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를 끊은 후 연미혜는 다시 일에 집중했다.시간이 흘러 어느새 밤 9시가 되었고 지식으로 머리가 가득 찬 연미혜는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이때 김태훈이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왔다.“나와 바람 좀 쐴래?”반 시간 후, 연미혜는 어느 한 바에 도착했다. 김태훈은 바에서 나와 그녀를 맞이하며 물었다.“한잔할래?”연미혜는 뜸을 들이다가 대답했다.“네.”김태훈은 갑자기 그녀에게 바싹 다가갔다.“기분이 안 좋은 거야?”“지금은 나아졌어요.”김태훈은 더는 묻지 않고 그녀를 위해 도수가 낮은 파란색의 칵테일을 주문해 주었다. 연
당연히 농담으로 한 말이었다. 김태훈은 연미혜에게 정말로 술값을 계산해달라고 할 생각은 없었다. 게다가 그는 만약 자신이 연미혜를 술집으로 데리고 온 사실을 유명욱에게 들킬까 봐 겁났던지라 바로 술집 안으로 들어가 계산을 한 후 연미혜와 떠났다.다음 날 점심, 연미혜는 직접 운전해 유명욱의 별장으로 갔다. 유명욱이 그녀의 차에 올라타자마자 물었다.“교수님, 어디로 갈까요?”유명욱은 그녀에게 주소를 말해주었고 반 시간 후 두 사람이 도착한 곳은 어느 한 식당이었다. 두 사람은 직원의 안내로 룸으로 들어갔다. 문을 열자 안에는 이
식사가 끝나고 집에 도착한 연미혜는 바로 김태훈의 연락을 받게 되었다. 유명욱이 그녀만 찾은 이유를 알게 된 김태훈이 말했다.“그 두 분을 만났다고? 난 이미 아는 분들이야. 참, 염성민이 염용석 님 아들이야. 쯧, 아버지가 이렇게나 대단한 사람인데 아들은 왜 젊은 나이에 눈이 그 모양이 되었는지 모르겠네.”연미혜는 염성민이 염용석의 아들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지만 그녀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시간은 흘러 화요일이 되고 세인티 자율주행 자동차의 첫 테스트가 시작되었던지라 연미혜와 김태훈은 아침 일찍 세인티로 왔다. 그들이 도착했을
연미혜를 보는 임지유의 눈빛에는 영혼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사과의 대상이 연미혜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인 것이 분명한 눈빛이었다. 염성민은 애초에 연미혜에게 관심이 없었던지라 당연히 이런 임지유의 눈빛을 발견할 리가 없었다.“고작 몇 분만 늦었는데 뭘요. 괜찮아요.”“염 대표님은 역시 너그러우세요.”김태훈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차갑게 말했다.“왔으니 이제 더는 우리 시간을 낭비하지는 말죠. 얼른 시작하세요.”경민준은 정중하게 말했다.“늦은 저희 탓이에요. 김 대표님, 얼른 들어가시죠.”김태훈은 차갑게 코웃음을 치며 연
세인티에서 나와 차에 올라탔을 때도 김태훈은 잔뜩 씩씩대고 있었다. 그러다가 뭔가가 떠올랐는지 연미혜에게 물었다.“참, 임지유 뒤에 서 있던 정장 차림의 여자는 누구야? 걔도 널 보는 눈빛이 만만치 않던데. 아는 사람이야?”“임지유 사촌 동생이에요.”“...”김태훈은 순간 할 말을 잃고 말았다.“경민준이 임지유를 세인티로 데리고 온 건 그렇다 쳐. 그런데 임지유 사촌까지 세인티로 끌어들이는 거야? 하, 참나. 곧 있으면 세인티가 임지유로 개명하겠다? 쯧.”연미혜도 경민준이 그렇게까지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러게
