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전까지만 해도 기분 좋아 보이더니 갑자기 안색이 안 좋네?”예천우의 눈은 참 예리했다. 한눈에 임완유 표정의 변화를 캐치했다.“너랑 뭔 상관이야!”임완유가 쏘아붙였다. 이 남자는 이혼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우린 부부잖아. 어떻게 나랑 상관이 없어?”“누가 그래? 잊지 마. 이혼 날짜가 코앞이야. 그때가 되면 우린 남남이야.”“벌써? 이렇게 빨리? 이혼 안 하면 안 돼?”예천우가 물었다. 그는 오늘 임완유가 하는 짓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특히 공손진한테 자신을 소개할 때 너무 흡족스러웠다. 임완유는 이 말을 듣고 왠지 흐뭇해났다. 입꼬리도 말을 듣지 않고 자꾸 올라갔다. 하지만 입으로는 쌀쌀맞게 쏘아붙였다. “흥, 꿈 깨.”“꿈이라도 꿔야지. 아니면 무슨 낙으로 살아?”“됐어. 그건 그때 가서 다시 얘기해. 우리 먼저 어디 가서 밥이나 먹자.”톡톡 쏘는 말투였지만 임완유도 이혼하기 싫다는 뜻이 분명했다. 예천우는 기분이 더욱이 좋아져서 웃으며 말했다.“그래. 내가 아는 맛집 있어. 맛이 정말 끝내줘. 거기 가자.”그는 말을 끝내고는 시동을 걸어 출발했다.오늘 임완유의 태도를 보아 그녀는 자신과 갈라서는 걸 원치 않는 것이 분명했다. 다만 마음속으로 여전히 갈등되는 것 같았다.그의 생각이 맞는다면 아마 어려서부터 형성된 뿌리 깊은 사상이 그녀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일 것이다.하지만 예천우는 여전히 자신의 능력을 전부 밝힐 생각은 없었다.가장 좋기로는 임완유가 갈등을 헤쳐 나오는 것이다.나오지 못한다면 그런 여자는 그도 원하지 않는다.한참 달려서 둘은 식당 앞에 도착했다. 막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갑자기 약간 들떠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 도련님, 안녕하십니까. 여기서 뵙게 될 줄이야.”예천우는 살짝 놀랐다. 그는 목소리를 듣고 이미 누구인지 맞췄다. 고개를 돌려보니 역시 송강이었다. 지난번 양대복의 집에서 본 이후로, 송강은 줄곧 예천우에게 접근할 기회를 찾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었다. 그러다
“뭘 뻔한 걸 물어? 식당에 당연히 밥 먹으러 왔지.”예천우가 냉담하게 대답했다. “네, 그렇죠. 자, 안으로 들어가시죠. 오늘 맘껏 시키세요. 제가 계산하겠습니다.”예 도련님이 여자랑 식사하는데 끼는 건 아닌 듯 싶었다.사실 그는 지금 얼마나 예천우에게 접근해서 많은 얘기를 나누며 친분을 쌓고 싶은지 모른다. 이것도 아버지가 자신에게 당부하신 일이다.어떻게든 예천우에게 접근해야 한다.생각해 보면 양 회장도 공손하게 대할 수 있는 존재이니 얼마나 공포스러울까.사실 송강뿐이 아니라 소문하도 계속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송강은 이 말을 하고는 재빨리 자리를 떴다. 다음 기회를 노릴 수밖에.예천우는 머리를 저었다. 더 이상 상대하기 귀찮아서 임완유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가서 앉았다.아직 주문도 전에 임완유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 “예천우, 송강 그 송 씨 큰 도련님이 웬일로 너한테 이렇게 예의를 차리지?”그녀는 실로 너무 궁금했다.예천우가 웃더니 말했다.“급해 마. 먼저 뭐 좀 시키자.”임완유는 뭐라고 대꾸하고 싶었지만 그래도 꾹 참고 음식을 주문했다. 그러고 나서 바로 또 물었다. “이젠 됐지? 빨리 말해 줘.”“진실을 들을래? 아님 거짓을 들을래?”예천우가 물었다.“장난해? 당연히 진실이지.”“그렇다면... 그건 내 실력이 너무 끔찍해서야. 걔 처음엔 날 두려워했어. 그다음엔 나랑 편먹으려고 나한테 알랑거리는 거야.”예천우가 설명했다.“너 거짓말이라도 좀 그럴듯하게 못해?”임완유가 그를 째려보며 말했다.“음... 알았어. 사실은 카드 한 장 때문이야.”“카드?”“응. 바로 이 카드.”예천우는 바로 용등 블랙카드를 꺼내 임완유 앞에 놓았다.임완유는 멍하니 카드를 바라봤다. 어쩐지 눈에 익었다.‘지난번에 예천우가 말했었지. 양 회장이 준 용등 블랙카드라고 했던 것 같은데’그녀는 용등 블랙카드 실물은 본 적이 없지만 들어는 봤다. 총 3장뿐인 데다가 그 중 한 장은 양회장 손에 있다고 들었던 것 같다.‘그런 카드
