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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좋은 약은 입에 쓰고 바른말은 귀에 거슬린다

난 얼른 핸드폰을 들고 안방으로 들어가 전화를 받자마자 이미연에게 원망을 털어놓았다.

“너 어떻게 그런 말만 남겨두고 도망갈 수 있어?”

“회사에 문제가 좀 생겨서 급했어. 지금 막 처리하고 너에게 전화하는 거야. 왜 소리를 질러! 내가 너처럼 그렇게 한가한 줄 알아?”

이미연의 목소리는 매우 피곤해 보였다. 잠시 머뭇거리던 난 결국 참지 못하고 물었다.

“그게… 너 그저께 신호연 봤다고 했잖아. 몇 시에 어디서 봤어?”

난 하루 종일 이 질문을 하고 싶어서 미칠 것만 같았고 전화기 너머 이미연은 흠칫 놀란 듯하다가 이내 덤덤하게 대답했다.

“나도 어디서 봤는지 기억은 안 나. 차를 타고 가다가 우연히 본 거거든.”

“그래?”

왠지 모르게 난 이미연의 대답에 살짝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덕분에 전전긍긍하고 있던 마음은 훨씬 홀가분했으며 피가 날 정도로 꽉 쥐고 있던 주먹도 스르르 풀렸다.

어떻게든 신호연이 바람을 피웠다는 걸 입증하고 싶어 하는 나 자신에게 너무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신호연이 나의 하늘이고 그 하늘이 무너질까 봐 늘 조심스러운 건 사실이다.

“넌 진짜 남편밖에 모르는구나. 신호연 이름만 언급되면 이렇게 신경을 곤두세우다니. 너도 이제 너 자신을 좀 가꿔 봐. 콩이도 어린이집에 보냈으니까 너도 네 할 일을 찾아야지. 설마 평생 신호연의 부속품으로 살 건 아니지? 너 그러다가 사회와 완전히 멀어져서 네 세상에 신호연 한 사람만 남을 수도 있어!”

이미연이 구구절절 얘기하며 나에게 호통을 쳤고 입장이 난처해진 난 한숨을 푹 내쉬며 대답했다.

“근데 신호연이…”

“거 봐. 맨날 신호연, 신호연. 내 말이 맞지? 네 세상에는 이제 신호연밖에 없어. 그 사람 말이 법이고 성지가 됐다고! 너 그러다가 신호연이 죽으라면 죽을 거야? 널 어디에 팔아버려도 좋다고 실실 웃을 거야?”

이미연이 한심한 듯 꾸짖었고 그 말에 난 버럭 반박했다.

“퉤! 너 진짜! 그런 말 하지도 마! 신호연은 날 너무 사랑해서 절대 날 못 팔아!”

“그래, 그래. 네 말이 맞아. 신호연이 아니라 내가 널 팔겠네! 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쓰고 바른말은 귀에 거슬리는 법이야. 잘 생각해 봐. 사람은 자신만의 가치가 있어야 해. 맨날 동네 아줌마처럼 주방이나 들락날락하지 말고! 그건 사랑이 아니라 바보야! 그 사람을 긴장하게 만들어야 널 더 사랑하게 된다고! 네가 맨날 밥해주고 집 청소나 하고 있으면 신호연이 널 계속 사랑할 거 같아? 막말로 넌 지금 아이와 남편만 신경 쓰고 너 자신은 오래전에 잊었잖아!”

이미연의 끊이지 않는 잔소리에 난 딱히 반박할 수 있는 말도 없었다.

내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자 그녀의 태도가 드디어 나긋해졌다.

“한지아, 난 자신만만하던 네 모습을 다시 보고 싶어. 대학교 때 넌 모든 사람이 인정하는 천재였고 나의 여신이었어! 이런 네가 이렇게 전담 주부로 살고 있다는 게 너무 안타까워서 그래!”

“됐거든. 어디서 병 주고 약 주기야! 너 지금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나한테 다 푸는 거지?”

나의 말에 우리 두 사람은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이미연은 언제나 그렇듯 직설적이었다. 물론 전에도 나한테 이런 얘기를 해준 적이 있지만 오늘 다시 듣고 보니 왠지 느낌이 달랐으며 마음이 불안해지기도 했다.

혹시 이미연이 뭔가 알고 하는 말인가?

이때, 신호연이 노크를 한 뒤 안방으로 들어와 다정한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여보! 와서 밥 먹어!”

전화기 너머 신호연의 목소리를 들은 이미연이 나에게 말했다.

“됐어. 얼른 가서 밥이나 먹어! 그리고 내가 한 말 잘 생각해 봐. 눈앞의 행복에 취해 있지만 말고!”

전화를 끊자마자 신호연이 나를 품에 꽉 껴안으며 물었다.

“누구야?”

“미연이야.”

“무슨 말을 하길래 그렇게 진지해? 이미연을 본 지도 오래됐네!”

신호연이 다정하게 웃으며 덤덤한 표정으로 물었다. 우리 셋은 동창이었기에 서로를 알고 있었다.

본지 오래됐다는 말에 난 살짝 흠칫했다. 그럼 그저께 이미연이 신호연을 멀리에서 봤다는 건데, 아마 그녀도 나처럼 잘못 본 듯싶었다.

“왜 그래? 무슨 생각 하고 있길래 그렇게 멍해 있어?”

내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자 신호연이 두 손으로 나의 뺨을 살짝 꼬집다가 볼에 입을 맞추었고 너무도 다정한 그의 눈빛에 정신이 번쩍 든 난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야. 얼른 밥 먹으러 가자!”

순간, 신호연이 나를 확 잡아당겨 가볍게 입을 맞추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무슨 일이 생기면 숨기지 말고 꼭 남편한테 얘기해. 뭐든 같이 해결하자. 알았지?”

“당신이 나보다 더 진지하네! 일은 무슨 일이야. 얼른 밥이나 먹으러 가자!”

난 손을 뻗어 그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환하게 웃었고 신호연도 활짝 웃으며 나를 데리고 거실로 향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내 마음속의 의심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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