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4화

Author: 이제리
비틀거리다가 화장대 모서리에 부딪힌 온사는 입술을 깨물었다.

저번 생에서 온모 때문에 그렇게 고생을 하고 지금 이러는 온모를 보니, 온사는 그녀가 또 무슨 수작을 부릴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바닥에 떨어진 관복을 주워들었다.

“저도 제가 무엇을 했기에 막내가 이렇게 크게 반응하는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아니면 막내가 직접 설명해 주겠니?”

“네가 뭘 했는지는 너 스스로가 가장 잘 알 터!”

온자신은 온모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먼저 목소리를 높여 그녀에게 화를 냈다.

온사의 눈빛은 점점 더 차가워졌다.

예전엔 그녀도 잘 몰랐지만, 지금 보니 온자신은 정말 눈이 먼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의 눈앞에서 누가 뭘 하고 안 했는지도 보지 못했다.

그게 아니라면 보이는데도 한 사람의 말만 믿는 것이다.

온자신은 매섭게 온사를 노려본 뒤, 온모의 어깨를 토닥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를 달랬다.

“막내야, 괜찮다. 무슨 일 있으면 오라버니에게 말하거라. 그 일이 무슨 일이던 오라버니가 다 알아서 해결해 줄 것이니.”

두 사람의 행동은 거침이 없었다.

하지만 온자신은 마치 애초에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듯 전혀 꺼림이 없었다.

온모는 사슴 같은 눈망울을 붉히며 말했다.

“오라버니, 저…… 저 너무 아파요.”

온모는 눈앞에 있는 충동적이고 멍청한 둘째 오라버니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정확하게 말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이 말 한마디면 온자신의 화를 돋우기에 충분했다.

역시 온자신은 온모의 억울해하며 무력한 모습을 보자, 바로 열이 올라서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는 방금 온모가 관복을 만지고 갑자기 아프다고 했던 것을 떠올려, 순간적으로 머릿속에서 그의 상상을 완성시켰다.

짝!

온모의 뺨에 손이 날아왔다.

“좋아, 온사, 네가 막내에게 관복을 준다고 한 것이 네가 진심으로 죄를 뉘우친 것이라 믿은 내 탓이었구나. 관복에 손을 쓰다니, 네가 이렇게까지 악랄한 줄은 몰랐구나!”

온자신에게 맞아 왼쪽 얼굴이 얼얼한 온사는 이를 악물었다. 마음속에서 증오가 끝도 없이 샘솟았다.

그녀는 반드시 온씨 가문을 떠나야 한다.

만약 이곳에 남는다면, 그녀가 무엇을 하든, 모든 사람들이 온모를 두둔할 것이다.

온씨 가문을 떠나야만 복수를 할 기회가 생길 것이다.

하지만 그전에, 그녀는 오늘의 성년식을 마쳐야 한다.

왜냐하면 성년식에는 빌어먹을 약혼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온자신이 그녀를 성년식에 참여하지 못하게 한다면……

하, 비록 그가 국공 저택의 둘째 아들이라고 해도, 아직 국공 저택의 주인 노릇을 하려면 멀었다.

경성의 모든 사람들이 오늘 진국공 저택의 두 딸이 성년식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있고, 만약 그녀가 나타나지 않으면 외부에서 반드시 각종 추측이 난무할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아버지는 이런 일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온사는 생각을 멈추고 관복을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만약 오라버니께서 관복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시거든, 마음껏 검사해 보셔도 좋습니다.”

그녀는 이미 이 눈 가리고 귀 막고 충동적이기만 한, 사람 때리는 폭군과 더 이상 쓸데없는 얘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온사는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방 안으로 들어가 옷장에서 수수한 하늘색 옷을 꺼내 갈아입었다.

한편, 밖에 있던 온자신은 여전히 끝을 몰랐다.

“흥, 그래, 하라면 하겠다. 만약 내가 관복에서 네가 손댄 흔적을 발견한다면. 각오하거라!”

잠시 후.

