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4화

Author: 이제리
비틀거리다가 화장대 모서리에 부딪힌 온사는 입술을 깨물었다.

저번 생에서 온모 때문에 그렇게 고생을 하고 지금 이러는 온모를 보니, 온사는 그녀가 또 무슨 수작을 부릴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바닥에 떨어진 관복을 주워들었다.

“저도 제가 무엇을 했기에 막내가 이렇게 크게 반응하는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아니면 막내가 직접 설명해 주겠니?”

“네가 뭘 했는지는 너 스스로가 가장 잘 알 터!”

온자신은 온모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먼저 목소리를 높여 그녀에게 화를 냈다.

온사의 눈빛은 점점 더 차가워졌다.

예전엔 그녀도 잘 몰랐지만, 지금 보니 온자신은 정말 눈이 먼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의 눈앞에서 누가 뭘 하고 안 했는지도 보지 못했다.

그게 아니라면 보이는데도 한 사람의 말만 믿는 것이다.

온자신은 매섭게 온사를 노려본 뒤, 온모의 어깨를 토닥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를 달랬다.

“막내야, 괜찮다. 무슨 일 있으면 오라버니에게 말하거라. 그 일이 무슨 일이던 오라버니가 다 알아서 해결해 줄 것이니.”

두 사람의 행동은 거침이 없었다.

하지만 온자신은 마치 애초에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듯 전혀 꺼림이 없었다.

온모는 사슴 같은 눈망울을 붉히며 말했다.

“오라버니, 저…… 저 너무 아파요.”

온모는 눈앞에 있는 충동적이고 멍청한 둘째 오라버니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정확하게 말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이 말 한마디면 온자신의 화를 돋우기에 충분했다.

역시 온자신은 온모의 억울해하며 무력한 모습을 보자, 바로 열이 올라서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는 방금 온모가 관복을 만지고 갑자기 아프다고 했던 것을 떠올려, 순간적으로 머릿속에서 그의 상상을 완성시켰다.

짝!

온모의 뺨에 손이 날아왔다.

“좋아, 온사, 네가 막내에게 관복을 준다고 한 것이 네가 진심으로 죄를 뉘우친 것이라 믿은 내 탓이었구나. 관복에 손을 쓰다니, 네가 이렇게까지 악랄한 줄은 몰랐구나!”

온자신에게 맞아 왼쪽 얼굴이 얼얼한 온사는 이를 악물었다. 마음속에서 증오가 끝도 없이 샘솟았다.

그녀는 반드시 온씨 가문을 떠나야 한다.

만약 이곳에 남는다면, 그녀가 무엇을 하든, 모든 사람들이 온모를 두둔할 것이다.

온씨 가문을 떠나야만 복수를 할 기회가 생길 것이다.

하지만 그전에, 그녀는 오늘의 성년식을 마쳐야 한다.

왜냐하면 성년식에는 빌어먹을 약혼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온자신이 그녀를 성년식에 참여하지 못하게 한다면……

하, 비록 그가 국공 저택의 둘째 아들이라고 해도, 아직 국공 저택의 주인 노릇을 하려면 멀었다.

경성의 모든 사람들이 오늘 진국공 저택의 두 딸이 성년식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있고, 만약 그녀가 나타나지 않으면 외부에서 반드시 각종 추측이 난무할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아버지는 이런 일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온사는 생각을 멈추고 관복을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만약 오라버니께서 관복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시거든, 마음껏 검사해 보셔도 좋습니다.”

그녀는 이미 이 눈 가리고 귀 막고 충동적이기만 한, 사람 때리는 폭군과 더 이상 쓸데없는 얘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온사는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방 안으로 들어가 옷장에서 수수한 하늘색 옷을 꺼내 갈아입었다.

한편, 밖에 있던 온자신은 여전히 끝을 몰랐다.

“흥, 그래, 하라면 하겠다. 만약 내가 관복에서 네가 손댄 흔적을 발견한다면. 각오하거라!”

잠시 후.

