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훈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의 말도 듣는 둥 마는 둥했다. “구충모, 나의 2가지 요구를 들어줄 거야?”“하하하! 이렇게 나와 버릇없게 말하는 사람도 오랜만이군. 한지훈, 네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야! 한강석과의 옛정을 봐서 너에게 3분이란 시간을 줄게. 첫째, 무릎 꿇고 사과 둘째, 여기 네가 입힌 경제적 손실 20억 원을 배상해. 이 두 가지만 약조하면 순순히 보내줄게!”구충모가 뒷짐을 지며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 그의 접힌 미간 사이에 경멸이 가득했다.집안도 없는 주제에 감히 어딜!1700억으로 보헤미에서 제일 고급 별장을 산 거?그게 뭐 어때서?한강석이 죽기 전에 한지훈에게 남겨둔 돈으로 산 게 분명하다. 진짜 무능력한 재벌 2세이니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구충모는 한지훈을 너무 얕봤다.한지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몸을 일으킨 그는 여전히 평정심을 유지한 채 입을 열었다.“너의 조건은 내가 들어줄 수 없을 거야. 그러니 네가 내가 너의 아들에게 제기한 두 가지 조건을 잘 생각해 보는 게 어때? 동의하면 내가 뒤끝 없이 한번은 눈감아 줄게.”“어디서 건방을 떨어!”구충모 버럭 화를 냈다. 눈에도 불길이 일고 있었지만 꾹꾹 참고 있었다.“한지훈! 누구라도 된 것처럼 감히 우리 구씨 가문의 책임을 물어? 대체 무슨 수로? 시청의 조 국장과 감독기관의 한 과장은 우리 가문의 사람들이야. 아주 친밀한 관계지. 거기에 고발할 거야?”구충모가 조롱했다. 그는 한지훈에 대한 멸시가 가득했다.실종된 지 5년이나 지난 지금 난데없이 나타나 구씨 가문에 맞서다니. 주제 파악이 덜 된 듯하다.구경도 끼어들며 한마디 보탰다.“그러게! 좋게 말할 때 어서 꼬리를 내려! 너의 가문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어. 너도 그때 귀공자가 아니라고. 그저 쓰레기에 지나지 않아. 강 씨 가문의 데릴사위. 딱 그 정도야. 네 까짓게 우리 구씨 가문에 맞설 생각을 다하고 꿈도 야무져! 얼른 무릎 꿇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어. 그러지 않으면 무슨 꼴을 당하게
블랙 정장 차림의 그들은 능수능란하게 구충모의 몇십 명이나 되는 부하들을 순식간에 쓰러뜨렸다.그들 뒤로 범상한 아우라를 풍기며 한 남자가 걸어들어왔다. 그가 버럭 화를 내며 소리쳤다.“구충모! 감히 한 선생을 건드려? 죽고 싶어?”정도현은 이미 밖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구충모의 부하들이 곤장을 들고 들어가는 것을 보고 들어온 것이다.블랙 정장들은 정도현의 긍지를 불러일으킬만한 기술좋은 조폭들이다.구충모의 그 허접한 부하들과는 비교 자체가 안된다.엄격히 말하면, 구충모가 데려온 이들은 그저 겁주는 데에만 효과가 있을 뿐이다. 진짜와 붙으려고 한다면 죽는 길밖에 없다.늠름하게 걸어들어오는 정도현을 본 구충모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그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맺혔다. 그는 부리나케 몸을 돌려 악수를 청했다.“나리께서 어떻게 이런 조촐한 곳까지 오셨어요?”구충모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정도현은 그에게 다가와 그의 뺨을 세게 내려쳤다. 그 충격으로 구충모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구충모는 어리둥절했다.두 눈을 크게 뜨고 얼얼한 뺨을 어루만졌다. 그리고 억울한 표정으로 정도현을 바라보며 물었다.“나리, 제가 뭘 잘못했기에 때리시는 거예요?”말투는 겸손했지만 그 속에는 분노가 섞여 있었다.그는 구 씨가문의 가주로서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었으니 말이다.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그의 사람들이다.부하들 앞에서 따귀를 맞는 건 여간 창피한 일이 아니었다.정도현의 눈에 살기가 돌았다.“때렸다고 그래?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널 때려죽이고 싶은 심정이야.”정도현은 구충모를 내버려 두고 급히 한지훈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정중하게 90 도 경례를 하고 공손하게 입을 열었다.“한 선생, 제가 한발 늦었군요.”한지훈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늦지 않았어. 딱 좋았어.”모든 것을 눈으로 직접 담은 구충모와 구경은 어리둥절했다. 그것은 마치 고요한 물에 돌을 던진 듯이 모든 게 뒤죽박죽이라 도무지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았다.정도현은 S시의 조
