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그 말을 한 이안영은 얼굴이 붉어지지도 않았고 얼굴에 수줍은 기색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마치 지금 이 순간 자신의 마음과 감정을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하나의 거래를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였다.이원호와 채윤화는 침묵했다.옆에서 그 말을 들은 유태산과 양화영은 눈이 전구처럼 번쩍 밝아졌다.“아이고 역시 아가씨는 보는 눈이 있으시네요. 우리 시진이는 젊은 인재들 가운데서도 가장 뛰어난 사람이에요.”“아가씨가 시진이를 좋아해 준다니 정말 다행이네요. 장관님, 3일 안에 반드시 시진이와 지나윤을 이혼시킬게요.”유태산은 그렇게 호언장담했고, 이안영은 아무렇지 않게 붉은 입술을 살짝 올렸다.그러나 그 가운데서 가장 표정이 좋지 않은 사람은 이원호와 채윤화였다.“부회장님, 그렇게 서두를 필요 없어요. 결혼 같은 큰일은 장난처럼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잖아요.”이원호는 그렇게 말하고는 고개를 숙인 채 식사를 이어 갔고 미간이 깊게 찌푸려졌다.채윤화의 시선은 몇 번이나 옆 테이블로 향했고 그 시선은 지나윤에게 머물렀다.지나윤이 채윤화의 시선을 느끼지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지나윤은 모른 척했다.맞은편에 앉아 있는 유시진은 마치 목구멍에 황산이 가득 부어진 것처럼 속이 타들어 가는 느낌을 받았고 가슴은 몹시 불편했다.유시진은 한 번도 어떤 여자의 마음을 돌려놓는 일이 이렇게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내 매력이 사라진 걸까? 나를 믿지 못하는 걸까? 아니면... 자신이 지나윤에게 너무 깊은 상처를 남긴 것일까?유시진은 스테이크 한 조각을 잘라 입에 넣었지만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그때 창밖의 캄캄한 밤하늘이 갑자기 환하게 밝아졌다.“불꽃놀이를 하고 있네.”형형색색의 불꽃이 밤하늘에서 끊임없이 터졌는데, 그 모습은 마치 수많은 무용수가 춤을 추는 것처럼 화려하고 아름다웠다.곧 지나윤은 고개를 돌려 유리창 밖을 바라보자 눈동자에 네온 빛이 번졌다.사실 지나윤은 알고 있었다.이것이 유시진이 자신을 위해 준비한 것이라는 사실
“아가씨 좀 봐요. 얼마나 고귀해요.”양화영의 칭찬을 들은 이안영의 얼굴에는 자신감 넘치는 미소가 떠올랐다.운천더힐에서 식사를 하는 사람들은 모두 부유하거나 권력이 있는 사람들이었다.그랬기에 이안영은 당연히 화려하게 차려입어야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돋보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이안영의 미소는 옆 테이블을 바라보는 순간 서서히 사라졌다.오늘 밤 레스토랑에서 가장 화려하게 차려입은 사람이 바로 자신일 거라고 생각했다.히지만 유시진은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 번도 자신을 바라보지 않았다.이에 이안영의 눈동자에 은근한 불만이 스쳤다.원래 양화영은 지나윤을 깎아내리고 이안영을 치켜세우면 이원호와 채윤화의 호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하지만 이원호도 채윤화도 얼굴이 잿빛으로 굳어 있었다.“지나윤 씨가 신은 플랫슈즈는 L사 이번 시즌 신상이에요. 전 세계에 단 다섯 켤레만 출시된 제품이고요.”채윤화가 말을 마치자 양화영은 잠시 멍해졌다.“L사가 최근 몇 년 동안 내세우는 디자인 철학은 편안함과 세련됨의 조화죠.”“그리고 저 플랫슈즈도 패션위크에서 공개됐을 때 검은색 이브닝드레스와 함께 어울려 나왔고요.”“아...그렇군요...”양화영은 어색하게 입가를 비틀었다.채윤화의 말이 마치 자신을 무식하다고 비꼬는 것처럼 느껴졌다.사실 지나윤은 옷을 고를 때 브랜드를 신경 쓰지 않았다.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색과 좋아하는 디자인, 그리고 편안함만을 기준으로 골랐을 뿐이었다.그렇게 완성된 스타일은 패션위크에서 모델이 선보였던 스타일과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았다.“사모님은 며느리가 마음에 들지 않으신 모양이네요.”갑자기 이원호의 질문을 들은 양화영은 잠시 말을 잃었다.“마음에 안 드는 정도가 아니죠.”양화영은 단호하게 말했다.“시진이를 구해 준 일이 있어서 시아버님이 은혜를 갚으라며 결혼을 밀어붙이셨죠.”“애초에 그런 일이 없었다면, 저는 애초에 지나윤을 우리 집안 며느리로 들일 생각도 없었을 거예요.”“집안도 형편없어요. 어머니