온사가 옷을 갈아입고 나가려고 할 때, 잘 개여져 있던 관복은 이미 온자신에 의해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다.

그의 옆에 있던 온모는 고개를 들어 관복을 보고 있었다.

비록 그녀가 본인의 손으로 직접 찾지는 않았지만, 속으로 온사가 분명 손을 썼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던 탓에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온자신이 관복을 전부 헤집어 보아도 손댄 흔적은 하나도 찾을 수 없었다.

온모는 미간을 찌푸렸다.

설마 아닌가?

발소리를 들은 남매는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옷을 갈아입은 온사가 천천히 걸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

예전의 온사는 이렇게 수수하게 옷을 입는 일이 거의 없었다. 게다가 애초에 뛰어난 외모를 가지고 있어, 어떻게 봐도 단아하고 청순한 분위기로 한눈에 띄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화려한 치장을 했던 예전의 온사와 비교했을 때, 지금의 그녀는 말 그대로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온모는 질투하는 눈치였다.

그녀가 가장 싫어하는 게 온사의 얼굴이었다.

정말 보면 볼수록 아주 박박 할퀴어버리고 싶었다.

왠지 모를 악의를 느낀 온사는 고개를 들어 그 원인을 찾고자 했는데, 갑자기 온모와 눈이 마주쳤다.

온모는 온사가 이렇게 예민한 줄 몰랐다.

오죽하면 아주 미세하게 일그러지는 표정까지 읽어내 잠시 멍해졌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표정을 숨겼다.

온사는 속으로 차가운 웃음을 지으며 엉망이 된 채 책상에 놓인 관복을 흘끗 보았다.

“어떠하십니까, 무엇을 찾으셨습니까?”

아무것도 찾지 못한 온자신은 낯빛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입을 열기 전에 온모가 먼저 말했다.

“언니, 화내지 마. 아까는 갑자기 손이 저려서 그런 것인데, 오라버니께서 너무 신경을 쓰셔서, 아프다는 말만 들으시고 오해하신 것 같아.”

그녀는 사과를 하며 일부러 장난스럽게 혀를 내밀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해 언니. 절대 오라버니 탓하면 안 돼. 차라리 날 탓해.”

“어떻게 너를 탓하라고 하는 것이냐? 탓하려면 스스로를 탓해야지.”

온자신은 바로 동의할 수 없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온사를 흘끗 보더니 미운 말투로 말했다.

“만약 누가 평소에 착하고 좋은 일만 했다면, 나도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억울하더라도 스스로 자초한 일이다.”

온사는 다시 한번 이 두 사람이 역겹다고 느껴졌다.

그녀는 관복을 집어 들고 차갑게 온모에게 물었다.

“그럼 이 관복은 필요한 것이냐? 필요하면 가져가거라.”

온모는 당연히 가지고 싶었다.

하지만 방금 한번 잘못했으니 가지고 싶어도 지금 받을 수는 없었다.

그러고는 자신의 착하고 관대한 면을 적당히 보여주었다.

“괜찮아, 이 관복 언니가 제일 좋아하는 것이잖아. 언니도 분명 아쉬울 테니까.”

“아까는 또 나 때문에 오라버니가 언니를 억울하게 만들었으니, 우리 서로 똑같이 잘못한 셈으로 하자. 언니도 나한테 물어줄 거 없어. 어차피 앞으로도 우리는 사이좋은 자매니까!”

어차피 오늘은 아직 많이 남았고, 지금 당장 급할 필요 없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반드시 그녀의 것이다.

성년식 관복은 바로 입는 것이 아니다. 성년식이 거행되고 비녀를 꽂고 두관을 쓸 때 옷을 갈아입는 것이다.

그래서 온모는 급하지 않았다.

온자신은 조금 풀어진 얼굴로 도도한 표정을 지으며 턱을 치켜들었다.

