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트가 침몰하고 구명보트에 단 한 자리가 남았을 때, 주상욱은 나를 구하기로 선택했다. 덕분에 나는 무사히 구조되었지만, 민효정은 구조가 늦어진 탓에 바다에 빠져 사망했으며 시신조차 찾을 수 없었다. 주상욱은 아무렇지 않은 척 태연하게 굴면서 나와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 후 5년 동안, 그는 날 바닥까지 짓밟으며 민효정이 죽은 게 전부 내 탓이라고 비난했다. 내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이혼을 요구했을 때, 그는 날 데리고 함께 죽으려 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요트가 침몰하던 그날로 돌아와 있었다. 나는 이번에 주상욱이 가장 아끼는 사람에게 살 기회를 양보하기로 마음먹었다.
view more나는 더 이상 민효정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 않아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그녀가 갑자기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슬기야, 제발 부탁이야. 넌 정말 상욱이를 망치려고 작정한 거야?”그저 공정하게 경쟁할 뿐인데, 왜 그게 주상욱을 망치는 것이라 하는지 이해가 안 됐다.뻔뻔한 사람은 봤어도, 이 정도로 뻔뻔한 사람은 처음이었다.나는 몸을 약간 굽혀, 아래를 내려다보며 조용히 말했다.“민효정, 그렇게 안쓰럽다면 너희 집 돈으로 지원해 주면 되잖아? 임씨 가문이나 주씨 가문만큼은 아니지만, 민씨 가문의 실력으로도 이 프로젝트 따낼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는 더 이상 시간 낭비하기 싫어 그 말만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그 뒤로 며칠간, 나는 프로젝트를 준비하기 위해 바쁘게 지냈기에 다른 일에는 관심조차 없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고승우와 한동안 만난 적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다.나는 마침 차고에 있던 아무 차를 골라 타고, 고승우의 집으로 향했다.거실은 텅 비었고, 서재에선 종잇장을 뒤적이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자, 고승우가 고개 숙인 채 뭔가를 살피다, 날 보곤 반가워하며 벌떡 일어났다.“슬기야, 네가 오기만을 기다렸어. 너를 위해 깜짝 놀랄 선물을 준비했거든.”내가 다가가자, 그는 내게 계약서를 내밀었다.읽어보니, 바로 내가 몇 달째 공들였던 그 프로젝트였다.“이 프로젝트 네가 갖고 있었어?”고승우가 고개를 끄덕였다.“응, 아버지께서 나더러 경험을 쌓으라면서 맡긴 거야.”서류를 훑어보니, 이미 우리 집 회사 명의로 정리되어 있었고, 내가 사인만 하면 계약이 확정되는 상태였다.“제, 제정신이야? 이건 수백억이 넘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프로젝트라고!”그러자 고승우는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내가 마침 네가 원하는 걸 갖고 있었으니, 당연히 너한테 줘야 되는 거 아니야?”나는 그의 말에 감동받을 수밖에 없었다. 마음이 따뜻해지며 기분이 벅찼다.“그럼 난 뭘로 보답해야 될까?”고승우는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아무거나 다 괜찮
