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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하고 전남편이 변했다
이혼하고 전남편이 변했다
Author: 선희

제1화 계약은 끝났다

Author: 선희
“유성아… 날 가져.”

“신연지, 날 똑바로 봐. 내가 누구야?”

전등이 켜지고 신연지는 그제야 남자의 얼굴을 알아보고 화들짝 놀랐다.

“박태준? 당신이 왜 여기 있어?”

남자는 여자의 턱을 우악스럽게 잡고 싸늘하게 말했다.

“이건 당신이 자초한 거야. 겁도 없이 내 침대로 뛰어들다니.”

“그런 거 아니야. 방을 잘못….”

신연지는 그의 손아귀를 벗어나려고 몸부림쳤지만 그러기엔 이미 늦어버렸다. 사지가 찢어지는 것 같은 고통과 함께 그녀는 이날 밤 순결을 잃었다.

모든 게 끝난 뒤, 박태준은 싸늘하게 그녀에게 카드를 던졌고 분노한 신연지는 남자의 귀뺨을 후려쳤다.

그는 손으로 입가를 쓱 문지르고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물었다.

“원하는 게 이런 거 아니었나?”

그 말은 신연지를 미치게 만들었지만 후회해도 이미 늦어버렸다.

“박태준, 돈은 필요 없어. 내 순결을 망쳤으니 결혼으로 갚아!”

3년 후, 신당동의 한 호화저택.

신연지는 따분한 얼굴로 TV에 나오는 뉴스를 보고 있었다. 유명 발레리나 전예은이 무대에서 추락하며 아수라장이 된 현장.

한 정장을 입은 남자가 사람들을 비집고 달려가서 부상을 입은 여자를 안고 현장을 벗어나는 모습이 각종 채널에서 보도되고 있었다.

잠깐 비친 옆모습이었지만 그와 3년을 동거한 신연지는 한눈에 박태준을 알아보았다.

어젯밤 침대에 누워 오늘 일찍 돌아오겠으니 기다리라고 했던 남자였다.

그녀는 식어버린 음식들을 허망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직접 만드느라 오후 시간을 다 썼건만, 같이 먹어줄 사람은 오지 않았다.

신연지는 다가가서 반찬들을 전부 쓰레기통에 쏟아버렸다.

물집이 잡힌 손으로 정성들여 만든 반찬을 쓰레기통에 붓는 모습은 처량하면서도 이질적이었다.

설거지를 끝낸 그녀는 위층으로 올라가서 집을 싸기 시작했다.

그녀와 박태준은 계약결혼한 사이였다. 그리고 계약한 3년이 드디어 끝났다. 전예은이 해외 연수를 마치고 돌아온 시간과 정확히 맞물렸다.

비록 아직 정확한 계약기간까지는 3개월이 남았지만 전예은이 돌아왔으니 계약을 이대로 끝내도 괜찮겠지?

신연지는 캐리어를 들고 아래층으로 내려와 박태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너머로 남자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전해졌다.

“무슨 일이야?”

냉랭한 태도를 보아하니 어제 한 약속은 까맣게 잊은 듯했다.

하지만 실망하지는 않았다. 남자가 침대에서 하는 말을 믿은 사람이 바보일거다.

“밥은 먹었어?”

무료한 질문이라고 생각했는지 수화기 너머엔 잠시 정적이 흘렀다. 한참이 지난 뒤에야 그는 한숨을 쉬며 싸늘하게 말했다.

“별일 없으면 이만 끊자, 나 바빠.”

통화를 끝낸 뒤, 신연지는 차고로 가서 가장 비싼 차량을 골라 올라탔다.

예전에는 외제차를 소장하는 박태준의 취미를 이해할 수 없었는데 호화 오픈카를 타고 길에 오르니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그녀는 곧장 가장 비싼 호텔로 가서 블랙 카드를 카운터 직원에게 내밀었다.

“스위트 룸으로 3개월 결제할게요.”

호텔 직원은 만면에 미소를 띄우며 그녀에게 연신 고개를 숙였다.

“네. 총 1억 5천만 나왔습니다. 일시불로 결제하시겠습니까? 사전에 퇴실하셔도 숙박료는 돌려드릴 수 없습니다.”

신연지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도도하게 말했다.

“일시불, 카드로 결제할게요.”

어차피 내일이면 박태준이 카드를 정지시킬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녀는 변호사를 선임해서 적절한 선에서 재산분할을 요청했다. 하지만 박태준이 땡전 한푼 주지 않고 맨몸으로 쫓아낼 수도 있었다.