그 말을 들은 구충모는 그만 머릿속이 새하얘지고 말았다.구충모는 겁에 질려 뒷걸음질 쳤다. 그리고 얼이 빠진 모습으로 정도현을 바라봤다.“나리, 다시는 이러지 않겠습니다. 다시는......”구충모의 머릿속에 수만 가지의 의문이 쏟아졌다. 왜! 한지훈 그 자식이 어떻게 정도현을 아는가! 그리고 정도현은 한지훈 앞에서 이토록 아부를 떠는가!이건 그가 전혀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다…흥!정도현은 아무 말이 없이 옆으로 가서 섰다.로비는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 모두들 소리를 낼 엄두를 내지 못했다.그건 S시에서 절대로 범접할 수 없는 사람이다. 간단한 손짓하나에 삶의 목숨이 날라간다.죽고 환장하지 않은 이상 누가 감히 이의를 제기할 수 있겠는가! 한지훈이 긴 다리를 옮겨겨 얼굴이 상기된 구충모에게 다가가 물었다.“내 2가지 조건은 잘 생각해 본 거야?”구충모는 마지막 발악을 했다.“한지훈, 너의 조건은 우리 구씨 가문이 절대 받아줄 수 없어. 그 별장은 네가 원해서 산 것이고 계약서에도 확실하게 쓰여 있어서 관청을 들쑤셔도 소용없을 거야! 그리고 우리가 생산한 물품들은 이미 반년 넘게 판 물것들이라고! 너의 한마디에 가격을 바꿀 수는 없어!”구충모는 한지훈 뒤에 서있는 정도현의 눈치를 살폈다. 그리고 이를 악물고 덧붙였다.“나리 앞이라도 나 구충모는 번복하지 않을 거야! 절대 동의 못해!”정도현이 버럭 화를 내며 구충모의 배를 걷어찼다.“죽고 싶지?”구충모는 바닥에 쓰러졌다. 그런 그를 구경이 부축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정도현을 쏘아보며 말했다.“전 나리를 S시의 우두머리로써 줄곧 존경해 왔어요. 하지만 이건 저의 구씨 가문의 일이니 멋대로 간섭하시면 곤란해요.” 그의 말이 끝나자 뒤에 있던 50-60명이 정도현과 그의 일행들을 순식간에 에워쌌다.정도현은 오늘 그리 많은 인력을 대동하지 않았다. 고작 10명 남짓하게만 데리고 왔다.“구충모, 좋은 말로 해서는 안 되겠다.”“이렇게 나오겠다고?”정도현이 윽박질렀다.구충모는
두 사람은 다름 아닌S시 시청의 조 국장 조신호와 감독기관의 한 과장 한휘창이다.두 사람은 S시 재벌들이 꿈에 그리는 인물들이다.S시의 크고 작은 모든 일들이 이 두 사람의 손을 거친다고 봐도 무방하다.서로 눈빛교환을 한 둘은 큰일이 생겼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둘은 비서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안의 상황을 파악한 그들은 기겁하며 달려갔다.“그만! 그만해!”조신호가 외쳤다.구충모가 고개를 돌렸다. 조신호와 한휘창을 본 그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는 이내 웃음을 머금고 그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조 국장님, 한 과장님, 어떻게 오신 거예요?”조국장, 한과장의 등장에 주위 사람들은 모두 벙졌다.3분도 채 되지 않아 그 둘이 도착했다.그리고 모든 이의 시선이 또다시 한지훈을 향했다.구충모도 정신 차리고 한지훈을 보았다. 믿을 수 없는 표정이다.한편, 조신호와 한휘창의 눈엔 구충모가 들어올 리 없다. 그들은 모두를 뒤로하고 한달음에 한지훈 앞에 섰다. 그리고 허리를 냅다 굽히며 예의를 갖춰 입을 열었다.“죄송합니다. 빨리 도착하지 못한 점 양해 부탁합니다.”한지훈은 그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로비가 또다시 쥐은듯이 조용했다.그들은 오늘 자신이 몇 번 경악하는 지 셀 수 조차 없었다.조신호와 한휘창마저 한지훈에게 허리를 굽혔다. 그들은 한지훈 앞에서 자책까지 서슴지 않았다.이....얼마나 놀라운 일인가!“세상에! 조 국장과 한 과장이 진짜 왔어. 한지훈에게 머리를 조아리다니…”“이 한지훈은 듣던 것과는 완전히 다르잖아! 어우 무서워.”“이제 구 씨 가문은 끝났어...”사람들은 모두 소곤대기 시작했다.구충모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조신호와 한휘창이 자신을 배신하지 않을 거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구충모가 반응하기도 전에 조신호가 서류들을 한지훈에게 건네며 말했다.“말씀하신 고지서입니다. 구 씨 가문이 가격을 인하할 것을 요구하는 동시에 고지서를 보내 한 선생님께 5100억 원을 배상하도록 요구했
구충모는 연이어 발생하는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는 당혹스러움과 무서움으로 가득 찬 눈빛으로 한지훈을 바라봤다. 그러더니 한참 후에야 억지스러운 미소를 쥐어짰다.“이게.......모두 다 너 때문이라고?”한지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표정이 모두 말해주고 있었다.털썩!방자하던 구 씨 가문의 가주가 결국 무릎을 꿇었다. 그는 손이 발이 되도록 한지훈에 용서를 빌었다.“제발 이번 한 번만 용서해 줘. 삼촌이 눈이 멀어서 그런 거야. 우리 구 씨 가문을 제발 한 번만 살려줘. 5100억 원은 너무 많아.......우리 가문의 재산을 아무리 탈탈 털어도 5100억 원은 안 돼......”구충모가 바닥에 엎드린 것을 본 부하들도 무기를 버리고 무릎을 꿇었다.