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하도원이 성이안의 상태를 물으려고 입을 열던 찰나, 성이안은 그를 스쳐자나 임서율 쪽으로 곧장 걸어갔다.하도원이 반사적으로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는데 그의 눈빛 속에는 경계와 긴장이 서려 있었다.“뭐 하는 거야?”그의 표정엔 분명한 걱정이 담겨 있었다. 그건 성이안이 수년간 함께 일하면서도 한 번도 본 적 없던 표정이었다.그 순간, 그녀는 임서율이 하도원에게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를 문득 깨닫고 말았다.그녀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번졌다.“도원 씨, 걱정 마. 서율 씨한테 따지러 가는 거 아니니까 그렇게까지 긴장할 필요 없어.”하도원의 반응을 본 임서율도 그가 지나치게 경직된 걸 느꼈다.“성 대표님은 그냥 나랑 이야기하려는 거예요. 도원 씨는 유민이랑 나가서 담배라도 한 대 피우고 와요.”하도원은 잠시 임서율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그와 김유민은 조용히 병실을 나섰고 병실 안에는 이제 두 사람만 남았다.임서율의 목소리는 담담했다.“성 대표님, 괜찮아요?”“그냥 살짝 긁혔을 뿐이에요. 별일 아니에요.”성이안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그럼 다행이네요. 아니었으면 제가 헛수고할 뻔했네요.”임서율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성이안은 그녀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눈동자, 숨결, 손끝의 미세한 떨림까지 단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고마워요, 서율 씨.”성이안의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정말 고마워요. 오늘 일 만약 당신이 아니었다면 전 지금쯤 어떻게 됐을지 상상도 못 하겠어요.”그녀의 어깨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눈가에는 눈물이 맺혔고 결국 참았던 울음이 터져 나왔다.오늘 밤의 일은 그녀에게 그만큼 파괴적이었다.임서율은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다가 부드럽게 손을 내밀었다.“성 대표님, 하나만 여쭤봐도 될까요? 조금 사적인 질문이에요.”성이안은 눈가를 훔치며 고개를 끄덕였다.“물어보세요.”“혹시 예전에 비슷한 일을 겪은 적 있나요? 꼭 신체적인 폭행이 아니더라도 위협이나 추행 같은 그런 일 말이에요.”그 말에 성이안은 입을
하도원은 의사의 말을 듣자마자 문득 성이안이 떠올랐다.“혹시 여자분 인가요? 옷차림이 조금 흐트러진...”“맞습니다. 그분이에요.”의사가 고개를 끄덕였다.“정신 상태가 조금 불안해 보이더군요. 이런 일을 겪으면 누구나 PTSD가 생기는데, 사람마다 감당하는 정도가 다릅니다. 가능하면 주변에서 환자분의 심리 문제를 잘 보살펴 주세요.”하도원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그 정도로 심각한가요?”“가볍게 볼 일은 아닙니다.”의사는 짧게 대답하고 자리를 떠났다.잠시 후, 김유민이 급히 병실로 뛰어들어왔다.“누나!”하도원은 그가 너무 흥분해 있는 걸 보고 진정시키려 했다.“지금은 큰 문제없어. 상태를 조금 더 지켜보면 되니까 걱정하지 마.”오던 길에 상황을 대충 들은 김유민은 분노로 이를 악물었다.“그 놈들 전부 죽여 버릴 거예요!”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문 쪽으로 향했다.하도원이 급히 가로막았다.“진정해. 이미 경찰이 수사 중이야. 네가 나서서 폭행이라도 하면 네 누나가 깨어났을 때 내가 뭐라고 설명하겠어? 지금은 일단 진정하고 내가 그놈들한테 똑같이 돌려줄게.”하지만 김유민은 서늘하게 고개를 저었다.“대표님, 운성시에선 당신이 하늘 같은 존재인 건 알아요. 하지만 여긴 대표님 땅이 아니에요. 이미 알아봤는데, 그 송두식이라는 놈, 경찰서에 친척이 있다더군요. 강한 용도 지역 깡패는 못 이긴다고 하잖아요.”그의 얼굴에는 이미 체념이 서려 있었다.“경찰도 결국 그놈들 풀어주겠죠. 그런 일, 내가 한두 번 본 줄 알아요?”“...물...”그때, 나직하고 약한 목소리가 병실 안에 울렸다.두 사람은 동시에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서율아!”“누나!”임서율의 안색은 여전히 창백했다. 입술은 말라붙었고 얼굴엔 핏기가 없었는데 가냘픈 몸은 한층 더 약해 보였다.하도원이 김유민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네가 잠깐 곁에 있어. 난 물 좀 떠올게.”“네.”하도원은 재빨리 컵을 찾아 물을 따르더니, 임서율의 등을 살짝 받쳐주며