“들었느냐? 막내가 똑같이 잘못했다고 하니, 그건 네가 가지거라. 하지만 그냥 이렇게 끝났다고 여기진 말거라. 앞으로 만약 네가 막내를 또 괴롭힌다면, 나…… 뭐 하는 게냐?!”

온자신은 말이 끝나기도 전에,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가늘게 뜨고 온사의 행동을 보고 있었다.

싹둑!

온사는 매정하게 가위를 집어 들고 화려한 관복을 그대로 잘라버렸다.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atest chapter

  • 여승이 된 나에게 무릎꿇고 돌아오라고 비는 오빠들   제481화

    두 시진 후, 마차는 드디어 경성에 당도했다.마침 하늘에서 해도 저물고 있었다.성안에 들어서자 만가등화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명절을 맞은 거리에는 등불과 채색 장식이 드리워졌고 인산인해를 이루었다.등불 연회가 주최되는 거리로 가자 각양각색의 꽃등과 수수께끼 놀이 등 수많은 오락거리들이 펼쳐져 있었다. 상한아는 가는 곳마다 감탄을 금치 못했다.온사도 마차에서 내려 사람들 틈에 섞여들었다.“자.”이때 북진연이 상한아에게 돈주머니를 쥐여주었다.“경성의 등불 연회에서는 어린아이들의 놀거리가 참 맞아. 추월과 함께 놀다 오려무나.”“예? 저는 어린아이도 아닌걸요?”상한아는 온사보다 고작 한 살 어렸지만 키가 작아서 어린애처럼 보였다. 하지만 본인은 그것을 인정하기 싫은지 눈을 부릅뜨고 투덜거렸다.“옆거리의 주루에서 파는 구운 통닭이 그렇게 맛있다던데….”그 말을 들은 상한아는 온사에게 고개를 돌리며 정색해서 말했다.“성녀 전하, 저를 잘 아시잖아요. 통닭 구이가 먹고 싶어서가 아니라 전하께 드리려고 사오려는 거예요.”“아니야, 난 출가인이라 못 먹으니 네가 가서 맛보고 오렴.”온사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말했다.방해꾼들이 사라지자 북진연의 입가에 미소가 짙어졌다.그는 챙겨온 보따리에서 하얀색 바탕에 매화가 수놓아진 망토를 꺼내 온사의 어깨에 걸쳐주었다.그러고는 자연스럽게 그녀의 어깨를 다독이며 말했다.“옷을 너무 얇게 입고 나왔어. 밤에는 공기가 차니까 나중에 고뿔에 고생하지 말고 이거라도 걸치고 있어.”온사는 고개를 들고 북진연을 빤히 응시하다가 오후에 한아와 나눴던 대화가 떠올라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섭정왕 전하께서는 친구에게 한없이 친절한 분이시네요.”그녀는 과도한 친절이 약간 부담스럽기도 했다.과연 단지 절친이라서 이렇게 챙겨주는 건지 의심스러웠다.북진연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예상했던 반응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녀의 입에서 친구라는 말을 직접 들으니 가슴이 아팠다.그는 애써 표정을 수습하며 무심한듯 말했

