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우연이 떠난 뒤, 용일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한지훈에게 다가갔다. 그는 가면을 벗는 한지훈에게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사령관님, 왜 꼭 가면을 써야 했나요? 사모님에게 신분을 들키는 게 두렵나요?”한지훈은 고개를 돌려 용일을 쏘아보며 말했다.“멍청하긴! 난 지금 이 시간에 상사인 도설현 씨랑 같이 업무를 보고 있어야 해. 이런 곳에 나타났다고 하면 우연이가 어떻게 생각하겠어? 우연이가 의심하기 시작하면 우리의 계획에도 차질이 생길 거라고! 4대 가문 중에서 원씨 가문은 이미 수면으로 드러났는데 당연히 조심해야지! 놈들이 나를 흔들려고 우연이랑 고운이에게 접근해서 해를 가할 수도 있다고.”용일은 다급히 고개를 숙였다.“이제 알겠어요, 사령관님. 제가 생각이 짧았네요.”한지훈은 인상을 찌푸리고 가면을 내려다보며 말했다.“가짜 신분이 꽤 유용하게 쓰일 때가 많을 거야. 적어도 앞으로 우연이를 대놓고 도와줄 수 있으니까.”“넌 이따가 백 선생의 신분으로 5년 전 한정그룹이 파산하기 전에 양도한 회사를 인수해. 난 다시 한정그룹을 되찾고 부모님이 계실 때처럼 최강 기업으로 만들 거야!”말을 마친 한지훈은 비장한 눈빛을 빛냈다.‘아버지, 필생의 소원을 제가 이루어 드릴게요.’“네, 사령관님!”용일은 공손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에게 물었다.“도호헌은 어떻게 할까요? 바로 죽일까요?”한지훈이 인상을 찌푸리며 대답했다.“일단 경찰서에 보내서 콩밥 좀 먹게 해.”말을 마친 그는 호텔을 떠나 고운이가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갔다.잠시 후, 강우연은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집에 도착했다.한지훈은 미리 준비해 둔 따뜻한 우유를 그녀에게 건넸다.“많이 피곤하지? 우유가 수면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데웠어. 이거 마시고 푹 쉬어.”강우연은 우유컵을 바라보며 눈시울을 붉히다가 그의 품에 와락 안겼다.“지훈 씨, 미안해요. 미안해요….”한지훈은 움찔하더니 부드럽게 그녀의 등을 다독여 주었다.“왜 그래? 누가 괴롭혔어? 나한테 말해. 내가 다 혼내줄 수
강우연은 난감해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그가 질투한다고 생각하고 다가가서 그의 팔짱을 꼈다.“이상한 상상하는 거 아니죠? 진짜 단순히 내가 밥 한 끼 사고 싶어서 그래요. 장담할 수 있어요. 난 평생 당신을 떠나지 않아요. 당신이 고운이 아빠니까요. 이제 됐죠?”한지훈은 자신을 바라보는 순수하고 맑은 눈동자를 보고 가슴이 두근거렸다.“알았어. 믿을게. 그 백 선생이랑은 며칠 지나서 연락하는 게 좋겠어.”그는 강우연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말했다.“그런데 백 선생 연락처는 알아?”강우연은 그제야 연락처조차 못 받았다는 것을 기억해 내고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그러네요. 워낙 신비주의라 연락처를 뿌리고 다니는 사람도 아니고… 나도 경황이 없어서 연락처 달라는 말을 못 했네요.”한지훈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말했다.“그럼 일단 그 일은 보류하자.”강우연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어쩔 수 없네요.”말을 마친 그녀는 씻어야겠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그녀가 욕실로 들어간 뒤, 한지훈은 조용히 핸드폰을 꺼내 용일에게 전화를 걸었다.“우연이에게 자연스럽게 백 선생의 연락처를 흘릴 방법을 생각해 봐. 내가 시켰다는 말은 하지 말고.”전화를 끊은 그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어쩌면 한 끼 식사가 끝나면 강우연은 더 이상 백 선생이라는 인물에 대해 신경 쓰지 않을지도 모른다.하지만 어떻게 몰래 백 선생의 신분으로 그녀를 도와줄까?그 시각, 진우철은 밤새 KTX를 타고 H시에 있는 본가로 향했다.곧장 거실로 간 그는 울음을 터뜨리며 바닥에 무릎을 꿇고 한 중년 남자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매달렸다.“아버지! 저 S시에서 못 살겠어요. 한지훈 그 녀석 너무 무식하고 건방져요. 감히 저를 공격하고… 게다가….”“뜸 들이지 말고 빨리 말해! 답답하게 굴 거야?”뒤돌아선 진정성이 싸늘하게 아들을 노려보며 다그쳤다. 그는 이 호화 저택의 주인이자 진양그룹의 회장이었다.진양그룹은 H시에서 일류 기업에 속하는 대기업이었다.진정성은 정치권에도