망연자실한 구경도 벌벌 떨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는 눈몰 범벅이 된 얼굴을 하고 한지훈에게 기어갔다“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제발 우리 아버지와 가문을 한 번만 봐줘......”로비는 온통 그들 부자의 애원 소리로 가득 찼다.방자하던 구 씨 부자는 철저히 무너지고 말았다.이걸 지켜보던 이들은 한지훈의 신분에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 그가 바로 실종된 지 5년 만에 돌아온 한지훈이라고?그는 이미 자신의 능력을 증명했다.조신호와 한휘창마저 굽신거리는 걸 보면......보통 사람이 아니다.S 시에 피바람이 불까?한지훈은 눈살을 찌푸리며 발밑에 엎드려 있는 구충모에 말했다.“구충모, 너와 난 삼촌, 조카라고 부를 정도의 사이가 아니잖아! 어딜 감히!”한지훈은 작은 것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그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 한 씨 가문이 곤란에 봉착했을 때 구 씨 가문이 제일 번저 배반했다.어이없는 호칭이 역겹다.그러자 구충모가 급하게 말을 바꿨다.“네네네, 한 선생, 너그럽게 한 번만 우리 구 씨 가문을 용서해줘요.”한지훈이 잠시 고민에 빠지는 듯했다.“별장은 시장 가격만 받고 나머지는 내 카드에 다시 원상 복귀시켜. 그리고 유통되고 있는
한지훈이 보헤미를 나서자마자 서경희는 한지훈을 호출했다. 회사에 잠깐 들리라고 할 뿐 별다른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강운 그룹에 도착한 한지훈은 평소와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무장 부대가 회사의 모든 출입구를 지키고 있었다.그리고 문밖에는 수십 대의 군용차량이 늘어서 있었다.한지훈이 안으로 들어섰을 때 로비는 삼삼오오 소조로 나뉘어 무장한 채로 각자 맡은 구역을 지키고 있는 듯했다.분위기가 사뭇 진지했다.한지훈은 갸우뚱거리며 걸음 옮겨 회의실에 도착했다.문밖에도 여전히 4명의 무장군이 엄숙한 표정으로 살기를 한껏 품어내고 있었다.회의실 문이 열리고 한지훈이 걸어들어갔다. 거기에는 강운 그룹의 고위층과 강 씨 가문의 식구들이 있었다. 그들은 군기가 바짝 들어 두 손까지 모은 채로 서 있었다. 강준상이 앉아야 할 중심 자리에 오만한 태도의 젊은 남자가 앉아 있었다.군복 차림에 군의모를 눌러쓰고 그는 두 스타였다. 그것은 중장을 의미했다.연 씨 가문의 길정우!그가 눈썹을 치켜세우고는 콧대를 높이며 두꺼운 입술을 달싹이면서 서늘한 눈빛으로 걸어 들어오는 한지훈을 힐끔 보았다. 그의 입가에 거만한 미소가 걸렸다.회의실에 들어선 한지훈은 입구에 우뚝 멈춰 섰다. 그리고 의자에 앉아 있는 길정우와 시선을 맞췄다. 그 순간, 두 사람 사이에 불꽃이 튀는 것 같은 긴장감이 흘렀다.길정우가 입을 열었다. 차갑게 식은 그의 목소리는 듣는 이가 공황이 발작할 만큼 섬뜩했다.“한지훈, 오랜만이야.”한지훈은 마음속 타오르는 불꽃을 억누르며 담담하게 받아쳤다.“그래, 오랜만이지.”연 씨 가문의 길정우는 예전에 한지훈과도 친하게 지냈었다. 둘의 사이가 여간 좋은 것이 아니었다. 필경, 길시아와 한지훈은 죽마고우였으니 말이다.이때 보다 못한 서경희가 한지훈에 달려들며 폭언했다.“한지훈, 돌아올 생각은 했어? 중장님이 직접 강운 그릅까지 오시게 만들어야 했어? 얼른 엎드려서 사죄하지 못 해?”서경희가 서두를 떼자 가만히 잠자코 있던 강 씨 가
한지훈의 분노 섞인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강우연은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고개를 저으며 한지훈을 잡았다.“안 돼요. 지훈 씨. 그만해요. 제가 빌게요. 제발......”치밀어 오르는 화를 주체할 수 없다. 강우연이 자신 때문에 또다시 힘들어하고 있다.그녀에게 미안할 뿐이다.한지훈은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괜찮아, 내가 해결할게.”말을 끝으로 고개를 돌린 한지훈은 조금 전 부드러운 미소는 온데간데없고 순식간에 싸늘하게 변해 주위를 한번 슥 훑었다.“다시 묻는다! 누가 때렸지?”강운 그룹의 고위층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돌렸다. 강 씨 가문의 식구들도 서로를 바라볼뿐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그때 길정우옆에 서있던 강준상이 지팡이에 의지한 채 퉁명스럽게 대답했다.“내가 때렸어! 네가 어쩔 거야! 대신해서 복수라도 할 셈이야?”강준상이 한지훈을 쏘아봤다.한지훈의 꽉 쥔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왜 때는 거야!”강준상이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왜냐고? 내가 그녀더러 당장 무릎을 꿇고 중장님을 각진히 모시라고 했어. 네가 어디에 있는지 말하라고 했거든. 근데 이 년이 무릎도 꿇지 않고 입도 열지 않는 거야! 그러니 내가 마땅히 손 좀 봐줘야잖아?!”한지훈이 고개를 돌려 자신의 뒤에 몸을 숨긴 강우연을 바라봤다. 그녀는 한지훈의 갑작스런 시선에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그녀는 한지훈 때문에 맞은 것이다.한지훈의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그의 여자를 누구나 다 괴롭힐 수 있단 말인가?한지훈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강준상에게 다가갔다.전에 없던 행동에 강준상은 덜컥 겁이 났다. 그의 목소리에 다급함이 보였다.“한지훈! 뭐 하는 거야! 당장 멈춰!”강문복등 세 사람은 서둘러 강준상의 앞을 막았다.“한지훈, 섣불리 행동했다간 어떤 봉변을 당할지 몰라. 여기는 강운 그룹이고 중장님도 계신데 네가 이러면 돼? 이건 사형감이라고!”강문복이 흥분했다. 그는 한지훈이 두려웠다.그것은 한지훈의 독기로 가득 찬 그런
