ログイン“내가 당신한테 죽임을 당했다고?”연희는 권태겸을 노려봤다.권태겸은 웃지 않았다.“죽이려고 했지.”“그런데 왜 살아 있는데요?”“네 엄마가 가로챘으니까.”정애가 떨리는 목소리로 끼어들었다.“태겸아, 그만해.”“십 년 동안 숨겨놓고 이제 와서 내가 나쁜 놈인 척하네.”“당신이 먼저 시작했잖아.”“내가?”권태겸이 헛웃음을 쳤다.“네가 내 딸을 데리고 도망간 날부터 시작된 거야.”연희의 얼굴이 굳었다.“내가 당신 딸이라고?”권태겸이 그녀를 바라봤다.“그래.”세아가 비웃었다.“또 시작이네.”권태겸이 세아를 노려봤다.“넌 조용히 해.”“왜? 나도 당신 딸이잖아.”“네년은 내 딸이 아니다.”세아의 표정이 굳었다.“뭐?”“네 친아버지는 따로 있어.”연희가 헛웃음을 터뜨렸다.“아주 돌아버리겠네.”그녀가 손으로 머리를 쓸어 넘겼다.“오늘만 친아버지가 몇 번째야.”아버지가 낮게 말했다.“연희야.”“당신도 입 다물어요.”연희가 돌아섰다.“당신도 십 년 동안 나한테 거짓말했잖아.”“널 살리려고 했다.”“그 말 지겹다고!”연희가 소리쳤다.“왜 아무도 나한테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어?”정애가 울먹였다.“네가 기억을 잃었으니까.”“내가 기억을 잃은 게 아니라!”연희가 세아를 바라봤다.“누군가 일부러 기억을 없앤 거잖아.”그 순간 권태겸의 눈빛이 흔들렸다.연희가 놓치지 않았다.“당신 알고 있죠.”“뭘.”“내 기억을 누가 지웠는지.”권태겸은 대답하지 않았다.연희가 다가갔다.“말해.”“그건 네 엄마가 했다.”정애가 소리쳤다.“거짓말이야!”“그럼 네가 했냐?”정애가 입을 다물었다.연희의 시선이 두 사람 사이를 오갔다.“둘 다 했어?”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세아가 낮게 말했다.“언니.”“왜.”“기억을 지운 건 엄마도 아빠도 아니야.”연희가 돌아봤다.“그럼 누구야.”세아가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내밀었다.영상 하나가 재생됐다.어두운 병실.침대에 누워 있는 연희.그 옆에 누군
연희의 얼굴이 굳었다.“세아야, 네 아빠는 죽었잖아.”“그렇게 알고 있었지.”세아가 입술을 깨물었다.“나도 그렇게 믿었어.”“그럼 저 안에 있는 사람이 누구야?”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대신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직접 봐.”형사가 손전등을 들고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아무도 움직이지 마세요.”낡은 창고 안쪽에는 오래된 의자 하나와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그리고 그 뒤에 남자가 앉아 있었다.연희는 숨을 삼켰다.얼굴은 늙어 있었지만 사진에서 보던 얼굴과 같았다.“……아빠?”남자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연희야.”그 한마디에 연희의 다리가 풀렸다.“살아 있었어?”남자는 대답 대신 웃었다.“네가 많이 컸구나.”연희가 비틀거리며 다가갔다.“엄마는 알고 있었어?”남자의 시선이 세아에게 향했다.“네 엄마가 데려왔어.”“뭐?”연희가 세아를 돌아봤다.“네 엄마가 아빠를 숨겼다고?”세아가 고개를 끄덕였다.“십 년 동안.”“왜?”“아빠가 죽은 척해야 내가 살 수 있다고 했어.”연희의 표정이 굳었다.“누가 죽이려고 했는데?”남자가 입을 다물었다.연희가 다시 물었다.“누가요.”그때 뒤에서 정애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내가.”연희가 천천히 돌아봤다.“엄마?”정애가 창고 안으로 들어왔다.“내가 네 아빠를 죽였다고 신고했어.”연희는 멍하니 그녀를 바라봤다.“왜.”“널 살리려고.”“또 그 말이야?”연희가 헛웃음을 터뜨렸다.“대체 이 집안 인간들은 왜 입만 열면 날 살리려고 했대?”정애가 울었다.“네 아빠가 사고를 냈어.”“무슨 사고?”“네 동생을 죽였어.”세아의 얼굴이 굳었다.“엄마.”“그만.”“이제 와서 또 거짓말하지 마.”세아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아빠가 죽인 게 아니잖아.”연희가 세아를 바라봤다.“그럼 누가 죽였는데?”세아가 입을 열지 못했다.연희가 한 걸음 다가갔다.“세아야.”“……나야.”“뭐?”“내가 죽였어.”창고 안 공기가 얼어붙었다.세아가 눈물
