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ICIAR SESIÓN주율천은 깊게 숨을 들이쉬고 잠시 웃은 후 농담처럼 말했다.“친구끼리 치고받고 싸우는 건 자주 있는 일이니까 걱정하지 마. 설마 내가 경찰에 신고하겠어?”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설명을 덧붙였다.“아까는 내가 마음이 급해서 유준이한테 그렇게 말한 거야.”온채아의 뱃속에 있는 아이에 대한 이야기였다.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알아요.”주율천은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진지하게 말했다.“어느 날 갑자기 후회된다면 얘기해줘. 내가 직접 유준이한테 설명할게.”점심쯤, 강미진이 다시 병원을 찾아왔고 온채아에게 줄 영양식도 가져왔다.그녀는 더 많이 먹으라고 권하며 말했다.“의사 선생님이 내일 퇴원해도 된다고 했죠?”온채아는 강미진의 걱정이 진심임을 알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네. 이제 괜찮다고 하네요. 별일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그럼 퇴원하고 어디에서 지낼 거예요?”의사는 온채아가 장거리 이동이 불가능하다는 걸 강미진에게도 말했다.“호텔에서 며칠 지내면 될 것 같아요.”온채아는 따뜻한 국물을 한 모금 마시고 웃으며 말했다.“의사 선생님이 말한 것처럼 그렇게 심각하지는 않아요. 며칠만 더 쉬면 바로 경성으로 돌아갈 수 있어요.”온채아는 이 기회를 통해 조금 휴식을 취하고 스스로를 돌보기로 했다.“인맥을 이용할 줄 모르네요.”강미진은 온채아를 흘깃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하씨 가문에서 지낼 생각은 왜 안 했대? 도연이가 이미 도우미에게 얘기했어요. 채아 씨의 방을 준비해 뒀으니까 내일 퇴원하면 바로 집으로 와서 편하게 쉬어요.”강미진은 온채아가 거절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몸 둘 바를 몰랐던 온채아는 머뭇거리며 말을 꺼냈다.“어르신이 내일 군에서 돌아오신다고 들었어요. 집에 외부인이 있으면 불편하지 않을까요?”강미진은 전혀 개의치 않으며 대답했다.“사람 많고 시끌벅적한 걸 좋아하는 스타일이라 채아 씨가 오면 오히려 좋아할 거예요.”하씨 가문의 어르신인 하용건은 인생에서 가장 큰 아쉬움이 막둥이를 한 번도 보지 못한
온채아는 마치 누군가가 심장을 꽉 움켜잡은 듯 숨 막히는 느낌에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그녀는 성유준이 아이를 원할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심지어 성유준이 그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아예 아이가 태어나는 걸 반대할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했다.이렇게 실망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그 절망감과 그가 겪는 고통은 온채아에게도 그대로 전해졌다.하도연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지금 후회해도 늦지 않았어요.”온채아는 순백의 침대 시트를 응시하며 한참을 생각했다. 그렇게 시간이 꽤 지나고 나서야 천천히 고개를 들어 물었다.“그럼 그 후에... 절 용서할 수 있을까요?”그 질문에 하도연도 잠시 멈칫했다.온채아의 과거를 직접 조사 해봤던 터라 그 질문이 어떤 의미인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온채아가 부모의 원수를 갚고 난 뒤 소원희의 친손자인 성유준은 과연 그녀를 용서할 수 있을까?만약 용서하지 않는다면 지금의 후회는 아무런 의미가 없을 뿐만 아니라 더 큰 문제를 불러올지도 모른다.하도연은 성유준과 소원희 사이의 불화에 대해 조금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할머니의 일에 아예 관심을 끄고 무시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았다.어쨌든 피는 물보다 진하니까.그렇게 쉽게 넘어갈 수 있었다면 많은 사람들이 가정의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고통을 겪지 않았을 것이다.그 상황을 머릿속으로 떠올린 하도연은 선뜻 답을 내놓지 못하고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채아 씨가 신중하게 생각하고 내린 결정이라면 응원할게요.”온채아는 깊은숨을 한 번 내쉬고 무거운 마음을 담아 말했다.“네. 걱정해 주셔서 고마워요.”쉽게 내린 결정은 아니었기에 하도연도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온채아가 되지 않은 이상 성씨 가문에 대한 그녀의 원한과 복수심을 알지 못한다.그저 부모님이 온채아에게 준 사랑과 관심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도와줬을 뿐이고 동시에 은혜를 갚고 싶었다.하지만 이제 보니 성유준과 온채아는 서로에 대한
