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게 서 있는 진명우는 옅은 푸른색의 원령포 차림이었다.옷감으로 보아 정성을 들여 직접 고른 것이 분명했고 누구나 감탄을 자아낼 법했다. 진명우에 찰떡인 색이라 고고한 소나무처럼 기품이 흘러넘쳤다. 하지만 그 모습을 흘긋 흝어보던 강준은 별다른 감정 없이 시선을 거뒀다.“너도 이제 혼사를 생각할 나이가 되었구나. 마음에 두는 이가 있다면, 내가 혼인을 내려주겠다.”경무제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말했다.진명우는 자세를 고쳐 단정히 답했다.“아직 그분의 마음을 알지 못합니다. 원치 않는다면 강요하고 싶지 않습니다.”“이토
“입맛에 맞으시다면 조금 챙겨드리지요.”강준은 담담하게 말했다.소은은 소희와 함께 창가 쪽 자리에 앉았다. 창밖 풍경이 곁들여진 이 자리는 차 마시기에 제격이었다.소희는 처음엔 약간 어색해했지만, 소은이 아무렇지도 않게 굴자 이내 긴장이 풀렸다. 두 사람은 차를 마시며 오늘 고른 옷 이야기를 나누었다.하지만 미인은 어디서든 시선을 끌게 마련이라, 다들 자꾸만 둘을 힐끔거렸다.“주인장, 저 위층의 두 미인께 차 한 잔씩 대접해 드리시게.”아래층에서 풍류객 한명이 소리쳤다.그 소리에 강준이 찻잔을 만지작거리며 아래층을 흘
소희는 그저 소은 곁에서 보호받던 그 시간들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이모는 싸늘한 얼굴로 조롱하곤 했었다.“너 같은 천한 서녀를 어느 누가 신경 써주겠느냐? 소은이도 널 진심으로 아끼는 줄 알고 있느냐? 불러들이다가도 한순간에 밀어내면 끝이니라. 그냥 심심풀이였단 뜻이지.”하지만 소희는 조용히 반박했다.그렇지 않았다. 수많은 시녀들을 보아왔고 이모만 곁에 있는 자들은 모두 잘 지내고 있었다.그저 그녀만이 이모의 관심 밖이었다.그리고 소은이가 결코 자신을 도구로만 여기진 않을 것이라 믿었다. 오늘 할머니로부터 “소은이 널
이번 일에 있어서만큼은 위씨도 이방이 조금 안쓰겁게 여겨져 한숨이 절로 나왔다. “소혁이는 사내라 두 해쯤 더 기다려도 된다지만 소은은 한창 예쁠 나이인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고금란은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됐구나, 다 팔자인걸. 소희 혼사는 어미인 네가 좀 더 신경을 써야겠구나.”“소희 혼사는 꼭 잘 골라주셔야 합니다.”그때 마침 도착한 소은이 할머니가 소희 이야기를 하는 걸 듣고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소희도 함께 의논하는 것이 어떻습니까?”“너희 어미가 오늘은 너를 붙잡지 않았느냐?” 고금란이
강준은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몸을 나눴던 상대에게서 “별로였다”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들었다는 건 남자로서 결코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차라리 정말로 형편없었더라면 덜했을 것이다. 문제는 그날이 처음이라 요령 없이 서툴렀던 게 원인이었다.그는 이마를 주무르며 말했다.“괜찮습니다. 다만 물자 수송때문에 머리가 좀 아플 뿐입니다.”그제야 선왕비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자신이 괜한 걱정을 했구나 싶었다.셋째는 이성 문제에 깊이 빠진 이가 아니었고, 정말로 여색을 밝혔다면 저택에 첩들이 차고 넘쳤을 것이다.“무씨 가문의
소은은 웃으며 답했다.“저는 아직 특별한 계획은 없습니다.”정희는 속으로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소대감께서 량주로 유배 가게 되어 소은의 혼사도 순탄치는 않을 것이다.“사실, 제 셋째 오라버니도 괜찮긴 한데…” 정희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설령 황자라 해도 다리가 불편한 사내를 평생의 반쪽으로 고려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을 개의치 않는 택원이라 참 다행이었다.소은은 문득 주명이 떠올랐다. 그녀가 어째서 택원을 마음에 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택원은 결코 평범한 이는 아니었다.
그는 부인하지 않았다.“사실 저에게 있어 사내와 잠자리를 하는 것은 그다지 대단한 일은 아닙니다. 소문나지 않고 소국공부의 명예에 영향만 없다면 그만입니다. 그러니 세자께선 굳이 마음 쓰실 필요 없습니다.”소은의 말에 강준이 눈썹을 찌푸렸다. 여인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는 것은 너무나 충격적이라는 것을 소은도 인지하고 있었다. 고지식한 사내였다면 그녀를 손가락질했을지도 모른다. 누구보다 타락한 자들이면서 유독 여인들에게만 잣대를 들이밀면서 말이다.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는 있는 겁니까?” 강준은 얼굴을
소은은 생각이 많아졌다.항상 신중한 그가 계례식 선물을 운운하는 것이 얼마나 부적절한지 모를 리 없었다.어쩌면 애초부터 의도한 행동일지도 모른다.“하시는 말씀마다 저를 시험에 들게 하고 있군요.” 소은은 시선을 떨구었다.결과가 어떻든 그는 언제나 여유롭게 물러설 수 있는 사람이었다. 이렇듯 능숙하게 밀고 당기는 이는 너무나 위험했기에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시험한 적 없고 오히려 너무나 솔직했지요.” 강준은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덧붙였다. “그대는 내가 아무나의 성년식 선물을 챙길 정도로 한가하다고
그전까지만 해도 진명우에게 부족한 건 오직 집안 배경뿐이었다. 부인들끼리 대화 중에도 그에 대한 칭찬이 끊이지 않았고 이제는 앞길도 스스로 개척했으니, 경중에서도 손꼽히는 공자가 되었다.그는 많은 여인들의 관심을 끌 수밖에 없었다. “량주에서 많은 부상을 입었으니 그 자체로 대단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자를 성상께서 홀대하기라도 한다면 그리 힘들기만 한 일을 하려는 자가 없을 것이지요.”게다가 량주에서도 아버지 일을 많이 도왔다. 그가 아니었다면 아버지도 임무를 쉽게 처리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녀를 바라보던 장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