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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화. 혈흔

Author: 6jay
last update Petsa ng paglalathala: 2026-09-20 08:01:19

쿵-!

호텔 지하 2층 비상계단 철문이 시후의 무자비한 발길질에 찌그러지며 날아갔다. 계단을 굴러 떨어지며 도주하던 강현민이 사색이 되어 뒤를 돌아보았다. 어깨에서 피를 흘리는 강시후가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현민이 뒤로 물러날 때마다 구두 소리는 더 가까워졌다.

“히, 히익! 형님! 살려주십시오! 조수현 그 여자가 시켜서……!”

파앗!

시후가 뻗은 손에 현민의 멱살이 잡혔다. 몸을 빼려던 현민은 그대로 끌려가 콘크리트 벽면에 부딪쳤다.

쿵-!

시후의 다른 손이 강현민의 오른팔을 잡고 비틀어 올렸다.

우드득!

“크아아악-!”

어깨 관절이 꺾인 강현민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나뒹굴었다. 시후는 차가운 눈빛으로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 피 묻은 손을 닦아내며, 뒤따라온 검찰 수사팀 수사관들에게 턱짓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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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빠의 방에는 창문이 없다   제58화. 가브리엘

    밤 8시, 한남동 ‘EUN’ 플래그십 루프탑 가든.남산 타워와 한강의 화려한 야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테라스 위로 감미로운 재즈 선율이 흐르고 있었다. 와인 잔을 든 은서의 곁으로, 은빛 턱시도를 차려입은 프랑스 보석 평론가이자 로스웰 가문의 방계 거물, 가브리엘이 다가왔다.“정말 찬란하도록 아름다운 밤입니다, 은서 아가씨.”은서는 잔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손님을 맞았다. 초청 명단에서 읽었던 이름이었다. 파리의 사건 이후 로스웰이라는 성만 보면 먼저 경계하게 됐지만, 행사장에서 곧바로 적의를 드러낼 수는 없었다.“작품은 보셨나요?”“작품보다 만든 사람이 인상적이더군요.”그 말에 은서는 미소를 조금 거뒀다. 가브리엘은 진열장 쪽을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다. 그녀가 설명을 이어 갈 때마다 말을 끊고, 누구와 친분이 있는지 어떤 자리에 초대할 수 있는지를 늘어놓았다.은서는 그가 권한 별도 만찬을 거절했다. 상담은 아틀리에의 공식 창구로 해 달라고 했다. 손님들 사이에서 환하게 웃던 가브리엘의 입술이 잠깐 굳었다.“이런 기회는 매일 오지 않습니다.”“제 일정도 제가 정해요.”남자가 잔을 든 손을 느슨하게 흔들었다. 농담을 못 알아들었다는 듯 웃었지만 눈은 차가웠다. 은서는 옆으로 몸을 돌려 직원이 있는 방향을 확보했다.가브리엘의 눈빛 속에는 노골적인 탐욕과 매혹이 번들거리고 있었다. 그는 은서에게 한 걸음 더 바짝 다가서더니,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샴페인 잔을 건네며 은서의 하얀 손등을 향해 제 손을 뻗었다.“방돔 광장이라면 당신 이름을 더 크게 걸 수 있지요. 내 손을 잡으세요. 파리 사교계가 누구를 기다렸는지 보여드리겠습니다.”

  • 오빠의 방에는 창문이 없다   제57화. EUN

    개점 준비가 마무리되는 동안 은서는 매일 잠깐씩 아틀리에를 찾았다. 오래 서 있으면 복도에서 들었던 총성이 생각나 다리에 힘이 풀리곤 했다. 그럴 때는 직원들이 차를 가져오는 동안 의자에 앉아 주문서를 읽었다. 모두가 모른 척해 주는 것이 오히려 고마웠다.문을 여는 날 아침에는 가장 먼저 도착했다. 출입문 옆 스위치를 누르자 비어 있던 홀에 불이 차례로 들어왔다. 유리에 비친 얼굴이 조금 낯설었다.“대표님, 이쪽 배치 한번 봐 주세요.”직원이 부르는 호칭에 고개를 돌렸다. 뒤를 돌아봐도 자신 말고는 없었다. ‘대표님’이라는 호칭에 얼른 대답하고 직원이 가리키는 쪽으로 갔다. 오늘 배치부터 자신이 봐야 했다.은서는 조명을 조금 낮춰 달라고 했다. 보석보다 유리 반사가 먼저 보였다. 안내판의 어려운 감정 용어 두 개도 바꿨다. 손님이 처음 보는 단어에서 멈추면 그 뒤의 설명은 읽지 않을 것 같았다.마지막으로 계산대 뒤에 서 보았다. 성수동에서 잃었던 돈을 생각하면 통증이 없지는 않았다. 그래도 그 실패가 오늘 문을 여는 자기 손까지 빼앗지는 못했다.은서는 비어 있는 접수장을 폈다. 첫 칸에는 아직 아무 이름도 없었다. 오늘 누가 찾아와 어떤 일을 맡길지 모른다는 사실이 오래간만에 두렵지만은 아니었다.시후가 도착했을 때 은서는 직원의 명찰을 바로 달아 주고 있었다. 그의 손을 잡으러 바로 달려가지 않았다. 끝낸 뒤 돌아보며 손을 흔들었다.오전 11시, 서울 용산구 한남동 유엔빌리지 초입.백색 대리석과 투명한 통유리로 웅장하게 지어진 지상 4층 규모의 하이엔드 부티크, ‘EUN’ 글로벌 플래그십 아틀리에. 명품 패션지 편집장들과 유럽 및 중동 왕실 바이어 수백 명이 홀을 채운 가운데, 은서가 샴페인 골드 실크 드레스를 유려하게 차려입고 단상에 올랐다. 5,000억 마터호른