“응, 불러와. 내가 직접 물어봐야겠어. 근데 내가 물어볼 때 너 눈치 주거나 하면 안 돼.” 임완유는 참으로 똑똑했다. “걱정 마. 안 그래.”예천우가 고개를 드니 먼 곳에서 계속 자신을 쳐다보는 송강이 보였다. 예천우는 내키지 않는대로 손을 흔들었으나 입은 열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송강이 보더니 바로 쪼르르 달려왔다. 송강 옆에 있던 여인도 그의 이런 모습에 놀라며 송 도련님이 다른 사람으로 바뀐 게 아닌가 하고 의심했다. 그게 아니라면 그가 어떻게 누군가에게 이렇게 정성스러울 수가 있단 말인가.이건 참 불가사의한 일이다. “예 도련님, 무슨 일이십니까?”송강이 알랑거리며 물었다. 송강이 굽실거리는 모습을 보고 임완유는 한심해났다. 이 사람이 예전에 그 난폭하던 송 씨 가문 큰 도련님이 맞나 싶었다. 지금은 마치 주인의 손길을 바라는 고양이와도 같았다. “별일은 아니고, 우리 집사람이 뭐 좀 물어보고 싶대. 우리 처음 충돌이 있었을 때 말이야. 그때 왜 도망갔지?”예천우는 뜸 들이지 않고 바로 물었다. 송강이 듣더니 놀라 자빠질 뻔 했다. “부담 갖지 마. 따지려는 게 아니고 우리 집사람이 그날 상황을 제대로 알고 싶사해서 그래.”“아, 그렇군요. 사실대로 말씀드려요?”“그럼. 당연히 사실대로 말해야지.”예천우가 한심한 듯 말했다.긍정적인 답을 듣자 송강은 시름이 놓였다. 임완유는 두 사람의 대화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둘이 짠 것이 아님을 확인 후 물었다. “송 도련님......”송강이 듣더니 손사래를 쳤다. “형수님 저를 그냥 송강이라고 불러주세요. 도련님이라 부르면 제가 너무 송구스럽습니다.”“됐어, 묻는 말에 대답만 하면 돼. 호칭은 상관하지 말고.”예천우는 어이가 없었다. 이 녀석이 더 지껄이다가는 무슨 말을 할 지 모른다.“송 도련님, 제가 알고 싶은 건, 지난번 상점에서 왜 갑자기 나갔어요? 누군가의 전화를 받은 건가요?”임완유가 물었다. 송강은 어리둥절해졌다. ‘전화?’그는 예천우를 흘깃 쳐다봤
상대방이 이렇듯 깍듯이 물어보는 말에 잘 답해주니 예천우는 자신도 너무 야박하게 굴지 말자 하고 대충 한 마디 보탰다. 어차피 그에게는 사소한 일이다.“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예 도련님!”단 한 번의 기회라도 송강은 감지덕지했다. 자리로 돌아가는데 너무 흥분되어 다리마저 떨렸다. 그동안 공을 들인 게 바로 이날을 위해서였다. 이건 자신에게 보험을 들어놓은 셈이다.임완유는 고개를 저으며 송강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가 멀리 가자 한숨 쉬며 예천우를 나무랐다. “너 이렇게 덜컥 약속해버리면 어떡해. 혹시 정말 큰일이 생겨서 널 찾아오면, 그때에는 어떡하려고?”“찾아오면 도와서 해결하면 되지. 방금 봤지? 태도가 너무 좋잖아.”예천우가 대답했다. “해결? 뭘로 해결할 건데? 넌 네가 양 회장님이랑 같은 급이라도 되는 줄 알아? 양 회장님이 왜 너한테 카드를 줬는지는 모르겠는데, 카드가 있다고 해서 너한테 양 회장님의 실력이 생긴 건 아니잖아.”송 씨 가문의 세력은 말할 것도 없이 강하다. 송강이 해결할 수 없는 일이라면 그건 정말 큰 골칫덩이일 것이다. 양 회장님이라면 몰라도 예천우가 그걸 어떻게 해결한다는 말인가.“음... 네 말도 맞는 것 같아.”예천우는 더 반박하기도 좀 그래서 수긍하는 척했다.“흥, 당연히 맞는 말이지. 넌 허풍 떠는 게 버릇이 됐어. 적당히를 몰라.”임완유는 나무람하고 나서 자신이 예전에 예천우의 말을 믿지 않았던 것이 생각나서 말했다.“근데... 예전에는 미안했어. 널 오해했어. 난 줄곧 유걸이 도와준 걸로 알고 있었어.”“그리고, 네가 용등 블랙카드를 꺼내들어도 난 계속 진짜라고 믿지 않았어.”지금은 상가의 검증 없이도 그녀는 이미 이것이 바로 전설의 용등 블랙카드라는 것을 굳게 믿고 있었다. “괜찮아. 그런 상황에서 네가 믿지 못할 만도 하지.”예천우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응, 근데 앞으로는 너 용등 블랙카드를 들고 뻥치는 거 되도록 자제해. 아니면 언젠가는 큰코다쳐.”임완유가 관심 어린 말투로
