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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Author: 딱그만큼
내가 욕실에서 나와 침실로 돌아왔을 때, 유준호는 이미 깊이 잠들어 있었다.

매일같이 같은 공간에서 숨 쉬고 살아온 남자의 옆얼굴은 지독할 만큼 낯설었다.

잠결에 유준호가 내 손을 붙잡았다.

“가지 마. 영원히 내 곁에 있어 줘.”

잠시 후, 유준호의 입술 사이로 또 다른 이름이 흘러나왔다.

“윤아야...”

그 얼굴에는 끝없는 애정과 기대고 싶어 하는 감정이 담겨 있었다.

또한 단 한 번도 나를 향해 보여 준 적 없는 표정이었다.

그 순간, 침대맡에 놓인 유준호의 휴대폰 화면이 밝게 켜졌다.

발신인은 ‘윤아 공주님’이었다.

곧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나는 조심스럽게 휴대폰을 집어 들어 몇 번이고 비밀번호를 입력해 봤다.

내 생일도, 유준호의 생일도 심지어 임윤아의 생일도 아니었다.

마지막 한 번 남은 기회에 나는 딸이 죽은 날짜를 입력했다.

그러자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잠금이 풀린 것이다.

그제야 문득 깨달았다.

딸이 세상을 떠난 그날, 임윤아는 내 딸의 심장을 이식받고 새로운 삶을 얻었다.

그래서 유준호에게는 그날이 가장 특별한 날이었던 것이다.

유준호는 그렇게 오랜 세월, 아무도 모르게 임윤아를 사랑해 왔다.

채팅창을 열자 임윤아가 보낸 사진 몇 장이 눈에 들어왔다.

사진 속 임윤아의 미소는 봄날 햇살보다도 눈 부셨다.

임윤아는 유준호의 팔에 다정하게 매달려 있었고, 유준호는 어색한 표정으로 함께 손하트를 만들고 있었다.

[준호 오빠, 역시 오빠랑 놀이공원 가는 게 제일 재밌어요. 고성혁은 오빠보다 훨씬 재미없어요.]

[내일 같이 프로필 사진 찍기로 한 거 잊으면 안 돼요. 꼭 와야 해요. 사랑해요.]

사진 속 두 사람은 누가 봐도 한창 사랑에 빠진 연인 같았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 나는 마치 남의 행복을 훔쳐보는 우스운 광대 같았다.

하지만 내일은 유준호가 내 산부인과 검진에 함께 가겠다고 약속한 날이었다.

그래서 궁금해졌다.

유준호는 뱃속의 아이와 사랑하는 여자 중에 뭘 더 중요하게 여길까 하고 말이다.

그날 밤, 나는 한숨도 자지 못했고, 속으로 나 혼자 도박 아닌 도박을 하고 있었다.

만약 내일 유준호가 약속대로 나와 함께 병원에 간다면, 이 아이를 위해서라도 한 번만 더 기회를 주겠다고 마음먹었다.

다음 날 아침, 유준호는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외출 준비를 마쳤다.

유준호의 얼굴에는 감출 수 없는 기대감과 설렘이 가득했다.

현관문을 나서려는 순간, 나는 유준호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준호야, 어디 가? 오늘 나랑 산부인과 검진 가기로 했잖아.”

유준호는 얼굴에 떠올랐던 웃음을 거두었다.

잠시 생각에 잠긴 준호는 내 손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유진아, 미안해. 오늘 정말 중요한 회의가 있어서 당장 병원에 같이 가기는 어려울 것 같아.”

“넌 원래 이해심이 많은 사람이잖아. 이런 사정, 이해해 줄 수 있지?”

“게다가 어제도 말했잖아. 아이 낳는 게 처음도 아니고, 너는 경험이 있으니까 나 없이도 잘할 수 있을 거야.”

나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유준호는 그런 나를 보며 웃더니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착하지? 말 잘 들으면 올 때 선물 사 올게.”

그 말을 남긴 채 유준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을 나섰다.

나는 현관 앞에 멍하니 서 있었다.

빠르게 멀어지는 준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이번에는 정말 끝이라는 걸 깨달았다.

내 마음도, 우리의 관계도 더는 되돌릴 수 없었다.