연희는 마지막 메시지를 다시 읽었다.[연희야, 이제부터 내가 하는 말은 전부 거짓말이라고 생각해.]손끝이 떨렸다.“이게 무슨 뜻이야.”정애가 급하게 물었다.“뭐가 왔어?”연희는 대답하지 않았다.대신 휴대폰을 형사에게 내밀었다.“발신 추적해 주세요.”형사가 화면을 확인했다.“번호는 세아 씨가 맞는데…”“그런데요?”“문제가 있습니다.”형사의 표정이 굳었다.“이 메시지, 지금 전송된 게 아닙니다.”연희가 눈을 크게 떴다.“뭐라고요?”“예약 전송으로 설정돼 있었어요.”“언제 예약한 건데요?”형사가 화면을 확대했다.“오늘 오후 11시 30분.”연희가 시계를 봤다.아직 10시도 되지 않았다.“그럼 세아가 사고 나기 전에 예약했다는 거예요?”“그럴 가능성이 있습니다.”연희는 입술을 깨물었다.그때 정애가 갑자기 말했다.“그 문자… 나한테도 왔어.”연희가 돌아봤다.“뭐?”정애가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내밀었다.똑같은 문장이었다.[엄마, 이제부터 내가 하는 말은 전부 거짓말이라고 생각해.]연희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엄마.”“왜.”“세아가 엄마한테 무슨 말을 했어?”“아무것도.”“거짓말하지 마.”“진짜야.”“그럼 왜 세아가 엄마한테도 같은 문자를 예약해놨는데?”정애는 대답하지 못했다.연희가 휴대폰을 빼앗아 메시지를 확대했다.수신 시간은 같았다.그런데 발신 번호가 달랐다.하나는 세아의 번호.다른 하나는.“이 번호 누구 거야?”정애의 얼굴이 굳었다.연희가 다시 물었다.“엄마, 이 번호 알아?”“몰라.”“정애 씨.”형사가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이 번호 조회해보겠습니다.”잠시 후 형사의 표정이 변했다.“등록 명의자가 없습니다.”“선불폰이에요?”“아니요.”형사가 화면을 바라봤다.“십 년 전에 해지된 번호입니다.”연희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졌다.“십 년 전?”“네.”“그 번호를 세아가 어떻게 알아요?”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그때 산길 쪽에서 경찰관이 뛰어왔다.“찾았습
“세아가 없어졌다고요?”연희가 형사의 멱살을 잡았다.“차에서 피가 나왔고, 문은 열려 있고, 사람만 없어졌는데 그게 무슨 말이에요?”형사가 연희의 손을 떼어냈다.“주변 수색 중입니다. 일단 진정하시고—”“진정?”연희가 웃었다.“내 아이 없어졌을 때도 다들 그 말부터 했어요. 진정하라고. 기다리라고. 확인 중이라고.”그녀가 피 묻은 조수석을 가리켰다.“이번에도 사람 하나 없어지고 나서 확인 중이라고 할 거예요?”“연희야.”들것 위의 정애가 불렀다.연희는 곧장 돌아섰다.“엄마, 아까 무슨 말이었어.”“뭐가.”“세아가 아니었다며. 조수석 문 연 사람.”정애의 입술이 굳었다.“얼굴은 못 봤어.”“남자였어, 여자였어?”“모른다.”“엄마.”“진짜 몰라.”연희는 정애를 가만히 바라봤다.그러다 세아 휴대폰을 들어 보였다.“그럼 이건?”화면에는 전송되지 못한 문장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네 엄마 말 믿지 마.]정애의 눈이 흔들렸다.연희가 놓치지 않았다.“왜 이런 걸 썼을까.”“내가 어떻게 알아.”“아까 차 안에서 세아가 엄마도 나한테 숨기는 게 있다고 했다며.”“사고 직전이었어. 걔가 제정신이었겠니?”“그래서 또 미친 사람 만들게?”정애가 입을 다물었다.연희의 목소리가 차갑게 식었다.“세아가 나한테 한 짓, 나 안 잊어. 근데 세아가 거짓말쟁이라는 이유로 세아가 하는 말이 전부 거짓이 되는 것도 아니야.”정애가 눈을 감았다.“연희야. 지금은 세아부터 찾아.”“찾을 거야.”연희가 한 걸음 가까이 갔다.“찾고 나서 엄마 얘기도 들을 거고.”그때 현장 감식반 직원이 다가왔다.“보호자분 맞으시죠?”“네.”“차량 안에서 확인된 혈흔은 조수석에 집중돼 있습니다.”연희가 굳었다.“많이 다친 거예요?”“그건 정밀검사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게 하나 있습니다.”직원이 투명 증거봉투를 내밀었다.안에는 끊어진 안전벨트가 들어 있었다.“충격으로 끊어진 게 아닙니다.”“그럼요?”“절단된 흔적입니다.
