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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보루비
문강찬은 진윤슬이 고통스럽게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지 못하고 고개를 숙여 이불을 덮어주었다.

“푹 쉬어. 이따가 또 올게.”

그는 쓸데없는 생각만 하는 아내와 더는 언쟁하고 싶지 않았다.

“진윤슬, 너 또 세린이 괴롭혔지?”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벽에 부딪혔고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훤칠한 남자가 성큼성큼 들어왔는데 진윤슬과 닮은 얼굴에 분노가 가득했다. 시선이 진윤슬의 창백한 얼굴에 닿은 순간 잠깐 놀라는가 싶더니 이내 거센 질책이 이어졌다.

“오늘 세린이 생일인 거 뻔히 알면서 이 밤에 난리를 피워? 우리 기분 잡치게 하려고 작정했어?”

진태호는 침대에 누워있는 진윤슬을 죽일 듯이 노려보면서 불같이 화를 냈다.

“온 집안이 시끄러워야 속이 시원해?”

그는 진윤슬이 진세린의 생일 파티를 망치려고 일부러 아픈 척한다고 확신했다.

진윤슬이 주먹을 꽉 쥐었다. 병상에 누워있는 그녀를 보면서도 친오빠라는 사람은 왜 아프냐는 둥 병원에 왜 왔냐는 둥 쏘아붙였다.

마음속에 씁쓸함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아픈 것도 날을 골라가면서 아플 수 있어?”

진윤슬이 싸늘하게 받아쳤고 갈라진 목소리에 조롱이 가득했다.

진태호가 경멸과 짜증이 가득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됐어. 아픈 건 아픈 거고 세린이 좋은 마음으로 보러 왔는데 왜 울렸어?”

조금 전 밖에서 진세린이 눈물을 훔치는 모습을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 굳이 묻지 않아도 진윤슬이 울린 게 틀림없었다.

‘넌 늘 이런 식이지. 말마다 가시가 돋쳐 있어. 세상 사람들이 모두 너한테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진윤슬의 시선이 진태호의 뒤에 있는 진세린에게로 향했다. 두 눈이 붉어진 채 가여운 모습으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오빠, 언니 때문이 아니야. 내... 내 눈에 모래가 들어갔나 봐.”

이런 설명은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격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진태호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진윤슬, 파렴치한 생각 따위 집어치워. 우리 진씨 가문은 너한테 빚진 거 없고 세린이도 너한테 빚진 거 없다는 걸 명심해.”

“오빠, 그만해. 언니 임신한 몸이야.”

진세린이 진태호의 팔을 잡아끌었다.

“그리고 내 잘못이야. 언니가 임신한 걸 알면서도 강찬 오빠를 불러 생일을 같이 보내자고 졸랐어. 그것 때문에 언니가 결국 입원까지 하게 됐고.”

그러고는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구었다.

진윤슬은 치밀어 오르는 분통함을 억누르려고 손바닥을 꼬집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싸우고 싶지 않았다. 싸워봤자 마지막에 힘든 건 그녀일 테니까.

하지만 진태호는 멈추지 않았다.

“임신한 사람이 뭐 얘 혼자야? 얘만 귀한 몸이야?”

“그만해.”

문강찬이 얼굴을 찌푸렸다. 속으로는 진윤슬이 억지를 부린다고 생각했지만 진태호의 말이 지나친 건 사실이었다.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진태호가 코웃음을 쳤다.

“지금은 아픈 척하는 정도에 그치지만 나중엔 아이 가지고 무슨 짓을 할지 몰라. 얘처럼 제멋대로 굴고 억지만 부리는 엄마를 둔 아이도 참 불쌍해.”

문강찬의 말이 진윤슬의 심장을 찌르는 칼날이었다면 진태호의 말은 온몸을 꿰뚫는 화살이었다.

진윤슬은 분노에 휩싸인 나머지 온몸을 떨었다. 베개를 집어 던지며 진태호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내 눈앞에서 꺼져!”