나는 곧바로 항공권 예매 사이트를 열어 가장 친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모레 저녁 비행기로 경해시에 갈 예정이고, 비행기가 이곳을 떠나 경해시에 도착하는 순간, 나는 이곳의 모든 것과 완전히 작별할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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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제 와 사랑이라니   제10화

    그날 밤이 지나고 유준호의 머리에는 하룻밤 사이에 흰머리가 자랐다.유준호는 결국 손에 쥔 모든 일을 내려놓고 유진이 있는 경해시로 향하기로 결심했다.떠나기 전, 유준호는 임윤아의 집을 찾았다.마지막 인사를 남기고 싶었다.사과와 작별을 담은 편지 한 통을 전하기 위해서였다.유준호는 임윤아 집의 비밀번호를 알고 있어 곧바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그런데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임윤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임윤아는 친구와 통화하며 불만을 쏟아내고 있었다.이번 논란은 데뷔 이후 처음으로 터진 대형 악재였다.그것도 자신을 가장 사랑한다고 믿었던 유준호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기에, 당연히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사실 6년 전 나 아픈 거 전부 거짓말이었어. 애초에 병도 없었는데 오빠를 속인 거지.”“그때는 고성혁을 너무 사랑했거든. 그 아이만 없어지면 고성혁이랑 도유진이 이혼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임윤아가 코웃음을 쳤다.“근데 그 오빠가 그렇게까지 멍청한 줄은 몰랐어. 내가 뭐라고만 하면 전부 믿더라.”“그러니까 결국 아내도 떠나고, 아이까지 잃은 거지.”말끝을 삼킨 임윤아가 이를 악물었다.“그래도 그날 사람들 앞에서 나한테 망신 준 건 아직도 용서가 안 돼. 그래서 다시 나한테 매달리게 만들 거야. 그런 다음엔 내가 먼저 차 버릴 거고.”그 말을 듣는 순간, 유준호는 벼락을 맞은 듯 굳어 버렸다.손에 들고 있던 편지는 어느새 구겨져 있었다.모든 것이 거짓이었다.모든 것이 임윤아가 꾸며 낸 한 편의 연극이었다.그제야 유준호는 자신이 몇 년 동안 어릿광대처럼 놀아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여자를 직접 상처 입히고 망가뜨렸다는 사실 또한 깨달았다.유준호는 비틀거리며 임윤아의 집을 빠져나왔다.마침 그때, 비서에게서 연락이 왔는데 나의 행방을 찾았다는 소식이었다.다음 날, 유준호는 결국 나를 찾아냈다.남자는 한동안 깎지 않은 수염을 그대로 두고 평소처럼 늘 입던 검은 정장도 입지 않았다.

  • 이제 와 사랑이라니   제9화

    방송국을 나온 유준호는 그제야 밖에 폭우가 쏟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거세게 쏟아지는 빗줄기를 바라보던 유준호는 문득 생각났다.혼자 산부인과 검진을 받으러 갔다가 비를 흠뻑 맞고 돌아왔던 도유진의 모습이 떠올랐다.‘그날의 유진이도 이런 비를 맞았을까?’이번에는 유준호가 망설임 없이 빗속으로 걸어 들어가자 비서가 급히 우산을 들고 따라왔다.하지만 유준호는 우산을 거부하고 차가운 빗물이 얼굴을 때리도록 내버려두었다.비가 너무 차가워서였을까?유준호의 목소리에는 희미한 울음기가 배어 있었다.“이렇게 비를 맞는 게 이렇게 힘들고 아픈 일이었네.”“유진아, 내가 잘못했어.”“내가 네 마음을 제대로 살피지 못했고, 얼마나 힘들었을지도 이해하지 못했어.”유준호는 무려 10킬로미터를 그렇게 비틀거리며 걸었다.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저물고 있었고, 온몸이 젖은 탓에 한기가 뼛속까지 스며들었다.이에 유준호는 크게 재채기했다.그 모습을 본 도우미는 서둘러 생강차를 끓여 왔다.유준호는 한 모금 마시자마자 얼굴을 찌푸렸다.너무 맵고 익숙한 맛도 아니라 짜증이 치밀어 올라 무심코 불평하려 했다.그때 도우미가 먼저 입을 열었다.“사장님. 예전에는 생강차나 해장국 같은 건 전부 사모님이 직접 챙겨 주셨어요.”“지금은 사모님이 안 계시니까 그냥 드셔야죠.”그 말 때문이었을까? 생강 때문이었을까?유준호의 눈가가 붉어지더니 갑자기 그릇을 바닥에 내던졌다.쨍그랑하는 요란한 소리에 거실에 울려 퍼졌다.요란한 파열음이 거실에 울려 퍼졌다.“누가 없다는 거죠? 그 사람은 곧 돌아올 거예요. 나를 버릴 리 없다고요.”유준호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이모님이 만든 건 못 먹겠네요. 유진이가 해 준 음식만이 내 입에 맞아요.”띵동-그때,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그 순간 유준호의 눈빛이 순간 밝아졌다.도유진이 돌아온 줄로 생각했다.결국 도밖에서 고생하다 못 버티고 집으로 돌아온 것으로 생각한 유준호는 급히 거울 앞으로 갔다.흐트러진 머리를