요근래 양체은이 예천우를 찾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예천우가 어떤 사람인가. 동생같은 여자애들과 놀아줄 시간이 없다. 예천우는 거절해버리든지, 아니면 아예 전화를 받지 않았다.양체은은 할 수없이 씩씩거리며 직접 예천우네 집으로 찾아가려고 했다.그런데 아직 가기도 전에 여기서 만나게 될 줄이야. 양체은은 뜻밖의 만남에 너무 기뻤다.“오, 너야?”더는 피할 수 없다는 걸 안 예천우는 억지로 웃으며 인사할 수밖에 없었다. 어찌 됐든 양체은이 평소 자신에게는 잘했으니... 그에게 일이 있으면 항상 나서서 도와줬다. “왜, 내가 반갑지 않아? 요즘 어디에 숨어있었어? 코빼기조차 못 봤잖아.”양체은은 다른 사람은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요즘 바빴어.”예천우가 건성으로 대답했다.“뭐가 그리 바쁘다고... 내일 저녁 반드시 나랑 만나.”양체은은 오늘 어떻게 해서라도 예천우와 내일 저녁 약속을 잡으려고 했다.임완유는 옆에 서서 둘이 웃으며 얘기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내일 저녁 반드시 만나야 된다는 말이 그녀 귀에 거슬렸다. 그녀는 이 여자애가 예천우와 보통 사이가 아니라고 생각하던 참이었다.지난번 연회에서도 둘은 아주 친해보였다.그래서 임완유는 일부러 헛기침을 했다. 이걸로 자신의 주권을 선언한 셈이다.이때가 되어서야 양체은은 옆에 임완유가 있는 것을 보았다. 예천우도 눈치채고 급히 소개했다.“체은아, 소개할게. 이쪽은 우리 집사람 임완유야.”“알아. 임 씨 그룹 미녀 대표님.”양체은은 웃이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양체은이라고 합니다.”양체은?임완유가 놀라며 물었다. “아가씨가 양 회장님 댁 따님이세요?”그녀는 양 회장의 보배 딸 양체은에 대해서 이름만 들어봤지, 실물을 본 적은 없었다. 이 이름을 듣고 방금 전 용등 블랙카드 일, 그리고 예천우가 양 회장의 딸을 치료해준 일이 겹쳐져, 그녀는 자연스럽게 양대복의 딸을 연결시키게 되었다. “네. 그런데요?”양체은이 어리둥절해서 물었다. 임완유는 듣고 나서 안색이
‘나쁜 자식, 아내가 있는데 밖에서 다른 여자를 만나다니.’‘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건가? 너무해.’예천우는 임완유가 차에 타자 쫓아가서 잡으려고 했다. 그런데 임완유가 엑셀을 얼마나 세게 밟았는지 차가 총알처럼 튀어나가는 바람에 깜짝 놀랐다. 그래도 멀리서 보니 속도가 점차 늦춰져서 별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양체은도 멍한 채 나지막한 소리로 물었다. “천우 오빠, 내가 뭘 잘못 말했어? 근데, 나 아무 말도 안 했는데...”“네 문제가 아니야. 나 때문이야. 내가 뭘 잘못했을 거야.”“응, 천우 오빠도 너무 걱정하지 마. 여자애들은 원래 잘 삐지거든. 언니도 금방 괜찮아질 거야.”양체은이 위로했다.“응.”“저기... 내일 저녁?”“나 정말 시간 없어.”“내가 그렇게도 싫어? 내가 뭘 잘못했는데... 그리 오랫동안 내 연락도 안 받고, 나랑 한 번 만나주는 것도 싫어?”양체은은 말하면서 눈물을 뚝뚝 떨구기 시작했다. “잠깐, 울지 마.”예천우는 여자가 우는 걸 못 본다. “나도 울기 싫은데 속상하잖아. 나 속상하다고. 천우 오빠가 날 미워하면 난 콱 죽어버릴 거야......”“그래, 그래. 알았어. 내일 저녁 나갈게. 됐지?”예천우도 어쩔 수 없었다. 한동안 연락받지도 않았던 걸 생각하니 좀 미안하기도 해서 승낙하고야 말았다. “정말? 너무 좋아! 고마워, 천우 오빠!”양체은은 너무 기쁜 나머지 예천우를 와락 껴안았다. 예천우는 저도 모르게 심장이 떨렸다. 이 계집애는 자신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모르는건가? 청순하고 예쁜 얼굴은 그렇다 치자.아담하고 귀여운 몸매인데 이렇게 볼륨있고 빵빵하기까지... 가까이에서 느껴지는 독특한 향기가 그를 취하게 만들었다. 양체은도 예천우 몸에서 일어나는 반응을 발견하고 얼굴이 빨개졌다. 하지만 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더 꼭 끌어안고 몸을 꼬며 비벼댔다.그녀는 알고 있었다. 예천우와 임완유의 혼인은 핍박에 의해서 한 거고, 곧 갈라설거라는 것도. 다행히 예천우가 정신을 차리고 아무
