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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별거

“신연지, 이혼 서류 보냈던데 대체 뭐하자는 거야?”

박태준의 목소리를 확인한 신연지는 순식간에 잠이 확 깨 대답했다.

“거기 적힌 대로야.”

박태준은 냉소를 지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이따가 출근하면 내 사무실로 와서 이 쓰레기들 도로 가져가. 저녁 여덟 시까지는 시간 줄 테니까 짐 싸들고 집에 돌아오고.”

그의 말에 신연지도 지지 않고 반박했다.

“박태준, 당신 미쳤어?”

잠시 숨을 고른 그녀는 말투를 바꿔 차분하게 말했다.

“전예은 씨가 불륜녀로 낙인 찍힐까 봐 그러는 거야? 어차피 우리가 결혼한 거 부모님하고 가까운 지인들만 알고 세상 사람들은 모르잖아. 사람들은 당신을 여자친구의 꿈을 응원하고 기다리는 순애보로 기억한다니까? 사랑하는 사람이 다시 귀국했으니 잘된 거 아니야?”

하지만 박태준은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제 전예은을 안고 병원으로 달려가는 모습이 뉴스에 났는데 오늘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고 이 서류가 외부에 노출이라도 된다면 전예은은 불륜녀로 낙인 찍히게 되는 것이다.

그는 싸늘한 얼굴로 전화를 끊어 버렸다.

한참 신나서 떠들던 신연지는 뒤늦게 전화가 끊어진 것을 확인하고 속으로 욕설을 퍼부었다.

‘개 같은 자식.’

호텔과 본사는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었기에 그녀는 느긋하게 씻고 조식을 챙겨 먹은 뒤,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박태준과 결혼한 뒤, 그녀는 시어머니의 요구에 따라 박태준의 비서로 재경에 입사했다.

하는 일로 따지면 사실 비서라기보다는 하녀에 가까웠다.

평소에는 박태준의 삼시세끼와 옷 세탁 등 자질구레한 일을 책임지고 최저시급보다 조금 나은 수준의 월급을 받았다.

회사에서는 그녀가 박태준의 아내이자 재경의 안주인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참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불륜녀로 불려야 할 여자는 모두의 주목을 받고 있고 정실 부인인 그녀는 매일 신분이 들킬까 봐 차를 타고 와도 몇 정거장 앞에서 내려 걸어서 출근하고 있었다.

회사에 도착한 신연지는 곧장 자리로 가서 사직서를 작성했다. 어차피 이혼하기로 한 마당에 이따위 하녀 노릇은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의 옆을 지나치던 동료 한 명이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신 비서, 퇴사하려고? 재벌 남자친구에게 프러포즈라도 받았어?”

신연지는 움찔하며 펜을 내려놓았다. 한번은 박태준의 차를 타고 출근한 적 있었는데 마침 지나가던 동료가 목격하고 재벌과 만나냐고 추궁한 적 있었다.

그때는 신분을 감추기 위해 대충 그렇다고 둘러댔었기에 그 뒤로 그녀가 재벌과 만나고 있다는 소문이 온 회사에 퍼졌다.

박태준과의 사이를 의심하지 않은 이유는 평소에 그녀를 대하는 박태준의 태도가 너무도 쌀쌀맞았기 때문이었다.

신연지는 덤덤한 얼굴로 고개를 흔들며 동료에게 말했다.

“아니요, 헤어진지 좀 됐어요.”

“아니, 그런 대어를 그냥 놓아줬어? 나라면 어떻게든 매달렸을 거야.”

동료는 안타깝다는 듯이 말했지만 표정을 보니 속으로 코웃음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신연지는 박태준의 거만한 표정을 떠올리며 싸늘하게 말했다.

“남자 구실 못하면 버려야지 어쩌겠어요.”

“남자쪽에 뭔가 문제가 있단 말이야?”

쿨럭!

어색한 기침소리가 그들의 대화를 중단했다. 고개를 돌리고 뒤를 돌아본 사무실 직원들은 그 자리에 얼어버렸다.

