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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Author: 디어파이어
심형빈은 매섭게 이연우를 질책하는 한편 곁눈질로 고수영의 가늘게 떨리는 어깨와 그녀의 하얀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투명한 눈물을 보았다.

그 순간, 그의 가슴은 쿵 하고 내려앉았고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심장을 움켜쥐기라도 한 듯 숨이 턱 막혔다. 안쓰러움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는 고개를 돌려 이연우를 날카롭게 노려보며 한층 더 차가워진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 일은 네 책임이야. 수영은 의지할 곳이 없으니 해고할 수 없어.”

“그래서 나를 해고하겠다는 거예요? 그저 저 여자가 나보다 불쌍하다는 이유만으로? 이제 보니 부모 없는 사람은 무조건 감싸주고 보는 세상이네요. 그럼 세상 모든 거지들은 제멋대로 굴어도 다 이해받겠네요?”

이연우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크게 뜬 채 분노로 몸을 떨었다.

가슴은 거칠게 요동쳤고 입에서 나오는 말 하나하나엔 이빨 사이로 짜내듯 끓어오르는 분노가 서려 있었다.

심형빈이 단지 고수영이 불쌍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렇게 옳고 그름조차 따지지 않은 채 모든 책임을 자기에게 떠넘기려 한다는 사실에 그녀는 충격을 금치 못했다.

과거가 스치듯 떠오르자 이연우는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뼈저리게 느껴졌다. 그땐 콩깍지가 씌어도 너무 심하게 씌웠었다. 심형빈의 단점조차도 장점으로 보였으니까.

이연우의 말에 고수영은 낮게 흐느끼던 울음소리를 갑자기 터뜨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 울음엔 감춰지지 않은 충격과 당혹스러움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녀는 상처와 억울함으로 가득한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연우 씨, 내가 부모님을 잃은 건 사실이지만 그걸 들먹이면서 내 상처를 이렇게 후벼 파는 건 너무하잖아요!”

그렇게 말하며 고수영은 더욱 심하게 어깨를 떨었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비틀거렸다. 심지어 심형빈의 어깨에 기대려고 그쪽으로 넘어지는 척했다.

이연우는 고수영의 가식적인 모습에 마음속 혐오감이 들불처럼 번져갔다.

지금 그녀 앞에서 저렇게 대놓고 심형빈에게 기대는 것을 보면 둘이 뒤에서 무슨 짓을 할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순간 속이 울렁거리고 토할 것 같았다.

“이연우, 너 너무한 거 아니야? 수영이는 지금도 충분히 힘든데 왜 상처를 들쑤셔?”

심형빈은 고수영이 서럽게 울자 결국 이성을 잃고 이연우에게 버럭 소리쳤다.

“그럼 당신들은 지금 내게 칼을 꽂고 있는 게 아니에요? 심형빈, 그래도 회사 대표라는 사람이 하는 짓이 떳떳하지 못한 건 둘째치고 몰래 칼이나 꽂고 앉았고... 도대체 누가 너무하다는 거예요?”

이연우는 두려움 없이 심형빈의 시선을 마주하며 얼굴에 분노를 가득 드러냈다. 지금 당장이라도 심형빈과 이혼하고 이 쓰레기 같은 두 사람과의 관계를 단칼에 끊어버리고 싶었다.

그 말을 들은 심형빈의 얼굴 근육이 미세하게 떨리며 날카롭던 눈빛에 순간 망설임이 스쳤다.

무의식중에 그의 목울대는 불안하게 움직였고 눈동자 한편에는 스스로도 감추지 못한 죄책감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마치 가슴 깊숙한 어딘가, 그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던 감정의 조각이 가볍게 흔들린 듯했다.

그는 무언가 말하려다 결국 입을 다물고 그저 이연우를 바라보았다. 눈빛 속에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그 순간, 고수영은 심형빈의 미세한 표정 변화를 날카롭게 포착했다. 그녀의 눈빛은 마치 밤하늘을 스쳐 가는 차가운 유성처럼 섬뜩하게 빛났다.