임완유가 또 한 번 끊어버리자 예천우는 더는 전화하지 않았다. 확실히 전화에서 설명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바로 이때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유현의 전화였다. “팀장님!”“네. 무슨 일이세요?”“여기 반년 넘게 연체된 외상매출금이 있는데요. 팀장님 오늘 오후 그쪽에 가서 서로 얘기하기로 일정이 잡혀있어요.”유현이 입을 열었다.“유현 씨가 저 대신 가줄 수 있을까요?”“좀 곤란할 것 같아요. 상대방이 꼭 팀장님과 얘기하고 싶답니다. 아니면 이 돈을 못주겠다고 합니다.”“뭐 그런 일이 다 있어요?”예천우가 머리를 흔들며 말했다. “알았어요. 제가 회사에 들를 테니 이따 만나서 얘기해요.”“네.”유현이 전화를 끊었다. 한 시간 후, 예천우가 회사 앞에 나타났다. 하지만 그는 영업팀 사무실에 갈 생각은 없었다. 회사에 들어가서 곧장 임완유의 사무실로 향했다.그는 문 앞에 서서 노크했다.“들어오세요.”안에서 임완유의 구슬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만 약간 차가운 느낌이었다. 분명 화가 나있는 것 같았다.예천우가 문을 열고 들어갔다.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일하느라 바쁜 임완유를 한 눈보고는 문을 닫았다. “무슨 일이에요?”임완유가 머리도 들지 않고 물었다. “오해한 일.”예천우가 웃으며 말했다. 예천우의 목소리가 들리자 임완유는 고개를 들었다. 역시나 예천우였다. 그를 보니 그녀는 순식간에 기분이 나아졌다. 이제 몇 분 지나지도 않았다. 자신이 떠난 후 예천우가 양체은과 같이 있지 않고 바로 뒤따라 나온 모양이다. 그의 이런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그래도 입으로는 못된 말만 했다. “무슨 오해?”“정말 오해야!”“아까 양체은이 말하는 거 들었잖아. 오랫동안 보지 못했다고. 걔랑 정말 뭐가 있었으면 오랫동안 만나지 않았을 리가 없잖아.”이 말을 듣고 임완유의 표정이 좀 폈다. 사실 임완유는 좀 전에 진정되고 나서 양체은이 했던 말을 다시 생각해 봤다. 그녀의 말에서도 둘이 별로 친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입만 열었다 하면 이혼이란 말로 예천우의 속을 긁었다. ‘에라,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지 뭐.’예천우는 더 말하지 않고 돌아서서 문쪽으로 걸어갔다. 임완유는 멈칫했다. 어렴풋이 자신이 말을 잘못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축 처진 예천우의 뒷모습을 보며 마지못해 한 마디 했다. “예천우, 오해하지 마, 난 그저 사실을 말했을 뿐이야.”“응, 알아.”예천우는 이 한 마디를 남기고는 나가버렸다. 임완유는 안색이 좋지 않았다. 마음속 한구석이 왠지 찌릿찌릿 아파났다. 왜 아픈지 그녀도 영문을 몰랐다.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닌데 왜 이러는 것일까.설마, 자신이 정말 그를 좋아하기라도 하는 것일까?하지만, 둘은 전혀 다른 세상 사람이다. 그는 자신과 너무나도 먼 곳에 있다. 같이 있으면 과연 행복할까?임완유의 사무실에서 나온 예천우는 영업팀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유현이 예천우가 온 것을 보고 얼른 가서 상황을 설명했다. 상대는 한 공장의 사장인데 소문에 의하면 사람이 거칠고 힘없는 사람을 괴롭히기 좋아한다고 했다. 그리고 유현은 예천우에게 최대한 몸을 사리고 만약 그쪽에서 생떼 부리고 돈을 안 내놓으면 그냥 돌아오라고 귀띔했다. 어차피 지금 사회에서 파산이면 모를까, 돈을 갚지 않고는 살 수가 없다. 영업을 하다 보면 가끔 외상매출금을 받기 어려운 상황도 있기 마련이었다. 아니면 그렇게 많은 자금난이 왜 생기겠는가.“괜찮아요. 어차피 가기로 했으니 빈손으로 돌아올 수는 없죠.”예천우가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오후에 스케줄 있어요?”유현이 듣고 바로 대답했다. “회의가 있습니다. 사장님께서 소집하셨습니다. 원래는 팀장님이 참석하기로 되어있는데 사장님께 제가 대신 참석해도 되냐고 여쭤봤더니 문제없다고 하십니다.”그는 예천우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잘 됐네요. 사장님께서도 제 상황을 알고 계시나 보네요. 말리는 사람이 없으면 앞으로 제 업무를 전부 대신해도 괜찮습니다. 망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안 해도 돼요.”