절망과 상처로 얼룩진 눈에서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진태호가 좋은 오빠가 되리라고는 기대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런 말을 해서는 안 되었다.

베개를 쳐낸 진태호가 붉으락푸르락해진 얼굴로 거친 말을 쏟아냈다.

“내가 틀린 말 했어?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를 이용해서 아픈 척하고 있잖아. 아이가 뱃속에서 죽어버릴까 걱정도 안 돼?”

입을 열 때마다 독설이었다.

“그만하라고.”

문강찬이 미간을 찌푸리며 진태호를 노려봤다.

진윤슬이 억지를 부려서 화가 난 건 사실이었지만 진태호가 그의 아내와 아이에게 이런 독설을 내뱉는 건 용납할 수 없었다.

“꺼지라고 했지?”

진윤슬의 두 눈에 핏발이 섰다. 침대에서 일어나 손에 잡히는 대로 진태호에게 집어 던졌다. 마치 원수라도 되는 듯이.

그 모습에 문강찬이 재빨리 그녀의 손목을 잡고 확 잡아당겼다. 잔뜩 찌푸린 미간에 불만이 가득했다.

“진윤슬, 이제 좀 그만하지?”

진윤슬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눈물이 창백한 볼을 타고 흘러내렸고 붉게 충혈된 두 눈에 섬뜩한 증오심이 가득했다.

“강찬 씨도 나가.”

입술도 창백하기 그지없었고 말투도 조롱 섞인 말투였다.

“진윤슬.”

문강찬이 화가 난 듯 더욱 무거운 말투로 말했다.

“언니, 진정해. 아기 생각도 해야지.”

진세린이 걱정 가득한 얼굴로 다가와 진윤슬을 부축하려 했다.

“꺼져.”

진윤슬은 문강찬이 잡고 있던 손목을 빼내고는 다가오는 진세린을 막았다. 그런데 움직임이 컸던 탓에 손바닥으로 진세린의 손등을 치고 말았다.

“으악.”

진세린이 손등을 잡고 소리를 질렀다.

“진윤슬.”

진태호는 진윤슬을 당장이라도 잡아먹을 듯한 얼굴로 날카롭게 소리쳤다.

“세린이는 널 걱정해서 그러는데 때리기까지 해? 당장 세린이한테 사과해.”

몸 깊숙한 곳에서부터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밀려와 몸을 파르르 떨었다. 이마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고 아픔을 참으려고 입술을 꽉 깨물었다.

“언니 탓이 아니야. 내가 실수로 그런 거야.”

진세린이 눈물을 머금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모습으로 설명했다.

“강찬아, 그냥 보고만 있을 거야?”

진윤슬이 꼼짝도 하지 않자 진태호의 시선이 문강찬에게로 향했다.

진윤슬도 문강찬을 쳐다보았다. 남편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지만 지금은 참기 힘든 통증에 정신이 혼미해져 조금의 희망을 걸었다.

문강찬이 조금만 관심 있게 본다면 그녀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걸 알아차릴 수 있을 텐데.

“윤슬아, 세린이는 좋은 뜻으로 그런 건데 네가 지나쳤어.”

문강찬이 시선을 늘어뜨린 채 차갑게 말했다.

진윤슬이 힘들게 몸을 일으켰다. 흐트러진 머리카락이 어깨 위로 흩날렸고 가뜩이나 수척하던 얼굴이 비정상적으로 창백했다.

그녀는 어두운 눈빛으로 문강찬을 빤히 보면서 냉랭하게 말했다.

“강찬 씨, 못 들었어? 오빠가 방금 강찬 씨 아이가 죽길 바라는 식으로 저주했잖아.”

아내가 핏기없는 얼굴로 병실 침대에 누워있는데도 문강찬은 그녀가 아픈 척하는 거라고 생각했고 진태호가 그의 아이를 저주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진윤슬이 다가오는 진세린을 밀어내려다 실수로 손등을 쳤을 뿐인데 그녀가 지나치다고 했다.

