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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Autor: 아정이는 고수파
진민정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내가 이렇게 대놓고 밑바닥을 보이며 체면을 깎아내릴 줄은 몰랐다는 듯, 그녀의 안색은 몹시 난처해졌다.

주천우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둘이 다투기라도 한 거야? 대체 언제?”

나는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읊조렸다.

“바로 나흘 전, 이 기집애가 나랑 같이 너 찾아가고 싶어 하던 걸 내가 거절했을 때.”

그러니까 억울하고 분한 마음에 나한테 복수하겠답시고 미리 주천우를 찾아간 것이었다.

“겨우 그것 때문에?”

주천우는 여전히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이었다.

사실 이 일뿐만이 아니었다. 최근 일 년 동안 진민정은 나와 주천우 단둘이 보내는 시간을 온갖 방법으로 방해해 왔다.

내가 그를 만나러 가려고 할 때마다 진민정은 나를 붙잡고 늘어지며 여행을 같이 가자고 떼를 쓰거나, 아파서 도움이 필요하다고 징징거렸다.

우리가 커플 링을 맞출 때도 그녀는 늘 은근슬쩍 비슷한 디자인을 사서 제 손에 끼고 다녔다.

나도 바보가 아니었기에 그나마 좋게좋게 그녀와 연을 끊어주려 했던 거였다.

하지만 사람이 이렇게까지 뻔뻔할 수 있을 줄은 몰랐다.

진민정은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느릿느릿 자리에서 일어나며 가냘픈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해, 내가 갈게.”

그러자 의자가 뒤로 나자빠질 정도로 덜컹 소리를 내며 주천우가 벌떡 일어났다.

그는 진민정의 앞을 가로막아 서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으름장을 놨다.

“네가 민정이를 쫓아내면 나도 갈 거야.”

“그럼 너도 가.”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받아쳤다. 얼굴엔 차가운 무덤덤함만이 감돌았다.

주천우의 얼굴이 순간 멍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그를 집에서 내쫓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평소 싸울 때조차 보통 내가 먼저 머리를 숙이곤 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정말이지 진저리가 났다.

주천우는 꼼짝도 하지 않은 채 이를 악물고 나를 고집스럽게 노려보았고 진민정은 콧방귀를 뀌더니 그의 손을 잡고 억지로 밖으로 끌어당겼다.

“우리 가자! 저 기집애가 뭔데 우릴 이렇게 괴롭혀? 네가 이럴수록 앞으로 저년한테 험한 꼴만 더 당해!”

결국 주천우는 그녀에게 이끌려 밖으로 나갔다.

그제야 나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접시의 계란프라이를 쓰레기통에 쏟아버린 뒤, 방으로 들어가 짐을 싸기 시작했다.

밤에 잠을 청하려는데, 또 다른 절친에게서 갑자기 문자가 날아왔다.

[헐! 대박, 나연아, 나 지금 백화점에서 뭐 찍었는지 좀 봐봐!]

첨부된 사진을 클릭해 보니 주천우와 진민정이 제경시에서 가장 유명한 쇼핑몰에서 데이트를 즐기고 있는 모습이었다.

진민정은 그의 팔짱을 낀 채 몸을 바짝 밀착하고 있었는데, 영락없이 열애 중인 여느 커플 같았다.

어쩌면 내가 모르던 아주 오래전부터 두 사람은 늘 이런 식이었을지도 모른다.

친구는 격분하며 소리쳤다.

[진짜 미친 거 아냐? 둘이 대놓고 네 등 뒤에서 바람을 피우다니! 네가 그동안 걔들한테 어떻게 해줬는데, 나 진짜 열불이 터져서 못 참겠어.]

가슴이 덜컥 내려앉아 친구를 말리려던 찰나였다.

휴대폰 액정에 영상 통화 알림이 떴다. 전화를 받자마자, 화면 속 친구는 잔뜩 분노한 암사자처럼 씩씩거리고 있었다.

수화기 너머 친구는 두 사람을 향해 맹렬히 욕을 퍼붓고 있었다.

“이런 파렴치한 인간들 같으니라고! 진짜 뻔뻔하다, 너 나연이한테 미안하지도 않아? 네가 돈 한 푼 없던 시절, 자기 생활비 쪼개가며 너한테 갖다 바친 게 누구였는데! 그리고 너 진민정! 너 정말 인간말종이 따로 없네. 네 일자리 전부 나연이가 발 벗고 나서서 구해준 거잖아! 걔 아니었으면 네가 감히 그런 좋은 회사에 들어갈 수 있었겠어?”

진민정은 차갑게 굳은 표정으로, 전혀 부끄러운 기색 없이 받아쳤다.

“내가 억지로 도와달라고 했어?”

“그만해, 다들 입 닥쳐!”

주천우가 갑자기 격노하며 소리쳤다.

그는 카메라를 똑바로 바라보며 침착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연아, 우리 얘기 좀 해야겠어. 네가 정말 오해하고 있는 거야. 내일 아침에 널 찾아가서 모든 걸 확실하게 설명해 줄게.”

친구는 그에게 욕설을 퍼붓고는 곧바로 전화를 끊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친구를 잠시 위로해 준 뒤 곧장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비행기는 거의 여섯 시간이나 더 날아가야 했다.

한숨 푹 자고 일어났을 때는 이미 아침 9시였다.

나는 아침을 먹고 주천우가 와서 모든 것을 명확히 해줄 것을 기다렸다.

하지만 11시가 되도록 그는 오지 않았다.

나는 더 이상 아무런 동요도 없이 덤덤하게 캐리어를 끌고 집을 나섰다.

그때 주천우에게서 전화가 걸려왔고 그의 목소리는 다급했다.

“나연아, 오후에 널 찾아갈게. 민정이가 갑자기 식중독에 걸려서 병원에 데려가야 해.”

“알았어.”

어쩌면 너무나도 여러 번 약속을 어겼기 때문일까.

그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미안하다는 듯 말했다.

“꼭 기다려 줘, 내가 다 보상해 줄게.”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그의 모든 연락처를 차단하고 삭제했다.

기내에서 긴 잠을 청한 끝에 마침내 프랑스에 당도했고 짐을 챙겨 공항 밖으로 나서는데 집주인 아주머니의 전화가 왔다.

목소리에는 공포가 서려 있었다.

“나연아, 네 집 문 앞에 웬 남자가 계속 서 있어. 아무리 가라고 해도 안 가는데 어떡하지? 경찰에 신고해야 할까?”

나는 나지막이 대답하며, 택시를 잡는 동시에 말했다.

“네, 그렇게 하셔도 돼요.”

주천우가 집 앞에서 얼마나 오래 기다렸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내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미친 사람처럼 전화를 뺏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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