  • 여승이 된 나에게 무릎꿇고 돌아오라고 비는 오빠들   제480화

    오히려 며칠 온사를 못 본 날에는 괜히 기분이 울적했다.그래서 오늘은 말을 타고 친히 온사를 데리러 온 것이다.올 때는 급급히 달려왔지만 갈 때는 시간이 느리게 흘렀으면 하는 마음에 느긋하게 걸었다.고개를 돌리자 상한아와 웃으며 담소를 나누는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북진연은 한참 그녀를 홀린 듯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차 안에 난로를 두었어. 추위에 고뿔이라도 걸리지 않게 따뜻하게 하고 있어.”온사는 바로 차 안에 고이 놓아둔 난로를 찾아냈다. 하나는 정교한 모양에 손 크기의 난로였는데 딱 봐도 온사를 위해 준비한 것으로 보였다.다른 하나는 한아가 앉은 자리 뒤쪽에 있었는데 비록 온사의 것에 비해 정교하진 않지만 아주 따뜻했다.상한아는 섭정왕이 온사를 챙기는 김에 자신까지 챙겨주었다는 것에 감사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다.“섭정왕께선 참으로 성녀 전하를 아끼시나 봐요. 그러니 시종인 저까지도 챙겨주시는 거죠.”말을 마친 상한아는 뒤늦게 자신이 실수했다는 것을 깨닫고 입을 틀어막았다.‘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한 거야!’한편, 온사는 그 말을 듣고 잠시 당황했지만 티를 내지는 않았다.북진연의 자상함은 곳곳에 녹아 있었다.솔직히 그가 다른 마음을 품은 건 아닌지 의심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럴 리는 없다고 판단했다.그녀는 어차피 출가인이지 않은가.게다가 친히 그녀를 수월관까지 호송한 사람이 섭정왕이었다.비록 삭발 수행은 아니지만 황명을 받고 출가인이 되었으니 쉽게 속세로 돌아올 수 없는 몸이었다.이를 누구보다 잘 아는 섭정왕이니 괜한 마음을 품었을 것 같지 않았다.그녀는 출가인이 된 이후로 성녀로 책봉되었고 어렵게 진국공부를 벗어났다. 성녀의 신분은 그녀가 진국공부에 복수할 수 있는 가장 예리한 무기였다.그녀는 이 신분이 필요하고 되돌아갈 생각도 없으니 앞으로 나아가야만 했다.복수를 위해서는 성녀의 입지를 단단히 해야 하고 그들을 모두 짓밟을 수 있는 위치까지 올라가야 한다. 그래야만 전생에 그녀가 겪었던 죽기

  • 여승이 된 나에게 무릎꿇고 돌아오라고 비는 오빠들   제479화

    한해의 마무리가 다가오고 있었다.진국공부에게는 파란만장한 한해인 반면에 온사는 느긋한 나날을 즐기고 있었다.“내일 저녁에 등불 연회나 보러 갈까?”북진연이 조심스레 의견을 물었다.“등불 연회요?”온사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물었다.북진연이 말했다.“내일 그믐날이라 경성에서 왕년처럼 등불 연회가 있다더군.”온사는 그제야 자신이 명을 받들고 출가한지 벌써 반년이 지났다는 것을 깨달았다.그믐만 지나면 새로운 한해가 펼쳐질 것이다.그녀는 얼어붙은 손을 비비며 미소를 지었다.“좋죠. 그런데 먼저 사부님께 허락을 구해야 해요.”북진연의 시선은 얼어서 빨갛게 된 그녀의 손에 잠깐 머물렀다.다음 날, 일과를 마친 온사는 막수를 찾아갔다.“물론 되지.”막수는 웃으며 그녀에게 말했다.“가서 잘 놀다가 오렴. 긴장도 좀 풀고.”온사뿐이 아니었다. 막수는 오늘 일과를 마친 다른 사람들에게도 휴식을 주었다.한해가 시작되는 내일은 수월관이 가장 바쁜 날이었다. 각종 기도 의식도 진행해야 하고 적지 않은 손님들이 방문할 것이다. 기도 의식을 장관할 사람은 막수와 온사뿐이라 남은 사람들은 두 사람 몫까지 해야 해서 더욱 바빠질 것이다.얘기를 전해들은 온사는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관내에서 그녀는 외출 횟수가 가장 많은 편이었다. 신분이 특별하다고는 하지만 너무 특혜만 받는 것도 오히려 마음이 불편했다.그래서 곧 바빠질 거라고 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안했다.오후에 막수와 함께 반년 동안 준비한 기도 의식의 준비를 마친 후, 그녀는 옷을 갈아입었다.그녀와 북진연 두 사람 다 유명인사였기에 등불 연회에 가려면 위장하고 갈 수밖에 없었다.온사는 그리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의복으로 갈아입었다.그리고 승려모를 벗고 긴 머리를 비녀로 간단하게 틀어 올렸다.거기에 진녹색의 의복까지 입으니 평소와는 다른 신비롭고 우아한 분위기가 넘쳤다.밖에서 그녀를 기다리던 북진연은 그 모습을 보고 눈을 반짝였다.출가인이 된 후로 그녀가 법복이 아닌 일상