삼호는 호텔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저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한지훈은 그에게 악몽 그 자체였다.지금도 그 섬뜩한 눈빛을 떠올리면 소름이 돋았다.“가주님, 그 한지훈이라는 자 만만치 않아요. 실력을 보면 4성 천급 병왕 그 이상이에요. 큰형님은 제대로 공격도 못 해보고 돌아가셨고 둘째 형님도 마찬가지에요. 둘째 형님이 돌아가실 때 이런 말씀을 하셨는데….”삼호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뭐라고 했는데?”진정성이 차갑게 물었다.“전신이라고 했어요.”삼호가 대답했다.전신?진정성이 눈을 가늘게 뜨더니 길게 심호흡하고 다시 물었다.“너도 그렇게 생각해?”어떻게 이럴 수 있지?전신급 실력이라니!정말 어마어마했다.일존 전신급 실력을 갖춘 인물이라면 부대에서 최소 군단장급이었다.그런 인물이 S시 같은 시골구석에서 남의 데릴사위나 하고 있다니!삼호가 확신에 찬 얼굴로 말했다.“가주님, 둘째 형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확실히 그런 말을 했어요. 저는 확실하지 않지만 전신이 아니라도 최소 군왕급 실력이라고 판단됩니다.”진정성의 얼굴이 음침하게 굳었다.“전신이 아니라도 한방에 대호와 이호를 죽여버렸으면 최소 군왕급 이상의 실력이겠지. 쉽게 건드려서는 안 될 상대야.”말을 마친 그는 고개를 돌려 싸늘한 눈빛으로 진우철을 바라보다가 다가가서 그의 귀뺨을 치며 말했다.“멍청한 녀석! 어쩌다가 그런 인물을 건드린 거냐!”진우철은 얼굴을 감싸며 억울한 표정으로 말했다.“아버지, 저도 한지훈이 그렇게 대단한 줄은 몰랐어요. 분명 멸망한 가문에서 운 좋게 살아남은 백수 녁석이었는데… 마누라 등쳐먹으면서 사는 놈이라고요….”“그래서 억울해?”진정성은 시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아들을 노려보며 다시 손을 들었다.진우철은 다급히 몸을 피했다.삼호가 말했다.“가주님, 유 선생을 보내 한지훈의 실력을 가늠해 보는 건 어떨까요? 만약 군왕급 이상이 아니라면 놈을 제거해서 큰형님과 둘째 형님의 복수를 해야죠. 만약 군왕급 이상이라면 거금을 들여 놈을 고
그 시각, 강운그룹 회의실에서는 도영그룹 관련해서 치열한 설전이 벌어지고 있었다.아침부터 그들은 협력을 중지하겠다는 도영그룹의 통보를 받았다.이유는 도호헌이 어제 잡혀가서 지금까지 돌아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강운그룹 임원들은 모든 화를 강우연에게 돌렸다.“우연아, 이게 대체 다 무슨 일이야? 어제 도 대표랑 같이 저녁 먹으며 사업 관련해서 얘기한다고 하지 않았어? 도 대표가 왜 갑자기 잡혀간 거야? 넌 그때 뭐 했어? 너랑 상관있는 거 아니야?”상석에 앉은 강문복이 음산한 표정으로 강우연을 추궁했다.강희연 역시 싸늘하게 굳은 표정으로 강우연을 비난했다.“강우연, 입 닫고 있는다고 일이 해결되지 않아! 어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우린 이번 사업을 위해 벌써 200억이 들어갔다고. 사업이 중단되면 이 손해는 어떡할 거야!”다른 임원들도 하나둘씩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강 부장, 솔직히 사실을 말해봐요. 어제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도 대표가 갑자기 잡혀간 이유가 뭐에요?”“도 대표한테 무슨 무례한 발언을 해서 회사까지 덤터기를 쓰게 된 게 아닙니까!”“그러니까 왜 하필 강 부장을 보내서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강우연은 사람들의 비난과 질책에도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이들에게 도호헌이 자신을 추행하려 하다가 백 선생이 나타나서 구해줬다고 하면 어떻게 생각할까?그녀가 말이 없자 회장석에 앉아 있던 강준상이 굳은 표정으로 책상을 탕탕 두드렸다.“강우연! 입만 다물고 있지 말고 당장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 안 그러면 회사에서 쫓겨날 줄 알아!”모두가 악의를 가득 품은 눈빛으로 강우연을 바라보았다.강우연은 압박감에 못 이겨 결국 얘기를 꺼냈다.“백 선생이….”“백 선생이라니? 누굴 말하는 거니?”강준상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강문복이 벌떡 일어서더니 따지듯 물었다.“백마 산장 상회에 나타났던 그 백 선생 이야기하는 거야?”그 말
강우연은 눈물을 닦으며 그들에게 말했다.“저는… 백 선생 연락처를 가지고 있지 않아요.”그러자 사람들은 기가 차다는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웃겨! 자기 구해준 사람 연락처도 모르다니!”“이렇게 웃길 수가! 강우연 씨, 거짓말이 너무 티 나는 거 아니에요?”“황당하네! 백 선생같이 높으신 분이 지나가다가 구해줬다고요? 그 말을 누가 믿겠어요?”사람들은 너 한마디, 나 한마디 강우연에 대한 비난을 멈추지 않았다.강우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눈물을 흘렸다.강준상이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호통쳤다.“강우연, 마지막 기회를 주지. 어떻게 된 건지 제대로 설명해. 사실대로 말하지 않으면 할아버지도 널 지켜줄 수 없어. 200억이 걸린 사업이 파토났어. 이게 뭘 의미하는지 너도 잘 알겠지? 내가 지금 너를 회사에서 내쳐도 넌 할 말 없어!”“할아버지, 제 말은 모두 사실이에요. 저 정말 거짓말을 하지 않았어요.”