이건 명백한 편애였다.

진윤슬은 이 순간 자신이 너무나 가엽게 느껴졌다.

남편의 사랑도, 가족의 관심도 얻지 못했다. 그녀가 얻은 거라곤 오직 끝없는 의심과 상처뿐이었다.

문강찬의 마음속에서 진윤슬은 대체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 걸까?

“오빠가 일부러 그런 거 아니야.”

진세린이 진태호 대신 사과했다.

“오빠도 날 걱정해서 그런 소리를 한 거야. 내가 오빠 대신 사과할게.”

진태호는 그녀에게 고마움의 눈빛을 보냈다. 진세린을 아끼는 마음이 더해진 대신 진윤슬에 대한 혐오감이 더욱 커졌다.

“다들 나가.”

문강찬은 미간을 찌푸린 채 진윤슬을 쳐다보았다.

“계속 이런 식으로 억지를 부리면 아이한테도 좋지 않아.”

진윤슬이 이를 악물었다. 아랫배의 통증이 점점 심해져 눈앞이 캄캄해졌다.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던 그녀는 쿵 하고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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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ktuellstes Kapitel

  • 유산은 모른 척, 이혼에 왜 눈물?   제476화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3개월 동안 성하린은 완전히 문산 그룹에 자리 잡았다. 그런데 어느 날, 문강찬이 갑자기 사라졌다.연락도 되지 않았고 비서들도 아무것도 몰랐다.성하린은 당장이라도 다 때려치우고 싶었다.그러다 결국 문중엽에게서 진실을 들었다.문강찬이 아프다고 했다.“강찬이가 너한테 말하지 말라고 하더구나. 이번에 수술 들어간다. 그래서 평소 그 애가 유독 네 곁에 붙어 있었던 거야. 지금도 너한테 진실을 얘기하려 하지 않아. 네가 불쌍해서 자기 곁에 남는 게 싫었던 거지.”문강찬의 자존심이었다.성하린은 그제야 이해했다. 왜 그동안 문강찬이 따라다니면서 모든 걸 하나하나 가르치려 했는지.하지만 감동하지는 않았다.문강찬은 언제나 혼자 모든 걸 결정했다. 늘 제멋대로였다.얼마 후 팔리읍 화재 사건이 세상에 터지며 캐서린은 순식간에 몰락했다. 거기에 가짜 레시피 사건까지 밝혀지며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졌다.결국 그녀는 자신이 저지른 일의 대가를 치르게 됐다.소식을 들은 성하린은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그게 문강찬 방식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그는 떠나기 전 그녀 주변의 문제들까지 전부 정리해두고 갔다.성하린은 마음이 복잡했다. 결국 그녀는 문산 그룹에 남기로 했다.성하린은 지우를 데리고 임청아를 자주 만나러 갔다.성동민은 최고의 의료진을 붙여 임청아를 진료하게 했고, 수술을 통해 기억을 되찾게 할 방법까지 알아봤다. 하지만 임청아는 오래 고민한 끝에 거절했다.그녀는 담담하게 말했다.“그 기억들은 나한텐 너무 아픈 기억이야. 그런데 지금의 나는 행복하게 잘살고 있잖아? 그럼 굳이 왜 다시 그 고통을 떠올려야 해?”성하린과는 여전히 친구였다. 그녀는 그것만으로 충분했다.성동민이 몇 번이고 설득했지만 임청아는 끝내 마음을 바꾸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앞에서 그 말을 직접 했다. 성동민은 얼굴을 들 수 없을 만큼 괴로워했다.결국 마지막에는 눈시울을 붉힌 채 그녀의 행복을 축복해 주었다. 그리고 임청아 명의로 거액의 재산을 넘겨줬다.