“대표님….”

박태준의 수행비서 진영웅이 싸늘한 표정으로 직원들을 노려보며 말했다.

“출근 시간에 누가 잡담하랬어? 신성한 직장에서 뭐 하는 짓이야?”

박태준은 무표정한 얼굴로 직원들을 둘러보고는 신연지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신 비서는 내 사무실로 바로 오고, 잡담에 참여한 사람들은 이번 달 보너스 없어.”

모두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가운데 신연지만 무표정한 얼굴로 할 일을 계속하고 있었다.

신연지가 사무실로 찾아갔을 때, 그는 아침에 받은 서류를 손에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덤덤한 얼굴로 그에게 다가가서 입을 열었다.

“부르셨습니까, 대표님.”

남자는 속내를 알 수 없는 무표정한 얼굴로 서류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말했다.

“남자 구실을 못하는 남편이라… 대체 어디서 그런 결론이 나온 거야?”

신연지는 괜히 말을 꺼낸 자신의 경솔함을 후회했다.

잠시 어색한 분위기가 흐르고, 박태준은 싸늘한 표정으로 이혼 서류를 책상에 던졌다.

“그래서 이혼 사유가 뭐야?”

신연지는 당당하게 그의 눈빛을 마주하며 답했다.

“거기 쓰여진 대로야.”

그만큼 상세하게 적었으면 못 알아봤을 리 만무했다.

“결혼하고 3년 동안 잠자리가 없었으므로 남편으로서 결격 사유가 충분하다. 건강 상 심각한 문제가 의심된다라….”

신연지는 이 남자가 홧김에 자신의 목을 비틀어 버리면 어쩌나 긴장했다.

하지만 서류에 쓰여진 대로면 그들 사이에는 3년 동안 제대로 된 스킨십이 없었다.

재산분할 쪽으로 넘어가자 남자의 얼굴에 싸늘한 비웃음이 걸렸다.

“3년 동안 내 옆에서 비서로 일하더니 배운 게 많나 봐. 내가 가진 자산에 대해 이렇게나 자세히 알고 있다니. 하지만 내가 그걸 왜 당신에게 떼어 줘야 하지?”

신연지는 처음부터 그가 순순히 내줄 거라 기대하지 않았기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박태준은 그걸 자신에 대한 도발이라고 생각했는지 갑자기 손을 뻗어 그녀의 턱을 움켜잡았다.

“날 떠나면 이제 뭘 먹고 살 건데? 월 2백 받아서 서울에서 변변한 월세라도 구할 수 있을 것 같아? 당신 지금 하고 있는 장신구도 2백이 넘는다는 거 알기나 해?”

신연지는 그의 손아귀를 벗어나려 고개를 비틀었지만 그럴수록 고통만 더해질 뿐이었다.

“내 일이야. 상관 마.”

“하!”

박태준은 비웃음을 머금고 그녀에게 물었다.

“아니면 벌써 다른 남자라도 생겼나?”

그녀가 말이 없자 박태준은 묵인으로 간주했다.

그는 비웃음을 터뜨리더니 손에 힘을 주며 말했다.

“뭔가 오해한 게 있나 본데 당신은 이혼 얘기를 꺼낼 자격이 없어. 계약기간도 아직 3개월이나 남았고.”

그의 말은 신연지에게 아무런 설득력이 없었다. 어차피 3년을 같이 살면서 한 번도 아내로 인정받은 적 없는데 3개월 일찍 이혼한다고 뭐가 달라질까?

박태준이 이렇게까지 거부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이혼을 그녀가 먼저 꺼내서 자존심이 상했을 뿐이다.

이 남자는 뼛속까지 이기적인 인간이었다.

어차피 오늘 내로 정리하기는 글렀으니 신연지는 한발 물러서기로 했다.

“그럼 3개월 동안 나가서 살 거야. 다시는 그 집에 돌아가고 싶지 않아.”

박태준은 거만한 표정으로 그녀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지금 나랑 별거하자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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