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오전 11시, 서울 성북동 서경그룹 본가 그랜드 볼룸.
은서는 대기실 문틈으로 연회장을 봤다. 전날 밤 조사받던 사람들이 하객들의 인사를 받고 있었다. 변호인들과 함께 돌아와 치료를 받았다는 보고를 듣고도 믿기지 않았는데, 조수현은 이미 샴페인 잔을 들고 웃고 있었다.
“불편하시면 입장 순서를 바꾸겠습니다.”
윤 실장이 물었다. 은서는 가방 속 태블릿을 확인했다. 밤새 받은 자료와 자신이 준비한 화면이 차례대로 열렸다.
“그대로 할게요. 저 사람들은 제가 못 들어올 거라고 생각하잖아요.”
윤 실장이 연결 장치의 표시등을 확인해 줬다. 은서는 화면을 잠갔다가 제 손으로 다시 열었다. 어머니 이름이 가장 먼저 보였다. 잠깐 그 글자에 손끝을 댔다가, 밖에서 다가오는 발소리에 태블릿을 가방으로 돌려놓았다.
거울 속 은서는 잔뜩 차려입고 있었다. 드레스는 약혼식에 어울
밤 11시, 서울 용산구 한남동 서경 펜트하우스 45층 ‘빛의 아틀리에’.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잦아들고 방 안이 조용해졌다. 통유리창 너머 한강에는 불빛이 길게 번졌고, 천장 채광 돔에는 서울의 밤하늘이 보였다. 아이들은 베이비룸에서 축제의 피로를 잊은 채 잠들어 있었다.은서는 얇은 순백 실크 슬립만을 걸친 채, 45층 빛의 아틀리에 한가운데 서 있었다. 테이블 위 투명 방탄 아크릴 큐브 안에는 한때 족쇄였던 ‘백금 앵클릿’이 영구히 잠들어 있었고, 은서의 발목에는 영원한 사랑과 헌신의 증표인 ‘핑크 다이아몬드 발찌’가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축제에서 받은 작은 꽃이 가방 안에 남아 있었다. 은서는 물컵에 줄기를 담가 선반에 놓았다. 스위스에서 가져온 자갈 두 개 옆이었다. 둘 다 값비싼 보석은 아니었지만 아이들이 자기 손으로 찾아 건넨 것들이었다.창가에 서니 성수동에서 비를 맞던 밤이 떠올랐다. 그때 은서는 잃어버린 돈을 되찾으면 자신의 삶도 되찾을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돈을 갚고, 가문을 벗어나고, 새로운 이름으로 일을 하게 된 뒤에도 해야 할 말은 남아 있었다.싫다는 말. 아프다는 말. 혼자 있고 싶다는 말.사랑한다는 말도 그 말들을 할 수 있게 된 뒤에야 제 모양을 찾았다. 은서는 열린 문을 바라봤다. 남자가 들어오면 오늘 그림 하나를 더 그려도 되겠느냐고 묻지 않을 것이다. 먼저 원하는 것을 말하고, 함께 보낼 시간을 고를 것이다.큐브 안의 앵클릿을 잠깐 보고 시선을 거뒀다. 매일 들여다볼 필요는 없었다. 지금 발목에 있는 장신구는 자기 손으로 채웠고, 원하면 오늘 밤에도 벗어둘 수 있었다.벅, 벅.묵직한 발소리와 함께, 셔츠 단추를 세 개 푼 시후가 소리 없이 다가왔다. 남자의 긴 두 팔이 은서의 허리를 단숨에 낚아채며, 제 뜨거운 맨가슴 위로 밀착
화창한 오월의 주말 오후, 서울 성북동 故 서혜진 박물관 및 아카데미 후원 그랜드 가든. 어린 시절, 16살의 은서가 고립된 채 피눈물을 삼키며 갇혀 있던 성북동 대저택. 그때 정원으로 나가는 문을 찾아 헤매던 은서는 오늘 하객들을 맞고 있었다. 푸른 잔디밭에는 ‘서경-EUN 감사 패밀리 가든 대축제’의 테이블이 길게 놓였다.윤태준 실장을 비롯해 10년간 두 사람의 곁을 목숨 걸고 지켜온 임직원들, 성북동 장학재단 청년 장학생 100인, 그리고 각국 주한 대사와 유럽 황실 귀빈 수백 명이 정원을 가득 메웠다. 고운 전통 한복을 차려입은 쌍둥이 도윤과 서아가 잔디밭 위를 아장아장 뛰어다니며 하객들에게 장미 꽃잎을 나누어주었다.“꽃! 예쁜 꽃!”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봄바람을 타고 퍼져나갈 때마다, 하객들의 입가에 따스한 미소가 번져났다. 단상에 오른 은서가 마이크를 잡았다.은서는 단상에 오르기 전 직원들이 앉은 테이블을 돌았다. 늘 복도에서 마주치던 사람의 가족을 오늘 처음 소개받기도 했다. 어린아이가 아버지의 손을 꼭 잡고 있자 그녀는 먼저 몸을 낮춰 인사했다.윤 실장은 여전히 정문 쪽을 살피고 있었다. 시후가 다가가 잔을 건넸다.“교대했으면 앉아. 오늘은 손님으로 온 가족도 챙겨야지.”“습관이 남아서 그렇습니다.”“나도 고치는 중이야.”윤 실장이 짧게 웃었다. 은서는 그 표정을 보고 마음이 놓였다. 두 사람의 위기 뒤에서는 누군가의 식사와 퇴근도 자꾸 밀렸을 것이다. 오늘 하루의 감사가 그 시간을 다 갚지는 못해도, 없던 일처럼 지나치고 싶지 않았다.행사 담당자가 마이크 순서를 알렸다. 은서는 내려갈 때 바로 함께 앉겠다고 약속하고 단상으로 향했다. 먼 곳에서 온 귀빈보다 방금 소개받은 아이의 얼굴이 먼