“네. 알겠어요.”토요일 아침, 연미혜는 대충 아침을 먹고 연창훈에게 프로젝트에 관해 물었다. 문제가 없음을 확인하고 나니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오후 두 시가 넘어서 그녀는 차를 타고 캠핑장으로 출발했다. 도착했을 때 하승태와 수연이도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는 듯 하승태가 불러온 사람들이 텐트를 치고 바비큐 그릴도 세우고 있었다. 며칠 동안 눈이 내렸던지라 캠핑장엔 온통 눈으로 가득했다.그녀를 발견한 수연은 그녀의 손을 잡으며 함께 눈사람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예전에 그녀는 자주 경다솜과 함께 눈사람을 만들었던지라 눈사람을
하늘은 완전히 까맣게 되었고 산속이었던지라 추위도 점점 더 심하게 느껴졌다.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은 하승태는 몸을 돌려 음식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는 연미혜와 수연을 보고는 텐트에서 두꺼운 겉옷을 두 개 꺼내왔다.그중 큰 옷을 연미혜에게 건네자 연미혜가 말했다.“전 안 추워요.”“그래도 덮고 있어요.”그는 옷을 펼쳐 연미혜의 어깨에 둘러주었고 이내 작은 옷을 수연에게 입혀주었다. 연미혜는 확실히 별로 춥지 않았지만 옷을 덮으니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을 막아주어 따듯했던지라 더는 거절하지 않았다. 바비큐 파티가 끝나고 캠프파
남의 차를 탄 연미혜는 몇 분간 졸게 되었지만 편하게 잠들지는 못했다. 눈을 뜨자 눈앞에서 사라지는 하승태의 손을 보았지만 별다른 생각은 하지 않았다.“도착했어요?”“네.”2분 뒤 차는 병원 입구에 멈춰서고 하승태는 수연을 안고 차에서 내려 연미혜에게 말했다.“운전 기사님 붙여드릴까요?”연미혜는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제가 운전해서 가면 돼요.”하승태도 더는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집에 거의 도착하고 있을 때쯤 핸드폰이 울렸고 경민준이 보낸 문자가 화면에 떴다.[할머니께서 이따가 네 외할머님을 만나러 가시겠다고 하셨
연미혜도 같은 생각이었다.그녀는 짧고 단호하게 메시지를 보냈다.[바빠. 그리고 약속 지켜. 다솜이 외할머니댁엔 절대 못 가게 해.]잠시 뒤, 경민준에게서 짧은 답장이 도착했다.[알겠어.]이후로 그는 더 이상 아무 연락도 해 오지 않았다.어린이날 연휴 다음 주말은 마침 주말이었다.그날 오후, 연미혜는 가족들과 함께 관광지에서 래프팅을 준비하고 있었다.그때 차예련에게서 사진 한 장이 도착했는데, 사진 속 인물은 임지유였다.차예련은 지금 쿠바나에 머무르며 패션쇼 준비로 한창이었다.사진을 본 연미혜는 메시지를 보냈다.[
‘넥스 그룹이랑 세인티가 해지한 건 알고 계신가요? 교수님의 제자인 김태훈 대표가 요즘 하는 짓을 보면 재능을 믿고 우쭐대는 것도 모자라, 사사건건 여자한테 휘둘려서 점점 판단력도 흐려지고 있던데요. 혹시 그 사실도 알고 계십니까?’염성민은 막 입을 열려다 말았다.곁눈질로 경민준이 있는 걸 본 순간, 목구멍까지 올라왔던 말이 쑥 들어가 버렸다.사실 이 얘기는 전부 임지유와 관련된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 자리에, 임지유의 옆에 경민준이 있었다.염성민의 입장에서 굳이 나서서 이런 말을 할 명분이 없었다.괜히 앞장서서 이런
임지유는 곧바로 해약서에 서명했다.배상금은 계약서에 명시된 기한 내에 전액 납부하겠다고 약속했다.이 소식을 들은 김태훈은 비웃듯 코웃음을 쳤다.“생각보다 행동이 빠릿빠릿해서 좋은걸?”해약 이후의 처리 절차는 변호사가 맡았고, 임지유가 서명한 뒤로는 김태훈과 연미혜 모두 더 이상 그 일에 신경 쓰지 않았다.이삼일 뒤, 유명욱이 휴가를 맞아 오랜만에 두 사람을 불러 모았다. 한동안 얼굴을 못 본 터라, 사제지간에 오붓하게 점심을 함께 하기로 했던 것이었다.연미혜와 김태훈은 회사를 나와 약속 장소인 식당에 도착했는데, 식당 입