온사가 옷을 갈아입고 나가려고 할 때, 잘 개여져 있던 관복은 이미 온자신에 의해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다.

그의 옆에 있던 온모는 고개를 들어 관복을 보고 있었다.

비록 그녀가 본인의 손으로 직접 찾지는 않았지만, 속으로 온사가 분명 손을 썼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던 탓에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온자신이 관복을 전부 헤집어 보아도 손댄 흔적은 하나도 찾을 수 없었다.

온모는 미간을 찌푸렸다.

설마 아닌가?

발소리를 들은 남매는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옷을 갈아입은 온사가 천천히 걸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

예전의 온사는 이렇게 수수하게 옷을 입는 일이 거의 없었다. 게다가 애초에 뛰어난 외모를 가지고 있어, 어떻게 봐도 단아하고 청순한 분위기로 한눈에 띄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화려한 치장을 했던 예전의 온사와 비교했을 때, 지금의 그녀는 말 그대로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온모는 질투하는 눈치였다.

그녀가 가장 싫어하는 게 온사의 얼굴이었다.

정말 보면 볼수록 아주 박박 할퀴어버리고 싶었다.

왠지 모를 악의를 느낀 온사는 고개를 들어 그 원인을 찾고자 했는데, 갑자기 온모와 눈이 마주쳤다.

온모는 온사가 이렇게 예민한 줄 몰랐다.

오죽하면 아주 미세하게 일그러지는 표정까지 읽어내 잠시 멍해졌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표정을 숨겼다.

온사는 속으로 차가운 웃음을 지으며 엉망이 된 채 책상에 놓인 관복을 흘끗 보았다.

“어떠하십니까, 무엇을 찾으셨습니까?”

아무것도 찾지 못한 온자신은 낯빛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입을 열기 전에 온모가 먼저 말했다.

“언니, 화내지 마. 아까는 갑자기 손이 저려서 그런 것인데, 오라버니께서 너무 신경을 쓰셔서, 아프다는 말만 들으시고 오해하신 것 같아.”

그녀는 사과를 하며 일부러 장난스럽게 혀를 내밀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해 언니. 절대 오라버니 탓하면 안 돼. 차라리 날 탓해.”

“어떻게 너를 탓하라고 하는 것이냐? 탓하려면 스스로를 탓해야지.”

온자신은 바로 동의할 수 없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온사를 흘끗 보더니 미운 말투로 말했다.

“만약 누가 평소에 착하고 좋은 일만 했다면, 나도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억울하더라도 스스로 자초한 일이다.”

온사는 다시 한번 이 두 사람이 역겹다고 느껴졌다.

그녀는 관복을 집어 들고 차갑게 온모에게 물었다.

“그럼 이 관복은 필요한 것이냐? 필요하면 가져가거라.”

온모는 당연히 가지고 싶었다.

하지만 방금 한번 잘못했으니 가지고 싶어도 지금 받을 수는 없었다.

그러고는 자신의 착하고 관대한 면을 적당히 보여주었다.

“괜찮아, 이 관복 언니가 제일 좋아하는 것이잖아. 언니도 분명 아쉬울 테니까.”

“아까는 또 나 때문에 오라버니가 언니를 억울하게 만들었으니, 우리 서로 똑같이 잘못한 셈으로 하자. 언니도 나한테 물어줄 거 없어. 어차피 앞으로도 우리는 사이좋은 자매니까!”

어차피 오늘은 아직 많이 남았고, 지금 당장 급할 필요 없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반드시 그녀의 것이다.

성년식 관복은 바로 입는 것이 아니다. 성년식이 거행되고 비녀를 꽂고 두관을 쓸 때 옷을 갈아입는 것이다.

그래서 온모는 급하지 않았다.

온자신은 조금 풀어진 얼굴로 도도한 표정을 지으며 턱을 치켜들었다.

“들었느냐? 막내가 똑같이 잘못했다고 하니, 그건 네가 가지거라. 하지만 그냥 이렇게 끝났다고 여기진 말거라. 앞으로 만약 네가 막내를 또 괴롭힌다면, 나…… 뭐 하는 게냐?!”

