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재벌가에서 버림받은 아들 강도현. 열아홉에 쫓겨난 그는 13년 만에 월가를 뒤흔드는 투자자가 되어 돌아왔다. 그러나 그를 기다린 건 어머니의 장례식이었다. 평생 국밥집을 지키던 어머니는 한성그룹의 강제 철거에 맞서다 쓰러졌고, 아버지는 모든 것을 알고도 외면했다. 이복형은 조의금 1억을 던지며 다시 사라지라고 비웃는다. 도현은 돈을 받지 않았다. 대신 형의 개발사업 자금줄부터 끊었다. 어머니가 남긴 낡은 수첩에는 한성그룹을 세운 숨겨진 투자계약까지 적혀 있었다. 빼앗긴 이름과 재산, 그리고 어머니의 마지막 존엄을 되찾기 위해 도현은 선언한다. “당신들이 지키려던 그 회사를, 내가 사겠습니다.” 재벌가의 상속 전쟁은 곧 월가와 세계 자본을 뒤흔드는 거대한 복수로 번진다.
View More장마가 서울을 집어삼킨 지 엿새째였다.
새벽부터 쏟아진 비는 오후가 되자 더욱 거세졌다. 도로의 배수구마다 흙탕물이 소용돌이쳤고, 자동차들이 지나갈 때마다 누런 물이 인도까지 튀어 올랐다. 짙게 내려앉은 먹구름 아래로 건물들이 흐릿하게 잠겨 있었다.
강도현이 탄 검은 세단은 그 빗속을 뚫고 한빛병원 장례식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도현은 무릎 위에 놓인 휴대전화를 내려다보았다.
[고인 이정숙]
[향년 58세] [빈소: 한빛병원 장례식장 특3호실]어머니의 이름 앞에 붙은 '고인'이라는 두 글자가 낯설었다.
나흘 전 통화에서 어머니는 여느 때처럼 아들의 끼니부터 걱정했다.
'도현아, 거긴 지금 몇 시니?'
'새벽 두 시요.'
'아이고, 또 안 자고 일했어? 돈도 좋지만 잠은 자야지.'
그때 도현은 웃으며 대답했다.
'엄마도 이제 가게 그만하시고 좀 쉬세요. 제가 집 알아보고 있다니까요.'
'나는 괜찮아. 너나 밥 잘 챙겨 먹어.'
그것이 마지막 통화였다.
도현은 통화기록에 남아 있는 어머니의 이름을 손가락으로 눌렀다. 익숙한 번호가 화면에 나타났지만, 통화 버튼을 누르려던 손은 끝내 움직이지 않았다.
이제는 받을 사람이 없었다.
“대표님, 곧 도착합니다.”
앞좌석에서 박성재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도현은 휴대전화를 뒤집어 놓았다.
“도착하면 나부터 내려.”
“비가 많이 옵니다. 우산을 준비하겠습니다.”
“괜찮아.”
성재는 더 말하지 않았다.
뉴욕에서부터 함께 온 그는 도현이 비행기 안에서 단 한 번도 잠들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평소의 도현이라면 열 시간이 넘는 투자협상에서도 표정 하나 바뀌지 않았다. 상대가 준비한 숫자의 허점을 찾아내고, 계약서에 숨어 있는 위험을 짚어 내는 데 누구보다 냉정했다.
그러나 어머니의 부고를 들은 뒤로는 달랐다.
뉴욕 사무실에서 마지막으로 결재한 서류가 무엇인지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차가 장례식장 현관 앞에 멈췄다.
도현은 운전기사가 문을 열기도 전에 차에서 내렸다. 굵은 빗방울이 검은 코트의 어깨를 두드렸고, 머리카락에서 흘러내린 물이 목덜미를 적셨다.
성재가 우산을 펼쳐 뒤따라왔지만 도현은 이미 현관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자동문이 열리자 국화 향과 소독약 냄새가 뒤섞인 공기가 밀려왔다.