자정, 서울 용산구 한남동 ‘EUN’ 글로벌 타워 30층 최상층, ‘유리궁전’.사방 통유리창과 천장 채광 돔 너머로 한강의 황금빛 야경과 서울의 은하수 같은 별빛이 침실 바닥 위로 쏟아져 내렸다. 비엔날레 대상 트로피를 장식장 위에 올려둔 은서는, 얇은 실크 슬립 가운만을 걸친 채 창가에 서서 한강을 바라보고 있었다.호텔에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은서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집에 와 아이들 얼굴을 보고, 씻고, 따뜻한 물을 마신 뒤에야 하루가 끝나는 느낌이 들었다. 시후는 그녀가 창가에 서는 동안 옆 의자에 앉아 있었다.“또 가도 괜찮을 것 같아요. 그 행사장.”은서가 먼저 말했다.“오늘 잘했다고 말해도 되나?”그녀는 돌아보며 웃었다.“네. 오늘은 듣고 싶네요.”시후가 잘했다고 말했다. 공포를 견뎌낸 것을 시험에 통과한 일처럼 칭찬하지 않고, 그녀가 정한 일을 끝냈다는 뜻으로 들렸다. 은서는 남자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트로피가 놓인 장식장을 지나며 그는 더 잘 보이는 곳에 옮겨줄까 물었다. 그녀는 지금 자리가 좋다고 했다. 들어설 때마다 가장 먼저 보아야 할 물건은 아니었다. 아이들 사진과 책 옆에 있어도 그 영광이 줄어들지 않았다.스륵-다가온 시후의 큰 손이 은서의 실크 슬립 어깨끈을 부드럽게 밀어 내렸다. 가운이 바닥으로 사락거리며 흘러내리고, 달빛 아래 드러난 은서의 눈부신 나신 위로 시후의 육중한 체구가 덮쳐왔다. 시후가 은서를 안아 올려 킹사이즈 침대 매트리스 위로 조심스럽게 눕혔다.침대 옆 작은 서랍에는 평소 쓰는 머리끈과 립밤이 놓여 있었다. 은서는 남자가 벗어둔 시계를 그 옆에 올렸다. 물건들이 뒤섞여도 누가 무엇을 숨겼는지 먼저 의심하지 않는 방이었다.
오후 7시,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 다이너스티 홀.천장 와이어가 끊어지며 5톤 강철 조명탑이 떨어져 내리고, 시후가 피를 흘리며 은서를 감싸 안았던 바로 그 장소. 공포와 피비린내 나는 비극의 상흔이 서려 있던 그 홀이, 오늘 밤 해외 수백 명의 글로벌 귀빈들이 운집한 가운데 찬란한 영광의 무대로 다시 태어났다. 스위스 연방 문화재청과 프랑스 명품협회가 공동 주관하는 ‘세계 앤틱 보석 비엔날레 10주년 특별 헌정식’.은서는 행사장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몸이 기억하는 방향이었다. 시후도 그녀의 시선을 따라봤지만 다 괜찮다는 말로 덮지 않았다.행사 책임자가 점검 결과를 설명했다. 은서는 자료를 읽고 무대에서 이동할 길을 직접 걸었다. 그날 쓰러졌던 자리에는 다른 무대 마감이 놓여 있었다. 흉터처럼 보이는 것은 남아 있지 않았지만, 발이 잠시 멈추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다른 곳에서 해도 돼.”시후가 말했다.“오늘은 여기서 할래요. 다만 조금만 같이 있어요.”은서는 무대 바닥의 경계선을 발끝으로 더듬었다. 그날과 달라진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사람들은 이미 점검했다고 했지만 자신의 발로 걸어봐야 알 수 있는 것도 있었다.시후에게는 다른 방향을 보라고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이 기억하는 장면도 서로 다를 것이다. 은서는 잠깐 그의 옆얼굴을 봤다. 남자는 천장보다 그녀가 멈춘 발을 보고 있었다.“조금만 더 걸어볼게요.”그가 길을 비켰다. 은서는 무대 끝까지 갔다가 돌아왔다. 스태프가 준비됐느냐고 물었을 때는 아직이라고 답했다. 얼마든지 기다리겠다는 말을 듣자 다시 물 한 모금 마실 여유가 생겼다.그가 그녀의 곁에 섰다. 은서는 천장보다 객석을 보려고 했다. 조금 뒤 사람들이 앉을 빈 의자들을 하나씩 세어보
