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미혜가 회사 일을 마치고 연씨 가문으로 돌아왔을 때 경다솜은 집에 없었다. 경민준이 데려간 것이었다.노현숙의 상태가 여전히 불안한 탓에, 연미혜는 며칠째 아침마다 병원을 찾아 그녀의 안부를 확인했다.병원에 가면 어떤 날은 경민준이 있었고, 또 어떤 날은 심여정과 경민아가 있었다.심여정은 연미혜가 자기 며느리라는 사실이 내내 못마땅했지만, 병상에 누워계시는 할머니를 챙기러 온 연미혜에게만큼은 늘 예의 있게 인사를 건넸다.경민아 역시 연미혜를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어차피 두 사람이 곧 이혼할 사이라는 걸 알았기에 더 이상 불필
임지유는 혹시라도 이상하게 보일까 봐, 평소와 다름없이 경민준과 하승태, 정범규가 나누는 대화에 적극적으로 끼어들며 최대한 밝은 척했다.밤이 되어 집에 돌아오니, 손아림과 박영순이 거실 소파에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임지유가 들어서자, 손아림이 수박을 한입 베어 문 채로 고개를 돌려 물었다.“언니, 경씨 가문 어르신은 좀 어떠시대? 아직 의식 못 찾으셨어?”임지유는 고개를 살짝 저으며 답했다.“응. 아직이야.”“에이, 그럼 언제쯤 깨어날지도 모르는 거야?”임지유는 다시 한번 고개를 저었고 손아림과 임혜민의 얼굴에 걱
정범규는 뭔가 더 떠보고 싶은 눈치였다. 하지만 경다솜과 김영수가 곁에 있다는 걸 인식한 순간 분위기가 적절치 않다는 걸 깨닫고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경민준과 하승태는 각자 바쁜 일정이 있었기에 노현숙의 병실을 잠깐 들른 후 바로 자리를 떴다.그런데도 이렇게 셋이 얼굴을 마주한 것도 오랜만이었다.병원을 나서기 전에 정범규가 말했다.“저녁에 시간 비는 사람 있어? 우리 모처럼 모였으니까 같이 밥이나 먹자.”“좋아.”경민준과 하승태가 거의 동시에 대답했다.날이 어두워지자, 하루 종일 병원에 묶여 있던 경민준은 심여정이 교대
연미혜가 무언가 대답하려는 찰나, 경민준이 먼저 끼어들었다.“엄마는 지금 바쁘셔. 괜히 방해하지 말고. 투정 부리지 마, 다솜아.”경다솜은 입술을 삐죽 내밀며 서운한 얼굴로 연미혜를 올려다봤다.그 눈빛에 마음이 약해진 연미혜가 조심스레 설명했다.“회의 끝나자마자 다른 회사로 미팅하러 가야 해서 오늘은 안 될 것 같아, 다솜아. 다음에 꼭 데리고 갈게.”그 말을 들은 경다솜은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억지로 고개를 끄덕였다.“흥... 알겠어요.”노현숙은 여전히 의식을 찾지 못했고 허미숙과 경민준은 서로 딱히 나눌 말도 없
노현숙의 의식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연미혜는 다른 가족들과 함께 병실에서 한 시간 넘게 기다렸다. 하지만 노현숙은 여전히 깨어날 기미가 없었다.그때 심여정이 조용히 말을 꺼냈다.“먼저 돌아가요. 어머님 의식이 돌아오시거나 다른 소식이 있으면 내가 연락할게요.”연미혜는 산소호흡기를 단 채 침대에 누운 노현숙을 한참 바라보다가 휴대폰을 확인한 후에야 입을 열었다.“아직 시간도 이르고... 저도 조금만 더 있다가 갈게요.”그녀의 말에 심여정은 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경준혁과 경민아도 마찬가지로 병실을 떠나지 않았다.연
연미혜와 염수진이 나란히 식당 쪽으로 사라진 뒤, 임지유는 차 안에서 한동안 미동도 없이 멍하니 앉아 있었다.눈앞의 장면은 이미 사라졌지만 그녀의 시선은 여전히 허공에 머물러 있었다.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식당 안에서 기다리던 손수희가 그녀가 오지 않자 전화를 걸어왔고 그제야 임지유는 마치 꿈에서 깨어나듯 정신을 차렸다.전화를 끊고 천천히 차에서 내린 그녀는 무거운 걸음을 옮겨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손수희는 그녀의 얼굴을 보자마자 이상함을 감지했다.“왜 그래? 어디 아파?”임지유는 고개를 저으며 짧게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