나는 주상욱이 쫓아올 줄은 몰랐다. 마침 고승우의 차가 문 앞에 세워져 있었다.나는 더는 주상욱과 얽히고 싶지 않아 단호하게 말했다.“내 남자친구가 마중 나왔으니, 이만 갈게.”주상욱은 곧바로 비꼬듯 내뱉었다.“임슬기, 정말 저런 인간을 남자친구로 삼을 거야?”“그럼 너처럼 자기 잘못은 모르고 우유부단한 사람이라도 만나라는 거야?”내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려 하자, 그는 얼른 내 손목을 붙잡았다.“슬기야, 내 말 좀 들어 봐...”그가 너무 세게 잡아당겨, 나는 순간 찌릿한 통증을 느꼈다.“쓰읍.”바로 그때, 차에서 내린 고승우가 주먹을 날려 주상욱의 얼굴을 가격한 뒤, 날 등 뒤로 숨기며 경고했다.“다신 손대지 마.”나는 고승우의 차에 올라탔고, 문득 차 안에 놓인 장식품 하나를 보고 깜짝 놀랐다.“어? 이건 전에 제가 아는 친구한테 선물로 보낸 거랑 똑같은데요?”“이게 왜?”그러자 고승우는 얼굴이 붉어지더니 당황했다.“네, 아이스 스노우...”잊고 지냈던 기억이 되살아나는 느낌이 들었다.고등학생 때, 나는 너무 외로워서 인터넷에서 온라인 친구를 사귀었는데, 상대는 스스로를 B시 최고의 부잣집 아들이라고 했고, 나도 농담 삼아 ‘어느 나라 공주’라며 허세를 떨었다.그가 반에서 늘 1등이라고 말하면, 나도 학교 전체 1등이라고 떠벌렸다.어차피 만날 일 없다고 생각해, 있는 말없는 말 막 지어냈다.그러다 내 핸드폰이 도둑맞으면서, SNS 비밀번호를 잊었던 탓에 상대와 연락이 끊기고 말았다.그 시절을 떠올리며, 나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정말 B시 최고의 부잣집 아들이었다니...” 고승우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약간 억울하다는 듯 중얼거렸다.“근데 슬기 씨는 절 속였잖아요. 그때 말한 그 나라 아무리 찾아봐도 없었어요.”나는 머쓱해져 헛기침을 했다.“그, 그땐 저도 승우 씨 말이 전부 사실일 줄 몰랐거든요.”고승우는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는 틈을 타 나를 보며 웃었다.“그럼 이젠 믿으시는 거예
집으로 돌아와 보니, 부모님이 거실에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내가 입을 열기도 전에, 그들은 곧바로 나를 질책하기 시작했다.아빠가 먼저 입을 열었다.“오늘 일은 상욱이가 다 말해 줬어. 정말이지, 너한테 너무 실망이야.”“거긴 바다야. 언제든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위험한 곳인데, 어떻게 다른 사람을 먼저 구하라고 할 생각을 한 거야?”엄마도 곧이어 덧붙였다.“그렇게 무모하게 구는 데 우리가 어떻게 회사 운영을 너한테 맡길 수 있겠니? 제발 좀 성숙해져 봐!”“네가 그렇게 철이 없으니, 차라리 결혼을 빨리 서둘러야겠어! 앞으로 상욱의 아내로 조용히 살기나 해.”“전 주상욱이랑 결혼 안 해요! 이 결혼 절대 안 해요!”나는 단호히 잘라 말하며, 똑바로 부모님을 바라봤다.“오늘은 바로 그 얘길 하려고 온 거예요. 전 절대 주상욱한테 시집 안 가요. 아빠 엄마가 주상욱을 만족스러워하건, 회사 운영을 맡기고 싶어 하건, 그건 부모님 일이지 제 일 아니에요!”아빠는 화가 치민 듯 탁자를 세게 치고 나서 소리쳤다.“이 못된 것! 상욱이가 얼마나 능력 있는 남잔데, 그럼 도대체 상욱이를 마다하고 누구랑 결혼하겠다는 거야!”“전 시집 안 갈 거예요!”나는 한마디를 내뱉고 돌아서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부모님이 무슨 생각을 하든, 나는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다음 날, 일찍 일어나 거실로 내려가 보니, 부모님은 여전히 잔뜩 화가 난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엄마가 뭔가 말하려고 했지만, 아빠가 먼저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파혼하고 싶다면, 네...”