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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Author: 보루비
“또 쇼하네.”

진태호는 콧방귀를 뀌고는 땅에 쓰러진 진윤슬을 내려다보았다.

“진윤슬, 켕기는 게 있으니까 기절하는 척하는 거지? 여기 병원인 거 잊었어? 의사가 보면 바로 알아.”

문강찬이 진윤슬을 안아 올렸다. 정말 깃털처럼 가벼웠다.

순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최근 진윤슬을 거의 보지 못해 이렇게나 살이 빠진 줄도 몰랐다.

“의사 불러올게.”

진태호는 진윤슬의 거짓말을 폭로하려는 듯 밖으로 나갔다.

바로 그때 병실 문이 열리더니 간호사가 들어왔다.

진윤슬이 유산했는데도 옆에 보호자가 없어 약을 갈아야 하는 시간을 간호사가 직접 기억했다. 마침 진윤슬도 수액 한 병을 다 맞았다.

그런데 진윤슬의 상태와 손등의 피를 보자마자 간호사의 안색이 급변하더니 즉시 비상벨을 눌렀다.

“선생님, 29번 환자 의식이 없어요. 응급 처치가 필요합니다.”

곧이어 복도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울려 퍼졌고 의사와 간호사 몇몇이 달려와 진윤슬을 둘러쌌다.

의사는 진찰 후 진윤슬을 응급실로 옮겼다.

문밖에 있던 문강찬은 저도 모르게 가슴이 쿵 내려앉는 것 같았고 심장도 빨리 뛰었다.

그때 진태호의 무심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간호사님, 쟤 지금 연기하는 거니까 이렇게 호들갑 떨 필요 없어요.”

그 말에 간호사가 짜증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환자분이 아픈 척하는 건지 아닌지, 그쪽이 우리보다 더 잘 알아요?”

진윤슬의 창백한 얼굴이 떠오른 문강찬이 물었다.

“대체 어디가 아픈 겁니까?”

“환자분 유산했어요.”

간호사는 짧게 대답한 후 급히 응급실로 들어갔다.

복도에 침묵이 감도는 가운데 진세린이 중얼거렸다.

“언니 어쩌다가 유산했지?”

문강찬이 넋을 잃은 얼굴로 서 있었다. 조금 전 진태호의 말을 들은 후 진윤슬이 흥분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휴대폰을 꺼내 비서에게 오늘 밤 있었던 일들을 자세히 알아보라고 문자를 보냈다.

진태호가 중얼거렸다.

“유산했다고? 설마 일부러 그런 거 아니야?”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문강찬이 고개를 들어 진태호를 싸늘하게 노려보았다.

순간 움찔한 진태호가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냥 좀 이상해서 그러지...”

진세린이 진태호의 팔을 잡아당기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빠, 제발 좀 그만해.”

문강찬이 싸늘한 표정을 짓자 상대를 짓누르는 듯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윤슬이는 내 와이프야. 또 함부로 말했다간 가만두지 않아.”

진태호는 입술만 삐죽거릴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약 한 시간 후 진윤슬이 응급실에서 나왔다. 의사의 치료 덕에 그녀의 상태가 안정되었다.

간호사가 물었다.

“환자 보호자분 계십니까?”

문강찬이 대답했다.

“제가 남편입니다.”

간호사는 문강찬을 경멸 섞인 눈빛으로 훑어보면서 당부했다.

“환자분 유산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안정을 취하셔야 합니다. 되도록 병실에 사람을 많이 들이지 마세요...”

...

진윤슬이 다시 눈을 떴을 땐 문산 그룹 산하 개인 병원의 고급 병실이었다.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문강찬이 옮긴 게 틀림없었다.

“아직 아파?”

나지막하게 묻는 문강찬의 얼굴에 어제 보였던 냉정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진윤슬이 고개를 들었다. 이젠 문강찬을 마주해도 마음이 여전히 텅 빈 것 같았다. 다시금 흔들리는 감정을 억누르려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문강찬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

“윤슬아, 어젯밤에는 정말 미안해. 그런 일이 있은 줄 알았다면...”

무조건 사람을 보냈을 텐데.

“강찬 씨, 3년의 계약이 거의 끝나가고 있어.”

진윤슬이 가볍게 말했다. 얼굴은 계속 창밖을 향하고 있었고 표정은 무덤덤했다.

문강찬의 시선이 진윤슬에게 닿았는데 검은색 셔츠를 입어 더욱 음울해 보였다.

그때 진윤슬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문강찬을 보면서 차분하게 말했다.

“계약 기간은 아직 석 달 남았고 이혼 숙려 기간은 한 달이야.”