  • 이제 와 사랑이라니   제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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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제 와 사랑이라니   제7화

    유준호는 잠든 임윤아를 바라보면서도 좀처럼 잠들 수 없자 결국 침대에서 일어나 발코니로 나갔다.유준호는 담배 한 개비에 불을 붙인 뒤 휴대폰을 꺼내고는 도유진과의 대화 기록을 천천히 내려보기 시작했다.처음 만났던 날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기억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유준호는 늘 바빴고, 매일 늦은 밤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왔다.그럴 때마다 도유진은 저녁상을 차려 놓고 식탁 앞에서 묵묵히 기다리고 있었다.몇 번은 기다리다 지쳐 식탁에 엎드린 채 잠들기도 했다.환하게 불이 켜진 집 안, 작은 몸을 웅크리고 잠들어 있던 도유진의 모습이 떠올랐다.하지만 이제 그 집 안에 있는 것은 어둠뿐이었다.그 순간 유준호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자신은 이미 도유진이 있는 삶에 익숙해져 있다는 사실을.집 안에 밴 도유진의 향기에 익숙해져 있었고, 손만 뻗으면 닿을 곳에 도유진이 있는 일상에도 익숙해져 있었다.그리고 지금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무언가가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도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다.한참을 망설이던 유준호는 태어나 처음으로 장문의 메시지를 작성했다.천 자가 넘는 글이었다.사과도 하고 변명도 하고 설명도 했다.하지만 전송 버튼을 누른 순간, 화면에는 메시지 전송 실패라는 글자가 떠올랐다.한편, 나는 경해시에 도착하자마자 유준호의 연락처를 차단했다.메신저도 삭제했고 전화번호도 새로 바꿨다.친구는 이미 내가 지낼 집과 필요한 물건들을 모두 준비해 두었다.당분간은 친구 집에 머물 예정이었고, 나는 매일 구직 사이트를 뒤지며 새로운 일을 찾고 있었다.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해서였다.유준호는 자신이 차단당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순간 완전히 당황했다.6년 동안 도유진이 먼저 모든 연락을 끊어 버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유준호는 떨리는 손으로 담배를 비벼 끄고는 곧바로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도유진이 어떻게 그때 일을 알게 됐지?”전화기 너머의 비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자 유준호는 다시 담배를 하나 꺼내 불을 붙였다.바람이