다급한 나머지 그는 고개를 돌려 강우연을 꾸짖었다.“강우연, 이놈이 네가 선택한 좋은 남자라고? 이것 좀 봐. 지금 뭐하려고 하는지!”그 말을 들은 강우연이 정신을 차리고 한지훈의 팔을 잡았다. 그녀가 울먹이며 고개를 저었다.“안 돼요! 지훈 씨! 그만해요! 저의 할아버지잖아요...... 그만둬요. 네?”한지훈은 그런 그녀가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그는 또다시 화를 집어삼켰다. 몸을 돌려 강준상을 노려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제야 강준상도 한숨 돌릴 수 있었다. 그는 한지훈을 쏘아보고는 언제그랬냐는 듯이 웃으며 길정우를 바라봤다.“중장님이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끌고 가셔도 상관없어요. 이놈은 원래부터 강 씨 가문과 털끝만큼도 관계 없어요.”한지훈을 불러들여 길정우의 화를 누그러뜨릴 심산이었다.그러니 강우연이 맞을지언정 말하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그때 길정우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한지훈 앞으로 다가섰다. 둘 사이에 불꽃이 튕겼다.“만나서 반가워. 다음 달 8일이면 나의 취임식이 있을 거야. 그날 저녁에 넌 나와 내 동생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전 S시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우리 연씨 가문에 사죄를 하게 될 거야.”차가운 그의 목소리는 섬뜩했다.하지만 한지훈은 담담하게 대꾸했다.“내 생각엔 정반대로 상황이 흘러갈 거야. 너의 연 씨 가문이 나한테 빌며 용서를 구하겠지. 고인이 된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에게까지 손이 발이 되도록 빌게 될 거야.”둘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심지어 실내 온도도 영하로 떨어지고 있는 듯했다.그렇게 회의실 내부를 지키고 있던 길정우의 부하가 반사적으로 나서며 전투준비를 했다.모두가 소름이 돋는 살기를 느꼈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겁에 질린 자들은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노란 오줌이 다리를 타고 흐르기까지 했다.길정우가 냉소를 지었다.“너무 나대지 말아. 너의 뒤에 한민학이 있다는 걸 알지만 다음 달이면 나도 군단장이야. 그러면 한민학이랑 같은 레벨
이 둘과 비교하면, 기자인 그녀는 마치 한 줌 모래처럼 미미한 존재였다.임설의 얼굴에 두려움이 떠오르자, 유 씨 노인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설아, 사실 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지금의 용국은 이미 몇 년 전의 용국이 아니야. 너도 알겠지만, 내 뒤에는 오대 명산이 있단 말이지.”“우리 오대 명산이 널 지지하는데, 뭐가 두려운 것이냐? 설령 용국 조정이라도 감히 우리를 어찌하지 못할 것이다.”“그리고, 그날의 대화는 줄곧 내가 한 말이었으니 잡으려면 나를 잡는 거지, 널 잡을 일은 없다.”임설은 그 말을 듣고 다소 안심한 듯 보였으나, 여전히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렇지만…… 유 씨 어르신, 그건 전부 어르신의 추측일 뿐이에요. 우리 손엔 아무 증거도 없잖아요!”“증거? 증거가 그렇게 중요해?”유 씨 노인은 냉소하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무종 전체가 내 말에 동의한다면, 그게 바로 증거지!”비록 천릉자가 대량산에서 비참하게 죽임을 당했지만, 한지훈의 명예를 실추시키기만 한다면 국왕은 가장 중요한 의지를 잃게 된다.바로 이때, 국왕의 자리를 노린다면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이때, 산성시.산중에 위치한 호화로운 별장에서, 검은색 양복을 입은 중년 남자가 마주 앉아 있는 젊은 여인에게 말했다.“선아, 며칠 전 장 도령께서 놀란 일이 있었단다.”“우리 천산 장씨 가문과는 대대로 교류가 깊었지. 어떤 의미에서든, 넌 가서 한 번은 그를 봐야 하지 않겠니?”“그리고 네 신분도 좀 자각해야 해. 진씨 가문의 큰 아가씨가 어찌 그리 속된 백성들처럼 옥기점 같은 데서 얼굴을 드러내는 것이냐!”이 중년 남자의 이름은 진천국, 산성 진씨 가문의 가주였다!진천국이라는 이름은 산성 전체에서 거의 군왕이나 다름없는 존재다.특히 영기가 되돌아온 이후, 진천국의 사문은 현재 산성 최대의 종문인 천앙종이었다!게다가 진씨 가문은 지금 천산 장씨 가문과 우호 관계를 다져가며, 혼인을 추진하려 하고 있다.만일 혼인이 성사된다면, 진씨 가문은