안내판 앞에서 걸음이 멈췄다.
이정숙.
어머니의 이름이었다.
그 아래에는 빈소 번호가 적혀 있었다.
도현은 한동안 그 글자를 바라보았다.
어머니는 자신의 이름을 또박또박 쓰는 사람이었다. 국밥집 앞에 붙여 놓은 손글씨 메뉴판에도, 아들에게 보내는 택배 상자에도 그랬다.
그런 이름이 이제 장례식장 안내판에 올라 있었다.
“도현아!”
빈소 입구에서 누군가 달려왔다.
김복순이었다.
어머니와 삼십 년 가까이 같은 시장에서 장사한 여자였다. 일흔이 넘은 복순은 도현의 얼굴을 보자마자 울음을 터뜨렸다.
“아이고, 우리 도현이 왔구나.”
도현은 복순의 두 손을 붙잡았다.
“아주머니.”
“정숙이가…… 네 엄마가…….”
복순은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거칠고 마른 손이 도현의 손을 꼭 움켜쥐었다.
“늦게 와서 죄송합니다.”
“네가 뭘 잘못했니. 먼 나라에서 오느라 얼마나 힘들었어.”
복순은 도현의 젖은 어깨를 손바닥으로 쓸었다.
“어서 들어가 봐라. 엄마 기다리겠다.”
도현은 빈소 안으로 들어갔다.
국화 향이 짙었다. 향로에서 피어오른 연기가 천장 쪽으로 가늘게 흩어졌다.
그리고 그 가운데 어머니가 있었다.
영정사진 속 이정숙은 연보라색 블라우스를 입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도현은 그 옷을 알아보았다.
삼 년 전 생신에 사 드린 것이었다.
어머니는 옷을 받아 들고 한참이나 잔소리를 했다.
'국밥집 하는 사람한테 이런 비싼 옷이 왜 필요하니?'
그러면서도 사진을 찍을 때는 그 옷을 입었다.
도현은 영정 앞에 섰다. 어머니의 얼굴을 바라보는 동안 입술이 조금씩 굳어졌다.
“엄마.”
대답이 없었다.
“나 왔어.”
사진 속 어머니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변호인은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도현은 그 침묵을 견딜 수 없었다."말씀하십시오.""어머님께서…… 돌아가셨습니다."도현은 움직이지 않았다.잠시 후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아닙니다."변호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사람을 잘못 확인한 겁니다. 우리 어머니는 국밥집에 계십니다."도현은 떨리는 손으로 의자 등받이를 붙잡았다."어제 저랑 통화했어요. 밥 먹으라고 하셨고, 가게 문 닫고 나가신다고 했습니다."그는 변호인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우리 어머니는 저 혼자 두고 가실 분이 아닙니다."변호인의 눈가가 붉어졌다.도현은 그제야 자신의 말이 얼마나 어린아이 같은지 깨달았다.그러나 멈출 수 없었다."제가 아직 아무것도 못 해 드렸습니다."그의 목소리가 갈라졌다."가게 그만두시라고 해도 싫다고 하셔서, 나중에 좋은 집 사 드리겠다고 했습니다. 여행도 보내 드리고, 손주도 안겨 드리고……."도현은 입술을 깨물었다."그런데 아직 아무것도 못 했는데……."변호인은 조심스럽게 작은 봉투를 내밀었다."병원에서 보관하던 소지품 일부입니다."도현은 한동안 봉투를 바라보다가 떨리는 손으로 받아 들었다.안에는 낡은 통장이 들어 있었다.도현은 그것을 알아보았다.어머니가 늘 장롱 깊숙한 곳에 넣어 두던 통장이었다. 자신이 드린 용돈을 쓰지 않고 모으신다는 걸 알고 몇 번이나 말렸지만, 정숙은 웃으며 나중에 쓸 데가 있다고 했다.도현은 통장 사이에서 접힌 종이를 발견했다.그것을 펼치자 삐뚤빼뚤한 글씨가 나타났다.*도현이 변호사 비용.*도현의 손이 멈췄다.어머니는 자신을 구하려고 평생 모은 돈을 들고 갔다.그 돈을 가방에 넣고 비를 맞으며 회장 저택까지 찾아갔다.자신이 평생 인정받고 싶어 했던 그 집에서,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 무릎을 꿇었을 것이다.도현은 종이를 바라보다가 입술을 떨었다."엄마……."그는 통장을 가슴에 끌어안았다."엄마, 왜 거길 갔어……."어머니에게 가지 말라고 했었다.자신이 해결하겠다고 했었다.그