예천우는 단호하게 말했다.“신향 씨는... 정말로 제가 양심의 가책을 느끼길 바라는 거예요?”“아... 아뇨! 그런 건 아니에요.”“그럼 됐어요. 정말 인연이 있다면... 언젠가는 다시 기회가 올 거예요.”예천우는 그렇게 말하며 이미 팔을 놓고 있는 이신향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그 말을 들은 이신향은 더 이상 매달릴 수 없었고 작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요. 전부 천우 씨 뜻대로 할게요.”예천우는 더 미련 두지 않고 호텔 로비를 빠져나갔다.그런데 막 호텔을 나서자마자 눈에 띄는 광경이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출입구 옆에 세워진 빨간 페라리 한대가 있었다.그 안에는 마치 현실감 없는 미모를 지닌 여자가 앉아 있었고 지나는 사람마다 시선을 빼앗겨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그녀의 매혹적인 자태는 모든 시선을 빨아들이는 자석 같았다.남자들은 저런 여자를 가질 수 있다면 뭐든 내놓을 수 있다는 표정들이었다.그런데 그 여자가 예천우를 보자마자 반가운 목소리로 외쳤다.“도련님!”예천우는 살짝 놀란 눈으로 고개를 돌렸다.‘선우서림?’그는 잠시 멈칫하다가 바로 차량으로 다가가 탑승했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들 눈엔 그저 부러움 그 자체였다.차에 오르자마자 선우서림이 웃으며 말했다.“도련님, 예상보다 더 빨리 끝났네?”“무슨 말이야.”예천우는 짜증 섞인 말투로 대답했다.선우서림 정도의 정보력이라면 자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미 다 파악했을 터였다.“글쎄. 도련님이 뭘 했는지... 자신은 모를 리가 없겠지. 근데... 혹시 아까 그 여자랑... 안 잤어?”선우서림은 다소 실망스러운 듯 말했지만 그녀는 속으로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다.예천우가 다른 여자와 관계를 맺어야만 자신도 예천우의 애인이 될 기회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예천우와 임완유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는 건 생각보다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예천우는 고개를 저으며 물었다.“근데 나를 왜 찾아왔어? 무슨
이신향은 예천우의 말을 듣자 괜히 마음이 울컥했다.‘천우 씨는 진짜 너무 좋은 사람이야...’“고마워요. 천우 씨, 사과도 해야 하지만... 오늘 정말... 너무 고마웠어요.” 그녀는 진심을 담아 말했다.“천우 씨 아니었으면 우리 가족은 물론이고... 전 제 인생 자체가 끝장났을 거예요.”그때 그 상황을 떠올리기만 해도 소름이 끼쳤다. 만약 그때 예천우가 없었다면 자신은 분명 조신우에게 끌려갔을 테고 그런 사람에게 붙잡혀 살게 된다면 인생은 고통뿐이었을 것이다.예천우는 담담하게 웃었다. “우린 친구잖아요. 서로 도우며 사는 거죠. 그리고 지금은 신향 씨도 저를 돕고 있잖아요.”“제가... 도와주고 있다고요?”이신향은 의아한 얼굴로 되물었다.“백성 그룹을 저 대신 이끌고 있잖아요.”“그건 제가 도와주는 게 아니라 천우 씨가 기회를 주신 거죠. 그렇게 얘기하니까 더 고맙잖아요.”이신향은 눈이 반짝이며 진심을 담아 말했고 예천우는 손을 들어서 막으며 고개를 저었다.“알겠어요. 고맙다는 말은 여기까지 해요. 더는 안 돼요.”예천우는 속으로 제발 대화가 빨리 끝났으면 하고 있었다.솔직히 지금 이 상황은... 너무 위험했다.마음은 잘 다잡고 있어도 몸은 솔직했기 때문이다.“알겠어요. 안 할게요. 대신 제가 몸으로 감사해도 된다면... 그럼 다시는 말 안 할게요.”이신향은 얼굴에 붉은 기운이 가득한 채로 그의 목을 감아 안으며 입을 맞췄다.그녀는 몸을 예천우에게 바짝 기대며 천천히 스치기 시작했다.예천우는 순간 멍해졌고 평소 같았으면 누구보다 빠르게 반응했을 텐데 이번엔... 늦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그는 이런 감각을 즐기고 있었는지도 몰랐다.하지만 머릿속에는 신념이 확고했다.책임감이라는 단어가 그의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다.서로의 체온이 뜨겁게 오르던 그 순간 예천우는 가까스로 정신을 붙잡고 입을 열었다.“신향 씨, 잠깐만요... 제 말 좀 들어봐요.”이신향은 그의 눈빛이 진지하다는 걸 알아채고 조용히 멈췄