사실, 한지훈이 산에 들어서는 길목에서 이미 유 씨 노인의 말을 다 듣고 있었다.오대명산과 무종 사람들이 무슨 수작을 부리는지 어찌 한지훈이 모를 수 있을까!최근 이 시기 동안 천릉자의 기세가 드높다는 건, 곧 오대명산이 천릉자를 내세워 한지훈이 용국에 세운 공적을 지우려는 의도임을 뜻한다.게다가 이 기회에 국왕의 지위마저 위협하려는 것이었다.개인의 영예나 치욕 따위는 한지훈에게는 이미 중요하지 않았지만, 누구든 국왕의 권위를 흔드는 일만큼은 결코 용납할 수 없었다.오대명산의 계략을 깰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천릉자의 기세가 가장 드높을 때 정면으로 한방 먹이는 것이었다!그리고, 천릉자가 살해당한 사건은 과연 큰 파장을 일으켰다!그 전에 오대명산은 이 일을 공개적으로 보도하게 하려고 수많은 언론 기자들을 초청했다.하지만 정작 결과는, 제 발등을 찍는 꼴이 되어버린 것이다! 현장에 와 있던 언론사 수가 너무 많았고, 모두가 생중계로 현장을 전국의 시청자들에게 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게다가 수많은 인플루언서들까지 합류하며 정보를 봉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이 사건은 마치 다리가 달린 듯, 하룻밤 사이에 전국으로 퍼져나갔다!“흥! 정말 웃기는군. 그 따위가 어찌 한지훈과 견줄 수 있단 말인가? 한지훈보다 깨달음이 뛰어나다고? 타고난 자질이 낫다고? 결국 누가 죽였는지도 모른 채 죽어버렸잖아!”“흥, 내 보기엔 그냥 날뛰는 광대였을 뿐이지!”“날뛰는 광대? 그래도 광대는 멀쩡한 머리를 잃진 않겠지! 하하하…”온라인에서는 조롱이 난무했고, 항산의 사람들은 아예 모습을 드러낼 엄두도 내지 못했다.한순간에 오대명산의 기세는 급격히 꺾이고 말았다.그 뒤 한 달 동안, 모든 이들의 화제는 이 사건에 쏠렸다.오직 한지훈만이 조용히 천생서문에 기록된 내용을 따라 진지하게 약제를 조합하는 데 몰두하고 있었다.그에게는 강우연이 천신계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 이런 화제들보다 훨씬 더 중요했다.게다가 천하 정세는 이미 크게 변하고 있었고,
그들은 누군가가 도중에 강탈할 거라는 걱정은 전혀 하지 않았고, 오히려 장령풍이 자소화의 유혹을 견디지 못하고는 약속대로 천릉자에게 져주지 않을 가봐 걱정됐다. “여러분, 드디어 가장 관건적인 순간이 다가왔습니다. 과연 누가 최후의 승자가 됐을지 함께 알아봅시다!”한 인터넷 BJ는 생방송을 켜고는 팬들을 향해 말했다. 그렇게 시간은 1분 1초가 흘렀고, 모두들 손꼽아 승패를 기다리고 있었다. 약 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산 길에서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걸어 나왔다. 다만, 천릉자와 장령풍 두 사람의 종적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설마 사고라도 난 건 아니겠죠? 장 사부님이랑 천릉자 사부님은 왜 여태까지도 나오지 않는 거죠?”임설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사실 또 다른 가능성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두 사람이 너무 격렬하게 싸운 나머지 모두 중상을 입어 전혀 움직일 수도 없는 상황일 가능성도 있었다. “그렇지는 않을 거야. 필경 모두 동문 사람이기에 두 사람이 한판 붙게 된다 하더라도 반드시 어느 정도 여지를 남겨둘 거야!”유 씨 어르신은 확신에 가득 찬 말투로 말했다. 알다시피 이번 대결은 5대 명산이 함께 손을 잡고 벌인 판이다. 게다가 천산 장 씨 집안도 이 계획에 얽혀있었기에, 절대 어떠한 실수도 없을 거라 생각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주위에는 또 수많은 고수들이 지켜보고 있을 텐데, 의외의 사고란 발생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유 씨 어르신의 말이 떨어지기도 바쁘게, 산길에서는 어두운 안색의 항산 제자 4명이 단대 하나를 들고는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내려오고 있었다. 이내 카메라들은 일제히 그 단대에 초점을 뒀고, 모든 기자들은 순간 숨을 죽였다. 단대 위에는 머리 없는 시체 한 구가 누워 있었고 옆에는 웬 동그란 물건이 놓여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고 나서야, 많은 사람들은 그것이 바로 천릉자의 머리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다른 한편, 몇 명의 장 씨 집안 자제들 역시 단대 하나를 들고는 산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장령풍