강우연이 울며 말했다.강준상은 싸늘하게 코웃음 치며 지팡이를 치켜들었다.그런데 이때, 얼굴이 하얗게 질린 비서가 안으로 들어왔다.“회장님, 백… 백 선생께서 방문하셨어요.”순간 회의실 분위기가 차갑게 얼어붙었다.강준상은 의심의 눈초리로 비서를 바라보며 물었다.“누굴 말하는 거야?”“백마 산장 백 선생이요. 최근에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그분 말입니다.”비서가 다급히 말했다.임원들은 숨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했다.백 선생이 갑자기 강운에 방문했다고?강준상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강우연을 힐끗 보고는 말했다.“당장 마중을 나가야겠어!”강문복과 강희연, 그리고 나머지 임원들의 얼굴이 흥분으로 차올랐다.백 선생의 방문은 예상밖이었지만 회사에 어떤 이득을 가져다줄지 기대가 됐다.그들은 강우연을 내버려 두고 분분히 일어서서 밖으로 나갔다.강우연은 홀로 자리에서 눈물을 닦고 조용히 일어섰다.회사 입구에 번쩍인 롤스로이스 한 대가 도착했다. 그 뒤에는 다섯 대의 마이바흐가 따르고 있었다.사기 충만해서 밖으로 나온 강운그룹 사람들은 저도
가면을 쓴 한지훈은 싸늘한 눈빛으로 강준상을 비롯한 강씨 가문 사람들을 바라보았다.그는 잠시 뜸을 들인 후, 강준상과 악수하며 당당히 말했다.“강 회장님, 협력 제안을 하러 찾아왔습니다만.”뭐라고?백 선생이 강운그룹에 사업 제안을 하러 친히 왔다고?그 말을 들은 강준상은 흥분하여 얼굴이 빨갛게 되었다.신비주의로 무장한 백 선생이 고작 사업 제안을 하러 회사까지 직접 찾아왔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하늘이 강운을 돕는 것일까?강준상은 공손한 태도로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백 선생, 들어가서 얘기 나누시죠.”강문복 역시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강준상의 뒤를 따랐다.강희연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한지훈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어떻게 저렇게 분위기가 멋있는 남자가 다 있지?’비록 가면을 썼지만 온몸에서 풍기는 우아한 분위기는 전혀 가려지지 않았다.어쩌면 이안그룹 회장 이한승보다 더 대단한 인물일지도 모른다.사람들이 백 선생을 이한승의 배후 투자자라고 얘기하고 다니는 것도 일리가 있었다.그렇다면 백 선생이야말로 숨겨진 최고 재력가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강운의 임원들은 아부 섞인 웃음을 지으며 강준상 일가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사람들 틈을 비집고 나온 서경희는 멍하니 서 있는 강우연의 팔목을 잡으며 재촉했다.“봤지? 얼마나 위풍당당해? 이게 진짜 남자가 가져야 할 품위야! 넌 왜 그렇게 고집불통이니? 기회는 왔을 때 잡아야 한다고!”조금 전 회의실에서는 그녀를 위해 말 한마디 하지 않았던 서경희였다.하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흥분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강우연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지난번에 없던 일로 하자고 했잖아요!”“너는 정말… 아이고! 됐어!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넌 가만히 있어! 백 선생이야말로 너한테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이야. 한지훈 그 백수 녀석은 그냥 버려!”서경희는 손으로 강우연의 어깨를 툭 밀치고는 사람들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강학주는 다가와서 서글픈 표정을 짓고 있는
안으로 들어간 한지훈은 자연스럽게 상석으로 가서 앉았다.평소의 한지훈이었다면 여기 들어오지도 못하고 문전박대를 당했을 것이다.강준상과 다른 가족들에게 그는 여전히 무능한 백수에 지나지 않았다.하지만 백 선생의 신분으로 방문하니 모두가 우러러보는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평소에 그만 보면 시비를 걸지 못해 안달이던 강희연이 직접 차를 따라 대접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백 선생님, 새로 들여온 우롱차인데 한번 마셔보세요.”강희연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실수인 척, 한지훈의 손을 쓰다듬었다.그러더니 매력적인 눈을 깜빡이며 한지훈에게 유혹의 신호를 보냈다.가면 속 한지훈은 냉소를 지으며 손길을 뿌리쳤다. 그러자 뜨거운 찻잔이 기울며 강희연의 명품 외투에 찻물이 그대로 쏟아졌다.“악!”강희연은 화들짝 놀라며 비명을 질렀다.한지훈은 짐짓 당황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물었다.“죄송해요. 찻잔이 너무 뜨거워서… 강 실장님, 괜찮으시죠?”