원래는 분명히 말하려고 마음을 먹었었지만 예천우는 막상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재동의 행동은 분명 호감 가는 구석이라고는 없었다. 오히려 불쾌하기까지 했고 일부는 분노를 자아낼 정도였다.하지만 예천우는 이제동도 아주 나쁘거나 악의적인 건 아니라는 걸 알았고 단지 그도 이익에 따라 움직이고 위험을 피하고 싶어 했을 뿐이다.무엇보다도 이신향은 아버지를 꽤 존경하고 있다는 걸 예천우는 알고 있었다. 그만큼 이재동도 딸을 진심으로 아끼고 있었다.그래서 지금 이 자리에서 바로 헤어지자고 말해버리면 이신향이 분명 상처받을 거라는 걸 그는 잘 알았다.‘그래. 그냥 나중에 신향 씨가 직접 아버지에게 말하도록 하는 게 더 좋을 거야.’ 그렇게 하면 서로 감정 상할 일도 없고 훨씬 부드럽게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어차피 예천우는 또다시 가짜 남자 친구 역할을 하며 불려 다닐 여유 따윈 없었다.조신우 건이 깔끔하게 마무리된 뒤 모두가 홀가분한 기분으로 식사를 이어갔다. 식탁 위에 차려진 음식들은 하나같이 훌륭했다. 보기만 해도 고급스럽고 향이 진하게 풍겨왔다.그리고 그건 당연했다.오늘 올라온 요리들은 하나같이 고가의 재료로 만든 귀한 음식들이었고 식당에서도 상위 몇 퍼센트만을 위한 최고급 요리였다.이재동 가족에게 이런 자리는 처음이었고 이런 걸 먹어본 적이 없으니 입에 넣는 순간부터 반응이 달랐다. 그야말로 행복한 표정들이었다.그중에서도 이신향은 가장 들떠 있었고 기분도 최고였다.특히나 부모님이 오랜만에 웃으며 술잔을 기울이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흐뭇했다.그녀는 아버지와 그리고 예천우와 연거푸 술잔을 주고받았다.그런데 놀랍게도 이재동의 주량은 꽤 대단했다.마오타이를 한 병 비운 뒤엔 더는 예천우의 귀한 술을 손대지 않았다.그 대신 이런 좋은 술은 아껴야 한다며 종업원에게 일반 백주를 가져오라고 시켰다.하지만 예천우가 그런 걸 올리게 둘 리가 없었다.결국 종업원은 또 다른 비싼 술인 페이톈 마오타이를 내왔다.그렇게 술잔
“아!”도민현은 예천우의 말에 깜짝 놀라 얼굴에 놀라움이 그대로 드러났다.“용왕님, 그게...”하지만 그는 곧 표정을 가다듬고 급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네. 알겠습니다. 바로 사람을 시켜 움직이겠습니다!”그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아무리 상상해도 그는 믿기 어려웠다.‘용문을 이끄는 용왕님에게 또 다른... 그것도 이렇게 무서운 신분이 있었다니…’예천우가 용문 용왕이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하지만 예천우가 바로 용도 예씨 가문의 도련님이라니... 이건 그도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용도 예씨 가문이라면... 수십 년 역사에 빛나는 용도에서 손꼽히는 네 개의 최고 명문 중 하나...’그 존재감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등줄기에 땀이 맺혔다.도민현이 자리를 뜨자 남아 있던 이재동과 그의 가족들 또한 속으로 깊은 충격을 받았다.‘예씨 가문의 도련님이라고? 또 뭐야... 그건 또 얼마나 무서운 신분이야?’예씨 가문이 정확히 어떤 가문인지는 몰라도 분위기만 봐도 대단한 집안이라는 건 확실했다.특히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같이 조심스러운 태도로 응대하던 걸 보면 그 위엄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하지만 이재동은 감히 따져 묻지 못하고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저... 천우야. 아까는 정말 미안했어. 내가 눈이 어두워서 네 진짜 실력을 알아보지 못했어. 괜한 말을 했고 또 멍청한 짓까지 해서 널 곤란하게 했구나... 그... 사과의 뜻으로 내가 술 석 잔 자진해서 마시겠으니 부디 용서해다오.”이재동은 급히 잔을 들고 술을 따르며 말했다.특히 아까 딸을 절대 예천우에게 줄 수는 없다면서 오직 조신우만이 이신향의 가장 적합한 혼처라는 말을 했던 게 떠올랐다.만약 예천우가 그것을 마음에 담아두기라도 했다면 이신향의... 인생을 망치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그 생각이 드는 순간 이재동은 등골이 오싹해졌다.그가 잘못 판단하지 않았더라면 오늘이 바로 그 인생의 갈림길이었을지도 모른다.그는 절실했다.‘이건 우리 가족 운명을 바꿀
사실 이 모든 소문은 애초에 예웅남이 일부러 퍼뜨린 것이었다.예관희는 이미 예천우의 뜻에 따라 모든 사실을 예웅남에게 전했고 그중에는 예천우가 자신의 용왕 신분을 외부에 드러내지 말라고 했다는 말까지 포함되어 있었다.심지어 그가 종사급 고수라는 사실조차도 비밀로 해달라고 당부했다.이유는 단 하나였다.예씨 가문 사람들의 진심과 충성을 시험해 보기 위해서였다.예웅남은 그 말을 듣고 오히려 기회를 역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그는 그 정보를 슬쩍 흘리면서 예관희를 헐뜯고 예천우의 이미지를 흔들어 놓으려 했다.그렇게 분위기를 만든 뒤 예관희가 병사한 것으로 꾸며 자연스럽게 자신이 가주 자리에 오를 명분을 만들고자 했다.그 후에야 예천우를 제거한다면 더 이상 자신을 위협할 존재는 사라질 것이다.4대 가문 중 하나인 남궁 가문에게 자리를 넘긴다 한들 상관없었다. 어차피 지금의 예씨 가문이라면 예웅남은 그 자리를 지킬 능력도 없었다.이러한 소문 덕분에 전태민 역시 예씨 가문의 큰 도련님이 돌아와 가주를 이어받을 것이라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다만 그가 여기서 진짜로 그 예씨 가문 큰 도련님을 마주치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그 모든 진위는 아직 알 수 없었지만 전해 듣기로 큰 도련님은 예정환과 똑 닮았다고 했다.전태민은 다시 예천우를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실례가 안 된다면 여쭤보겠습니다. 혹시... 예씨 가문의 큰 도련님이신가요?”그 말이 떨어지자 주변 사람들 모두 눈을 크게 떴다.“예씨 가문의... 도련님?”이재동을 비롯한 일행은 뭔가 헷갈린다는 듯 당황한 표정이었고 심지어 이신향조차도 눈을 깜박이며 당황했다.‘천우 씨는 용왕이라며? 그런데 갑자기 예씨 가문의 도련님이라는 거지?’곁에서 듣고 있던 도민현은 잠시 찡그린 뒤 고개를 저으며 정색했다.“전 시장님, 착각하신 겁니다. 이분은 예씨 가문의 도련님이 아니라 용왕님이십니다.”“뭐라고요?”전태민을 포함한 일행의 표정이 순간 일그러졌다.그들은 당황한 나머지 자리에서 일어