하지만 유시진은 그래도 직접 채연서를 넘기고 싶었다.한편으로는 지나윤의 원한을 대신 갚기 위한 것이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채연서를 벌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채연서가... 날 속였어.”유시진이 중얼거렸다.원래 이 일은 지나윤에게 말하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지금의 유시진은 자신이 채연서에게 조금의 미련도 없다는 사실을 지나윤이 믿어 주기를 바랐다.“채연서는 내 첫사랑이 아니야. 그 여자가 날 속였어.”유시진은 단호하게 말했다.지나윤은 유시진이 채연서를 향한 감정이 사랑에서 증오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하지만 유시진의 말은 이해되지 않았다.‘채연서가 자기 첫사랑이 아니었다니, 그 여자가 자신을 속였다니.’‘첫사랑인지 아닌지는 유시진 스스로 모를 리가 없지 않나?’지나윤의 마음속에는 의문이 맴돌았지만 그 질문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유시진의 첫사랑이 누구였든 이제는 지나윤과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그래.”지나윤의 반응은 유시진의 예상보다 훨씬 담담했다.곧 유시진은 나이프와 포크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지나윤...”“채연서가 널 속이지 않았다면 용안파에 넘길 생각도 못 했겠지?”샴페인을 한 모금 마시며 아무렇지 않게 묻는 지나윤에 유시진은 가슴을 세게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느꼈다.“나는...”채연서가 정말 이쁜이였다면 유시진은 지금처럼 매정하게 굴 수 없었을 것이었다.지나윤은 유시진의 얼굴에 떠오른 복잡하고 갈등하는 표정을 보고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유시진, 네 눈에는 내가 그냥 차선책이었어. 부르면 오고 내치면 사라지는 애완동물 같은 존재였지.”“넌 나와 결혼할 때도 나를 사랑한 적 없었고 지금 나를 다시 붙잡으려는 것도 진짜 사랑해서가 아니야.”“아니야, 지나윤...”“왜 아니야?”“나는...”“채연서 일이 터지기 전까지 넌 나한테 이를 악물고 채연서의 복수를 해주려고 했잖아.”“인정해. 넌 처음부터 끝까지 나를 사랑한 적 없어.”“아니야.”쿵 하는 소리와 함께 유시진의 두
지나윤은 예전에 주로 전업주부로 지냈지만 그렇다고 해서 유시진과 함께 공식적인 자리에 나가 본 적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그때는 지나윤의 옷과 액세서리, 주문할 음식까지 모두 유시진이 결정했다.유시진은 한 번도 지나윤의 의견을 묻지 않았고 선택할 권리를 준 적도 없었다.지나윤은 마치 보기 좋은 장식품처럼 늘 유시진의 말에 그대로 따르기만 했다.하지만 오늘 밤은 달랐다.예전에 백이천이 지나윤을 이곳으로 초대해 식사했을 때조차도 미리 드레스와 주얼리가 준비되어 있었다.지나윤은 고를 필요가 없었다.하지만 이번에 유시진은 지나윤을 위해 방 하나 가득 옷을 준비해 두었고, 음식을 주문할 때도 먼저 지나윤의 의견을 물었다.선택권을 지나윤에게 준 것이다.이런 일은 예전의 유시진이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일이었다.뭐, 소년원 시절의 유시진이라면 했을 법한 행동이긴 했지만 말이다.잠시 멍해진 지나윤은 유시진이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는 느낌을 받았다.음식이 나왔다.지나윤은 의외로 유시진이 자신과 똑같은 음식을 주문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둘 다 C세트였는데 C세트에는 마늘 소스와 어우러진 바닷가재가 들어 있었다.