강희연은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5백만 원이나 주고 산 명품 코트가 엉망이 되어버렸다.하지만 겉으로는 괜찮은 척, 밝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괜찮아요. 죄송해요. 제가 물 온도를 제대로 체크하지 못했네요. 백 선생님은 괜찮으시죠?”이게 신분과 지위의 좋은 점이었다.한지훈은 속으로 냉소를 지었다.분명히 그가 일부러 쳐냈다는 걸 알았을 텐데 오히려 강희연이 미안하다고 사과했다.만약 이 가면을 벗으면 강희연은 언제 그랬냐 싶게 온갖 욕설을 다 퍼부을 것이다.그를 죽이려고 달려들지도 모르는 일이다.한지훈은 고개를 흔들며 대답했다.“전 괜찮습니다.”강희연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뒤로 물러섰다.강문복이 헛기침을 하며 끼어들었다.“희연아, 가서 따뜻한 물이라도 새로 가져와.”강희연은 물 심부름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녀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한지훈에게서 시선을 뗄 줄 몰랐다.그녀는 백 선생의 외모가 무척이나 궁금했다.분명 잘생겼겠지?저 신분과 재력으로 가면을 쓰고 다닌다는 건 여자들이 꼬여 귀찮은 일이
현장에 있던 모두가 헉 하고 숨을 들이켰다.400억?400억이라니!강준상은 떨리는 눈빛으로 서류를 확인하고는 길게 숨을 들이마시고 말했다.“정말 이 400억짜리 사업을 우리 강운에 밀어주시겠다는 겁니까?”한지훈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렇습니다.”“좋아요! 지금 당장 도영그룹과의 계약을 해지하겠습니다.”강준상은 바로 그 자리에서 결단을 내렸다.도영그룹이 뭐?백 선생이 첫 만남에 400억짜리 사업을 제안했다는 건 그 실력이 절대 도영에 뒤처지지 않는다는 의미였다.이한승의 배후에 백 선생이 있다는 소문도 괜한 헛소문이 아니었다.강준상의 입이 찢어질 것 같은 순간에 한지훈은 정색하며 계속해서 말했다.“두 번째 조건은 이번 사업은 귀사의 강우연 씨에게 전권을 맡기고 싶습니다. 다른 사람은 이 사업에 간섭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회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강우연에게 고개를 돌렸다.당황한 건 강우연도 마찬가지였다. 머릿속에 하얘지고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자신에게 전권을 맡긴다고?서경희와 강학주 부부마저 경악을 금치 못했다.서경희는 잔뜩 흥분한 얼굴로 강우연의 옷깃을 잡아당겼다.“뭘 멍하니 있어? 백 선생께 감사부터 하지 않고! 백 선생이 널 마음에 둔 게 틀림없어. 너 곧 회장 사모님이 되는 거야?”서경희의 격앙된 목소리는 회의실에 있던 모두의 귀에 전해졌다.사람들은 의심의 눈초리로 그들을 바라보았다.백 선생은 왜 꼭 집어 강우연을 지목했을까?지난번 백마 산장에서 강우연이 도호헌과 마찰이 생겼을 때도 백 선생이 나서서 상황을 정리했다.어젯밤 도호헌의 마수로부터 강우연을 구한 사람도 백 선생이었다.오늘은 400억이나 되는 방대한 사업을 오로지 강우연에게 맡기겠다고 선언했다.강우연에게 호감이 있는 게 아니고서야 이 상황이 설명되지 않았다.강희연은 그 말을 듣자마자 분노와 시기에 찬 눈으로 강우연을 노려보았다.‘왜? 왜 매번 강우연에게만 행운이 돌아가는 거지?’그녀는 악의가
이 둘과 비교하면, 기자인 그녀는 마치 한 줌 모래처럼 미미한 존재였다.임설의 얼굴에 두려움이 떠오르자, 유 씨 노인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설아, 사실 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지금의 용국은 이미 몇 년 전의 용국이 아니야. 너도 알겠지만, 내 뒤에는 오대 명산이 있단 말이지.”“우리 오대 명산이 널 지지하는데, 뭐가 두려운 것이냐? 설령 용국 조정이라도 감히 우리를 어찌하지 못할 것이다.”“그리고, 그날의 대화는 줄곧 내가 한 말이었으니 잡으려면 나를 잡는 거지, 널 잡을 일은 없다.”임설은 그 말을 듣고 다소 안심한 듯 보였으나, 여전히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렇지만…… 유 씨 어르신, 그건 전부 어르신의 추측일 뿐이에요. 우리 손엔 아무 증거도 없잖아요!”“증거? 증거가 그렇게 중요해?”유 씨 노인은 냉소하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무종 전체가 내 말에 동의한다면, 그게 바로 증거지!”비록 천릉자가 대량산에서 비참하게 죽임을 당했지만, 한지훈의 명예를 실추시키기만 한다면 국왕은 가장 중요한 의지를 잃게 된다.바로 이때, 국왕의 자리를 노린다면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이때, 산성시.산중에 위치한 호화로운 별장에서, 검은색 양복을 입은 중년 남자가 마주 앉아 있는 젊은 여인에게 말했다.“선아, 며칠 전 장 도령께서 놀란 일이 있었단다.”“우리 천산 장씨 가문과는 대대로 교류가 깊었지. 어떤 의미에서든, 넌 가서 한 번은 그를 봐야 하지 않겠니?”“그리고 네 신분도 좀 자각해야 해. 진씨 가문의 큰 아가씨가 어찌 그리 속된 백성들처럼 옥기점 같은 데서 얼굴을 드러내는 것이냐!”이 중년 남자의 이름은 진천국, 산성 진씨 가문의 가주였다!진천국이라는 이름은 산성 전체에서 거의 군왕이나 다름없는 존재다.특히 영기가 되돌아온 이후, 진천국의 사문은 현재 산성 최대의 종문인 천앙종이었다!게다가 진씨 가문은 지금 천산 장씨 가문과 우호 관계를 다져가며, 혼인을 추진하려 하고 있다.만일 혼인이 성사된다면, 진씨 가문은