“이번 일은 내 잘못이야. 사과할게.”하도원은 담담히 말했다.잘못한 건 잘못한 거다. 그는 결코 책임을 회피하거나 억지를 부리는 사람이 아니었다.하지만 그 말이 성이안의 가장 예민한 곳을 건드린 듯했다. 그녀는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얼굴에 분노를 숨기지 않고 말했다.“정말 너무하네. 한 사람의 진심을 짓밟고 그걸로 다른 사람을 시험하다니. 도원 씨, 나 당신이 이런 사람일 줄은 정말 몰랐어. 오늘 확실히 알았네.”그녀의 목소리에는 서늘한 기운이 깃들어 있었다. 그 말을 하고 나니 오히려 마음속의 죄책감이 조금은 가벼워지는 듯했다.성이안은 싸늘한 눈길로 하도원을 내려다보며 말했다.“아까까지만 해도 서율 씨 일은 나한테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어. 내가 화가 나서 뛰쳐나가지 않았다면 나 때문에 다칠 일도 없었겠지.”“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도원 씨, 당신도 아무 책임이 없는 건 아니잖아? 그날 술집에서 당신이 나한테 한 말들, 그게 나한테 얼마나 상처 줬는지 알아?”“그러니까 오늘 서율 씨랑 내가 이런 일을 당한 것도 당신 책임이 절반은 있어.”그녀는 말을 마치고 의자에서 일어나, 곧장 옆 진료실로 걸어갔다.그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병원 복도에는 또렷하게 울려 퍼졌다. 지나가던 환자들과 간호사들이 하나같이 발길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저 사람 뭐야? 잘생겼는데 완전 쓰레기 아니야?”“그러게, 방금 그 여자 말 들어보니까 수술실 안에 있는 여자를 좋아했대. 그런데 아까 그 여자를 이용하면서 떠봤다던데?”“그런데 떠보기는 성공한 것 같던데?”막 병원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신입 간호사가 혀를 찼다.“와, 진짜 너무하네. 사람 마음을 그렇게 가지고 놀다니.”나이든 간호사는 담담하게 말했다.“너무 흥분할 일도 아니야. 결국 다 자기 욕심 때문에 그러는 거지.”“그래도 그렇지, 한 사람의 마음을 그렇게 이용하는 건 아니잖아요?”신입 간호사가 반박하자 나이든 간호사는 비웃듯 말했다.“네가 좋아하는 사람이 널 어떻게 생각
생각하면 할수록 공포가 더욱더 크게 밀려와 눈물이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줄줄 흘러내렸다.“하도원... 만약 서율 씨에게 정말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난 어떻게 해? 나만 아니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거잖아.”“아직은 너무 많은 생각하지 마. 의사 말을 들어본 다음에 얘기하면 돼. 지금 잘못을 따지는 건 별로 의미 없어. 일단 상처부터 치료해.”성이안의 머릿속은 이미 혼란으로 가득했다. 무엇보다 두려운 건, 하도원이 임서율의 일로 자신을 원망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그녀는 임서율이 죽기를 바라지 않았다. 단지 하도원과 함께하고 싶었을 뿐이었다.하도원의 마음 또한 괴롭기 그지없었다. 그의 정신은 온통 임서율에게 집중되어 있어 성이안에게 별로 신경 쓰지 못했다.성이안에게 하도원의 태도는 너무나 중요했다. 특히 지금과 같은 상황에선 말이다.임서율은 그녀를 구하기 위해 저 지경이 된 것이다. 그 책임을 기꺼이 떠맡을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책임에서 벗어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결과일 것이다.하도원의 시선은 오직 수술실 LED 등에만 머물러 있었다. 성이안이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하도원, 나 너무 힘들어. 나랑 말 좀 해줘.”아무리 인내심 많은 사람이라도 끊임없는 질문을 버텨내긴 어려웠다.하도원은 마침내 고개를 돌려 그녀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 얼굴은 서늘하게 굳었고, 미간은 깊게 찌푸려져 있었다.“성 대표, 난 지금 네 상황을 고려해 말을 아끼고 있는 거야. 그렇다고 해서 이번 일이 너와 무관하다는 뜻은 아니야.”“그러니까 의사에게 가서 검사를 받든지, 여기에서 잠시 쉬든지 둘 중 하나만 해. 자꾸 말하지 말고.”성이안은 정말 화가 난 듯한 그의 모습에 심장이 찢겨나가는 듯 괴로웠다. 그녀가 흐느끼며 말했다.“하도원... 정말 나한테 이렇게까지 냉정하게 해야겠어?” 그는 입술을 질근 깨물었다.“성 대표, 그렇게까지 듣고 싶다니 똑똑히 말할게. 첫째, 지금 서율이가 응급실에 실려 온 건 너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어.”“술집에서