지나윤의 기억 속에서 유시진은 마늘을 먹지 않았다.유시진은 위를 자극할까 봐 그렇다고 말했지만 사실 익힌 마늘은 그렇게 자극적이지 않았다.지나윤은 유시진이 단순히 마늘 냄새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다.지나윤은 유시진을 바라보았다.유시진은 나이프와 포크를 들고 우아하게 식사하고 있었고 자연스럽게 마늘 소스 바닷가재를 입에 넣었다.하지만 이내 미간이 찌푸려지며 눈썹이 지렁이처럼 꿈틀거렸다.유시진이 스스로 싫어하는 음식을 억지로 먹는 모습을 지나윤이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그 표정이 조금 우스웠는지 지나윤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그리고 지나윤이 자신을 비웃고 있다는 것을 안 유시진의 미간은 더 깊게 찌푸려졌다.하지만 씹다 보니 미간은 점점 풀어졌고 익힌 마늘은 확실히 생마늘보다 자극이 훨씬 적었다.처음에는 유시진이 그 맛에 익
유시진의 간단명료한 소개 한마디는 순식간에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의 기억을 빅토리아 로열 크루즈 자선 경매장으로 이끌었다.그 자선 경매장에서도 유시진은 지나윤을 전처가 아닌 자신의 아내라고 소개했다.그리고 옆에서 계속 해명하며 말을 덧붙인 사람은 유태산과 양화영이었다.사실 이원호는 그때 유시진이 왜 거짓말을 했는지 따져 물을 생각이었다.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유시진은 그때 거짓말을 하지 않았던 것 같았다.처음부터 끝까지 유시진은 이원호 앞에서 지나윤을 소개할 때 항상 아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오늘 밤에 약간의 오해가 있었던 점 죄송해요. 저는 이원호 장관님과의 약속 때문에 온 것이 아니라 제 아내와 데이트하러 온 거예요.”유시진은 미소를 띠고 당당하게 말했다.그리고 예의 바르게 ‘모두 식사 즐겁게 하세요.’ 라는 말로 인사를 마친 뒤 곧바로 지나윤의 손을 잡고 예약해 둔 자리로 가서 앉았다.이런 상황에 유태산과 양화영의 얼굴은 완전히 굳어 버렸다.두 사람은 한참 동안 더듬거리며 말을 이어 보려 했지만 지금 상황을 이씨 집안 사람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하지만 이원호와 채윤화는 서로 눈을 마주 봤고, 두 사람의 얼굴에는 동시에 이해했다는 듯한 미소가 번졌다.이안영은 우아하게 식사를 이어 가고 있었다.얼굴에는 미소가 떠 있었고 마치 가면을 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그리고 가끔 이안영의 시선이 옆 테이블의 지나윤과 유시진에게 향했다.그때마다 얼굴에 떠 있던 미소의 가면이 잠깐씩 흔들렸다.운천더힐 안에는 잔잔한 피아노 선율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지나윤은 한 손으로 턱을 괴고 깨끗한 유리창 너머로 화려한 야경을 바라보고 있었다.“기분 좋아 보이네?”유시진의 목소리에 지나윤은 창밖에서 시선을 거두었다.“응...”이원호 그리고 채윤화와 함께 억지로 식사하지 않아도 되니 지나윤은 당연히 기분이 좋았다.“이원호 장관님이랑 채윤화 사모님을 꽤 싫어하는 것 같네?”“어.”지나윤은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그 모습을 본 유태산은 순식간에 얼굴이 굳어졌다.그래서 왜 운천더힐에서 유시진을 보게 되었는지 알 것 같았다.유시진은 지나윤과 데이트하러 온 것이었다.양화영 역시 유시진과 지나윤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보자 표정이 유태산보다 나을 것이 없었다.두 사람은 유시진의 부모였지만 유시진과 지나윤이 사실상 이혼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이 일은 결국 웃음거리가 되는 일이었다.또한 결혼했는지 하지 않았는지, 이혼했는지 하지 않았는지를 농담처럼 말할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원래 양화영이든 유태산이든 지나윤을 특별히 아낀다고까지는 아니어도 적어도 며느리로서 만족하고 있었다.그 전제는 지나윤이 얌전히 집에 있으면서 전업주부로 남편을 내조하고 아이를 키우는 것이었다.