  • 유산은 모른 척, 이혼에 왜 눈물?   제475화

    성하린은 말없이 그를 바라봤다.문강찬은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고개를 들었다.“왜?”성하린은 이해할 수 없었다. 문서현도 무너졌고 모든 음모도 끝났다. 그런데도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물어본 적은 있었다. 하지만 끝내 답은 듣지 못했다.그때 오창윤이 문을 두드렸다.“도윤 도련님 오셨어요.”문도윤이 급히 안으로 들어왔다. 그의 시선은 곧장 성하린에게 향했다.“하린아, 나...”말끝을 흐리던 그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하린아, 내 체면을 봐줘서라도 우리 엄마 한 번만 용서해주면 안 될까? 엄마가 돈 욕심은 있었어도 그렇게까지 악한 사람은 아니야. 원하는 보상은 내가 다 할게.”하지만 성하린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저었다.“안 돼. 너의 어머니가 한 짓이 너무 많아.”온은설 독살 사건만으로도 성하린은 용서할 수 없었다.거기에 그 화재 사건까지...문도윤은 입술을 깨문 채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나도 엄마가 잘못한 건 알아. 그래도 내 어머니잖아. 난...”“그래서 더 바로잡도록 도와드려야지.”문강찬이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성하린이 난처해지는 걸 원치 않았다.물론 성하린이 절대 물러서지 않을 거란 것도 알고 있었다.문도윤은 이를 악물었다.“그래도 형한테는 고모잖아.”문강찬은 아무 표정 없이 대답했다.“사람을 죽였어.”공기가 얼어붙었다.결국 문도윤은 더 말하지 못하고 돌아섰다.성하린은 피곤한 듯 미간을 눌렀다. 솔직히 문강찬과의 거래만 아니었다면 진작 다 내려놓고 떠났을 것이다.그때 또다시 오창윤의 전화가 들어왔다.“문아름 씨 오셨습니다.”‘문아름?’성하린은 그녀를 들여보내라고 했다.문아름은 짙은 화장으로도 감춰지지 않을 만큼 지쳐 있었다.성하린은 그녀 역시 문서현의 선처를 부탁하러 온 줄 알았다.하지만 문아름이 먼저 입을 열었다.“온기찬이 나랑 결혼한 이유... 우리 엄마가 진윤슬 죽인 범인이라서였어요?”이미 그녀도 어느 정도 진실을 알게 되었다.그래서 결국 직접 찾아온 것이었다.성하

  • 유산은 모른 척, 이혼에 왜 눈물?   제474화

    성하린은 오후 내내 성씨 가문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연은주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대표님! 진짜 더는 못 버티겠어요!”전화기 너머로 연은주의 우렁찬 목소리가 터졌다.성하린은 미간을 눌렀다.“알았어. 지금 바로 갈게.”최근 성하린은 문산 그룹 일에 매달리느라 자신의 회사는 거의 돌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곧바로 운전기사에게 회사로 가달라고 했다.회사에 도착하자마자 성하린은 사무실로 들어갔다.연은주가 곧장 문을 닫고 속삭였다.“저 사람, 대표님이 지난번 새로 뽑은 직원인데 납품업체 리베이트 받아먹고 있어요.”연은주는 잔뜩 화가 나 있었다.그녀는 작업실 시절부터 성하린과 함께한 원년 멤버라 회사를 자기 일처럼 아끼고 있었다. 그래서 직원들이 몰래 뒷돈 챙긴다는 걸 알았을 때는 멱살 잡고 싸울 뻔했다.다행히 다른 직원 둘이 말리며 성하린에게 먼저 보고하라고 해서야 겨우 참고 넘어왔다.그녀는 성하린에게 상황을 설명한 뒤 성하린의 명령을 기다렸다.성하린은 책상 위 자료를 한 장 한 장 넘겼다. 두 시간 가까이 자료를 정리한 끝에 그녀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은주야, 경찰 불러.”연은주는 눈을 크게 뜨고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뭔가 잡힌 거예요?”성하린은 시선을 내리깔았다.“아니. 조향 레시피가 사라졌어.”새 향수 레시피는 기존 이십사절기 시리즈와는 완전히 달랐다. 그것은 성하린이 단독으로 완성한 신제품으로, 향수대회 출품작으로 준비하던 핵심 레시피였다.문산 그룹 일 때문에 아직 본격 개발 단계는 아니었지만 그 가치만큼은 엄청났다.그런데 그 레시피가 사라진 것이다.연은주는 즉시 경찰에 신고했다.경찰이 도착해 조사를 시작했고, 그 사이 성하린은 전 직원회의를 소집했다.회의 핵심은 단 하나, 신제품 레시피가 사라진 일이었다.순간 직원들 사이가 술렁였다. 하지만 구석에 앉은 두 사람만큼은 지나치게 조용했다.연은주는 그 모습을 보며 이를 갈았다.“저 인간들 맞는다니까요.”성하린은 관자놀이를 누르며 깊게 한숨 쉬었다.“원