하지만 이내 감정을 억누르고 표정을 정돈한 뒤, 가련한 얼굴로 심형빈에게 몸을 기댄 채 그의 품에 안겼다.

“형빈 씨, 이제 그만해. 이번 일은 그냥 내가 책임질게. 어차피 혼자니까, 무슨 일이 생기든 상관없잖아.”

눈물을 머금은 그녀는 마치 버려진 강아지처럼 애처로운 눈빛으로 심형빈을 올려다보았다.

심형빈은 한동안 갈등하는 듯했지만, 고수영이 갑자기 약한 모습을 보이자 결국 마음이 그녀 쪽으로 기울고 말았다.

그는 더는 망설이지 않고 얼굴을 굳힌 채 단호하게 말했다.

“연우야, 이번 일로 잠시 정직 처분을 받게 될 거야. 하지만 한 달 뒤에는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조치해줄게. 지금은 일단 방 대표한테 해명해야 하니까.”

심형빈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부드러운 어조로 덧붙였다.

“보상은 해줄게. 그리고 걱정하지 마. 수행 비서 자리는 계속 네 몫으로 비워둘 테니까.”

이연우는 코웃음을 치며 싸늘하게 쏘아붙였다.

“둘이 도대체 무슨 인연으로 얽혔나 했더니, 역시 끼리끼리 만나는 거였네요. 보상을 해주고 싶다고? 좋아요, 그럼 이혼해 줘요!”

사실 이연우는 이혼할 타이밍을 보고 있었는데 뜻밖에도 지금이 절호의 기회가 된 것이다.

이혼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오자 고수영의 눈이 찰나의 순간 형형하게 빛났다. 마치 어둠을 꿰뚫는 섬광처럼 강렬한 기쁨이 그녀의 눈동자에 스며들었다.

그녀는 치솟는 희열을 애써 누르며 은근한 미소를 지었다.

어떻게 하면 저 두 사람을 갈라놓을 수 있을까 골머리를 앓고 있었는데, 이연우가 알아서 나서주다니.

드디어 자신이 그토록 갈망하던 심씨 가문 안주인이 되는 날이 코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심형빈은 이혼이라는 두 글자를 듣자 온몸은 마치 번개에 맞은 듯 맹렬하게 떨렸다.

그는 원래 약간 숙이고 있던 고개를 순간적으로 치켜들고 분노가 가득한 눈을 부릅떴다.

“단지 너에게 한 달 정직을 내렸을 뿐인데, 감히 이혼으로 나를 협박해. 평소에 내가 너를 너무 오냐오냐 키웠나 보다.”

“심 대표님의 총애는 너무 과분하네요. 다른 보상은 정리해서 알려드릴게요. 그리고 심 대표님은 당신의... 부하 직원이나 잘 챙기세요.”

이연우는 마음속 분노를 억누르고 얼굴에 표준적인 직업적 미소를 지어냈지만 그 미소에는 온기가 전혀 없었다.

그녀는 몸을 돌려 굳건한 발걸음으로 사무실 문으로 향해 걸어갔다.

멍하니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심형빈의 마음속에는 갑자기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솟아올랐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앞으로 한 걸음 내디뎠지만 다시 발걸음을 멈췄고는 그저 이연우의 모습이 점점 문 앞에서 사라지는 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연우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아무 말 없이 짐을 챙겨 심성 그룹을 떠났다.

그 동작은 미련 없이 신속했다.

하지만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 갑자기 오픈카 한 대가 나타났고 이연우는 미처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들이받고 말았다.

이연우는 숨을 크게 쉬며 짜증을 냈다.

‘젠장, 오늘 왜 이래! 개한테 물리고 차까지 받다니! 재수도 더럽게 없어!’

그때 상대방 차에서 누군가 내려 그녀의 차창을 두드렸다.

창문을 내린 이연우는 뜻밖의 얼굴을 발견하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서환희 씨?”

밖에서 선글라스를 벗던 금발 남자는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이 비서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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