  • 여승이 된 나에게 무릎꿇고 돌아오라고 비는 오빠들   제478화

    온모는 여전히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말했다.온옥지는 그런 그녀를 빤히 응시했다.온모는 그 눈길이 괜히 불편했다.‘왜 저런 눈으로 나를 보는 거지? 설마 뭔가 눈치라도 챘나?’온모는 가슴이 철렁해서 마른침을 삼켰다.온옥지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더니 말했다.“막내야, 사실 그렇게 긴장할 것 없어. 난 다 알아. 그러니 내 앞에서는 가면을 쓸 필요 없이 진실한 모습으로 있어도 좋아.”온모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뭘 안다는 거지?’그녀가 굳은 표정으로 말이 없자 온옥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됐어. 그러고 싶지 않으면 계속 그 모습으로 있어도 돼. 나는 괜찮아.”온모는 더 이상 이 화제를 계속하고 싶지 않았기에 어색한 얼굴로 말을 돌렸다.“참, 오라버니. 전에 제가 선물한 화분은 잘 있죠?”온옥지는 부드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물론이지. 밀실에 놓아두었는데 무슨 문제라도 있어?”“어제 알게 된 사실인데 사실 그 꽃도 일종의 약재더라고요. 어쩌면 오라버니의 다리 치료에 도움이 될 수도 있으니 좀 더 연구를 해볼 생각이었는데 남은 모종이 없지 뭐예요. 제가 다른 화분으로 바꿔드릴 테니 그 화분은 제가 가져가도 될까요?”온모의 당당한 요구에 온옥지는 별다른 의심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밀실로 가서 가져가. 어차피 네가 준 거고 네가 준 것이면 난 뭐든 좋아.”독이 든 화분이 제 효과를 내려면 최소 두 달의 시간이 필요했었는데 온옥지가 갑자기 중독으로 쓰러지면서 대놓고 독약을 먹일 기회가 생긴 것이다. 게다가 그 일로 생명의 은인이 되었으니 온모로서는 일거양득이었다.비록 버린 장기말이긴 하지만 온옥지는 진국공부 일가족 중에서 가장 다루기 쉬운 상대였다.물론 온자월도 다루기 쉽기로 따지면 마찬가지였지만 지난번에 독을 먹였다가 들통난 이후로 그 방법은 통하지 않게 되었다.그녀가 갖고 있는 독초는 그리 많지 않았다. 생존율도 낮아서 지금 갖고 있는 모종은 고작 두 개였다.온장온에게 하나 줬고 온옥지에게도 줬었는데 이