사실, 한지훈이 산에 들어서는 길목에서 이미 유 씨 노인의 말을 다 듣고 있었다.오대명산과 무종 사람들이 무슨 수작을 부리는지 어찌 한지훈이 모를 수 있을까!최근 이 시기 동안 천릉자의 기세가 드높다는 건, 곧 오대명산이 천릉자를 내세워 한지훈이 용국에 세운 공적을 지우려는 의도임을 뜻한다.게다가 이 기회에 국왕의 지위마저 위협하려는 것이었다.개인의 영예나 치욕 따위는 한지훈에게는 이미 중요하지 않았지만, 누구든 국왕의 권위를 흔드는 일만큼은 결코 용납할 수 없었다.오대명산의 계략을 깰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천릉자의 기세가 가장 드높을 때 정면으로 한방 먹이는 것이었다!그리고, 천릉자가 살해당한 사건은 과연 큰 파장을 일으켰다!그 전에 오대명산은 이 일을 공개적으로 보도하게 하려고 수많은 언론 기자들을 초청했다.하지만 정작 결과는, 제 발등을 찍는 꼴이 되어버린 것이다! 현장에 와 있던 언론사 수가 너무 많았고, 모두가 생중계로 현장을 전국의 시청자들에게 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게다가 수많은 인플루언서들까지 합류하며 정보를 봉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이 사건은 마치 다리가 달린 듯, 하룻밤 사이에 전국으로 퍼져나갔다!“흥! 정말 웃기는군. 그 따위가 어찌 한지훈과 견줄 수 있단 말인가? 한지훈보다 깨달음이 뛰어나다고? 타고난 자질이 낫다고? 결국 누가 죽였는지도 모른 채 죽어버렸잖아!”“흥, 내 보기엔 그냥 날뛰는 광대였을 뿐이지!”“날뛰는 광대? 그래도 광대는 멀쩡한 머리를 잃진 않겠지! 하하하…”온라인에서는 조롱이 난무했고, 항산의 사람들은 아예 모습을 드러낼 엄두도 내지 못했다.한순간에 오대명산의 기세는 급격히 꺾이고 말았다.그 뒤 한 달 동안, 모든 이들의 화제는 이 사건에 쏠렸다.오직 한지훈만이 조용히 천생서문에 기록된 내용을 따라 진지하게 약제를 조합하는 데 몰두하고 있었다.그에게는 강우연이 천신계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 이런 화제들보다 훨씬 더 중요했다.게다가 천하 정세는 이미 크게 변하고 있었고,
그들은 누군가가 도중에 강탈할 거라는 걱정은 전혀 하지 않았고, 오히려 장령풍이 자소화의 유혹을 견디지 못하고는 약속대로 천릉자에게 져주지 않을 가봐 걱정됐다. “여러분, 드디어 가장 관건적인 순간이 다가왔습니다. 과연 누가 최후의 승자가 됐을지 함께 알아봅시다!”한 인터넷 BJ는 생방송을 켜고는 팬들을 향해 말했다. 그렇게 시간은 1분 1초가 흘렀고, 모두들 손꼽아 승패를 기다리고 있었다. 약 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산 길에서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걸어 나왔다. 다만, 천릉자와 장령풍 두 사람의 종적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설마 사고라도 난 건 아니겠죠? 장 사부님이랑 천릉자 사부님은 왜 여태까지도 나오지 않는 거죠?”임설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사실 또 다른 가능성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두 사람이 너무 격렬하게 싸운 나머지 모두 중상을 입어 전혀 움직일 수도 없는 상황일 가능성도 있었다. “그렇지는 않을 거야. 필경 모두 동문 사람이기에 두 사람이 한판 붙게 된다 하더라도 반드시 어느 정도 여지를 남겨둘 거야!”유 씨 어르신은 확신에 가득 찬 말투로 말했다. 알다시피 이번 대결은 5대 명산이 함께 손을 잡고 벌인 판이다. 게다가 천산 장 씨 집안도 이 계획에 얽혀있었기에, 절대 어떠한 실수도 없을 거라 생각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주위에는 또 수많은 고수들이 지켜보고 있을 텐데, 의외의 사고란 발생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유 씨 어르신의 말이 떨어지기도 바쁘게, 산길에서는 어두운 안색의 항산 제자 4명이 단대 하나를 들고는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내려오고 있었다. 이내 카메라들은 일제히 그 단대에 초점을 뒀고, 모든 기자들은 순간 숨을 죽였다. 단대 위에는 머리 없는 시체 한 구가 누워 있었고 옆에는 웬 동그란 물건이 놓여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고 나서야, 많은 사람들은 그것이 바로 천릉자의 머리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다른 한편, 몇 명의 장 씨 집안 자제들 역시 단대 하나를 들고는 산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장령풍
