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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Aвтор: 이제리
“온사, 너 미친 것이냐?!”

다시 빼앗아 올 생각을 하고 있던 온모는 더 놀라고 화가 나 말을 잃었다.

마치 온사가 자신의 옷을 잘라버리기라도 한 듯 흥분했다.

온사는 손을 멈추지 않았고, 웃는 얼굴도 변하지 않았다.

“옷 자르고 있지 않습니까. 오라버니랑 막내도 보셨으면서 뭘 그렇게 크게 반응하십니까?”

온자신의 두 눈은 분노로 가득 찼다.

“네가 감히 내게 어찌 이렇게 크게 반응을 하냐고 묻는 것이냐?! 이 관복은 나와 형님이 특별히 네 성년식을 위해서 제작한 것인데, 지금 뭐 하는 것이냐? 왜 잘라서 망가뜨린 것이냐?!”

“아무도 원치 않으니까요.”

온사는 또 ‘싹둑’하고 잘라냈다.

“저도 싫고, 막내도 필요 없다는데, 아무도 원치 않는 물건은 당연히 처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녀의 차가운 표정 때문에 온자신은 그녀가 조금 낯설기까지 했다.

내가 언제 필요 없대?!

온모는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를 뻔했다.

그녀는 그저 온자신이 의심하는 것이 싫어서 일부러 그런 것뿐이었다.

하지만 온사가 이렇게 나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녀는 분명 오늘 반드시 이 관복을 입으려고 했지만, 온사가 다 잘라서 망가뜨려버렸다.

이건 경성 전체에서 가장 비싸고 좋은 관복인데!

그중에 하나도 아니고 유일한데!

온모는 가슴이 아파서 마치 피라도 흐르는 것 같았다.

“네가 언제 필요 없다고 했느냐? 네 마음에 아주 쏙 든다고 하지 않았느냐? 네가 가장 아끼는 옷이……”

온자신은 그 어느 때보다 화가 났다.

하지만 온사는 그의 말을 잘랐다.

“저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한 마디 한 마디 다시 말했다.

“예전엔 좋아했으나, 지금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녀의 것이 아니라면, 전부 필요 없다.

싹둑.

온사의 마지막 가위질로 관복은 완전히 갈기갈기 잘려있었다.

마치 그녀와 온자신 일행의 관계처럼.

그녀가 전생을 되돌리기엔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 만약 좀 더 일찍 깨달았다면, 진작 이 모든 걸 멈추어 그 지경까지 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생에는 절대로 또 전생처럼 멍청하게 당하고 있지 않을 것이다.

“됐습니다. 곧 성년식이 시작될 텐데, 오라버니께서 저를 못 가게 하신다면, 저도 더 이상 함께 가지 않겠습니다.”

그녀는 가위를 내려두고, 몸을 돌려 그들을 등지고 짜증이 섞인 말투로 사람들을 내쫓았다.

온자신은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붉어진 두 눈으로 갈기갈기 잘린 채 바닥에 널린 옷 조각들을 보고 있었다.

그는 마치 누군가에게 세게 얻어맞기라도 한 듯, 갑자기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아니……

아니다.

다섯째가 왜 이렇게 변한 거지?

왜 이러는 거지?

설마 자기가 막내에게 관복을 준 게 화가 나서 그런 건가?

아니면 그녀에게 누명을 씌워서?

하지만 이건 다 본인이 먼저 잘못해서 그런 것이 아닌가?

왜 이렇게 성질을 내는 거지?!

온자신은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다 형님들 때문이다. 네 버릇 든 것을 보아라, 무슨 꼴이더냐! 넌 지금 형님들의 마음을 전부 짓밟은 것이다. 나중에 또 다른 소리 할까 두렵구나!”

온자신은 자신이 이렇게 말하면 온사도 무슨 반응을 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저쪽에 앉아있던 온사는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사람들을 쫓아내고 싶은 게 틀림없었다.

“조, 조, 좋다!”

온자신은 화가 나서 말까지 더듬으며 화를 냈다.

“네가 감히 나한테 성질을 부리다니, 기다리고 있거라. 오늘 내가 특별히 형님들을 불러, 네가 죽고 싶어 환장한 꼴을 보게 해야겠어!”

그는 말을 마치고 온모가 방금 바닥에서 주운 두관을 빼앗더니, 바닥에 있던 잘린 옷들도 전부 주워들었다.

“어, 오라버니?!”