재경그룹 변호인단은 이 바닥에서도 소문난 하이에나들이었다. 그들이 나서서 해결하지 못할 분쟁은 없었다.

그렇다면 쓸 수 있을 때 마음껏 쓰자는 게 그녀의 결론이었다.

어차피 그녀가 안 쓰면 다른 여자가 쓰게 될 테니.

결제가 끝나고 카운터 직원은 공손히 키를 그녀의 손에 건네주며 안내했다.

“위층으로 올라가시면 됩니다.”

한편, 재경병원 수술실 밖.

박태준은 휴대폰으로 날아온 카드결제 내역을 보고 인상을 확 찌푸렸다. 금액이 문제가 아니라 호텔에서 결제되었기 때문이었다.

신연지에게 전화를 걸려고 휴대폰을 꺼내는데 수술실 전광판이 꺼지고 전예은이 밖으로 실려나왔다.

그녀의 가녀린 팔뚝은 무대에서 추락하면서 찢어져 일곱 바늘을 꿰맨 상태였다.

하얗게 질린 얼굴이 유난히 안쓰럽게 보이자 박태준은 휴대폰을 도로 집어넣고 의사에게 다가갔다.

“어떻게 됐나요?”

“경미한 뇌진탕에 척추에도 부상이 있긴 하지만 심각한 정도는 아닙니다.”

정신을 차린 전예은이 긴장한 얼굴로 의사에게 물었다.

“그럼 앞으로 발레를 계속할 수는 있는 거겠죠?”

의사는 최대한 말을 아꼈다.

“그건 상황을 보고 나중에 판단해야죠.”

전예은은 눈시울을 확 붉히면서도 애써 미소를 지으며 박태준에게 말했다.

“태준 씨, 오늘 고마웠어. 이제 돌아가서 쉬어.”

그녀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의사가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보호자가 한 명 있어야 합니다. 뇌진탕이 경미한 정도이긴 하지만 병실에 환자 혼자 두는 건 위험해요.”

전예은이 뭐라고 하려는데 박태준이 먼저 입을 열었다.

“오늘은 내가 옆에 있을게. 안심하고 푹 자.”

한번 결정하면 절대 번복하지 않는 그의 성격을 알기에 전예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부탁 좀 할게. 연지 씨한테는 내가 전화해서 해명할까?”

뉴스가 대문짝만하게 났으니 지금쯤이면 신연지도 알고 있을 것이다.

남자는 잠시 침묵하다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럴 필요는 없어.”

박태준은 병원에서 새벽까지 있다가 아침이 거의 될 때쯤에야 집으로 돌아갔다. 청소를 하고 있던 고용인이 그를 보자 조심스럽게 물었다.

“지금 오신 거에요? 그럼, 아침 준비를 해드릴까요?”

“그래.”

밤새 잠을 자지 못해서 그런지 머리가 지끈거렸다.

“사모님은?”

“사모님은 회사로 출근하셨을 거에요. 아침에 안 보이더라고요.”

박태준은 집에 외부인이 거주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기에 고용인들은 저택에 따로 기숙사가 없었다.

남자는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평소라면 아침을 먹고 있을 시간인데 어제 날아온 호텔 결제 내역도 그렇고 뭔가 석연치 않았다.

외박한 건가?

박태준의 얼굴이 음침하게 굳었다. 고용인은 간단한 아침을 준비한 뒤, 서류봉투를 그에게 건넸다.

“아침에 경비실에서 가져온 건데 대표님 앞으로 온 택배인 것 같아요.”

그의 거주지는 기밀 사항이었다. 회사에 필요한 서류라면 사무실로 퀵이 배달될 텐데 저택으로 보낸 건 의외였다.

박태준은 고개를 갸웃하며 서류를 열었다.

맨 위에 큼지막하게 이혼 서류라는 글짜가 보이자 남자의 표정이 얼음장처럼 차갑게 굳었다. 재산분할 사항까지 읽었을 때, 그는 비웃음 가득한 냉소를 지었다.

“정말 치밀하게도 준비했군.”

부동산, 차, 현금, 주식까지 전부 반으로 갈라서 달라는 내용이었다.

“욕심은 많아.”

고용인은 긴장된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이고 서서 숨소리조차 감히 내지 못했다.

남자는 서류를 들고 휴대폰을 꺼냈다.

수화기 너머로 잠기에 취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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