*도현이한테 가야 하는데.*아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밥은 먹었을까.혼자 조사받으면서 얼마나 무서울까.정숙은 휴대전화를 꺼냈다.화면에는 도현의 부재중 전화가 남아 있었다.그녀는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연결되지 않았다.다시 걸었다.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정숙은 휴대전화를 가슴에 붙였다."우리 아들……."빗속으로 작은 목소리가 흩어졌다."엄마가 미안하다."그녀는 도현에게 미안했다.아버지 없는 아이로 태어나게 해서 미안했고, 남들처럼 넉넉하게 키워 주지 못해서 미안했다. 회사에서 그렇게 힘들게 일하는 줄 알면서도 괜찮다는 말밖에 해 주지 못했다.그런데 오늘은 아들이 억울한 누명을 썼는데도 아무것도 해 주지 못했다.정숙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큰길로 이어지는 경사로에 도착했을 때 갑자기 눈앞이 어두워졌다.그녀는 담장을 붙잡았다.가슴을 누군가 세게 움켜쥐는 것 같았다.숨을 들이마시려 했지만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정숙은 가방을 놓치지 않으려고 팔에 힘을 주었다.그 안에는 도현의 변호사 비용이 들어 있었다.아들에게 줄 돈이었다.그 돈만큼은 잃어버리면 안 됐다.그러나 발이 미끄러졌다.정숙은 무릎부터 아스팔트에 부딪혔다.가방이 옆으로 떨어지고, 휴대전화가 손에서 미끄러져 배수로 근처까지 굴러갔다.정숙은 몸을 일으키려 했다.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빗물이 얼굴을 때렸다.그녀는 가까스로 고개를 돌렸다.휴대전화 화면이 켜져 있었다.**도현이.**정숙은 그 이름을 바라보았다.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았다.그러나 손끝이 허공을 더듬을 뿐이었다.멀리서 자동차 불빛이 다가왔다.정숙은 입술을 움직였다."저기……."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차량은 속도를 줄이지 않고 지나갔다.바퀴가 튀긴 빗물이 정숙의 얼굴을 덮쳤다.그녀는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우리 도현이, 밥은 먹었을까.*마지막까지 그 생각뿐이었다.정숙은 휴대전화 쪽으로 손을 뻗었다.*엄마가 조금만 더 살아야 하는데.*아들이 억울한 누명을 벗는 걸 봐
"그렇게 아들이 불쌍하면 왜 처음부터 이런 집안에 들여보냈습니까?"정숙은 메모를 주워 손바닥에 꼭 쥐었다."그 애가 아버지한테 인정받고 싶어 했으니까.""그게 문제였죠."태준의 목소리가 낮아졌다."자기 자리가 아닌 곳을 탐냈으니까."정숙은 고개를 들었다."도현이는 네 자리를 탐낸 적 없어."태준은 정숙의 얼굴 가까이 몸을 숙였다."그럼 어머니가 대신 책임지시겠습니까?"정숙은 숨을 멈췄다."도현이가 가진 자료를 가져오세요. 그럼 제가 아버지께 말씀드려 볼 수도 있습니다.""무슨 자료?""거래 원본입니다. 도현이가 따로 보관한 기록이 있을 겁니다.""없다고 했잖니."태준의 표정이 차가워졌다."그럼 도와드릴 방법도 없겠군요."정숙은 다시 무릎을 꿇었다.이번에는 소파를 짚을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태준아, 제발……."