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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상관 안 해요

이진은 끝내 체념했다.

‘이 사람 진짜 미친 건가?’

하지만 아쉽게도 상대방이 미쳤다는 사실이 불쌍하다거나 그의 미친 짓에 함께 동참할 생각은 없었다.

“윤 대표님이 이야기에 이렇게 관심이 있는 줄 몰랐네요. 그런데 제가 지금 그럴 기분이 아니기도 하고 좀 피곤해서요.”

말을 마친 이진은 상대가 대답하기도 전에 거짓 웃음을 짓더니 의자를 뒤로 젖혀 누워버렸다.

윤이건은 눈 앞에 벌어진 황당한 상황에 헛웃음이 나왔다.

그는 단 한번도 살면서 누군가에게 먼저 나서서 이야기를 들어주겠다며 말해본 적도 없었고 더욱이 이렇게 단칼에 거절당한 적도 없었다.

하지만 눈을 감고 있는 이진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는 걸 본 순간 마음이 흔들렸다.

그리고 그가 뭐라고 말하려 할 때 전화벨이 울렸다.

귀찮은 듯 눈살을 찌푸리고 핸드폰을 손에 든 순간 액정에 뜬 이름이 눈에 들어왔고 그는 낮게 웃음을 터뜨리고 전화를 받았다.

“윤 대표님…….”

“이영 씨, 무슨 일이죠?”

한번도 이영의 이름을 부르지 않던 그는 일부러 이진에게 들려주기 위해 다정하게 이름 세 글자를 불렀다.

하지만 그 상황을 알리 없는 전화 건너편의 이영은 부드러운 목소리에 가슴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

“이건 오빠…….”

아예 대담하게 호칭을 바꾸면서도 긴장되긴 했는지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하지만 윤이건은 그 호칭을 들은 순간 낯빛이 어두워졌다.

“이건 오빠, 오빠가 이번 피아노 콩쿠르 후원자라는 거 알아요. 혹시 제가 그 콩쿠르에 나간다는 거 알고 있어요?”

솔직히 이영이 콩쿠르에 나가는지 윤이건은 몰랐다. 혹은 관심이 없다고 말하는 게 더 적절하다.

하지만 목적을 위해 전화를 끊으려는 충동을 눌러 참았다.

“그래요, 알아요.”

“그러면 혹시 저한테 힘 좀 실어주면 안 돼요? 저한테 이번 콩쿠르가 엄청 중요해서요.”

현재 방에서 전화를 받고 있는 이영의 손은 이미 땀으로 흥건했다.

예전 같았으면 윤이건한테 전화를 걸면 윤이건은 아예 받지 않거나 그녀 혼자 한참 동안 떠들어댈 때 대충 몇 마디 하다가 인사도 하지 않고 전화를 끊곤 했다.

그런데 오늘은 지금껏 들어보지 못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오랫동안 대화하고 있다니. 물론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영은 너무 흥분한 나머지 더 생각해 보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때.

“제가 힘을 싣든 안 싣든 이영 씨 실력이 좋으니 잘 해낼 거예요.”

윤이건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또 들렸다.

마음에도 없는 말을 늘어놓던 윤이건은 이만하면 됐겠다는 생각이 들자 전화를 끊어버리고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이진은 여전히 아까 자세를 유지한 채 그가 누구랑 뭘 얘기하든 관심도 없는 듯 행동할 줄이야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리고 귓가에 들려오는 고른 새근새근 숨소리를 듣는 순간 윤이건은 그제야 이진이 이미 잠들었다는 걸 알았다.

화가 나기도 어이없기도 한 상황에 윤이건은 이진의 평온한 얼굴을 보며 이를 갈았다.

이제껏 이진의 차가운 태도가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함이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그저 그한테 관심 없는 거였다니.

때문에 그가 다른 여자와 떠들어 대도 아예 투명인간 취급을 하며 아무런 흔들림도 없는 반응을 보인 것이었다.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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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인순
이영 두 글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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