의사 사무실.온채아의 주치의는 강한 포스를 풍기는 눈앞의 남자를 바라보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대표님, 제가 안 보여드리는 게 아니라 병원 규정이 있어서...”다시 말해 이는 하씨 가문에서 정해놓은 규칙이었다.이곳은 경성도 아니고 한빛 그룹 산하의 병원도 아니다.병원 대부분 사람이 하씨이고 게다가 하도연이 직접 데려온 환자였기에 의사는 감히 정보를 누설할 용기가 없었다.성유준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푹 숙였다. 이때 뒤에서 하도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꼭 봐야겠어?”하지훈과 오래된 관계였으니 자연스레 하도연도 처음이 아니었다. 성유준은 아주 솔직하게 말했다.“누나, 한 번만 도와줘. 이번 일은 내가 신세 진 거라고 생각할게.”그 말은 오늘 반드시 보고서를 볼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뜻이었다.하씨 가문에서 끝까지 보여주지 않는다면 다른 방법을 쓰더라도 꼭 확인하고 싶었다.하도연은 성유준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기에 전혀 놀라지 않았다. 대신 묵묵히 물었다.“보고 나면 뭐 할 건데?”성유준은 그저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그다음은 나랑 채아 사이의 일이야.”성유준의 아이라면 방금 전에 온채아에게 말했던 걸 지킬 생각이었다.만약 성유준의 아이가 아니라면 그래도 여전히 온채아를 돌볼 생각이었다.어쩌면 좋은... 삼촌이 되지 않을까?그의 얼굴에 잠시 스쳤던 외로움은 하도연에게 낯설지 않았다. 그녀는 이와 비슷한 표정을 전남편과 이혼할 때 마주했었다.하도연은 잠시 의사를 바라본 후 차분하게 말했다.“보여주세요.”그러고선 감정을 숨기듯 가만히 돌아서서 떠났다.의사는 하도연의 지시를 받자마자 서둘러 컴퓨터를 켜고 온채아의 초음파 보고서를 열어 성유준에게 정중히 말했다.“대표님, 이건 온채아 씨의 보고서입니다.”성유준은 책상 앞에 다가가서 몸을 숙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대로 얼어붙었다.“12주... 임신 3개월이라는 뜻이에요?”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숫자가 눈앞에 나타나자 성유준은 처음으로 흔들렸다.‘3개월? 어떻게 이럴 수가 있
두 사람은 곧 결혼하게 된다.화려한 결혼식에서 성유준은 모든 사람 앞에서 당당하게 오랫동안 가슴 속에 품어왔던 온채아를 아내로 맞이할 것이다.그리고 온채아와 함께 아이가 태어날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기쁨으로 가득 찬 매일을 보내게 된다.더불어 그들의 아이는 건강하고 행복하기만 하면 된다.“유준아.”온채아의 답을 듣기도 전에 화장실 문이 열리며 주율천이 블루베리가 담긴 접시를 들고 나왔다. 그는 침대 옆 탁자에 접시를 올려놓은 후 성유준을 보고 웃으며 입을 열었다.“축하해. 이제 삼촌이네.”성유준은 그 말이 농담처럼 들렸다.“삼촌?”성유준의 눈에 담겨있던 빛은 한순간에 사라졌다. 그는 일부러 무심한 듯 웃으며 온채아를 바라봤고 그 시선은 마치 그녀의 심장을 꿰뚫을 것처럼 날카로웠다.“내 아이가 아니야?”온채아의 심장은 마치 누군가에 의해 쥐어짜인 듯 아프게 뛰었지만 결국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응.”이것이 아이의 양육권을 지킬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었다.온채아는 가족을 원했고 그래서 주저하지 않고 이 아이를 낳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난 후 곁에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은 그녀에게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말도 안 돼.”성유준은 온채아의 말을 한마디도 믿지 않았다. 그녀가 임신 중이라는 사실을 생각해 애써 감정을 추스르고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사실대로 말하지 않으면 내가 직접 의사랑 확인할 거야.”온채아는 거짓말을 할지 몰라도 검사 결과는 누구의 아이인지 정확하게 밝혀줄 것이다.성유준은 자신이 손수 키워온 온채아가 어떤 성격인지 잘 알고 있었기에 그녀가 관계를 나눈 직후 다른 남자를 찾을 리가 없다는 걸 알았다.주율천이 재빠르게 성유준 앞을 가로막았다.“유준아, 이런 일까지 꼭 이렇게 추하게 만들 필요는 없잖아.”“비켜.”성유준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는 점점 더 짙어졌다. 주율천이 여전히 물러서지 않자 대수롭지 않다는 듯 그를 밀쳐 지나쳤다.주율천은 미간을 찌푸리며 성유준을 따라 병실을 나섰