이재동과 다른 사람들은 완전히 충격에 마비된 상태였고 심지어 이신향조차도 속으로 깊이 흔들렸다.그녀는 예천우가 대단하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하지만 이렇게까지 이 정도로 사람들을 압도할 수 있을 줄은 몰랐다.지금 방 안에 모인 사람들은 누가 봐도 하나같이 고위직 인사들이었다.그중에서도 앞장선 인물은 동성시의 중심 권력층에 있는 인물인데 그런 사람이 예천우의 부하에게조차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이었다.그들이 그렇게 조심스럽고 공손한 태도를 보이자 도민현 역시 더는 강하게 나가지 않았다.그는 곧장 이유를 알아차렸다.‘이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나한테 공손하게 대하는 이유는 분명 용왕님의 체면 때문이겠지.’그래서 도민현은 바로 자세를 낮추며 말했다.“말씀 잘하셨습니다. 오해가 풀렸으니 방금 일은 여기서 그만하도록 하죠. 솔직히 말하자면 저도 좀 흥분해서 예의가 없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정중히 사과드립니다.”“아... 아닙니다. 저희가 오히려 경솔했습니다.”전태민과 그 일행은 급히 고개를 숙이며 답했고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안도의 숨을 내쉬고 있었다.‘그래, 이렇게 나와야지. 그래야 협력이든 뭐든 제대로 되지.’“그러면 우리 사업 이야기 말인데요...”전태민이 빠르게 화제를 돌리며 묻자 도민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물론 계속 진행할 겁니다. 다만 지금은 조씨 가문을 정리하는 일이 급하니 조금 여유를 주세요. 며칠 뒤에 다시 보죠.”“그건 당연하죠. 아무래도 강흥시에서 오신 거라 좀 거리감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같은 남강 지역이지 않습니까. 도 대표님 같은 정의로운 기업가께 우리가 도움 드리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필요하신 게 있다면 언제든 말씀 주세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도와드리겠습니다.”전태민은 부드러운 미소로 덧붙였다.“좋습니다. 연락드리겠습니다. 여기까지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전 시장님.”도민현은 그 속뜻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굳이 더 말은 하지 않았다.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조혁진은 점점 더 절망에
도민현은 전화를 끊고 곧바로 몸을 낮추며 조심스럽게 물었다.“용왕님, 그럼... 조신우는 제가 직접 처리하겠습니다.”예천우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조씨 가문 전체도 네가 알아서 처리해. 받아야 할 벌은 반드시 받아야 해. 그리고 조씨 가문이 보유한 자산 중 쓸 수 있는 건 모두 꺼내서 필요한 이들에게 기부해. 물론 억울한 사람은 건드릴 필요 없어. 죄 없는 자에게까지 책임을 묻진 말아야지.”예천우는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하지만 죄가 있는 자라면... 절대로 봐주는 일은 없어야 해.”“용왕님의 말씀... 명심하겠습니다.”도민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 말을 듣는 순간 조신우는 아주 잠깐 희망의 빛을 본 듯했지만 곧바로 그 빛은 산산이 부서졌다.‘안 돼... 우리 집안은 죄 없는 쪽이 아니잖아. 아버지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밑에 있던 놈들도 하나같이...’조신우는 얼굴이 점점 새하얗게 질려갔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재동 가족의 마음도 서늘하게 얼어붙었다.‘천우... 아니, 용왕님의 말 한마디가 조씨 가문의 운명이 정해졌네.’바로 그때, 문이 하고 열리며 몇 명의 인물이 들어섰다.강흥시의 시장 전태민과 그 일행이었다. 그들은 마침내 도민현과 예천우가 있는 자리를 찾아낸 것이다.문이 열리자마자 그들은 방 안을 둘러봤고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인물은 도민현이었다.그러나 정작 벽 구석에 구겨져 있는 조신우는 눈에 띄지 않았다.이재동과 가족들은 갑작스러운 등장에 놀라며 주변을 살폈고 그중에서도 눈에 띈 이는 조신우의 둘째 삼촌인 조혁진이었다.그는 맨 뒤에 있었고 손발이 묶인 건 아니었지만 무언가에 억제된 사람처럼 행동하고 있었다.조혁진은 들어오자마자 조신우를 찾으려 두리번거렸다.사실 그도 처음엔 어떤 이유로 자신이 붙잡힌 건지 알지 못했다.하지만 도민현이 이 자리에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난 후 머릿속에 하나의 가능성이 떠올랐다.‘설마... 신우가? 용왕님의 지인을 건드리기라도 한 건가?’그는 그런 상상까지만 했을 뿐