  • 오빠의 방에는 창문이 없다   제56화. 반격

    “죽어, 한은서!”조수현의 떨리는 손가락이 방아쇠를 당기려던 그때.팟-!은서가 주머니에서 꺼낸 고출력 앤틱 보석 감정용 UV 레이저 펜을 조수현의 두 눈을 향해 정밀하게 쏘아 올렸다.“꺄아아악-! 내 눈! 내 눈!”망막을 태우는 강렬한 섬광에 조수현이 비명을 지르며 허공을 향해 총을 난사했다.탕, 탕!파편이 천장 샹들리에를 부수며 빗나가는 순간, 은서는 바닥에 늘어뜨려 두었던 세공용 강철 와이어를 단숨에 낚아채 조수현의 발목을 걸어버렸다.쿵-!조수현이 볼품없이 바닥으로 고꾸라졌다.파앗-!계단을 박차고 올라온 시후가 발을 내리찍었다. 총을 다시 잡으려던 조수현의 손목이 구두 아래 눌렸다.우드득!뼈마디가 으스러지는 섬뜩한 파열음과 함께 흉기가 복도 끝으로 튕겨 나갔다.“크아아악-!”조수현이 피를 토하며 절규하는 순간, 윤태준 실장과 검찰 수사관들이 들이닥쳐 사색이 된 조수현의 온몸을 포박했다.“조수현 씨, 특수탈옥 및 살인미수 현행범으로 긴급 체포합니다.”은서는 벽에 등을 붙인 채 펜을 놓지 못했다. 윤 실장이 그녀의 앞에 쪼그려 앉았다.“이제 내려놓으셔도 됩니다.”손가락이 바로 펴지지 않았다. 다른 손으로 하나씩 떼어 낸 뒤 펜을 건넸다. 손바닥에는 눌린 자국이 선명했다. 시후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서야 무릎이 떨리는 걸 알았다.“문 뒤에 사람들이 있어요.”그녀가 가장 먼저 한 말이었다. 윤 실장이 경호원에게 확인을 지시했다. 잠시 후 문이 열리고 모두 무사하다는 대답이 들려왔다.문 안의 사람들 목소리를 듣고 은서는 길게

  • 오빠의 방에는 창문이 없다   제55화. 탈옥

    윤 실장의 보고가 끝나자 은서는 침대에서 일어나 옷을 챙겼다. 시후는 전화를 귀에 붙인 채 복도로 나갔다. 문틈으로 짧은 지시가 이어졌다. 정문을 비우지 말 것, 거주 구역에 남은 사람부터 확인할 것.은서는 서랍 안쪽의 작업용 펜을 집어 들었다. 전날 풀어 놓은 세공용 와이어도 작은 주머니에 넣었다. 손에 익은 도구라도 쥐고 있어야 떨림이 덜했다. 휴대폰을 충전선에서 빼자 배터리는 거의 가득 차 있었다.시후가 방으로 돌아왔다. 옷을 입고 기다리는 은서를 보자 문가에서 걸음을 멈췄다.“어디 가려고.”“아직 남아 있는 분들이 있어요.”“윤 실장이 확인 중이다. 넌 여기 있어.”은서는 그의 소매에서 손을 뗐다. 문간까지 나왔다고 자신이 모든 사람을 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복도를 뛰어가는 사람을 붙잡아 같은 질문을 하기보다, 방 안의 불을 켜 두고 누가 지나가는지 살폈다.책상 위에는 어젯밤 마신 컵이 그대로였다. 얼마 전까지 차를 마시며 앉아 있던 집에서 또 조수현을 기다리고 있었다. 은서는 컵을 안쪽으로 밀었다. 손이 떨릴 때 건드려 깨뜨릴까 봐 그랬다.시후가 바깥으로 돌아서자 잠깐 붙잡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혼자 남지 말게 해 달라는 말을 꺼내면 그가 곧바로 문을 잠글 것 같았다. 은서는 대신 휴대폰을 들었다.“저도 연락할 수 있게 해줘요. 안에서 무슨 일이 나면 먼저 알릴게요.”그가 그녀의 손에 들린 화면을 보고 짧게 알겠다고 했다. 은서는 그 대답을 들은 뒤에야 문옆에 비켜섰다. 서로 보이지 않아도 목소리를 전할 수는 있었다.은서는 문간에 선 채 기다렸다. 아래층에서 발소리가 바쁘게 오갔다. 아까 차를 가져다준 사용인이 손님용 담요를 안고 복도를 지나가기에, 휴대폰이 있는지 물었다. 없다는 대답에 잠시 자신