온자신은 말이 끝나기도 전에,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가늘게 뜨고 온사의 행동을 보고 있었다.

싹둑!

온사는 매정하게 가위를 집어 들고 화려한 관복을 그대로 잘라버렸다.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atest chapter

  • 여승이 된 나에게 무릎꿇고 돌아오라고 비는 오빠들   제1125화

    연못가의 이족인들은 몸에서 통증이 느껴지자 미친듯이 그 독충들을 떨쳐내려고 몸부림치고 도망치려고도 해봤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맹독의 거미군단, 맹독의 지네군단은 이족인들의 몸에 내려앉은 이후로 그들의 살점을 놓치지 않고 물어뜯었다.순식간에 십여 명은 이미 거미군단에 먹혀 사라지게 되었다.지네군단에 당한 사람들은 더 처참했다. 녀석들은 사람의 눈,코,입을 파고들어 그들의 체내부터 부식시켰다.“악!”“사… 살려줘!”“이… 이게 뭐야! 날 먹고 있어!”처참한 비명소리가 울려퍼지는 호숫가는 기괴하고 참혹한 현장이 펼쳐지고 있었다.독충들에게 공격당한 이족인들은 처참한 모습으로 바닥에 쓰러지더니 살 한점 안 남은 백골 시신이 되어 버렸다.좀 똑똑한 자들은 독충무리들을 떨칠 수 없게 되자 곧바로 호수에 뛰어들었다.그러나 물 밑에는 더 많은 독충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그리하여 물에 뛰어든 자들의 피가 호수를 붉게 물들였다.하늘을 찌르는 피비린내가 왕궁의 화원을 뒤덮었다.이 모든 걸 지켜보는 온권승은 간담이 서늘해졌다.그는 재빨리 몸을 피하지 않았더라면 자신도 저 시신들 중 일부가 되었을 거라 생각하니 머리털이 곤두섰다.‘여기에 계속 있다가는 큰일나겠어!’독충들은 이족인들을 모두 먹어치운 후, 그를 표적으로 삼을 것이다.그리고 란사를 이대로 도망치게 둘 수는 없었다.‘어서 가서 사람들을 더 불러와야 해!’온권승이 몸을 돌려 도망치려던 순간, 뒤에서 급박한 발소리가 들려왔다.고개를 드니 검은 망토를 입은 충술사가 보였다.이자는 연지와 함께 늘 온모의 뒤에 서 있었기에 온권승은 이자를 한눈에 알아보았다.그는 너무 늦게 왕성에 도착했고 온모와 만났을 때는 창청람의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었기에 눈앞의 충술사에 대해 충분한 정보를 전달받지는 못한 상태였다.그는 단지 창왕도 란사를 잡으려 움직인다는 것만 알고 그 이유는 알지 못했다.그러나 어차피 그들의 표적이 란사라면 아군이라고 생각했다.어쨌거나 그는 란사에게서 용골련만 손에 넣으면