그러나 한지훈은 장령풍을 투명 인간 취급한 체 눈 깜짝할 사이에 숲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한지훈이 멀어질 때까지, 장령풍은 여전히 깊은 공포 속에 빠져 있었다. 사실 천릉자는 실력이 대단한 사람이었다. 방금 그와의 정면승부에서, 그는 천릉자의 털 하나 건드리지 못했다.두 사람의 실력은 그야말로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다.천릉자의 촘촘한 검망을 깨뜨려 그의 머리를 아작 낸다는 건 도무지 상상할 수가 없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자신은 최선을 다해봤자 기껏해야 천릉자에게 상처만 입힐 거라 확신했다. 천릉자를 죽이는 건 하늘의 별 따기보다도 더욱 어려웠다. 모두들 알다시피 검망 아래에서는, 수천 갈래의 검의 습격을 마주해야 했다. 그 검망을 피해 사람을 죽이는 건 말할 것도 없고, 그 검방을 피하는 것조차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설사 2성 천신계 강자라 하더라도 밀집된 검망을 마주하게 되면,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하게 되고 더욱이는 천릉자를 사지로 몰아넣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한지훈은? 오직 나뭇잎 하나만으로, 마치 어린애 장난처럼 닥치는 대로 나뭇잎을 던져 천릉자의 머리를 아작 냈다. 지금 이 순간, 산 전체는 비할 데 없이 조용했다. 한지훈이 멀어질 때까지 장령풍은 줄곧 조용히 땅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박고 있었다. 그는 심지어 감히 고개 한번 들어 앞을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그렇게 30분이 흐르고 나서야 장령풍은 고개를 살짝 들었다. 한지훈의 자취가 더 이상 보이지 않자, 그는 비로소 이마의 식은땀을 닦아냈다. 그런데 바로 이때, 익숙한 목소리가 갑자기 들려왔다. “장령풍, 오늘 벌어진 일을 소문내면 장 씨 집안은 멸망하게 되는 줄 알아!”“네... 저는... 아무것도 못 본겁니다!”크게 놀란 장령풍은 벌벌 떨었다. 한지훈의 경고는 그에게 있어서 성지였다. 한지훈은 뱉은 말은 무조건 지키는 사람이라는 걸, 그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당시 유럽은 용경과는 80리 정도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오직 용국을 위해 복수
게다가 사방에서 한지훈을 헐뜯고 있는 발언들에 대해, 장령풍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당시 한지훈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었고, 몇몇 명산 모두가 그의 적이었다. 그렇기에 한지훈이 남의 도움을 받았다는 얘기 자체는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역외 강자조차도 흔들 수 없는 거물을, 누가 감히 건드리려 하겠는가? 그러나 옆에 있던 천릉자는, 장령풍의 표정 변화를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그는 한지훈의 정체가 뭐든, 자신이 쟁취해야 할 성과를 이대로 빼앗길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이내 그는 장령풍과 상의도 하지 않고 바로 손을 들었다. 곧이어 그물처럼 촘촘한 검망이 한지훈의 정수리 위에 펼쳐졌다. 그는 단 한 방에 한지훈을 산산조각 내어,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자신을 건드리면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지 똑똑히 보여줄 작정이었다. 온 하늘을 덮은 검망에도, 한지훈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닥치는 대로 나뭇가지에서 잎사귀 하나를 따냈다. 그러고 나서는 천릉자가 서있는 쪽으로 잎사귀를 가볍게 던졌다, 곧장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잎사귀에, 제대로 화가 난 천릉자는 하마터면 피를 토할 뻔했다. 잎사귀로 사람을 다치게 하는 건, 무종 모든 종사들의 장기였다. 그러나 종사계의 실력은, 그저 전신계와 같을 뿐이었다. 그런데 일성 천신계 고수인 자신이 뜻밖에도 전신계 같은 땅강아지한테 무시당하게 될 줄이야? 생각할수록 더욱 화가 치밀어 오른 천릉자는 곧바로 또 하나의 검망을 휘두르며 사악한 웃음을 보였다. “네 이 녀석, 천신계 강자를 상대로 도전장을 내밀면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지 오늘 내가 제대로 보여주마!”“죽어!”지금 이 순간, 천릉자는 이미 한지훈을 죽은 사람으로 취급했다. 이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눈 깜짝할 사이에 한지훈은 산산조각 나게 될 것이다. 예상치 못한 눈앞의 상황에 장령풍은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전에 이미 한지훈의 전력을 직접 목격했었다. 모든 전투에서, 한지훈은 오릉군 가시를 던졌었다.
