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직접적으로 말하면, 이씨 형님의 체면도 제대로 서지 못했을 겁니다. 사실 한 선생께서 내 곁에 충심으로 머문다면…… 백 년쯤 지나선, 어쩌면 출세할 수도 있겠지요.”주서진의 이 말에 이청도의 속은 거의 터지기 직전이었다.이건 명백히 주서진은 전혀 이씨 가문을 안중에 두지 않는다는 뜻이었고, 심지어 이청도 본인까지도 무시한 것이었다!말투 하나하나가, 마치 자신을 무지한 놈으로 조롱하고 있었다.“그 말인즉슨, 오늘 두 분을 뵙게 된 것만으로도 제가 무한한 영광을 입었다는 뜻입니까? 그럼 저희 이씨 가문에서 감사패라도 하나 새겨 바쳐야겠네요?”이청도의 얼굴은 이미 철판처럼 굳어 있었고, 한 손은 칼자루 위에 놓인 채 두 손은 분노로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이씨 형님, 그런 말씀은 좀 지나치신 거 아닙니까?”공선 역시 얼굴을 굳히며 불쾌하게 응수했다.세 사람 모두 세가의 후계자들이었고, 서로 눈치를 보지 않는 것은 당연했으며 이씨 가문의 세력이 아무리 있다 해도, 주가와 공가 역시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내가 지나쳤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당초에 누가 나서서 한 선생을 초청하자고 했지요? 누가 나서서, 한 선생과 함께 식사하자고 했던가요?”“지금 와서 이렇게 뒤통수를 치는 게 당신들의 본모습입니까?!”이청도의 목소리는 싸늘하게 가라앉았고, 눈빛엔 분노가 차올라 있었다.“이씨 형님도 아시다시피, 한 선생의 경지가 너무 낮은 건 사실입니다. 내가 보기에, 지금 그저 인왕 일층일 뿐인데 그런 실력으론 성역에선 아무 쓸모도 없지요.”“게다가 그는 세가 출신도 아니고, 오대 명산의 사람도 아닙니다. 우리가 굳이 그런 자를 존중해야 할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말을 좀 직설적으로 하자면, 그는 그저 하찮은 놈일 뿐입니다.”주서진도 얼굴을 찌푸리고 화를 내며 말했다. “그래요, 좋습니다. 결국, 우리가 속세에서 올라온 인간이란 이유만으로 당신들과는 어울릴 자격도 없다는 거지 않습니까!”이청도의 입술은 퍼렇게 질려 있었고, 안색은 거의 죽은
이청도가 자리에서 일어난 순간, 대청 문 너머로 십여 명의 무리가 줄줄이 안으로 들어섰다.선두에 선 것은 바로 주서진과 공선이었다.이청도는 먼저 두 사람을 향해 손을 모아 예를 표한 후, 한지훈을 가리키며 말했다.“두 분, 이분이 바로 한지훈 선생님이십니다.”하지만 주서진과 공선은 한지훈을 한 번 스쳐보듯 바라보았을 뿐, 인사조차 하지 않았고 그들의 눈빛에는 노골적인 경멸이 담겨 있었다.그들은 대청 안쪽에 놓인 원형 식탁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그러던 중, 주서진의 얼굴빛이 점점 어두워졌다.식탁 위에 놓인 견과류 몇 개가 분명 누군가에게 먹힌 흔적이 있었고, 찻잔 또한 사용된 자국이 분명했다.이것들은 결코 한지훈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애초에 그들은 한지훈과 함께 식사할 생각조차 없었고, 심지어는 식탁에 앉히는 것조차 고려하지 않았던 것이다.그런데 한지훈이 버젓이 자리에 앉고 음식에 손을 댄 행위는 그들에게 있어선 참을 수 없는 무례였다.오늘의 진짜 손님은 위국도였지, 한지훈이 아니었다.만약 위국도가 이 식탁을 봤을 때, 이미 음식에 손이 간 흔적을 발견한다면 오늘 연회는 완전히 망치는 셈이었다.“한 선생님, 이 두 분이 바로 제가 아까 말씀드린, 주씨 가문과 공씨 가문의 후계자들이십니다.”“이쪽은 주서진 선생님, 이쪽은 공선 선생님입니다.”이청도는 공손하게 소개를 이어갔다.그런데 옆에 있던 공선은 식탁 위의 과일껍질을 힐끔 보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이씨 형님, 굳이 우리를 소개할 필요는 없겠군요. 연회가 곧 시작되니, 저 사람은 이만 나가게 하시지요.”이청도는 그 말에 깜짝 놀라며 고개를 돌려 공선을 바라봤다.“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별 뜻 아닙니다. 아까 주씨 형님과 이야기를 나눴는데, 한 선생님처럼 재능 있는 분이라면, 주씨 형님 저택의 정원 청소 같은 잡일에 딱 어울릴 것 같아서 말이지요. 곧 자리를 주면 되겠군요.”공선은 스스럼없이 말했다.그들에게 있어 천신 경지의 한지훈 따위는 그저 하찮은 존재에 불