“됐어!”엄마가 갑자기 아빠를 제지하듯 말리더니 창백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정말 파혼하고 싶다면 막지 않을게. 하지만 이후의 일은 전부 네가 스스로 감당해야 해.”그렇게 말한 뒤, 엄마는 일어나 문 쪽으로 걸어갔다.“가자. 파혼하러 가야지.”‘내 의견에 동의하신 건가?’나는 왠지 가슴이 저려온 느낌이 들었다.사실 양가의 정략결혼은 원래 주상욱의 할머니, 최영미가 먼저 꺼낸 이야기였
어릴 적, 나는 부모님을 한 번이라도 더 만나기 위해 일부러 시험을 망쳐 보기도 했고, 일부러 다른 아이들과 싸워 보기도 했다.그들은 그런 일이 있어야만 나타나, 아주 조금이나마 나에게 관심을 줬으니까.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점차 기대를 접게 되었다.내 생일이 되면 스스로에게 선물을 사 주며 한 살 더 먹은 걸 축하했고, 학부모 면담이 있을 때면 아예 부모님의 핸드폰 번호를 선생님께 말씀해 드렸다. 무슨 일이라도 있으면 직접 전화하라고 말이다.결국 나는 그렇게 외로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러다가 주상욱을 만났다.부모님이 학교에 한 번도 온 적이 없으니, 학교 아이들은 내가 고아라고 떠들어댔고, 그 얘기가 돌면서 어느 날 하교 후, 양아치들이 내 앞을 가로막고 용돈을 전부 내놓으라고 협박했었다.그때 주상욱이 등장해, 날 향해 휘둘러지려던 주먹을 막아 주었다. 그리고 내 앞을 가로막아 나를 괴롭히려던 이들에게 외쳤다.“뭐 하는 짓이야! 여럿이서 여자애 하나를 괴롭히는 게 말이나 돼?”그 무리들은 황급히 흩어졌고, 나는 날 지켜 준 소년을 바라봤다. 땀 몇 방울이 턱 아래로 뚝뚝 떨어지며, 햇빛에 반짝이고 있었다.그리고 그가 내게 물었다.“괜찮아?”그 짧은 순간에 나는 완전히 마음을 빼앗겼다.그러나 그땐 용기가 없어 작은 소리로 고맙다고 중얼거리곤, 황급히 집 쪽으로 뛰어가 버렸다.그날 이후, 나는 무심한 척하면서도 주상욱에 대한 소식을 자꾸 알아보게 되었다.그에게는 오래된 소꿉친구인 민효정이 있었지만, 둘의 관계는 그저 소꿉친구일 뿐이지 더 이상 나아갈 것 같진 않았다.그때 나는 몰랐다. 누군가는 좋아하는 마음을 품고 드러내지 않기도 한다는 걸.다만, 사춘기 시절의 짝사랑은 겉보기엔 고요해 보여도, 이미 마음속은 그 사람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그래서 주상욱을 우연히 마주치기라도 하면 괜히 가슴이 두근거려 얼굴이 빨개져 고개를 숙였다. 다만 우리 둘의 결혼은 우리가 결정하는 게 아니란 사실도 알고 있었다.그래서 나중에
주상욱은 묵묵히 나를 바라보았다.민효정은 그의 뒤에서 걸어 나와, 내 뒤에 서 있던 고승우를 힐끔 보고는 바로 물었다.“슬기야, 너 혹시 저 사람 요트에 올라탄 거야?”“근데 우리가 타고 있던 요트가 사고가 났던 당시, 주변엔 다른 요트가 전혀 없었잖아. 사방이 캄캄했는데 어떻게 구조된 거지?”나는 의아해졌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는 이유가 뭘까?’“게다가 너와 상욱은 A시에서 추진 중인 프로젝트를 앞두고 정략결혼하려던 사이였잖아. 임씨 가문의 너는 이 프로젝트 담당이 아니니 굳이 참여할 필요가 없겠지만, 상욱이는 주씨 가문을 대표해 경매에 참여해야 하잖아. 근데 이 시점에 사고가 나다니.”“임슬기, 이 모든 우연들이 정말 우연인 걸까? 사실은 누군가 의도한 사고는 아닐까?”‘그 말은 요트를 고장 낸 사람 나라는 건가?’