  • 유산은 모른 척, 이혼에 왜 눈물?   제473화

    “앞으로 청아는 집에서 지내게 할 거예요.”성동민이 단호하게 말했다.“가족들과 계속 지내다 보면 언젠가는 기억도 돌아오겠죠.”하지만 연한결은 곧장 반대했다.“청아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제 곁을 떠난 적이 없어요. 갑자기 떼어놓는 건 그 아이한테 너무 잔인한 일이에요.”성동민이 비웃으며 말했다.“우리 집에서 몇 년을 살았는데 인제 와서 무슨 잔인한 일이라는 거죠?”연한결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그럼 저도 하나 물을게요. 제가 처음 청아를 만났을 때 왜 청아는 그렇게까지 망가져 있었죠?”순간 성동민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연한결은 시선을 최명숙에게 돌렸다.“할머니께서 걱정하시는 마음은 이해해요. 하지만 지금 청아 상태를 보셨잖아요. 당장 여기서 생활하는 건 무리예요. 대신 제가 매일 청아를 데리고 올게요. 천천히 가족들과 익숙해질 시간을 주고 싶어요.”분명 좋은 방법이었다.무엇보다 연한결은 철저하게 임청아 입장에서 생각하고 있었다.성동민이 다시 입을 열려던 순간, 성하린이 안으로 들어왔다.“그 방법 괜찮은 것 같아요. 청아를 자극하지 않으면서도 우리와 천천히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잖아요.”성하린은 그 방법에 찬성했다.최명숙도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그렇게 하자.”결국 성동민은 더 말하지 못하고 자리를 떴다.그는 옆 작은 방으로 들어가 임청아를 바라봤다.임청아는 진건우와 성지우 장난감을 만지작거리며 혼자 까르르 웃고 있었다.가끔 어린아이처럼 손뼉까지 치는 모습이 너무나 천진난만했다.성동민은 저도 모르게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가장 먼저 그를 발견한 건 진건우였다.“외삼촌!”성지우도 곧장 달려와 안아달라고 두 팔을 벌렸다.“외삼촌!”임청아는 잠시 고민하더니 따라 말했다.“외삼촌.”성동민은 그만 웃음이 터졌다.성동민은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임청아 볼을 만지려 했지만 다시 묵묵히 손을 거두었다. 지금은 그녀를 자극하면 안 된다.몇 번이고 심호흡한 끝에 겨우 충동을 눌렀다.성동민은 지우를 임청아의 품에 안