온모가 무슨 반응을 하기도 전에 온자신은 망가진 관복을 들고 빠르게 달려나갔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달갑지 않은 눈으로 온사를 노려보며 잠시 생각을 하더니 결국 그를 쫓아나갔다.

그들이 가고 나니 온사의 방안은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방 밖의 멀지 않은 복도에서 낮은 목소리로 얘기한다고 생각하는 듯한 시녀들이 험담을 하는 것이 들릴 정도였다.

“아이고, 방금 다섯째 아가씨 방에서 나가신 게 둘째 도련님이랑 막내 아가씨 아니야?”

“아마 그런 거 같아.”

“둘째 도련님을 만나게 될 줄 알았으면, 다섯째 아가씨 방 안에서 시중드는 건데.”

“됐어, 아까 둘째 도련님이 다섯째 아가씨한테 큰 소리로 화 내시는 거 들었는데, 혹시 또 다섯째 아가씨가 막내 아가씨께 무슨 짓을 하신 건가? 저렇게 못된 사람인데 넌 저 사람 시중을 들겠다고? 갑자기 기분 상해서 너한테 손이라도 대면 어쩌려고?”

“너무 무섭다! 진짜 그런 거면 누가 시중들고 싶어 하겠어?”

온사는 방 안에서 아무렇지 않게 이 말을 듣고 있었다.

시녀들의 목소리 중 말이 많던 목소리는 그녀의 몸종 시녀 춘향이었다.

그녀와 함께 밀실에 갇혔을 때, 온모를 달래기 위해 매섭게 그녀를 발로 찼던 바로 그 시녀다.

예전에 춘향이는 온모의 지시로 그녀를 배신하고 온모를 도와 그녀를 완전히 국공 저택에서 쫓아내는 데에 가담했고, 이 계기로 온모 곁에서 유능한 부하의 역할을 했다.

예전의 온사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춘향이는 이때부터 이미 온모 쪽으로 기울어 있었던 것이었다.

게다가 몰래 그녀의 하인들을 부추겨 모든 사람들이 그녀를 두려워하고 피하게 만들었다.

온사의 눈에 살기가 돌았다.

그녀는 온모와 온씨 가문 사람들을 용서할 수 없었다.

당연히 그녀를 배신했던 사람도 용서할 리 없었다.

“너희들.”

갑자기 시녀들 뒤에서 온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춘향이 일행이 뒤를 돌아보니, 온사가 창가에 서서 조용히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방금 춘향의 말을 듣고 놀란 시녀들은 순간 무서워서 얼른 그 자리에 섰다.

“춘향이 빼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돌아가서 짐 챙기거라. 여기 있을 필요 없다. 조금 있다가 내가 사람 불러서 데리고 가라고 할 테니.”

다른 시녀들은 무슨 상황인지 전혀 모른 채 멍하니 물었다.

“짐을 챙겨요? 어디로 가는 건가요? 아가씨께서 누굴 불러서 저희를 데려가시는 거예요?”

온사는 웃는 듯 마는 듯 한 얼굴로 그들에게 말했다.

“당연히 거간꾼을 부르지 또 누가 있어?”

시녀들은 서서히 낯빛이 어두워지며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아가씨,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저들이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렇게까지 하셔야겠어요?!”

따로 불려나간 춘향은 아직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는 듯했다. 그녀는 온모가 한 말을 떠올리며 다른 시녀들을 위해 정의롭게 말했다.

“저들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지.”

온사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근데 다들 머리가 어떻게 된 것처럼 자기 주인도 구분 못 하잖아.”

“자기 주인이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은 계속 내 집안에 남겨둘 필요가 없으니, 빨리 짐 챙겨서 꺼지거라. 내가 어느 날 기분이 상해서 너희한테 손을 댈지도 모르지 않느냐.”

마지막 말을 들은 춘향이를 포함한 시녀들은 속으로 모두 소름이 끼쳤다.

그리고 온사는 또 뭔가 떠올랐는지 이어서 말했다.

“당연히 순수하고 착한 내 동생한테 가서 빌어도 된다. 혹시 아느냐? 나한테 좋은 값에 너희들을 사 갈지?”

마침 잘 됐다. 그녀가 온씨 가문을 떠난다면, 우선 돈부터 준비해야 할 것이다.

온사가 창문을 닫고 뒤를 돌자, 입구에 언제부터 서있었는지 모를 남자 때문에 깜짝 놀랐다.

그 남자의 얼굴이 보이자, 온사는 속에서 강한 증오심이 일었다.

그녀는 서서히 입을 열었다.

“큰오라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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