천산 장 씨 집안과 항산 사이에는 서로 맺은 약속이 있었다. 오늘 이 자소화도 사실은 천릉자에게 주기로 내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자소화 자체는 결코 희귀하지는 않지만, 꽃이 피기 전의 자소화를 찾는 건 매우 나도 어려운 일이었다. 대다수는 사람들에게 발견되기 전에, 산속의 맹수들에 의해 먹히고는 만다. 사실 천신계 강자에게 있어, 자소화의 장점은 셀 수 없이도 많았다. 이 자소화를 손에 넣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순조롭게 2성 현급 천신계까지 도달할 수 있게 된다. 그렇기에 이렇게 큰 유혹 앞에서, 장령풍은 장 씨 집안과 항산의 약속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고 오로지 이 자소화를 손에 넣을 생각뿐이었다. 그의 단호한 태도에 천릉자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장령풍, 작은 것을 얻으려고 큰 것을 잃으려 하지는 마. 당시 한지훈의 그 사건도 장 씨 집안이 자초한 일이었어. 네가 자소화를 손에 넣는다면, 그동안 우리가 한 모든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게 될 거라고!”사실 전에 5대 명산, 항산 그리고 천산 장 씨 집안이 줄곧 천릉자를 치켜세운 이유는 그 배후에는 아주 큰 음모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이른바 불세출의 천재란 타이틀을 근본적으로 꾸며낸 것이다. 사실 천릉자는 이미 30년 전에 항산 문하에 들어선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동안 항산은 줄곧 그를 중점 육성 대상으로 간주해오고 있었다. 그렇게 4년 만에 단번에 천신 경계를 돌파하게 된 기적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이 모든 이야기는 가짜였지만, 그 최종 목적은 천릉자를 이용하여 한지훈을 호되게 밟는 것이었다. 그리고 방금 유 씨 어르신의 발언과 언론을 통해 한지훈은 영원히 용국의 치욕이라는 이미지로 매장하려는 속셈이었다.그러려면 이 과정에서 천릉자의 후광을 더욱 밝게 비추어야 했다. 그의 후광으로 한지훈의 공적을 덮어 그를 폄하하고 말살하는 목적을 달성하려는 계획이었다. “장 씨 집안의 계략이 뭐가 대수야? 난 지금 오직 이 자소화만 갖고 싶을 뿐이야!”장령풍은 여전히 굳은 표정
만약 이 모든 게 사실이라면, 이 내용이 보도된다면 전 세계를 뒤흔들 만한 사건이 될 것이다.필경 현재 용국은 물론, 심지어 전 세계가 모두 한지훈이 단지 일성 준 천신계의 실력으로 10여 명의 역외 강자들을 참살했다고 믿고 있었다. 그리하여 전 세계는, 한지훈과 용국에게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만약 그 배후에 호천 창세가 손을 쓴 거라면 용국은 과연 어떻게 될까? 한지훈은 또 어떻게 될까? 과연 누가 용국을 두려워하겠는가? 아마 그 누구도 한지훈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지 않을 것이다.“됐어, 한지훈 그 반역자에 대해서는 이쯤하자. 저 두 사람의 시합이나 지켜보자고!”유 씨 어르신은 의도적으로 반역자라는 세 글자를 강조하며, 한지훈의 못된 이미지를 제대로 박았다. 한편 그 시각, 한지훈도 어느새 산꼭대기에 도착했다. 장령풍과 천릉자 두 사람은 여전히 교전을 펼치고 있었다. 게다가 보아하니 장령풍의 상황은 딱히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새하얀 도포에 머리카락을 흩날리는 장령풍은, 어느새 피범벅이 되었고 분노 가득한 두 눈동자는 천릉자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에 반면 천릉자는 조금도 다치지 않고 여유롭게 한 손을 짊어진 채 당당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듣기로는 너희 장 씨 집안 삼절진은 이 세상에서 유일무이하다고 하던데, 오늘 보니 역시나 명실상부라 느껴지긴 하는구나. 하지만 다만 아쉬운 건, 넌 아직 제대로 불꽃이 튀지 않아 천절진의 위력은 크게 발휘하지 못하고 있어!”“앞으로 만약 10년만 더 지나게 된다면, 나중에 나의 천망 검진은 너를 더 이상 격파하기도 어렵게 될 거야. 하지만 어찌 됐든 그건 10년 후의 일이니, 오늘은 일단 이 자소화를 나한테 양보해!”이내 천릉자가 허리 굽혀 자소화를 따려는 순간, 숲속에서는 갑자기 우렁찬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오옥!”불곰보다도 몇 배나 더 큰 맹호 한 마리가 갑자기 숲에서 뛰어나오고 있었다. 순간 천릉자와 장령풍 모두 멍해졌다. 전에 5대 명산 고수들이 이미 산꼭대기를