  • 오빠의 방에는 창문이 없다   제54화. 숙청

    밤 10시, 서울 성북동 서경그룹 본가 대저택.현관에 들어선 은서는 습관처럼 안쪽 계단을 먼저 봤다. 조수현이 사람을 세워 놓고 기다리던 자리였다. 오늘은 사용인 한 명이 코트를 받으러 나왔을 뿐이었다.“따뜻한 것 좀 드시겠습니까?”은서는 대답이 늦었다. 무엇을 잘못했느냐는 말보다 차를 마시겠느냐는 말을 먼저 듣는 건 이 집에서 낯선 일이었다. 신발을 벗으며 괜찮다고 했다가 다시 돌아봤다.“아니요. 부탁드릴게요.”사용인은 다른 사람을 쳐다보지 않고 곧바로 차를 가지러 갔다. 은서는 빈손을 무릎에 얹었다. 이 집에서 자신의 대답만 듣고 움직이는 뒷모습을 오래 따라봤다. 찻잔이 나오기까지 꽤 긴 시간이 흐른 것 같았다.컵을 든 채 앉은 소파 옆에는 장식장이 비어 있었다. 조수현이 자기 취향으로 골랐던 도자기들이 치워진 자리였다. 어머니가 쓰던 물건이 돌아온 것은 아니었다. 그 사실 때문에 홀가분하기만 하지는 않았다.시후는 병원에서 온 연락을 복도에서 받았다. 은서는 멀리서 그의 등을 봤다. 회의장에서는 아버지에게 한마디도 지지 않던 남자가, 막상 의식 상태를 묻는 목소리는 낮았다.통화를 마치고 돌아오자 은서가 먼저 물었다.“당장 위독하신 건 아니죠?”“검사를 더 받는다.”“다행이에요.”그 말이 강문혁을 용서한다는 뜻은 아니었다. 시후도 그렇게 받아들이지는 않은 듯했다. 컵을 내려놓는 은서의 손을 잠깐 감쌌다가 거뒀다.“피곤하면 먼저 올라가.”“조금만 여기 앉아 있다가요.”어린 날에는 허락 없이 앉지 못하던 자리였다. 은서는 등을 소파에 붙였다. 시후는 재촉하지 않고 옆에 앉았다. 침묵이 길어져도 누군

  • 오빠의 방에는 창문이 없다   제53화. 주총

    인터폰의 잡음 너머로 종이 넘기는 소리가 들렸다. 시후가 몸을 일으켜 스피커 음량을 높였다. 은서도 침대에 기대앉았다. 윤 실장이 서울의 회의 소집 공문을 막 확인했다고 했다.“시간부터 말해.”시후가 협탁의 시계를 보며 물었다. 통화 화면에는 제네바와 서울 시각이 나란히 떠 있었다.— 부사장님! 서울의 강문혁 명예회장이 태강그룹 잔존 이사들과 결탁하여, 내일 오전 긴급 임시주총을 열고 부사장님의 직무집행정지 가처분 및 은서 팀장의 상속권 박탈 쿠데타를 상정했습니다!“서울 시간 내일 오전 9시입니다. 기존 위임장에 이의를 제기하며 참석자들을 다시 모으고 있습니다.”시후는 비행 시간을 계산하고 곧바로 출발 준비를 시켰다. 은서는 그가 통화를 마치기 전에 카일에게 연락했다. 잠이 덜 깬 목소리가 들렸지만 사정을 듣자 바로 짧아졌다.“개인 신탁 자산에 관한 확인서와 주식 취득 내역이 필요해요.”“매입을 위임하신 물량은 결제가 끝났습니다. 담당자가 원본 대조까지 해 드리지요.”광산 인수와 함께 준비했던 지분 매입이었다. 은서는 추가 취득한 보통주 5%를 기존의 의결권 있는 우선주 10%와 나란히 적었다. 자기 몫은 합계 15%. 누구에게 잠시 빌린 의결권인지, 실제 소유한 주식인지부터 분리했다.시후가 그 메모를 내려다봤다.“내가 처리해도 된다.”“제 재산을 빼앗겠다는 말이에요. 저도 같이 설명할게요.”은서는 날짜가 다른 두 확인서를 위아래로 나눠 넣었다. 펼쳤을 때 어떤 취득이 먼저였는지 보이도록 했다. 남이 정리한 순서보다 자신이 설명할 순서로 챙겨야 덜 떨릴 것 같았다.이번에는 그가 서류를 가져가지 않았다. 빈 가방을 열어 은서 앞에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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