  • 여승이 된 나에게 무릎꿇고 돌아오라고 비는 오빠들   제1124화

    숨겨져 있던 통로 하나가 독충들의 시야를 통해 란사에게 전해졌다.그녀는 즉시 고양 일행에게 지시를 내렸다.“즉시 뒤로 퇴각하게! 조금만 더 가면 호수가 있네. 그쪽으로 가게!”고양 일행은 그 시각 긴장한 눈으로 온권승과 그의 병사들을 주시하고 있었다.곧 발각될 위기에 처한 순간에 란사의 지시가 전해진 것이다.그들은 망설임 없이 즉시 후퇴하기 시작했다.십여 명은 한 몸처럼 재빠르게 움직였다.만약 그들만 있었다면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철수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하지만 하필 그들은 온모를 데리고 있었다.온모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듣고도 고양에게 제압당한 탓에 어떠한 소리도 내지 못했다.그녀가 뭔가를 하려는 낌새가 보일 때마다 그녀를 잡고 있는 사내의 우악스러운 손길이 힘을 주어 어깨뼈를 으스러지게 움켜쥐었다.그 바람에 온모는 어깨뼈가 부러질 것 같은 고통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그러나 지금 드디어 기회가 생긴 것이다.고양 일행이 뒤돌아선 순간, 고양의 어깨에 걸쳐져 있던 온모는 고개를 들고 멀리 있는 온권승을 바라보며 비명을 내지르기 시작했다.“읍, 읍!”‘아버지, 저 여기 있어요!’고양 일행은 그녀를 데리고 신속히 뛰었다. 하지만 눈이 나빴는지 온모가 필사적으로 낸 소리는 결국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던 온권승의 귀에 전해지고 말았다. 그리고 그 순간 부녀간에 마음이라도 통했는지, 온권승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려 이쪽을 바라보았다.그 순간 그는 구원을 요청하는 온모와 눈이 마주쳤다.그것도 잠시, 그녀는 고양에 의해 순식간에 온권승의 시야에서 사라졌다.“저기다! 당장 쫓아가거라!”온권승은 큰 소리로 외치며 고양 일행이 사라진 방향을 가리켰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고양 일행은 란사가 말한 호숫가에 도착했다.“다 같이 입수하게. 통로는 호수 밑에 있어. 내 독충들이 자네들에게 방향을 인도할 거네.”란사의 지시가 떨어졌지만 고양은 바로 입수하지 않고 어깨에 앉은 수정거미에게 물었다.“그럼 전하는요? 지금 어디 계신 겁

  • 여승이 된 나에게 무릎꿇고 돌아오라고 비는 오빠들   제1123화

    하지만 막 목적지에 도착하자, 갑자기 나타난 거미떼가 일행의 앞을 막아섰다.고양은 이 거미들이 란사의 독충임을 한눈에 알아보았다.이 녀석들이 나타났다는 것은 누군가 앞길에서 막고 있다는 의미였다.수정 거미 한 마리가 재빨리 고양의 어깨로 기어오르자, 익숙한 음성이 그의 귀에 전해졌다.“이 거미들을 따라 화원으로 돌아가게.”그쪽으로 돌아간다면 뒤에서 추격하는 추격병들과 부딪치게 될 것이다.의구심이 들었지만, 고양은 성녀의 판단을 믿기로 했다.그는 입을 틀어막은 온모와 부하들을 데리고 화원으로 이동했다.물론 란사는 그들을 이대로 충술사 일당과 맞닥뜨리게 할 생각이 없었다.그녀가 몸을 숨기고 있던 이유는 유성이 왕궁 전체에 진을 치고 모든 사람들을 감시하게 하기 위함이었다.그녀는 대왕자와 이왕자를 완전히 믿지 않았다.그들은 신뢰의 가치가 없는 자들이고 운이 좋아 그들이 배신을 택하지 않는다고 하여도 왕궁의 다른 보는 눈이 많았다.특히나 대일왕은 대왕자, 이왕자보다 더 이 왕궁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었다.그가 온권승의 제안을 받아들여 왕궁을 봉쇄한 순간부터 란사는 대왕자가 미리 준비해 준 통로를 이용할 수 없다는 것을 직감했다.그리고 그녀의 예상은 정확히 적중했다.그녀가 보낸 독충들이 알아본 결과, 그곳에는 무수히 많은 병사들이 진을 치고 지키고 있었다.만약 그녀가 무작정 대왕자만 믿었더라면 아마 고양 일당은 진작에 병사들에게 붙잡혔을 것이다.그리하여 그녀는 새로운 출구를 찾아야 하고 그것을 위해서 지금은 시간을 끌어야 했다.유성이 독충떼를 조종하여 진짜 출구를 찾기 전까지, 그녀는 고양 일행의 행적을 감추기로 결정했다.가장 위험한 곳이 가장 안전한 곳이었다.란사는 독충무리로부터 검은 망토의 충술사 일당이 두 갈래로 흩어졌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즉시 고양 일행에게 방금 있었던 화원으로 돌아가 숨을 것을 지시했다.당분간은 그자들이 미처 그쪽을 생각하지 못할 것이고 적어도 숨을 돌릴 시간은 벌 수 있을 것이다.경성의 황궁보다는 크지