“엄마, 지금 어디야?”연희의 목소리가 스피커폰을 찢듯 울렸다.정애는 앞만 보며 대답했다.“집에 간다.”“무슨 집.”“옛날 집.”연희가 숨을 들이켰다.“미쳤어? 세아 데리고 거길 왜 가!”조수석의 세아가 눈을 감았다.정애가 핸들을 고쳐 잡았다.“얘가 확인할 게 있대.”“내일 증언이야. 지금 재단에서 세아 찾고 있는 거 몰라?”“알아.”“아는데 고속도로를 타?”연희의 목소리가 떨렸다.“차 돌려. 당장.”정애는 대답하지 않았다.룸미러 속 검은 승용차가 여전히 따라붙고 있었다.세아가 뒤를 힐끗 보더니 말했다.“연희야.”전화기 너머가 잠잠해졌다.“내 이름 부르지 마.”“미안.”“또 그 소리.”연희가 이를 악물었다.“죽기 전에 미안하다고 하면 다 끝나는 줄 알아?”세아가 창밖을 바라봤다.“안 끝나.”“그럼 돌아와.”“못 돌아가.”“왜.”세아는 잠시 망설였다.“내가 네 옆에 붙은 게 우연이 아니었을 수도 있으니까.”정애가 세아를 돌아봤다.연희의 목소리도 끊겼다.세아가 말했다.“열여섯 살 때 들었던 말이 계속 생각나. 네 옆에 있으라고 했던 사람.”“누군데.”“모르겠어.”“또 기억 안 난다고?”“그래. 개같지?”세아가 웃었다. 웃음 끝이 떨렸다.“나도 내가 역겨워. 중요한 순간마다 기억이 없고, 기억나는 순간엔 이미 사람 하나 망가뜨려놨으니까.”연희는 대답하지 않았다.정애가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았다.앞차가 급하게 속도를 줄인 탓이었다.세 사람의 몸이 앞으로 쏠렸다.“엄마!”“괜찮아.”정애가 차선을 바꿨다.그런데 뒤의 검은 차도 따라 움직였다.세아가 굳은 얼굴로 휴대폰을 들었다.또 문자였다.[계속 가세요.]그리고 바로 다음 메시지.[뒤돌아오면 연희 씨가 대신 다칩니다.]세아의 얼굴이 새파래졌다.“차 세워요.”“왜.”“세워요, 어머니!”정애가 버럭 소리쳤다.“아까는 고향 가자더니 이제 와서 무슨 지랄이야!”“연희를 알아요.”“누가?”세아가 휴대폰을 내밀었다.정
문이 열리자 세아는 그대로 굳었다.“어머니….”정애는 대답보다 먼저 세아의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화면에는 아직 녹화 표시가 떠 있었다. 정애는 영상을 끄고, 커튼부터 닫았다.“가방 싸.”“네?”“법정에서 입 열겠다며. 그럼 내일까지 살아 있어야 할 거 아니야.”세아의 입술이 떨렸다.“어머니가 여길 어떻게….”“네가 연희한테 보낸 영상, 나도 봤어.”정애가 세아를 똑바로 바라봤다.“그리고 네가 여기 있다는 것도 내가 알아낸 게 아니야. 누가 알려줬어.”세아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졌다.“누가요?”“모르는 번호.”정애가 휴대폰을 내밀었다.문자 한 통이었다.[한세아를 살리고 싶으면 지금 혼자 가세요. 경찰에 알리면 법정까지 못 갑니다.]세아는 한동안 화면만 바라봤다.“함정이에요.”“알아.”“아는데 오셨어요?”“그래.”“제가 연희한테 무슨 짓 했는지 아시잖아요.”정애의 눈이 싸늘해졌다.“그래서 왔다.”세아가 눈을 들었다.“널 용서해서 온 줄 알아?”정애가 한 걸음 다가갔다.“우리 딸한테 약 건넨 손도 네 손이고, 서류 숨긴 손도 네 손이야. 네가 울든 무릎을 꿇든 그건 안 없어져.”세아의 눈가가 붉어졌다.“그런데요?”“그 손으로 내일 법정에서 네가 한 짓도, 저 집안이 한 짓도 다 말한다며.”정애가 세아의 외투를 집어 던졌다.“그럼 입은 살아 있어야지.”세아는 외투를 받지 못했다. 바닥에 떨어진 옷을 내려다보며 한참 움직이지 않았다.“어머니는… 이상해요.”“뭐가.”“저 미워해야 정상인데.”“미워해.”정애는 망설이지 않았다.“지금도 네 머리채 잡아서 연희 앞에 처박고 싶은데 참고 있어.”세아가 울면서 웃었다.“그게 더 무섭네요.”“그러니까 까불지 말고 입어.”세아는 그제야 외투를 주워 입었다.정애가 문을 열려는데 세아가 뒤에서 불렀다.“어머니.”“왜.”“저 한 군데만 데려다주세요.”“경찰서?”세아가 고개를 저었다.“연희네 집이요.”정애의 손이 문고리에서 멈췄다.“무슨 소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