이신향 역시 가슴을 쓸어내렸다. 물론 그녀는 처음부터 예천우를 믿고 있었지만 이렇게 모든 상황이 완전히 정리되고 나서야 진짜로 안심할 수 있었다.‘역시... 천우 씨는 너무 멋있어.’예천우는 정말 강하고 누구도 범접할 수 없을 만큼 당당하고도 냉철했다.‘단지 안타까운 건... 천우 씨는 나의 진정한 남자 친구가 아니야... 진짜 내 남자였으면... 나 아마 매일 웃음꽃이 피겠지.’그녀는 슬며시 아버지를 쳐다봤다.‘아빠, 이제 좀 알겠지? 천우 씨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하지만 이내 그녀는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도 아까 말했던 거 생각하면 나중에 천우 씨한테 제대로 사과는 해야겠어.’그때 도민현은 조태영의 간절한 호소를 듣고 예천우를 바라보았다.예천우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자 도민현은 바닥에 떨어진 조신우의 휴대폰을 주워 들고 차갑게 말했다.“무슨 일입니까. 말씀하시죠.”“네, 네... 도 대표님, 제가... 제가 신우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그저 부탁드립니다. 우리 협력 관계를 생각해서라도 제발 용왕님께 잘 말씀 좀 들려주십시오. 제가 어떤 대가든 치르겠습니다. 우리 신우만 살 수 있다면... 제 전부 재산이라도 내놓겠습니다.”조태영의 목소리는 절박했다. 조신우는 그의 유일한 아들이자 조씨 가문의 후계자였다. 지금 그가 위기에 처해 있고 잘못 건드린 사람은 단순히 도민현이 아니라... 도민현조차 고개를 숙이는 존재였다.‘이대로라면 우리 집안은 끝장이야. 어떻게든 기회를 만들어야 해.’하지만 도민현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조 대표님, 상대가 만약 저였다면... 한번쯤 기회를 줬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조신우가 건드린 건 용왕님이십니다.”그 말은 곧 조신우에겐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용왕님의 권위는 결코 범할 수 없습니다.”“제발... 도 대표님, 한 번만... 용왕님께 말씀드릴 기회를 주십시오. 조씨 가문 전 재산을 바치겠습니다. 신우만 살 수 있다면 다 드리겠습니다!”조태영은 절박하게 매달렸
그런데도 조태영은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그리고 방 안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인지한 순간 그는 깜짝 놀라 외쳤다.“도 대표님, 도민현 대표님, 저는 조태영입니다! 잠깐만요. 전화 좀 받아주세요.”스피커폰이 켜져 있었기 때문에 그의 말은 방 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그대로 들렸다.조신우는 그 말을 듣자 그대로 얼어붙었다.‘지금... 지금 방금 아버지가 뭐라고 부른 거야? 도 대표님?’조태영은 도민현의 목소리를 확실히 기억하고 있었다.‘설마... 설마 저 사람이...’기억의 조각이 퍼즐처럼 맞춰지자 조신우는 갑자기 소름이 끼쳤다.예전에 TV에서 본 적 있는 바로 그 인물 강흥시를 뒤에서 조율하는 진짜 실력자... 그가 바로 도민현이었다.‘방금 날 걷어찬 바로 사람이 도 대표님이었어. 말도 안 돼. 내가 도 대표님한테...’듣는 말에 의하면 도민현도 엄청나게 흉악무도한 사람이라고 했고 지금 용왕도 저런 태도로 조시우를 혼내고 있었다.그러자 조신우의 얼굴이 점점 더 창백해졌고 두 볼은 이미 부어올랐으며 정신은 반쯤 나가 있었다.한편, 이 광경을 지켜보던 이재동 가족 시 말을 잃었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잘난 체하며 거들먹거리던 조신우가 지금은 바닥에 엎드려 울면서 빌고 있었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입술은 터지고 얼굴은 퉁퉁 부은 채 온몸으로 공포에 질려 있었다.그 모습은 과거의 오만한 모습과는 전혀 딴판이었다.그런데 더 충격적인 건 따로 있었다.단지 용왕이라는 말에 조신우는 오줌을 싸고 그의 아버지 조태영은 다급한 목소리로 도민현에게 빌듯이 전화를 걸고 있다니... 이제동은 예천우가 어쩌면 아주 무서운 배경인 사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게다가 조신우의 아버지는 아주 다급한 어조였고 심지어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목소리로 도 대표님을 불렀어. 잠깐만, 도 대표님이라고?’이재동과 그의 가족들은 지금 엄청난 충격에 휩싸였다.그들은 도민현이라는 사람을 직접 본 적은 없었지만 그의 이름만큼은 익히 알고 있었다. 강흥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