하지만 그런 교아조차, 천형과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였다.그만큼 천형의 실력이 얼마나 무시무시한지 짐작할 수 있었다.“그까짓 잔재주, 대단할 것도 없지요.”공선은 입으로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지만, 얼굴엔 자부심이 한껏 묻어났다.주씨 가문은 어쨌든 한 시대의 황실이었지만, 그 주서진조차도 누리지 못한 복을 자신은 누리고 있었으니 말이다.자신의 호위는 낮에는 전장에 나가 피를 흘리고, 밤에는 등불 아래에서 함께 불꽃을 피워줄 여인이었다.한편, 이청도는 약속대로 호텔에 도착해, 직접 한지훈을 초대하러 왔다.“한 선생님, 오늘 연회에는 용국의 여러 고수들이 참석할 예정입니다. 앞으로 서로 알아두면 좋을 것 같아 이렇게 모셨습니다.”이청도는 차 안에서 공손히 웃으며 말했지만, 한지훈은 대답 없이 가볍게 고개만 끄덕였을 뿐이었다.용월과 용형은 따라오지 않았고, 한지훈은 그들을 호텔에 남겨둔 채 각 세력이 서로 연합을 시도하는 이 틈을 이용해 실력을 끌어올리도록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차량은 주씨 가문의 장원 앞에 멈췄고, 검은 옷을 입은 몇 명의 하인이 나와 문을 열었다.이청도는 한지훈에게 말했다.“한 선생님, 이쪽으로 오시죠.”그렇게 말하며 이청도는 먼저 차에서 내렸고, 한지훈에게 안내하듯 손짓했다.대저택의 대청에 들어서자, 중앙엔 이미 커다란 원형 테이블이 세팅되어 있었고 테이블 위에는 진귀한 요리들이 가득 놓여 있었다.하지만 이상하게도 대청엔 사람 하나 없이 텅 비어 있었으며, 하인 한 명조차 보이지 않았다.이청도는 상황을 보고 저도 모르게 눈썹을 찌푸렸다.떠나기 전, 분명 주서진과 공선 모두에게 연락을 했었는데, 정작 자기가 한지훈을 직접 데려왔는데도 둘은 여전히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이게 무슨 손님 접대란 말인가?!이청도는 한지훈을 향해 억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한 선생님, 주 선생님과 공 선생님 두 분 다 바쁘셔서 제가 직접 모셔 오겠습니다.”한지훈은 여전히 담담하게 고개만 끄덕였고, 주서진의 무례함 따위에 별다
주서진의 말이 끝나자, 공선도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 자를 주씨 형님 곁에서 잡무나 시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높여준 겁니다. 이씨 가문 체면이 아니었다면, 주씨 형님 신발 끈 묶는 것도 아깝죠!”주서진은 그 말에 냉소를 띠며 말했다.“됐습니다. 그보단 천형을 어떻게 끌어들이느냐가 더 중요하지 않겠습니까?”천형의 실력은 모두가 인정하고 있었고, 성역 내에서도 명성이 자자했다.게다가 그의 전투력은 단연 성역 내 최상위급이었다.“주씨 형님, 듣자 하니 동씨 어르신께서 위씨 가문 쪽과 약간 마찰이 있었다더군요. 이건 주씨 형님께서 직접 나서셔야 할 듯합니다. 우리 모두 용국 사람인데, 결정적인 순간엔 위국도 반드시 우리 편에 설 겁니다.”공선이 무겁고 진지한 어조로 말했고, 주서진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며칠 전 일에 대해선 이미 들었고, 그의 생각으로는 그저 아랫사람들끼리 일어난 사소한 충돌일 뿐 문제 될 것 없다고 판단했다.“그깟 위씨 가문의 하찮은 졸개한테 사과를 한다니, 우리 주씨 가문의 체면에 먹칠이군.”주서진은 여전히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사실 위국도는 위씨 가문에서 별로 눈에 띄지도 않는 인물이었고, 단지 성역에서의 경력이 오래되고, 또 천형이라는 든든한 배경이 있어 좀 이름을 날린 것뿐이었다.하지만 주서진은 내심 위국도를 우습게 보고 있었다.“주씨 형님, 지금은 대의를 우선해야 합니다. 우리가 사과하는 건 어디까지나 천형의 체면을 봐서 그런 것이지, 위국도 따위는 우리가 신발을 핥으라 해도 입이 더럽다며 거부하고 싶을 정도 아닙니까?”“만약 천형이 우리를 위해 움직여 준다면, 이번 오륙의 기운 쟁탈전은 우리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반면, 그가 시오도 쪽에 붙는다면, 우리에겐 커다란 위협이 되지요.”사실 공선은 전혀 진심으로 주서진을 도우려는 게 아니었다.공씨 가문 사람들은 원래부터 간사하고 교활하기로 유명했고, 그는 이미 성역 내의 구도를 꿰뚫고 있었다.성역 내에서 가장 강력한 두 세력은 바로 주씨 가문