밤 11시, 45층 빛의 아틀리에.통유리창 너머로 서울의 찬란한 야경이 별빛처럼 쏟아져 들어오는 가운데, 시후가 금고에서 묵직한 벨벳 케이스를 꺼내 세공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은서는 낮에 정리한 물건 목록을 내려놓았다. 시후가 상자를 가져와도 바로 열지 않았다.“오늘 봐도 괜찮겠나?”그녀는 잠시 생각한 뒤 열어달라고 했다. 예전에 사용하던 추적 장치의 전원과 송신 기능은 이미 없애두었다는 설명도 들었다. 다시 누군가의 몸에 채울 물건으로 남기는 것이 아니었다.시후가 뚜껑에 손을 올렸지만 은서가 몸을 가까이 기울일 때까지 기다렸다. 그녀는 발목에 있는 새 발찌를 한 번 만졌다. 비슷한 금속의 감촉인데 지금은 그것을 벗는 데 남자의 열쇠가 필요하지 않았다. 차이를 알고 보니 예전 물건을 마주할 수 있었다.딸깍-케이스가 열리자, 그 안에서 은빛 금속이 스탠드 불빛을 받았다. 처음 계약을 맺은 밤, 시후가 은서의 발목에 직접 채워 넣었던 ‘위치추적기 내장 백금 앵클릿’. 은서의 도망을 막고, 제 새장 안에 영원히 가두기 위해 채웠던 지독한 집착과 억압의 족쇄였다.은서는 상자 안쪽을 손대지 않고 들여다보았다. 복사뼈에 닿던 차가움과 걸음을 옮길 때마다 따라오던 무게가 생각났다. 겉으로는 아름다운 보석이었다. 안쪽의 작은 틈을 모르면 누구도 무엇에 쓰인 것인지 알지 못할 것이다.“이걸 선물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어요?”시후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내 곁에 두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제 생각은 안 물었죠.”“그래.”은서는 대답을 듣고 고개를 들었다. 변명을 준비하는 얼굴은 아니었다. 시후가 자신을 구하러 왔던 날들도 떠올랐지만, 그 기억으
서울 용산구 한남동 서경 펜트하우스 45층. 한때, 외부의 빛이 한 줌도 들지 않던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은서를 가두고 감시하던 상징적인 공간, ‘창문 없는 방’.은서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며 자기 가방의 열쇠를 꺼냈다. 윤 실장이 먼저 열어주려다가 그녀가 손을 내밀자 비켜섰다. 시후는 뒤에서 아이들 가방을 받아 들고 기다렸다.문에 달린 장치를 새것으로 바꿀 때 은서는 안쪽에서 언제든 열리는지부터 확인해 달라고 했다. 이번에도 손잡이에 손을 얹고 잠금이 풀렸는지 확인했다. 예전의 무거운 문틀은 남아 있었지만 여는 방식은 달랐다.문틈으로는 비 냄새 대신 새로 정리한 나무장 냄새가 옅게 났다. 은서는 성수동에서 계약서를 코트 안에 넣고 들어왔던 밤을 잠깐 떠올렸다. 오늘은 가방 속에 아이들이 고른 자갈 주머니와 스케치북이 들어 있었다. 은서는 자갈 주머니가 눌리지 않도록 가방을 고쳐 들었다. 새 선반에 어느 쪽 돌부터 놓을지 생각하며 문 안을 들여다봤다.철컥-육중했던 삼중 방음 차단문이 열리는 순간, 은서의 맑은 눈동자에 눈부신 황금빛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다. 예전에 암막 벽체를 걷어낸 자리에 들어선 스마트 통유리창 너머로, 한강의 은빛 물결과 남산의 푸른 숲이 펼쳐져 있었다. 이번 단장으로 작업실에서도 그 풍경을 막힘없이 볼 수 있게 되었다.천장 중앙의 채광 돔으로 서울의 하늘이 보였다. 은서는 올려다보다 눈이 부셔 고개를 조금 낮췄다. 방 한가운데 놓인 천연 대리석 세공 테이블에도 빛이 닿았다. 보석함을 열면 마터호른 에메랄드 원석의 색이 어떻게 보일지 궁금해, 그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은서가 보내온 배치도대로 세공대와 생활 공간 사이에 낮은 구분장이 놓여 있었다. 날카로운 공구는 잠글 수 있는 서랍에, 가족 사진과 아이들 작품은 누구나 볼 수 있는 선반에 나뉘었다.그녀는 자갈 주머니를 열어 두 개의 돌을 선반에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