그러나 한지훈은 장령풍을 투명 인간 취급한 체 눈 깜짝할 사이에 숲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한지훈이 멀어질 때까지, 장령풍은 여전히 깊은 공포 속에 빠져 있었다. 사실 천릉자는 실력이 대단한 사람이었다. 방금 그와의 정면승부에서, 그는 천릉자의 털 하나 건드리지 못했다.두 사람의 실력은 그야말로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다.천릉자의 촘촘한 검망을 깨뜨려 그의 머리를 아작 낸다는 건 도무지 상상할 수가 없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자신은 최선을 다해봤자 기껏해야 천릉자에게 상처만 입힐 거라 확신했다. 천릉자를 죽이는 건 하늘의 별 따기보다도 더욱 어려웠다. 모두들 알다시피 검망 아래에서는, 수천 갈래의 검의 습격을 마주해야 했다. 그 검망을 피해 사람을 죽이는 건 말할 것도 없고, 그 검방을 피하는 것조차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설사 2성 천신계 강자라 하더라도 밀집된 검망을 마주하게 되면,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하게 되고 더욱이는 천릉자를 사지로 몰아넣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한지훈은? 오직 나뭇잎 하나만으로, 마치 어린애 장난처럼 닥치는 대로 나뭇잎을 던져 천릉자의 머리를 아작 냈다. 지금 이 순간, 산 전체는 비할 데 없이 조용했다. 한지훈이 멀어질 때까지 장령풍은 줄곧 조용히 땅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박고 있었다. 그는 심지어 감히 고개 한번 들어 앞을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그렇게 30분이 흐르고 나서야 장령풍은 고개를 살짝 들었다. 한지훈의 자취가 더 이상 보이지 않자, 그는 비로소 이마의 식은땀을 닦아냈다. 그런데 바로 이때, 익숙한 목소리가 갑자기 들려왔다. “장령풍, 오늘 벌어진 일을 소문내면 장 씨 집안은 멸망하게 되는 줄 알아!”“네... 저는... 아무것도 못 본겁니다!”크게 놀란 장령풍은 벌벌 떨었다. 한지훈의 경고는 그에게 있어서 성지였다. 한지훈은 뱉은 말은 무조건 지키는 사람이라는 걸, 그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당시 유럽은 용경과는 80리 정도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오직 용국을 위해 복수
게다가 사방에서 한지훈을 헐뜯고 있는 발언들에 대해, 장령풍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당시 한지훈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었고, 몇몇 명산 모두가 그의 적이었다. 그렇기에 한지훈이 남의 도움을 받았다는 얘기 자체는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역외 강자조차도 흔들 수 없는 거물을, 누가 감히 건드리려 하겠는가? 그러나 옆에 있던 천릉자는, 장령풍의 표정 변화를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그는 한지훈의 정체가 뭐든, 자신이 쟁취해야 할 성과를 이대로 빼앗길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이내 그는 장령풍과 상의도 하지 않고 바로 손을 들었다. 곧이어 그물처럼 촘촘한 검망이 한지훈의 정수리 위에 펼쳐졌다. 그는 단 한 방에 한지훈을 산산조각 내어,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자신을 건드리면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지 똑똑히 보여줄 작정이었다. 온 하늘을 덮은 검망에도, 한지훈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닥치는 대로 나뭇가지에서 잎사귀 하나를 따냈다. 그러고 나서는 천릉자가 서있는 쪽으로 잎사귀를 가볍게 던졌다, 곧장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잎사귀에, 제대로 화가 난 천릉자는 하마터면 피를 토할 뻔했다. 잎사귀로 사람을 다치게 하는 건, 무종 모든 종사들의 장기였다. 그러나 종사계의 실력은, 그저 전신계와 같을 뿐이었다. 그런데 일성 천신계 고수인 자신이 뜻밖에도 전신계 같은 땅강아지한테 무시당하게 될 줄이야? 생각할수록 더욱 화가 치밀어 오른 천릉자는 곧바로 또 하나의 검망을 휘두르며 사악한 웃음을 보였다. “네 이 녀석, 천신계 강자를 상대로 도전장을 내밀면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지 오늘 내가 제대로 보여주마!”“죽어!”지금 이 순간, 천릉자는 이미 한지훈을 죽은 사람으로 취급했다. 이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눈 깜짝할 사이에 한지훈은 산산조각 나게 될 것이다. 예상치 못한 눈앞의 상황에 장령풍은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전에 이미 한지훈의 전력을 직접 목격했었다. 모든 전투에서, 한지훈은 오릉군 가시를 던졌었다.