임지유는 계약 해지를 결정한 뒤, 곧바로 경민준에게 전화를 걸었다.“경매 날에 김태훈 어머님이랑 얘기하다가, 내가 말을 좀 잘못했어. 그걸 사모님이 딱 집어냈고... 게다가 김태훈 쪽은 아예 세인티랑 엮일 생각이 없어 보여. 만약 소송으로 가서 이긴다고 해도 나중에 또 딴지를 걸어 협력 관계가 틀어지게 만들 가능성이 높아.”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고, 담담히 결론을 내렸다.“그쪽이 처음부터 협력 의지가 없었다면, 괜히 시간 끌기보다 지금 깨고 다른 파트너 찾는 게 낫다고 봐.”경민준은 그녀가 무슨 말을 실수했는지 구체적으로 묻
‘김태훈 어머니가 연미혜를 좋아한다고? 그게 말이 돼? 진짜라면... 어제 김태훈 어머니한테 했던 말들은 대체...’임지유는 갑자기 이미연이 대화 도중 갑자기 통화하러 다녀온 일이 떠올랐다.머릿속에 전화를 받는다며 자리를 비운 장면이 스치자, 묘한 불안감이 다시 가슴을 짓눌렀다.그녀의 낯빛이 안 좋아진 것을 본 경민준이 곁에서 물었다.“왜 그래? 어디 아파?”그 말에 임지유는 정신을 가다듬고 애써 미소를 지었다.“아니야. 나 괜찮아.”그날 저녁, 임지유는 이 사실을 가족들에게 알렸다.이미연이 연미혜를 마음에 들어 하고
다음 날 아침, 경민준은 임지유, 경다솜과 함께 일찍부터 경기장에 도착해 있었다.잠시 후, 하승태와 수연도 도착했다.경다솜이 그들을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승태 삼촌, 안녕하세요!”“수연아, 와줘서 고마워!”수연이 경다솜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이제 곧 경기 시작되잖아. 다솜아, 많이 긴장돼?”경다솜은 고개를 저으며 또렷하게 말했다.“긴장되긴, 당연히 긴장 안 되지!”하승태는 다른 일정이 있어 경기엔 오래 머무를 수 없었다. 그는 수연이를 데려다주러 잠깐 들른 것이었다.경민준이 그의 사정을 알고 먼저 말했다.
김태훈의 부모님이 자리를 뜬 뒤, 경민준이 물었다.“사모님이랑 얘긴 잘했어?”임지유는 옅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응. 그런 것 같아. 고마워.”임지유는 속으론 생각했다.‘방금 사모님 얼굴 보니까 연미혜에 대한 불만이 점점 커지는 것 같던데....’사실 세인티와 넥스 그룹 사이에서 벌어진 일은 이미연도 이미 알고 있었다. 김태훈이 미리 설명을 해뒀기 때문이었다.조금 전 임지유와 이야기를 나눌 때 울린 전화는 사실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대화를 미리 녹음해 두고, 자리를 비켜선 후 멀리서 경민준과 임지유 쪽을 슬쩍
임지유는 며칠은 기다려야 소식이 올 줄 알았다. 그런데 그날 오후, 경민준에게서 먼저 전화가 걸려 왔다.“김 회장님이랑 사모님께서 내일 경매 행사에 참석하신대. 우리도 같이 가보자.”그 말에 임지유는 미소 지으며 답했다.“좋아.”다음 날 저녁, 경매장에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경민준은 임지유를 데리고 곧장 김태훈의 부모님이 있는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직접 임지유를 두 사람에게 소개했다.김태훈의 부모는 이미 경민준과 연미혜의 관계를 알고 있었고, 연미혜와 임지유 사이에 있었던 일들도 모두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들은
지현승이 뭔가 생각에 잠긴 듯한 얼굴을 하고 있을 때, 염성민이 다시 물었다.“성민아, 철호 아저씨나 아버지 말고, 네가 아는 사람 중에 유명욱 교수님 연락처 아는 사람 또 없어?”“없는 것 같아.”지현승이 대답했다.그렇게 말한 뒤, 무언가 떠오른 듯 다시 말을 이었다.“근데, 너 전에 임지유 씨가 유명욱 교수님을 만난 적 있다고 하지 않았어? 아마 지유 씨는 교수님이 연락처를 갖고 있을 것 같은데? 교수님한테 직접 연락해서 해결될 일이라면, 임지유 씨가 알아서 연락하지 않았을까?”염성민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