태준은 한 발 물러섰다.정숙은 그의 구두 앞에 두 손을 모았다."도현이만 살려 다오. 내가 이렇게 빌게."그녀의 이마가 차가운 바닥에 닿았다."네 아버지한테 말 한마디만 해 다오. 도현이가 하지 않은 일이라고, 조사라도 제대로 해 달라고……."태준은 내려다보기만 했다.정숙은 눈물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내가 평생 네 앞에 나타나지 않으마. 도현이도 이 집에 다시는 오지 말라고 할게. 그러니까 감옥만은……."그때 태준이 말했다."어머니, 그런 약속은 이제 아무 소용 없습니다."정숙은 고개를 들었다."도현이는 이미 끝났습니다."태준은 손목시계를 고쳐 찼다."회사에서도, 아버지한테도요."정숙은 입술을 떨었다."그럴 리 없어…….""이제 그만 돌아가세요."태준은 경비실에 전화를 걸었다."손님 나가십니다. 대문 열어 두세요."정숙은 태준의 구두를 바라보았다.아들을 살려 달라고 빌던 상대는, 자신이 바닥에 무릎을 꿇은 동안 한 번도 눈을 맞추지 않았다.***현관으로 나왔을 때는 자정을 훌쩍 넘긴 뒤였다.정숙은 계단을 내려가기 전에 잠시 난간을 붙잡았다. 무릎이 심하게 저렸고, 일어설
태준이 웃었다.도현은 천천히 형에게 시선을 돌렸다."형은 내 결혼식에서 축사까지 했어.""그랬지.""내가 서연이랑 결혼해서 행복하다고 했을 때도 축하한다고 했잖아."태준은 와인잔을 내려놓았다."그래서?"그 한마디에 도현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태준은 동생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해할 필요조차 느끼지 않는 얼굴이었다."형이 내 아내를 이용해서 내 자료를 빼돌린 거야?""이제야 본론으로 들어가네."태준은 셔츠 소매를 정리했다."네가 일을 워낙 잘하잖아. 아버지가 중요한 투자 검토는 죄다 네게 맡기고, 나는 결과만 보고받으라고 하니 방법이 없었지.""그래서 서연이를 이용했어?""이용이라니. 서연이도 자기가 원하는 게 있었어."태준이 서연을 바라보자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웃었다."맞아. 나도 오빠가 잘되는 게 좋았으니까."도현은 그제야 자신이 밤새워 작성했던 보고서들을 떠올렸다. 동남아 물류회사 인수, 해외 특수목적법인 투자, 건설 계열사 자금 지원까지. 자신이 위험하다고 판단했던 사업들이 이상하게도 이사회에서 승인됐고, 그 과정에서 원래 보고서와 다른 내용이 올라간 적도 있었다.당시에는 단순한 내부 의견 조정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누군가 자신의 자료를 빼돌리고 불리한 내용을 지우거나 바꾸어 형에게 유리하게 만들었음을 알 수 있었다."서재 열쇠도 네가 가져갔어?"서연은 화장대 서랍에서 작은 은색 열쇠를 꺼냈다."당신이 직접 알려 줬잖아. 중요한 자료는 여기 보관한다고.""내가 널 믿었으니까.""그러니까."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그게 당신 문제야. 믿으면 안 되는 사람을 너무 쉽게 믿어."도현은 그녀를 바라보았다."내가 널 사랑한 게 그렇게 우스웠어?"서연의 표정이 잠시 굳었다. 그러나 미안함 때문은 아니었다. 그녀는 도현이 아직도 사랑을 이야기한다는 사실이 답답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당신은 왜 끝까지 그런 얘기만 해?""대답해.""그래, 우스웠어."그녀는 가운의 허리끈을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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