  • 여승이 된 나에게 무릎꿇고 돌아오라고 비는 오빠들   제1122화

    “너희도 가지고 있는 충왕을 나도 가지고 있다. 과연 누구의 충왕이 더 뛰어난지, 한번 겨루어 보자꾸나!”충술사가 쉰 목소리로 외쳤다.그의 머리 위에는 핏빛의 붉은 충왕 지네가 날카로운 충명을 내지르고 있었다.그 소리는 유성의 위협적인 충명을 몰아내고 무형의 검이 되어 고양 일행의 귓속을 파고들었다.고양 일행은 순식간에 머리가 뭐에 맞은 것처럼 멍해졌다.일행은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기 시작했다.뒤쫓아오던 지네 약충들은 이 기회에 그들에게 달려들어 고양 일행의 종아리까지 기어올랐다.그러나 녀석들이 무릎까지 기어오른 순간, 일행의 어깨 위에서 손바닥만한 거미가 뛰어내렸다.그 거미들은 밑에서 기어오르는 지네들을 향해 독액을 뿜기 시작했다.사람의 몸을 기어오르던 지네들은 독액을 맞고 순식간에 몸뚱아리가 침식되더니 버둥거릴 틈도 없이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이럴 수는 없어!”약충무리를 조종하던 검은 망토의 충술사는 눈을 부릅뜨며 고함을 질렀다.그를 놀라게 한 점은 자신의 약충들이 독액에 죽은 게 아니었다. 그의 약충무리는 분명히 독액에 부식되어 녹아서 사라졌는데 똑같이 독액을 뒤집어쓴 고양 일행은 조금의 피해도 입지 않았다는 점이었다.그들은 바지에 살짝 작은 구멍이 뚫렸을 뿐, 그 어떤 상해도 입지 않았다.고양과 일행은 망설임 없이 앞으로 달렸다.그들은 이 독거미들의 위력을 잘 알고 있었다.바로 어젯밤, 란사는 그들에게 독거미의 위력을 보여주었다.그때 고양 일행은 살점을 부식시키는 독성에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었다.그러나 란사가 맑은 물을 그들의 몸에 뿌리자 독액은 순식간에 독성을 잃어버렸다.맹독의 독성과 해독제의 강력한 효과를 눈으로 확인한 그들은 각자 한마리씩 란사의 독거미를 받아 몸에 숨겨두었다.그들은 몸에 모두 해독약을 발라두었기에 란사는 안 보이는 곳에 숨어서 벌레들을 통제할 수 있었다.온모가 고양에게 끌려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검은 옷의 충술사는 란사의 그림자도 보지 못했다.충술사는 화가 나서 발을 동동 굴렀다.수많은