임서율은 자신의 몸도 가눌 수 없는 상황이라 성이안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다리에 스며드는 차가운 감각에 성이안의 눈동자에 절망이 내려앉았다.바로 그 순간, 몸을 짓누르던 중력이 돌연 사라졌다.하도원이 남자를 번쩍 들어 올리고는 주먹을 그 얼굴에 힘껏 내리꽂았다. 남자의 얼굴이 순식간에 퉁퉁 부어올랐다.지금 그의 머릿속엔 온통 임서율뿐이었다. 그는 곧바로 몸을 굽혀 그녀를 품에 꼭 끌어안고는 숨이 막혀 새파랗게 질린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졌다.“서율아, 서율아...”그러나 임서율은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했다. 하도원은 그녀의 심장에 귀를 가까이 가져갔다. 심장 박동을 확인한 뒤에야 간신히 숨을 고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하지만 그렇다고 위험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성이안도 비틀거리며 일어나 그녀의 상태를 확인했다. 얼굴은 백지장처럼 창백했고, 아무리 불러도 의식을 되찾지 못했다.“하도원, 빨리 병원으로 데려가야 해. 서율 씨가 모래를 너무 많이 마셨어. 기도가 막혔다면 정말 큰 일이야!”“알았어. 넌 경찰에 신고해.”하도원은 쓰러져 있는 임서율을 안아 들고 사람들 속을 헤쳐나갔다. 성이안이 다급히 그를 불러세웠다.“하도원, 경찰은 안 돼! 저 사람들 경찰 쪽에 연줄이 있는 것 같아.”그 말을 듣고도 하도원은 조금의 당황도 없이 오히려 비웃듯 입꼬리를 끌어올렸다.“신고해.”성이안은 그의 속내를 가늠할 수 없었으나, 지금은 달리 방도가 없어 그저 따를 수밖에 없었다.뒤이어 달려온 송강의 부하가 불안한 얼굴로 물었다.“형님, 경찰에 신고한답니다. 어떻게 하죠?”그 말에 송강은 곧바로 웃음을 터드렸다.“신고한다고? 잘됐네. 경찰서에서 한번 따져 보자고. 누가 이길지 궁금하네.”이미 신고를 했다고 하니 송강도 더는 그들을 막지 않았다.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의사들이 신속히 임서율을 응급실로 옮겼다.하도원과 성이안은 복도 대기 의자에 앉아 있었다. 소식을 들은 진승윤도 곧장 병원으로 달려왔다.“대표님, 임서율 씨 상태는
임서율과 성이안이 도망치자 송강은 부하들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뭐 하고 서 있어! 잡아! 당장 잡아 와!”그제야 반응한 부하들은 곧바로 두 여자를 추격했다.“예!”임서율은 성이안을 끌고 사람 많은 백화점 쪽으로 달렸다. 저들이 아무리 미쳐 날뛴다 해도 백화점에서 행패를 부리긴 어려울 것이다.하지만 성이안은 이미 겁에 질릴 대로 질려 있었다. 게다가 너무 많이 달리기까지 한 탓에 다리에 힘이 풀려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임서율은 다급히 발을 돌려 그녀를 부축하려 했다.“어서 일어나요!”하지만 성이안은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자신의 무릎을 쳐다보고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나... 더 못 뛰겠어요. 서율 씨... 혼자 가요.”임서율의 대답은 단호했다.“성이안 씨를 내버려 두고 제가 어떻게 가요! 자, 제가 부축해 줄 테니까 조금만 버텨요. 하 대표님한테 위치 보냈으니까 곧 도착할 거예요!”그 말에 성이안의 눈에 다시 희망의 빛이 번졌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애써 무릎의 통증을 참아내며 힘겹게 일어섰다. 하지만 그때, 뒤에서 누군가 성이안의 머리를 잡아챘다. 그녀의 손을 잡고 있던 임서율도 힘이 풀려버렸다. 그중 부하로 보이는 남자가 성이안의 뺨을 독하게 후려쳤다.“미친년! 감히 도망쳐?”그녀의 고개가 옆으로 꺾이며 땅바닥에 쓰러졌다. 남자는 공공장소라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무자비하게 그녀를 눌러 제압하더니 옷을 잡아 찢기 시작했다.임서율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급히 달려가 남자를 밀쳐내려 했지만, 그는 단번에 그녀를 땅에 패대기쳤다.“의리 좋네. 둘 다 같이 즐기면 되겠어.”다른 부하가 달려들어 임서율까지 제압했다. 눈앞에서 성이안의 옷이 찢겨 나가자 임서율은 모래를 한 움큼 잡아 상대 얼굴에 날려버렸다.“악! 내 눈!”그녀는 옆의 남자 급소를 걷어찼다. 그 틈을 타 간신히 몸을 빼낸 임서율은 성이안의 몸 위에 올라타고 있는 남자를 밀쳤다. 하지만 여자의 몸으로 어떻게 남자의 힘을 당해내겠는가.부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