유 씨 어르신의 말에, 임설은 끊임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영기가 돌아온 후, 모든 사람들의 몸에는 큰 변화가 생겼고 저항력도 강해졌을 뿐만 신체능력도 향상되었다.그러나 마찬가지로 맹수들도 더욱 강해졌다. 만약 임설이 맹호를 상대한다면, 그건 바로 먹잇감이 되는 것이었다.당시 한지훈의 일전도 마찬가지라는 뜻이었다. 십여 명의 역외 강자들을 상대하다니, 게다가 모두 한지훈보다 한두 단계 높은 경지의 고수들이라니. 비유하자면 당시의 한지훈은 마치 현재의 임설과도 같았고, 그 십여 명의 역외 강자들은 바로 맹호 같은 존재였다. 그렇기에 그들의 대결 결과는, 전혀 추측할 필요가 없이 다들 이미 확신하고 있었다. “그럼 당시 그 대결이 만약 오로지 한지훈의 소행이었다면, 이건 합리적인 일이라고 생각해?”유 씨 어르신은 뒷짐을 진 채 오만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자 옆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어리둥절해졌다. 필경 유 씨 어르신은 화산 고수중 한 명이었기에, 그의 말은 신빙성이 아주 높았다. 게다가 진정한 무도 중인 만이 한지훈이 당시 직면한 것이 얼마나 큰 도전이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다시 말해서, 보통 사람은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유 씨 어르신은 이런 속임수에 넘어갈 리가 없었다. 뿐만 아니라 무종이 점점 강해지게 되면서, 현재 더욱 많은 일반인들이 모든 경계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 잘 알게 되었다. 천신경은 말할 것도 없고, 설령 전신계라 하더라도 작은 경계 사이의 차이는 하늘과 땅의 차이였다. 즉 천릉자는 비록 일성 준 천신의 최고 실력에 도달하긴 했지만, 그가 2성 천신계를 돌파하지 못한 이상, 2성 천신계 상대에게 있어 그는 마치 땅강아지와도 같은 존재였다. 두 사람이 동원할 수 있는 역량이 전혀 같은 수평선에 놓여있지 않는데, 어떻게 싸울 수 있겠는가? “어르신, 그 말씀은 전에 한지훈이 다른 사람의 힘을 이용하여 모든 사람들을 속여왔다는 뜻인가요?”임설이 다시 물었다. “그래. 중요한 포인트를 짚었네. 너희들 아직도
임설은 다시 한번 당부했다. “혹시 임설이니?”바로 이때, 임설의 뒤에서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 씨 어르신?”고개를 돌린 임설은, 뒤에 선 노인을 보고는 순간 멍하니 있다가 이내 급히 열정적으로 그를 맞이했다. 그녀가 유 씨 어르신이라 부르는 이 사람은 바로, 세속에서 활동 중인 화산 강자이자 현재 무도 재판소의 부회장이기도 했다. 게다가 화산이라는 든든한 배경이 있었기에 유 씨 어르신은 세속에서도 소문이 자자했다. 매체인으로서 임설 역시 유 씨 어르신이 낯설지는 않았다. 게다가 전에 그녀는, 유 씨 어르신의 인맥을 통해 5대 명산의 3기 다큐 영화까지 제작했었다. “어르신, 어르신께서는 왜 여기 계신 거예요?”임설은 겉으로는 궁금해하는 척했지만, 사실 내심 전혀 의외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이번 사건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장령풍과 천릉자 두 사람이었기에, 같은 5대 명산인 화산에서 사람을 보내지 않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난 단지 길을 가던 중 한번 와서 본 것일 뿐이야. 그나저나 이 아이들은 이젠 모두 어른이 되었는데, 이들이야말로 용국의 미래 희망이지!”유 씨 어르신은 눈을 지그시 뜨고는 산 꼭대기 쪽을 유유히 바라보았다. 뭔가 좋은 생각이 떠오른 임설은 급히 보조 카메라 감독을 불러 휴대폰으로 촬영하라고 지시하였다. 이내 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앞으로 나아가 유 씨 어르신 가까이에 다가갔다. “어르신, 어르신의 경험으로 봤을 때 오늘 이 자소화, 과연 어느 집안이 가져갈 거라고 예상하시나요?”필경 유 씨 어르신의 신분 지위는 꽤나 높았기에, 아마 일부 내막에 대해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게다가 5대 명산끼리의 호흡은 결코 보통 사람들이 상상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장령풍과 천릉자가 맞붙기도 전에, 아마 암암리에 모든 준비를 마쳤을 가능성도 매우 높았다. “아이고, 그 질문은 좀 난처하네. 원칙부터 말하자면, 장 씨 집안 역사는 엄청 유구하지. 우리 용국의 많은 비진도 모두 장 씨 집안으로부터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