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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화. 0과 1 사이의 진동

Author: 라율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4-23 19:19:31

[저녁 맛있게 먹어.]

전송 버튼을 누른 손가락 끝이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화면 속의 노란 말풍선은 희수의 손을 떠나 200km 밖 대구로 날아갔다. 보내고 나면 시원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지독한 갈증이 밀려왔다.

'보내지 말걸.'

후회는 늘 1초 늦게 도착했다. 희수는 휴대폰을 침대 멀리 던져버리고는 이불 속에 몸을 구부렸다. 답장이 오지 않는다면? 혹은 '그만 좀 해'라는 차가운 말이 돌아온다면? 상상만으로도 심장이 쪼그라드는 것 같았다.

차라리 그에게서 '우린 이미 끝난 사이야.' 라는 마지막 확인이라도 받고 싶었다.

하지만 그 비참함 속에서도 묘한 해방감이 느껴졌다. 1년 동안 재원의 끼니를 챙기고, 그의 저녁을 궁금해하던 자신의 역할에 마침표가 아닌 '쉼표' 하나를 찍은 기분. 희수는 억지로 눈을 감았다.

***

(재원 시점)

대구의 저녁은 서울보다 조용했다.

재원은 자신의 낙원에서 배달을 시켜 혼자 숟가락을 놀리고 있었다. TV 소리와 뚝배기 끓는 소리뿐인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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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의 ‘폭탄선언’이 지나간 식탁은 폭풍이 휩쓸고 간 자리처럼 고요했다. 어머니 영란은 여전히 손수건으로 눈가를 훔치며 산더미처럼 쌓인 그릇들을 챙겨 주방으로 향했다. 아버님은 말없이 다시 신문을 펼쳐 드셨지만, 거칠게 넘기는 신문지 소리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어머니, 제가 할게요. 앉아 계세요.”나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영란 어머니의 뒤를 따랐다. 빈 그릇을 뺏어 들려는 내 손을 어머니가 황급히 가로막았다.“에구, 희수야! 안 된다! 오늘 같은 날에 우째 손님 손에 물을 묻히노. 저기 가서 재원이랑 같이 좀 쉬어라. 내 금방 한다!”“아니에요, 어머니. 저 설거지 잘해요. 저 사람이랑 같이하면 금방 끝나요.”내가 고집을 피우며 고무장갑 쪽으로 손을 뻗자, 뒤에서 묵직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언제 다가왔는지 재원이 내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 쥐며 어머니 앞을 가로막았다.“엄마, 희수 말이 맞아요. 희수랑 둘이 금방 치울 테니까, 엄마는 아부지 옆에서 좀 쉬세요.”“니가? 안재원 니가 설거지를 한다고?”어머니의 눈이 동그래졌다. 평소 집안일이라면 제 방 정리 빼고는 딱히 손대지 않던 무뚝뚝한 아들이 앞치마를 집어 드는 광경이 생경했던 모양이다. 재원은 묵묵히 소매를 걷어붙이며 나를 싱크대 앞으로 밀어 넣었다.“희수가 헹구면 제가 닦을게요. 엄마, 아까 요리하느라 고생하셨잖아요.”재원의 덤덤한 말에 영란 어머니의 입가에 숨길 수 없는 미소가 번졌다. 어머니는 나를 한 번, 재원을 한 번 번갈아 보더니 내 손등을 따뜻하게 토닥였다.“아이고... 우리 아들이 희수 만나더니 사람 다 됐네. 진짜 예쁘다, 예뻐. 그래, 그럼 내 오늘은 요 예쁜 뒷모습 구경 좀 하다가 아부지 옆으로 갈란다.”어머니는 정말로 기분이 좋은지 연신 “어쩜 저리 잘 어울릴꼬”를 연발하며 거실로 향했다. 병수 아버님의 곁에 앉아 “아부지예, 우리 아들 저래 다정한 거 보셨습니까?”라며 자랑을 늘어놓는 소리가 주방까지 들려왔다.수도꼭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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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는 STJ커플입니다만?   84화. 연애 운영 매뉴얼 V1.0

    거실 바닥의 노란 이불 속에서 눈을 뜬 재원은 한참 동안 천장을 응시했다. 털 알레르기 약 기운 때문인지, 밤새 희수의 눈치를 보느라 얕은 잠을 잔 탓인지 온몸이 찌푸듯했다. 재원은 조심스럽게 일어나 주방으로 향했다. 목이 말랐지만 찬장 문을 열려다 멈칫했다. 어제 본 ‘텅 빈 선반’의 잔상이 여전했다. 자신이 함부로 컵을 꺼내는 행위조차 희수가 공들여 만든 ‘자신만의 평화’를 깨뜨리는 침범 같아 조심스러웠다.“...일어났어?”부스스한 머리로 주방 문턱에 선 희수가 재원을 바라봤다. 재원은 컵을 잡으려던 손을 슬그머니 내리며 쭈뼛거렸다. “응. 물 좀 마시려다가... 어느 컵을 써야 할지 몰라서.”“아무거나 써. 자기가 내 눈치 보는 거, 나도 마음 안 편해.”희수의 말투는 여전히 퉁명스러웠지만, 그 안에는 재원을 향한 안쓰러움이 섞여 있었다. 희수는 식탁 의자를 빼고 앉으며 재원을 불렀다.“자기야, 앉아봐. 우리 이렇게 계속 긴장하고 지낼 순 없잖아. 서로 지킬 건 지키고, 존중할 건 존중하자고. 가이드라인... 아니, 제대로 된 운영 합의서를 쓰자.”“합의서? 양식은 내가 잡아볼까?”재원의 눈이 본사 팀장 모드로 순식간에 복귀했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 태블릿 PC를 가져와 식탁 위에 올렸다. 희수는 그 모습에 실소를 터뜨리면서도, 보내준 자료들을 토대로 조항을 읊기 시작했다.[제1조. 사실과 해석의 분리]-사실->감정->요청 순으로 대화하기“자기야, 앞으로 서운한 게 있으면 '사실-감정-요청' 순으로 말해. '왜 매번 그 모양이야?'라고 묶어서 공격하지 말고.”“...메모 완료. 사실: 계획 변동 발생, 감정: 피로함, 요청: 24시간 전 공유. 알겠어. 감정 확대를 줄이는 데 효율적이겠군.”"아니 뭘 그렇게까지..."[제2조. 숫자 경계선 합의]-일주일에 3회 만나기. 피곤하거나, 더 보고 싶으면 대화로 합의하기.“우리 루틴 말이야. 일주일에 한 번은 너무 적고, 매일은 자기가 힘들잖아. 주간 빈도 3회,

  • 우리는 STJ커플입니다만?   83화. 곰탱이의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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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는 STJ커플입니다만?   23화. 나쁜놈 인 줄 알았는데 그냥 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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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는 STJ커플입니다만?   11화. 몰래 읽기 의혹 1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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