천산 장 씨 집안과 항산 사이에는 서로 맺은 약속이 있었다. 오늘 이 자소화도 사실은 천릉자에게 주기로 내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자소화 자체는 결코 희귀하지는 않지만, 꽃이 피기 전의 자소화를 찾는 건 매우 나도 어려운 일이었다. 대다수는 사람들에게 발견되기 전에, 산속의 맹수들에 의해 먹히고는 만다. 사실 천신계 강자에게 있어, 자소화의 장점은 셀 수 없이도 많았다. 이 자소화를 손에 넣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순조롭게 2성 현급 천신계까지 도달할 수 있게 된다. 그렇기에 이렇게 큰 유혹 앞에서, 장령풍은 장 씨 집안과 항산의 약속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고 오로지 이 자소화를 손에 넣을 생각뿐이었다. 그의 단호한 태도에 천릉자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장령풍, 작은 것을 얻으려고 큰 것을 잃으려 하지는 마. 당시 한지훈의 그 사건도 장 씨 집안이 자초한 일이었어. 네가 자소화를 손에 넣는다면, 그동안 우리가 한 모든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게 될 거라고!”사실 전에 5대 명산, 항산 그리고 천산 장 씨 집안이 줄곧 천릉자를 치켜세운 이유는 그 배후에는 아주 큰 음모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이른바 불세출의 천재란 타이틀을 근본적으로 꾸며낸 것이다. 사실 천릉자는 이미 30년 전에 항산 문하에 들어선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동안 항산은 줄곧 그를 중점 육성 대상으로 간주해오고 있었다. 그렇게 4년 만에 단번에 천신 경계를 돌파하게 된 기적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이 모든 이야기는 가짜였지만, 그 최종 목적은 천릉자를 이용하여 한지훈을 호되게 밟는 것이었다. 그리고 방금 유 씨 어르신의 발언과 언론을 통해 한지훈은 영원히 용국의 치욕이라는 이미지로 매장하려는 속셈이었다.그러려면 이 과정에서 천릉자의 후광을 더욱 밝게 비추어야 했다. 그의 후광으로 한지훈의 공적을 덮어 그를 폄하하고 말살하는 목적을 달성하려는 계획이었다. “장 씨 집안의 계략이 뭐가 대수야? 난 지금 오직 이 자소화만 갖고 싶을 뿐이야!”장령풍은 여전히 굳은 표정
만약 이 모든 게 사실이라면, 이 내용이 보도된다면 전 세계를 뒤흔들 만한 사건이 될 것이다.필경 현재 용국은 물론, 심지어 전 세계가 모두 한지훈이 단지 일성 준 천신계의 실력으로 10여 명의 역외 강자들을 참살했다고 믿고 있었다. 그리하여 전 세계는, 한지훈과 용국에게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만약 그 배후에 호천 창세가 손을 쓴 거라면 용국은 과연 어떻게 될까? 한지훈은 또 어떻게 될까? 과연 누가 용국을 두려워하겠는가? 아마 그 누구도 한지훈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지 않을 것이다.“됐어, 한지훈 그 반역자에 대해서는 이쯤하자. 저 두 사람의 시합이나 지켜보자고!”유 씨 어르신은 의도적으로 반역자라는 세 글자를 강조하며, 한지훈의 못된 이미지를 제대로 박았다. 한편 그 시각, 한지훈도 어느새 산꼭대기에 도착했다. 장령풍과 천릉자 두 사람은 여전히 교전을 펼치고 있었다. 게다가 보아하니 장령풍의 상황은 딱히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새하얀 도포에 머리카락을 흩날리는 장령풍은, 어느새 피범벅이 되었고 분노 가득한 두 눈동자는 천릉자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에 반면 천릉자는 조금도 다치지 않고 여유롭게 한 손을 짊어진 채 당당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듣기로는 너희 장 씨 집안 삼절진은 이 세상에서 유일무이하다고 하던데, 오늘 보니 역시나 명실상부라 느껴지긴 하는구나. 하지만 다만 아쉬운 건, 넌 아직 제대로 불꽃이 튀지 않아 천절진의 위력은 크게 발휘하지 못하고 있어!”“앞으로 만약 10년만 더 지나게 된다면, 나중에 나의 천망 검진은 너를 더 이상 격파하기도 어렵게 될 거야. 하지만 어찌 됐든 그건 10년 후의 일이니, 오늘은 일단 이 자소화를 나한테 양보해!”이내 천릉자가 허리 굽혀 자소화를 따려는 순간, 숲속에서는 갑자기 우렁찬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오옥!”불곰보다도 몇 배나 더 큰 맹호 한 마리가 갑자기 숲에서 뛰어나오고 있었다. 순간 천릉자와 장령풍 모두 멍해졌다. 전에 5대 명산 고수들이 이미 산꼭대기를