솔직히 전생에 민효정이 죽게 된 것이 불쌍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나를 모욕하는 것을 그대로 참고 넘길 수는 없다.하물며 이번 생에서는 내가 그녀를 살려준 셈인데, 구조된 뒤에 와서 나를 모함하려 하다니.‘차라리 죽게 내버려 둘 걸 그랬어.’나는 경찰을 향해 큰 소리로 말했다.“형사님, 이 사람이 지금 저를 모함하고 있어요! 허위사실 유포로 신고하겠습니다.”결국 우리 모두 경찰에 의해 연행되어 조사를 받게 되었다.질문을 받는 동안에도 민효정은 계속 날 못마땅하게 노려보았다.“임슬기, 왜 대답 안 해? 내가 한 말이 사실이라서, 겁나서 대답 못 하는 거야?”나는 고개를 돌려 차갑게 대꾸했다.“네가 경찰이야? 내가 굳이 너한테 설명해야 할 이유가 뭔데? 네가 뭔데?”내가 본인을 살려줬다는 사실 따위는 까마득히 잊고, 오히려 은혜를 원수로 갚는 사람에게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민효정은 그제야 입을 다물었다. 그때 옆에 있던 주상욱이 참다못해 끼어들었다.“임슬기,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효정이는 단지 진실이 궁금할 뿐이잖아. 이번 사고의 피해자로서 사건의 진실을 알 권리는 있잖아!”“그럼 나는 피해자가 아니라는
전생에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주상욱이 술에 취해 돌아온 날이 있었다.나는 그를 방으로 부축해 가면서 술 좀 줄이라고 말했을 뿐인데, 주상욱은 갑자기 화가 폭발해 날 바닥에 세게 밀어 넘어뜨렸다.나는 균형을 잃고 뒤로 넘어지면서, 뒤통수를 바닥에 세게 찧었다. 손으로 머리를 만져보니 피가 흐르고 있었다.나는 깜짝 놀라 소리치며 상처를 확인했는데, 주상욱은 차갑게 나를 내려다보며 얼음장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아파? 잘 됐네. 효정이는 죽을 때 이보다 백 배, 천 배는 더 고통스러웠을 거야! 근데 효정이는 죽었어. 깊은 바닷속에 잠겨 죽었다고! 그때 내가 너부터 구하지만 않았어도, 효정이는 물에 빠져 죽진 않았을 거야! 임슬기, 이 모든 게 네 탓이야!”나는 머리에서 피가 계속 흘러내리는 것도 잊은 채,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이런 말들이 그의 입에서 나올 줄이야. 가슴 한구석이 서서히 식어 가는 기분이었다.나는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입을 열었다.“주상욱! 요트를 고장 낸 건 너희 집 원수가 벌인 짓이었고, 구명보트에 나를 먼저 태우기로 한 것도 너였잖아. 그런데 이제 와서 날 탓하는 거야? 우습지도 않니?”주상욱은 술이 점점 깼는지 표정이 더더욱 차가워졌다.“임슬기, 처음부터 난 이 정략결혼에 동의한 적 없어. 네가 굳이 우리 할머니 앞에서 나를 좋아한다고만 하지 않았어도, 내가 이렇게까지 떠밀려 결혼하진 않았을 거라고.”“하하하.”나는 허탈한 웃음을 터뜨리며, 그를 비웃듯 쳐다봤다.“그러니까, 결국 이 모든 게 내 잘못이라는 거네?”“네 원수한테는 원망 한마디 못 하면서, 네 집안의 압박에도 입 닫고 있었으면서, 날 탓한다고? 너 제정신이야?”나는 그 한마디를 남기고 돌아선 뒤, 혼자 택시를 잡아 병원으로 가 상처를 치료했다.그날 이후로, 우리의 관계는 걷잡을 수 없이 얼어붙었다. 나 또한 더는 주상욱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게 됐다.그런데 지금, 눈앞의 낯선 사람은 혹시라도 내가 아프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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