  • 유산은 모른 척, 이혼에 왜 눈물?   제472화

    성씨 가문 본가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최명숙은 조용히 성동민을 달랬다.“연한결은 괜찮은 아이야. 청아도 그 아이 곁에 있으면 잘 지낼 거다.”그녀는 임청아가 연한결에게 얼마나 의지하는지 똑똑히 봤다. 그건 단순한 호감이 아니라 본능에 가까운 신뢰였다.하지만 성동민은 입술을 깨물다가 말했다.“우리도 청아 잘 돌볼 수 있어요. 굳이 남한테 맡길 필요 없잖아요. 애초에 청아가 기억을 잃고 저렇게 된 것도 연한결 때문인데. 청아가 정말 그 사람이랑 결혼하고 싶었을지는 아무도 몰라요.”그는 여전히 연한결을 믿지 못했다.만약 연한결이 처음부터 임청아에게 가족을 찾아주려 했다면 성동민도 이 정도로 반감은 갖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그는 임청아를 자기 곁에 붙잡아 두었다.최명숙은 손자의 집착을 느끼며 작게 한숨 쉬었다. 사심이든 죄책감이든 결국 임청아가 집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사실만은 맞았다.“내일 저녁 같이 식사하자고 했으니 그때 차분히 이야기 나누도록 해.”성동민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성씨 가문에서는 임청아를 꽤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덕분에 다음 날 저녁상은 유난히 성대하게 준비됐다.성하린도 일찍 도착해 있다가 차 소리가 들리자마자 곧장 현관으로 나갔다.임청아는 연한결의 부축을 받으며 차에서 내렸지만 여전히 겁먹은 듯 그의 품에 바짝 붙어 있었다.연한결이 작은 목소리로 달래자 그제야 임청아는 얌전히 걸음을 옮겼다.“이분은 할머니야.”연한결이 차근차근 사람을 소개해 줬다.그리고 성동민 앞에서 잠시 멈췄다.“그리고 이 사람은 오빠.”임청아는 아직도 성동민의 거친 태도를 기억하고 그를 보자마자 두 걸음 뒤로 물러나더니 입술까지 깨물며 끝내 인사하지 않았다.성동민은 표정이 순간 어두워졌지만 억지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청아야, 집에 온 거 환영해.”아무리 마음이 복잡해도 지금은 임청아를 놀라게 할 수 없었다.관계가 더 나빠져서는 안 됐다.“청아야.”성하린이 다가왔다. 눈가가 붉게 젖어 있었다.“나 하린이야. 우리 제일 친

  • 유산은 모른 척, 이혼에 왜 눈물?   제471화

    그 말만으로도 진심이 얼마나 깊은지 충분히 느껴졌다.하지만 성동민은 그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지금은 가능하겠지. 구해준 사람이라는 죄책감도 있고, 감사함도 있으니까. 하지만 10년 후에는? 20년, 30년 뒤에는? 아내 지능이 어린애 수준인 걸 평생 감당할 수 있어?”“상회든 재벌 모임이든 데리고 다닐 때마다 뒤에서 비웃음 듣게 될 텐데. 그때도 지금처럼 ‘완벽한 아내’라고 말할 수 있어?”그건 임청아를 깎아내리려는 말이 아니라 현실적인 이야기였다.멀쩡한 사람끼리도 시간이 지나면 감정은 변한다. 하물며 임청아는 지금 정상적인 상태조차 아니었다.최명숙은 성동민 팔을 가볍게 두드리며 조급해하지 말라고 했다.“한결아, 네 마음은 충분히 알겠어. 청아도 너를 따르는 것 같고. 둘 사이를 막을 생각은 없어. 하지만 연씨 가문도 평범한 집안은 아니잖아. 청아가 지금 상태로 시집가면 아무래도 서러운 일이 생길 수밖에 없어.”연한결은 잠시 침묵했다. 그 역시 그런 현실을 모르지 않았지만 최대한 막아주고 있을 뿐이었다.“걱정하지 마세요. 절대 청아가 상처받게 하지 않을 거예요.”연한결이 맹세했다.최명숙은 고개를 저었다.“내 말은 그게 아니야. 청아를 성씨 가문에서 정식으로 시집보내 주겠다는 뜻이야.”순간 성동민과 연한결 모두 놀랐다.성동민은 반사적으로 반대하려 했지만 할 말을 찾지 못했다.반면 연한결은 진심으로 감사했다.“역시 할머니께서 청아를 아끼시는군요.”“기억상실 문제도 그래. 다람시에 실력 좋은 의사들이 많아. 여기 온 김에 제대로 치료부터 받아보자.”최명숙은 현실적으로 말했다.“기억을 되찾으면 그때 청아가 직접 선택하게 하면 되고. 끝내 회복되지 못하더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으니 후회는 없을 거야.”정말 빈틈없는 판단이었다.연한결 역시 흔들렸다.누구보다 임청아가 회복되길 바라고 있었다.“감사합니다. 할머니.”최명숙은 성동민에게 치료 관련 준비를 맡겼다.잠시 후 잠에서 깬 임청아는 연한결이 한동안 설득한 끝에 겨