하지훈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그게 무슨 말이야? 찾지 않아도 된다니?”“나랑 같이 있어. 크게 다친 것도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하지훈이 누구의 지시를 받고 온채아의 행방을 찾고 있는지 몰랐지만 하도연은 굳이 숨기지 않았다. 곧이어 그녀는 말을 돌리며 덧붙였다.“오늘은 너무 늦었어. 채아 씨도 쉬어야 하니까 주소는 내일 다시 보내줄게.”하지훈은 긴장이 조금 풀렸다. 그러나 이내 성유준이 생각나 다시 마음이 조급해졌다.“누나. 나 한 번만 도와줘. 제발 주소만 좀 알려줘. 아무것도 안 하고 무사한지만 직접 확인하고 싶어. 그냥 한 번만 보면 돼.”뚜둑.전화 너머로는 차가운 기계음만이 울려 퍼졌다.휴대폰을 내려놓은 하지훈은 눈물을 글썽인 채 성유준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안 도와주고 싶은 게 아니라 정말 방법이 없어. 우리 누나가 해성에서 사람을 숨기면 절대 못찾는 거 너도 알잖아.”하씨 가문의 모든 정보망은 그의 큰누나 손에 쥐어져 있다. 그래서 하희민이 아무리 손을 써봤자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한 것이다.“차라리 잘됐어.”깊은 한숨을 내쉰 성유준은 긴장이 조금 풀린듯했다. 표정은 훨씬 나아 보였지만 오랫동안 긴장한 탓에 여전히 가슴 속에 숨 막히는 느낌이 있었다.그는 천천히 상체를 일으키며 한 번 더 깊은숨을 내쉬었다. 초조한 기분을 덜어내려 했으나 여전히 마음속의 불안은 가시지 않았다.성유준은 하루 종일 수많은 생각을 했었다.다행히 우려하던 일은 하나도 일어나지 않았고 온채아는 무사했다.온채아만 안전하다면 다른 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니 하도연이랑 같이 있는 게 어쩌면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눈살을 찌푸리며 미간을 쓰다듬던 성유준은 마침 성일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대표님, 사고를 낸 사람이 잡혔다고 합니다. 하씨 가문에서 손을 썼는지 지금 밤새 조사 중이라고 하네요.”“그래.”성유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차분히 말했다.“채아 안 찾아도 되니까 사람 다 철수해.”온채아가 괜찮다는 걸 알면서도 성유준은 그날 밤 한숨
병실은 거실과 침실이 분리된 VIP실이었다.두 사람은 아직 거실에 머물러 있었다. 강미진은 반쯤 열린 침실 문을 바라보며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임신 중이라고 했지? 아이는 무사한 거지?”혹여 아이를 잃기라도 했을까 봐, 온채아가 듣고 상처받을까 조심스러운 기색이었다.하도연이 대답했다. “괜찮아요. 다만 푹 쉬면서 몸을 추스려야 해요.”“정말 하늘이 도우셨구나.”강미진은 그제야 타들어 가던 마음을 겨우 진정시켰다.참 이상한 일이었다. 온채아가 사고를 당했다는 전화를 받은 순간부터 가슴이 한시도 편치 않고 울렁거렸다. 이 기분은 예전에 하도연이 말단 현장에서 수련하다 산사태를 만났을 때 느꼈던 것과 같았다. 그때도 하도연이 무사하다는 소식이 들려올 때까지 꼬박 하루 밤낮을 마음 졸였었다.온채아는 두 모녀의 조심스러운 대화를 어렴풋이 듣고 있었다. 강미진이 들어오자 온채아는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사모님, 전 괜찮아요. 아이도 무사하고요.”온채아는 방금 스스로 맥을 짚어보았다. 이마는 가벼운 외상일 뿐이었다. 아이가 충격을 받긴 했지만 하도연의 말대로 당분간 쉬면 문제없을 정도였다.강미진은 핏기가 하나도 없는 온채아의 입술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어디가 괜찮다는 거예요?”“해성에는 갑자기 어쩐 일로 온 거예요? 해성에 올 거면 나한테 말이라도 하지 그랬어요. 내가 경원으로 사람을 보내 데려오게 했으면 사고는 없었을 텐데요.”하씨 가문의 차라면 감히 딴마음을 품고 달려들 사람이 없을 것이다.그 질문에 온채아는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다. 그녀는 잠시 숨을 고른 뒤에야 입을 열었다. “부모님 뵈러 왔어요. 오늘이 두 분 기일이거든요. 사모님께서는 어르신 생신 잔치 준비로 바쁘실 테니 폐 끼치고 싶지 않았어요.”동남아에서 부모님이 그녀를 데려오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살아있지도 못했을 것이다. 비록 친부모는 아닐지라도 목숨을 구해주고 키워준 은혜를 생각하면 영원히 친부모로 모시는 게 마땅했다. 다만 친부모가 대체 누구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