, 방으로 돌아가 단잠을 잤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나보니 예우림은 이미 출근하고 보이지 않았다.

정말 워커홀릭이다.

엄진우는 출근하기 전에 집에 들러 하수희에게 외박한 이유에 대해 설명하려고 했다.

하지만 집에 들어온 순간, 어제 맞선 상대였던 진미령과 그녀의 어머니인 최란화가 집에서 웃고 떠들고 있었다.

엄진우를 발견하는 순간, 두 여자의 눈에서 빛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진우야, 그 여자 내가 알아봤는데 지성그룹 부대표 예우림이라며? 그 여자 너한테 반했어? 돈은 얼마 주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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