역외의 몇 가지 소문에 대해 공선도 이미 귀동냥은 하고 있었지만, 그는 이런 하찮은 일에 대해서는 애초에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미인, 그쪽은 어떻게 생각하나?”공선은 고개를 돌려 옆 소파에 앉아 있던 한 요염한 여인을 바라보며 물었다.이 여인은 공선의 측근 호위이자, 동시에 그의 첩 중 하나였다.공씨 가문 사람들은 어딜 가든 술과 고기, 미인을 곁에 두는 특이한 취향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풍습은 공씨 가문의 시조인 공구가 한평생 유랑하며 고생만 하다가, 초나라 왕을 알현하던 자리에서조차 스스로를 떠도는 집 잃은 개와 같다고 표현했을 정도로 비참한 삶을 살았던 데서 유래한 것이다.이러한 과거 때문에, 선진 시기 공씨 가문의 후손들은 심각한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다.그 시절 많은 세가들이 공씨 가문을 두고 망국의 신기라고 조롱하기도 했다.당시 역사 기록에 따르면 공구가 노국에 머무르면 노국이 망했고, 위국으로 가면 위국도 망했다.그가 가는 곳마다 나라가 무너졌기에 그는 늘 초라한 옷차림을 했고, 공씨 가문의 후손들은 이런 망국신기라는 이미지를 씻어내기 위해서라도, 어디를 가든 반드시 화려하게 차려입고 미인을 곁에 두며, 식탁에는 반드시 술과 고기가 올라와야 했다.그걸 먹든 말든, 심지어 그냥 버릴지라도 체면만큼은 철저히 갖춰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원칙이었다.“그 자가 무슨 쓸모가 있겠어요? 혹시 이런 거라도 할 수 있나요?”미녀의 말이 끝나자, 순간 엄청난 기운이 폭발하며 대기 중에 있던 인왕 1층 경지의 고수 하나에게 그대로 쏟아졌다.순식간 대전 안은 살기가 응집되어 서릿발처럼 일렁였고, 실내 온도마저도 급격히 냉각되었다.“아… 안 돼… 살려주세요! 제가… 제가 잘못했습니다! 세자님, 제 목숨만은 살려주십시오!”그 인왕 1층의 고수는 그대로 무릎을 꿇고, 피투성이로 울부짖었지만 그자는 그대로 핏물로 변해버렸다.섬뜩하고, 잔혹했다.“인왕 하나 죽였다고 대단하긴 뭐가 대단하죠?”미녀는 공선의 어깨에 몸을 기대며, 요염한 목소리로 말
이청도의 말이 끝나자, 주서진이 흥미롭게 물었다.“오? 이씨 형님께서 초대한 고수는 어느 명산 출신이죠? 말 좀 들려주지 않겠습니까?”역시 황족의 혈통답게 주서진은 그냥 앉아 있기만 해도 위엄이 넘쳐났고, 그의 두 눈빛은 보는 사람에게 상당한 압박감을 주고 있었다.하지만 이청도는 그런 위세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그는 담담히 이름을 입 밖에 꺼냈다.“한지훈입니다!”한지훈?!그 자리에 있던 이들은 순간적으로 모두 미간을 찌푸렸다. 이들은 이미 십여 년 전부터 성역에 들어온 인물들이었고, 가장 늦게 성역에 도착한 주서진조차도 5년 전부터 성역에 머무르고 있었다.그 사이 단 한 번도 성역을 떠난 적이 없다.그 당시 한지훈은 아직 준천신계에 불과했는데, 그런 수준의 인물은 주서진이나 공선의 눈에는 아예 들어오지도 않는 존재였다.천신계에서 인왕계로 넘어간다는 것은, 끝도 없는 세월의 단련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성역에서 인왕계 1층 정도로는 주서진 앞에서 아예 말도 꺼낼 수 없었다.“그 한지훈이라는 인물을 아마 두 분께서 들어보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이름은 아실 겁니다. 용국의 북양왕이지요!”이청도는 덤덤하게 말했다.“북양왕? 천도맹약에서 파견한 열몇 명의 역외 고수들을 죽였다는 그 인물 말입니까?”주서진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되물었다.“맞습니다, 바로 그 사람입니다.”이청도가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그 정도의 인물로는 좀 부족하지 않겠습니까. 천신계야 세속에서는 전투력이 있을지 몰라도, 이 성역에서는……”말을 이어가던 주서진의 얼굴에는 벌써부터 경멸의 빛이 서리기 시작했다.세속에서 아무리 명성을 떨친다 한들, 성역에서는 모두 무의미했다.“지금은 그때와 상황이 다릅니다. 혹시 모르실까 봐 말씀드리자면, 한지훈은 얼마 전 천산검선을 베었고, 화룡진군도 그에게 죽었습니다!”이청도는 급히 해명하듯 덧붙였다.뭐라고?!공선은 눈빛이 번뜩이며 흥미를 드러냈다.“그 말씀은, 한지훈이 불과 5년 만에 인왕계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