유 씨 어르신의 말에, 임설은 끊임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영기가 돌아온 후, 모든 사람들의 몸에는 큰 변화가 생겼고 저항력도 강해졌을 뿐만 신체능력도 향상되었다.그러나 마찬가지로 맹수들도 더욱 강해졌다. 만약 임설이 맹호를 상대한다면, 그건 바로 먹잇감이 되는 것이었다.당시 한지훈의 일전도 마찬가지라는 뜻이었다. 십여 명의 역외 강자들을 상대하다니, 게다가 모두 한지훈보다 한두 단계 높은 경지의 고수들이라니. 비유하자면 당시의 한지훈은 마치 현재의 임설과도 같았고, 그 십여 명의 역외 강자들은 바로 맹호 같은 존재였다. 그렇기에 그들의 대결 결과는, 전혀 추측할 필요가 없이 다들 이미 확신하고 있었다. “그럼 당시 그 대결이 만약 오로지 한지훈의 소행이었다면, 이건 합리적인 일이라고 생각해?”유 씨 어르신은 뒷짐을 진 채 오만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자 옆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어리둥절해졌다. 필경 유 씨 어르신은 화산 고수중 한 명이었기에, 그의 말은 신빙성이 아주 높았다. 게다가 진정한 무도 중인 만이 한지훈이 당시 직면한 것이 얼마나 큰 도전이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다시 말해서, 보통 사람은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유 씨 어르신은 이런 속임수에 넘어갈 리가 없었다. 뿐만 아니라 무종이 점점 강해지게 되면서, 현재 더욱 많은 일반인들이 모든 경계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 잘 알게 되었다. 천신경은 말할 것도 없고, 설령 전신계라 하더라도 작은 경계 사이의 차이는 하늘과 땅의 차이였다. 즉 천릉자는 비록 일성 준 천신의 최고 실력에 도달하긴 했지만, 그가 2성 천신계를 돌파하지 못한 이상, 2성 천신계 상대에게 있어 그는 마치 땅강아지와도 같은 존재였다. 두 사람이 동원할 수 있는 역량이 전혀 같은 수평선에 놓여있지 않는데, 어떻게 싸울 수 있겠는가? “어르신, 그 말씀은 전에 한지훈이 다른 사람의 힘을 이용하여 모든 사람들을 속여왔다는 뜻인가요?”임설이 다시 물었다. “그래. 중요한 포인트를 짚었네. 너희들 아직도
임설은 다시 한번 당부했다. “혹시 임설이니?”바로 이때, 임설의 뒤에서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 씨 어르신?”고개를 돌린 임설은, 뒤에 선 노인을 보고는 순간 멍하니 있다가 이내 급히 열정적으로 그를 맞이했다. 그녀가 유 씨 어르신이라 부르는 이 사람은 바로, 세속에서 활동 중인 화산 강자이자 현재 무도 재판소의 부회장이기도 했다. 게다가 화산이라는 든든한 배경이 있었기에 유 씨 어르신은 세속에서도 소문이 자자했다. 매체인으로서 임설 역시 유 씨 어르신이 낯설지는 않았다. 게다가 전에 그녀는, 유 씨 어르신의 인맥을 통해 5대 명산의 3기 다큐 영화까지 제작했었다. “어르신, 어르신께서는 왜 여기 계신 거예요?”임설은 겉으로는 궁금해하는 척했지만, 사실 내심 전혀 의외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이번 사건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장령풍과 천릉자 두 사람이었기에, 같은 5대 명산인 화산에서 사람을 보내지 않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난 단지 길을 가던 중 한번 와서 본 것일 뿐이야. 그나저나 이 아이들은 이젠 모두 어른이 되었는데, 이들이야말로 용국의 미래 희망이지!”유 씨 어르신은 눈을 지그시 뜨고는 산 꼭대기 쪽을 유유히 바라보았다. 뭔가 좋은 생각이 떠오른 임설은 급히 보조 카메라 감독을 불러 휴대폰으로 촬영하라고 지시하였다. 이내 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앞으로 나아가 유 씨 어르신 가까이에 다가갔다. “어르신, 어르신의 경험으로 봤을 때 오늘 이 자소화, 과연 어느 집안이 가져갈 거라고 예상하시나요?”필경 유 씨 어르신의 신분 지위는 꽤나 높았기에, 아마 일부 내막에 대해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게다가 5대 명산끼리의 호흡은 결코 보통 사람들이 상상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장령풍과 천릉자가 맞붙기도 전에, 아마 암암리에 모든 준비를 마쳤을 가능성도 매우 높았다. “아이고, 그 질문은 좀 난처하네. 원칙부터 말하자면, 장 씨 집안 역사는 엄청 유구하지. 우리 용국의 많은 비진도 모두 장 씨 집안으로부터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