  • 여승이 된 나에게 무릎꿇고 돌아오라고 비는 오빠들   제477화

    그 시각, 진국공부.온모는 온옥지가 누워 있는 침상으로 살며시 다가가서 앉았다.“넷째 오라버니, 오늘은 좀 어떠세요?”침상 위 그의 얼굴은 창백했으나 온모를 보자마자 억지미소를 지었다.“오늘은 어제보다 많이 좋아졌어. 네 덕분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어. 네 약이 없었더라면 아마 난 지금쯤 저승강을 건너고 있었겠지.”“오라버니, 그런 말씀하지 마세요. 제 약이 좀 더 좋은 약이었다면 오라버니가 이런 모습이 되지 않았을 텐데, 다 제 잘못이에요….”말을 마친 온모는 죄책감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온옥지가 다급히 말했다.“아니, 이건 네 잘못이 아니야. 네 약 덕분에 내가 목숨을 건질 수 있었어. 이 정도로 나는 만족해.”말을 마친 그는 억지미소를 지었다.말은 그렇게 해도 이 사건이 그에게 가져다준 충격은 엄청났다.그가 가장 혐오하는 것이 바로 타인이 자신을 폐인으로 생각하는 것이었다.그는 항상 자신은 병약할 뿐, 불구는 아니라고 생각했다.그런데 오늘 날에 와서 진짜 불구가 되어버린 것이다.그는 아무런 감각도 느껴지지 않는 자신의 두 다리를 멍하니 내려다보았다.처음 의식을 회복했을 때 느꼈던 두려운 감정이 다시 떠올랐다.하지만 아끼는 막냇동생 앞에서는 나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그랬다가는 진짜 폐인이 될 것 같았다.온옥지는 사람들이 자신을 혐오스런 눈빛으로 쳐다보는 게 가장 두려웠다. 그래서 막내도 혹시나 그런 눈으로 자신을 볼까 봐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었다.동시에 매일같이 찾아오며 그를 위로하고 응원해 주는 막내의 모습에 큰 감동을 느꼈다.온모는 확신에 찬 표정으로 온옥지를 바라보며 말했다.“오라버니,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어떻게든 오라버니의 다리를 낫게 해드릴 방법을 찾아볼게요. 대명왕조에는 의성과 귀의독왕이 계신다고 하잖아요. 그 두 사람을 다 불러오면 어떻게든 오라버니가 다시 걸을 수 있게 치료해 드릴 거예요!”온옥지는 감격 어린 눈으로 온모를 바라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막내야… 역시… 너밖에 없구

  • 여승이 된 나에게 무릎꿇고 돌아오라고 비는 오빠들   제476화

    최근에 만약 누군가가 수월관에 정찰을 왔다면 그것은 분명 온모의 사람일 것이다.만약 오지 않는다면 아마 온권승이 외부에서 고용한 암살자로, 온모의 안전만 지켜주는 역할을 하는 자일 것이다.온모는 눈을 가늘게 뜨며 생각에 잠겼다.그녀 역시 수월관 근처에 미리 함정을 파둔 상태였다.그러나 며칠이 지나도록 진국공부 쪽에서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정말 그 인간이 고용한 자란 말인가?’한편, 추월이 진국공부에 다녀간 다음 날, 온옥지는 재차 위기에 빠졌다.모든 어의가 모여서 진료를 보았지만 다들 이제는 방법이 없다며 뒷일을 준비할 것을 권고했다.그렇게 며칠이 더 지났지만 진국공부 쪽에서는 별다른 소식이 들려오지 않았고 외부에 소문만 무성했다.누군가는 진국공 가문의 넷째 공자가 이미 사망하였다고 했고 일부는 아직 죽지는 않았을 거라고 했다.그게 아니라면 진국공 가문이 이리 조용할 리가 없다고 그들은 말했다.대문에도 애도를 위한 흰 꽃이 걸리지 않았다.“누가 살려줬나 보네.”이제 온사는 기마세를 안정적으로 버틸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북진연이 그녀에게 물었다.“무슨 고민 있어?”“워낙 소식이 빠른 섭정왕 전하이신데 들리는 소문 못 들으셨나요?”북진연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짐짓 모른 척 물었다.“예를 들자면?”“예를 들면 누가 온옥지를 살려줬는지 말이에요.”온사는 대체 어떤 대단한 인물이 독거미의 독을 해독했는지 너무 궁금했다.물론 온옥지가 바로 죽지 않은 건 예상했던 일이지만 진국공부가 이리도 조용한 것이 너무 이상했다.온옥지에게 고통을 주기 위해 보낸 독거미였다. 독성을 해독하지 못한다면 죽기보다 못한 고통을 매일 견뎌야 할 것인데 그렇다고 하기에 온권승 쪽에서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그래서 온사는 누군가가 그 독성을 해독했다고 판단했다.“누가 살려준 건 맞아. 하지만 그걸 정말 살렸다고 할 수 있는지는 모를 일이야.”북진연의 대답에 온사는 눈살을 찌푸렸다.“왜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죠?”“온옥지를 살린 사람은 다른 사람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