  • 이제 와 사랑이라니   제6화

    그 소식을 들은 유준호는 놀라서 순간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다.하마터면 그대로 바닥에 넘어질 뻔했다.믿을 수가 없었다.그동안 수없이 다투고 냉전도 했지만, 단 한 번도 도유진이 자신을 떠날 거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으니까.비서는 곧바로 서류를 출력해 유준호 앞에 내려놓았다.유준호는 이혼 합의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그리고 마지막 장 서명란에 적힌 '도유진' 세 글자를 보는 순간에야 깨달았다.이번은 협박도, 투정도 아니었다.도유진은 정말 떠난 것이다.그 사실을 확인한 유준호는 의자에 멍하니 주저앉았다.영혼이 빠져나간 사람처럼 넋이 나가 있었다.비서는 그런 유준호의 모습을 처음 봤다.언제나 냉정하고 완벽하던 사람이 이렇게 당황하는 모습은 처음이었다.한참 후, 유준호가 힘없이 입을 열었다.“도유진이 왜 나를 떠난 거지? 내가 그렇게 부족했나?”“집도 줬고, 돈도 줬고, 심지어 아이까지 다시 갖게 해 줬는데 왜 만족하지 못한 거지?”괴로워하는 유준호를 보던 비서는 결국 참지 못하고 솔직하게 말했다.“대표님. 대표님은 사모님께 집을 주셨지만 사랑은 주지 않으셨잖아요. 대표님의 사랑은 전부 임윤아 씨에게 있었으니까요.”비서는 잠시 멈췄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그리고 그 보석들 말이에요. 사모님께 드린 것 중에 임윤아 씨가 먼저 고르지 않은 게 하나라도 있었나요?”“사모님 첫째 아이도 결국 임윤아 씨 때문에 죽었고요.”유준호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아이.’그 단어가 가슴을 세게 후벼 팠다.유준호는 탁자 위에 놓인 장기이식 동의서를 집어 들고 마지막 페이지를 펼쳤다.그곳에는 분명 자신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6년 전, 임윤아를 살리기 위해 유준호는 의도적으로 이 모든 것들을 설계했다.언젠가 진실이 밝혀질 수도 있다는 생각은 했기에 도유진과 결혼했다.사랑으로 상처를 덮어주면 아이를 잃은 아픔도 조금은 잊게 해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결국 실패했다.시상식이 끝난 후, 임윤아는 백스테이지로 들어왔

  • 이제 와 사랑이라니   제5화

    얼마 지나지 않아 병원에서 있었던 일이 담긴 영상이 팬들에 의해 촬영되어 인터넷에 올라왔다.영상은 순식간에 퍼졌고, 곧 실시간 인기 검색어에까지 올랐다.댓글들은 상당히 많이 달렸다.[유준호 대표, 돈만 많은 게 아니라 진짜 착한 사람이네. 도우미한테도 저렇게 잘해 주다니.][그러니까. 유준호 같은 사람이 저런 여자한테 관심 있을 리가 없잖아.][저 여자 봤어? 임윤아 따라 하겠다고 에메랄드 목걸이까지 하고 나왔네. 진짜 웃긴다.][저 에메랄드 목걸이 우리 회사 신제품임. 전 세계에 딱 하나뿐인 제품인데 유준호 대표가 직접 임윤아 집으로 보내라고 함.][유준호 진짜 로맨틱하다. 선물도 세상에 하나뿐인 걸 주네. 윤아 언니 너무 부럽네.]나는 댓글 창을 꺼 버리고 수술대 위에 누운 채 멍하니 천장을 바라봤다.머리가 어지러웠고 의사는 몇 번이고 내게 확인했다.“도유진 씨, 정말 이 아이를 포기하시겠어요?”나는 눈을 감고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충분한 양의 마취제를 맞았음에도 너무 아팠다.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는데 그건 뼛속까지 파고드는 고통이었다.오랫동안 참아 왔던 눈물이 끝내 터져 나왔다.수술이 끝난 뒤, 나는 의사에게 죽은 태아의 시신을 잘 보관해 달라고 부탁했다.그리고 내가 떠난 후 유준호에게 전달해 달라고.병원 문을 나서자마자 나는 곧바로 공항으로 향하는 택시에 올라탔다.휴대폰을 켜 보니 친구에게서 링크 하나가 와 있었는데 생방송 영상이었다.유준호가 가족 자격으로 임윤아의 시상식에 참석한 모습이었다.무대 위의 임윤아는 우아한 오프숄더 드레스를 입고 있었고, 유준호 역시 같은 색감의 정장을 입고 있었다.임윤아가 수상 소감을 말하는 동안, 카메라는 계속해서 유준호를 비췄다.유준호는 무대 위의 임윤아만 바라보고 있었고, 그 눈빛에는 숨길 수 없는 자부심과 애정이 담겨 있었다.뜨겁고도 간절한 시선이었다.곧 사회자가 분위기를 띄우며 물었다.“임윤아 씨, 유준호 대표님과의 관계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요?”임윤아는 수줍게 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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