하지만 지금의 지나윤은 마치 재계 사교계 인물처럼 행동하고 있었고 유태산과 양화영은 이미 며느리로 여기지 않고 있었다.그런데도 유시진과 지나윤은 아직 이혼하지 않았다니.사실 그날 이사회에서 유태산은 유시진이 그렇게 말한 것이 단지 시간을 벌기 위한 방책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이후 직접 본인에게 물어본 결과 돌아온 대답은 두 사람이 애초에 이혼한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그 말이 기가 찬 유태산은 그 자리에서 기절할 뻔했다.유시진이 이혼하지 않았다는 것은 곧 유시진이 결혼한 상태에서 이씨 집안의 딸 이안영과 맞선을 본 것과 같았다.이 일이 이씨 집안 사람들 귀에 들어간다면 혼사는 물론이고 사업 거래조차 성사되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새 에너지 철도 국제 협력 프로젝트만 해도 유태산이 아는 것만 해도 십여 개가 넘는 대기업이 이씨 집안과 접촉하고 있었다.그 가운데에는 늘 유씨 집안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이준혁의 집안도 포함되어 있었다.유태산은 유시진과 지나윤 사이가 정확히 어떤 상황인지는 신경 쓰지 않았다.하지만 새에너지 철도 프로젝트만큼은 반드시 따내야 했다.그리고 오늘 이 식사는 바로 이씨 집안을 끌어들이기 위해 유태산이 일부러 마련한 자리였다.원래 유태산은 유시진이 직접 이원호에
채연서는 들뜬 얼굴로 보석함을 열어 유시진에게 보여 주었다.그 안에는 반지가 들어 있었다.메인 스톤은 채연서가 가장 좋아하는 핑크 다이아몬드였다.핑크 다이아몬드는 하트 모양으로 컷팅되어, 멜레 다이아몬드가 둘러싼 링에 세팅되어 있었다.링의 디자인은 네잎클로버 형태였는데, 나머지 세 잎에는 하트 컷의 투명한 다이아몬드가 박혀 있었다.그리고 오직 한 잎에만 최상급 품질의 하트 컷 핑크 다이아몬드가 세팅되어 있었다.이 디자인은 채연서가 머리를 쥐어짜 내놓은 결과였다.유시진이 자신이 가진 뛰어난 능력을 좋아한다는 걸 잘 알고
채연서는 유시진의 사무실에 오래 머물지 않았다.자신의 물건을 간단히 정리한 뒤, 몸을 돌려 나섰다.등 뒤에서 유시진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LD주얼리 패션위크, 잘해.”“응.”채연서는 뒤돌아보며 웃었고 곧 유시진의 사무실을 나섰다.유시진의 얼굴에 남아 있던 부드러움은 점차 냉담해졌다.그리고 곧장 책상 위에 엎어 두었던 휴대전화를 집어 들고 통화 기록을 확인했다.첫 번째 기록은 지나윤의 전화였지만 유시진은 통화한 기억이 없었다.유시진은 그 번호로 다시 전화를 걸자 곧 수화기 너머로 지나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다면 말하지 마세요.”유시진은 고개도 들지 않은 채 그렇게 말하자 주수현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유시진이라는 사람은 정말 지나치게 자존심이 강하다고 느꼈다.이미 퇴사를 결정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동안 마음속에 쌓아 둔 말이 너무 많았기 때문인지, 주수현은 결국 속마음을 내뱉고 말았다.“대표님, 이혼하고 싶지 않으시면 상대에게 직접 그렇게 말씀하셔야 해요. 여자는 달래주면 되니까요. 조건이 이렇게 좋으시니 상대방도 쉽게 놓지 못할 거예요.”유시진이 고개를 들었는데 그 눈빛이 사람을 잡아먹을 듯했다.주수현은 더 말을
결국 지나윤은 작업실 안으로 들어간 뒤 꼬박 하루를 그 안에서 보냈다.문지혁은 설마 자신이 지나윤의 작업실에서 하루를 통째로 허비하게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휴대전화를 들여다보는 것조차 지루해질 정도였다.양나언과 장효연은 문지혁처럼 무료해할 여유가 없었고, 두 사람은 초조함에 거의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마침내 지나윤이 작업실 문을 열고 나왔을 때, 두 사람의 긴장은 정점에 달했다.의자에 앉아 있던 미란다는 고개를 들어 지나윤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시간을 오래 끌었다고 해서 제 인정받으실 수 있다고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