  • 여승이 된 나에게 무릎꿇고 돌아오라고 비는 오빠들   제1121화

    특히나 고양 일행은 살인으로 입막음하는 것에 주저함이 없는 사람들이었다.온모의 주변을 지키던 충술사 일당은 처음에는 조금 버티나 싶더니 곧바로 흑기군의 강세에 밀리기 시작했다.고양은 앞을 막고 있는 이족인들의 목을 벤 후, 곧바로 온모에게 접근했다.온모는 뒤돌아 도망치려 했지만 이미 그들은 흑기군에게 포위된 상황이었다.고양은 곧바로 다가와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온모를 제압한 고양은 곧바로 자리를 뜰 생각이었다.그러나 충술사는 이대로 그녀가 잡혀가게 둘 수 없었다.“죽고 싶어서 환장했구나!”충술사는 분노의 고함을 지르더니 오른발을 들어 힘껏 땅을 굴렀다.그 순간 무수히 많은 지네가 그의 망토에서부터 쏟아져 나오더니 신속히 고양 일행을 향해 덮쳐왔다.고양은 전장에서 무수히 많은 시체를 밟고 피비린내 나는 광경을 겪어왔지만, 이렇게 벌레들로 들끓는 장면을 보니 소름이 끼쳤다.특히나 수많은 지네와 굼벵이들이 충술사의 몸에서 기어 나오는 모습은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이를 통해 그 충술사가 평소에 벌레들을 자신의 품에서 키우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커다란 검은 망토를 걸치고 다닌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생각만 해도 고양은 온몸에 소름이 돋고 머리털이 곤두섰다.다행히 성녀가 그들에게 내린 명령은 저 약충들과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 아니었다.고양은 비명을 지르는 온모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의 팔을 꽉 움켜잡은 채, 거칠게 밖으로 끌고 나갔다.동시에 그는 부하들에게 퇴각 명령을 내렸다.“철수한다!”이제부터는 그들의 싸움이 아니었다.다른 흑기군들도 이를 알기에 고양의 명령이 떨어지기 바쁘게 망설임 없이 즉시 후퇴했다.“어딜 도망치려고!”고양 일행은 표적을 잡았지만 충술사 일당은 아직 자신들의 표적을 밖으로 끌어내지도 못했으니 이들이 도망치게 놔둘 리가 없었다.“막아라!”검은 망토의 충술사가 명을 내리자, 몇 남지 않은 호위들과 지네들이 즉시 고양 일행을 추격하기 시작했다.그 호위들은 비록 속도와 순발력이 대명인들과 비교할 바

  • 여승이 된 나에게 무릎꿇고 돌아오라고 비는 오빠들   제1120화

    볼일을 보러 간다는 것은 진짜 볼일이 급해서가 아니었고 술기운도 진짜 취한 것이 아니었다.지금의 온모는 산송장인 몸이니, 진짜로 생리적 현상을 느낄 리가 없었다.그러나 연기는 아니었다.그녀가 마신 술에 든 환각제의 주요 작용이 바로 그러했다. 머리가 어지럽고 배가 아픈 증상이 동반된 것이다.이는 란사가 온모를 대상으로 특별히 제작한 약물이었다.산 사람은 술을 마신 후에 별다른 느낌을 느끼지 못할 테지만 온모와 같은 산송장은 그런 증세를 동반했다.그리고 증상은 온모가 술향기가 가득한 관람대를 떠날 때까지 지속되다가 향기가 사라진 후에야 점차 정신을 차렸다.그러나 온모는 이미 왕궁의 화원까지 걸어온 상황이었다.이족 왕궁의 화원은 그리 크지 않지만 각종 기이한 꽃과 풀들이 적지 않았다.안에 들어서서 진한 꽃향기를 맡은 온모는 화들짝 놀라며 환각 상태에서 정신을 차렸다.그녀는 주변을 둘러보며 당황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어떻게 된 거지? 내가 왜 여기 있어?”그녀는 분명 연회장에 있었는데 언제 여기까지 온 것일까?온모의 목소리를 들은 충술사도 마침내 정신을 차렸다.주변을 둘러본 그는 곧바로 경계 태세를 취했다.“이분을 잘 잡고 있거라!”보호가 아닌 잡고 있으라는 명이었다.시종들은 곧바로 온모를 중심에 두고 그녀를 포위했다.온모는 이를 갈며 그들에게 호통쳤다.“대체 뭘 한 거지? 창왕께선 너희들을 시켜 나를 보호하라 하였거늘! 너희들은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나한테 문제가 생기면 창왕께서 너희의 목을 칠 것이다!”검은 망토의 충술사는 그녀의 말에 대답도 하지 않았다.미끼 주제에 분수를 모르고 날뛰는 꼴이 우스울 뿐이었다.그녀에게 정말 문제가 생긴다고 해도 창왕은 절대 심복들의 목숨을 거두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전하의 계획에 차질이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아무리 이 여자가 마음에 안 들어도 그녀의 신변 안전에 문제가 생기게 둘 수는 없었다.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직감안 충술사는 곧바로 약충을 풀어 주변을 정찰하도록 지시했다.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