두 사람이 결혼할 때 서로 원하지 않아 3년의 계약을 맺었다. 3년이 지나도 서로에게 마음이 생기지 않으면 이혼하기로 했다.

진윤슬이 지금 3년을 언급한 건 이혼하겠다는 뜻이었다.

“아이는 또 가질 수 있으니까 힘내.”

문강찬이 입술을 깨물면서 고개를 숙였다. 아이를 잃어 그도 고통스러운 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건 사고였다.

“내가 앞으로 아이를 또 가질 수도 있겠지만 아이의 아빠는 절대 강찬 씨가 아닐 거야.”

진윤슬이 마음속에 담아뒀던 말을 아무렇지 않게 했다.

“강찬 씨, 세린이 귀국했잖아. 세린이랑 결혼하고 싶다면... 내가 자리를 내줄게.”

“나랑 세린이는 아무 사이 아니야.”

문강찬의 입가에 맴돌던 부드러움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진윤슬은 그와 이런 일로 언쟁하고 싶지 않았다. 어쨌거나 문강찬과 진세린 사이에 특별한 일이 없는 건 사실이니까. 다만 남편이 다른 여자의 주변을 맴도는 걸 참을 수 없었을 뿐이었다.

심지어 아이를 잃었는데도 문강찬은 아무렇지 않은 듯했다.

어쩌면 아이를 품지 않아서 혈육의 끈으로 맺어진 기묘한 감정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따라서 아이를 잃은 후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고 또 가질 수 있다는 잔인한 말을 가볍게 내뱉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두 사람이 무슨 사이라고 한 적 없어. 그런데 강찬 씨가 세린이를 마음에 두고 있는 건 사실이잖아. 이젠 세린이가 귀국했으니까 다시 만나도 되지.”

진윤슬은 모든 걸 내려놓았다. 남편이 다른 여자 옆에 있고 싶다면 아내로서 기꺼이 허락할 수 있었다.

“말했잖아. 우린 깨끗하다고.”

문강찬의 두 눈에 냉기가 흘렀다. 잠깐 멈칫하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아이를 잃어서 마음이 아픈 건 알겠지만 세린이랑은 아무 상관 없어.”

진윤슬이 낮게 기침하더니 눈가가 점점 붉어졌고 숨이 잘 쉬어지지 않을 정도로 가슴이 답답했다.

“윤슬아...”

“강찬 씨도 알잖아. 내가 임산부였었다는 거.”

진윤슬은 문강찬의 말을 가로채고 차가운 눈으로 비웃었다.

“강찬 씨는 내가 방해할까 봐 내 전화를 받지 않았어. 휴대폰을 무음으로 설정해놓았지?”

그녀는 문강찬이 한 일들을 하나하나 짚어냈다. 추측이었지만 거의 다 사실이었다.

원래는 까발리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진세린은 아무 잘못 없다고 문강찬이 여러 번이나 말하는 걸 듣고 나니 진저리가 났다.

문강찬이 입을 굳게 다물고 침묵했다. 왜냐하면 진윤슬의 추측이 거의 맞았으니까. 진윤슬이 전화 온 걸 봤을 때 그녀가 또 무슨 일을 벌이려는 줄 알고 휴대폰을 무음으로 설정해놓았다.

이제 와서야 후회가 밀려왔다.

“이미 이렇게 됐는데 얘기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어.”

더는 언쟁하고 싶지 않았던 문강찬은 곧장 밖으로 향했다.

“쉬어. 난 처리해야 하는 일이 있어서 먼저 가볼게.”

병실 문이 닫혔고 주변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진윤슬이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있었지만 눈빛은 슬프기 그지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 새 휴대폰을 가져다줬다. 전에 쓰던 휴대폰이 폭우 때문에 고장 난 바람에 새로 하나 장만했다.

휴대폰을 켜자 문자가 쏟아져 들어왔다. 걱정하는 문자도 있었고 따지는 문자도 있었다.

진윤슬은 휴대폰을 던져두고 전부 무시해버렸다.

반나절 정도 자고 나니 정신이 한결 맑아졌다.

오후 6시쯤 휴대폰이 울렸는데 절친 임청아의 전화였다. 그녀는 망설임없이 전화를 받았다.

“청아야.”

임청아가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

“윤슬아, 향수 대회에 왜 안 왔어?”

진윤슬이 침대에서 벌떡 일어난 순간 다시 통증이 느껴졌다. 잠깐 진정한 후 자신의 상태를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일이 생겨서 못 갔어.”

휴대폰 너머로 몇 초간 침묵이 흐르고 나서야 임청아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네 남편이 왔는데 진세린이랑 같이 왔더라고. 두 사람 팔짱도 끼고 아주 다정해 보였어. 게다가 진세린이 입은 옷이... 아니다. 그냥 사진 보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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