  • 유산은 모른 척, 이혼에 왜 눈물?   제345화

    성하린이 즉시 일어났다.“나가세요.”성문수는 눈살을 찌푸렸다.그의 기억 속 임청아는 늘 소심하고 순종적인 아이였는데, 3년 만에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청아야, 할 말이 있어.”성문수는 방식을 바꿔 성예빈과 성하린을 나가게 하려 했다.성하린은 당연히 거부했지만 임청아가 결국 그녀를 내보냈다.사람들이 나가자 성문수가 말했다.“청아야, 네 부모님이 어떻게 돌아가신 건지 알고 싶지 않아?”임청아는 순간 몸을 곧게 세우며 왼손으로 이불을 꽉 쥐었다.“그게 무슨 뜻이에요?”그녀의 부모님은 성동민의 부모님을 구하다가 죽었다

  • 유산은 모른 척, 이혼에 왜 눈물?   제344화

    성하린은 진건우에게 옷을 입히고 함께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식탁에는 문강찬과 진세린이 아침을 먹고 있었다.진세린은 성하린이 내려오는 걸 보자마자 벌떡 일어나 조심스럽게 말했다.“새언니...”성하린은 담담하게 한 번 보더니 진건우의 손을 잡고 나가려 했다.“하린아.”문강찬이 다가와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아침 먹고 가.”진세린은 아첨하듯 말했다.“새언니, 오빠는 그냥 내 안전이 걱정돼서 하룻밤 재워준 거야. 오해하지 마.”겉으로는 겸손했지만 사실은 문강찬이 자기에게 얼마나 편애하는지를 드러내는 과시였다.성하린은 아침

  • 유산은 모른 척, 이혼에 왜 눈물?   제342화

    성동민은 놓지 않고 버텼다.그는 고개를 들어 계단 위에 서 있는 여자를 보며 문강찬에게 말했다.“성하린이 보고 있는데?”문강찬은 고개를 돌려 성하린을 봤다.단 1초, 그리고 바로 시선을 거두고 다시 힘을 줬다.성동민은 손을 놓더니 한발 뒤로 물러나 어깨를 으쓱했다.“문강찬, 네가 나한테 전화해서 데리러 오라고 해놓고 지금 뭐 하는 거야?”문강찬은 진세린을 뒤로 감싸며 차분하게 말했다.“성동민, 아무리 그래도 세린이는 네 아내고, 내 동생이야. 너 너무 거칠어.”기본적인 다정함과 존중조차 없었다.성동민은 눈썹을 치켜

  • 유산은 모른 척, 이혼에 왜 눈물?   제260화

    잠시 후, 진세린은 응급실에서 나와 일반 병실로 옮겨졌다.상처는 깊었지만 일찍 발견해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주아란은 눈이 퉁퉁 부을 때까지 울었다.진세린의 생사에는 관심이 없었던 성하린은 잠깐 병실에 서 있다가 바로 나왔다.그녀의 뒤로 문강찬의 비꼬는 목소리가 들렸다.“이제 만족해?”성하린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표정에는 아무런 파동도 없었다.그는 진세린의 자살까지 그녀의 탓으로 돌리려 하고 있었다.“세린이 자살한 게 왜 내 책임이야?”문강찬은 그녀의 무심한 태도를 보고 마음이 서늘해졌다.그녀의 냉혹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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