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로운 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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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updateTerakhir Diperbarui : 2026-09-03
Oleh:  유다화Baru saja diperbarui
Bahasa: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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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약혼을 하든 결혼을 하든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10년 간 단 한번도 닿지 못했던 첫사랑, 다정한이 결혼을 앞두고 아무렇지 않게 내 앞에 나타났다. “나보다 먼저 다른 새끼가 너랑 잤을까봐. 네가 마음을 줬을까봐.” “……!” “그게 더 불안하고, 중요해.” 만인에게 무례하고, 나에게만은 다정했던 그가 이제는 반대로 굴었다. “어쩌지? 이미 다른 남자랑 할거 다 해서 너한테 갈 일은 없겠는데.” “같잖은 거짓말도 할 줄 알고. 진혜서 다 컸네.” 10년만의 재회가 무색하게 서로가 서로를 찢어발기듯 말로 할퀴었고, 그 잔인한 말들은 금새 열기에 녹아 뭉개졌다. “다른 새끼 주느니 내가 가지는 게 낫지.” 그토록 원했던 첫사랑은 숨길생각 조차 없는 욕망으로 너무나 해롭게 돌아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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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b 1

00. 프롤로그

「妊娠八週です。おめでとうございます」

医師の言葉を聞いた瞬間、沙耶《さや》は診察台の上で息を止めた。

画面に映るのは、まだ人の姿とは呼べないほど小さな影だった。

「こちらが心拍です」

医師が示した場所から、規則正しい音が聞こえてくる。

その音が、自分の身体の中から生まれているのだと思うと、不思議だった。

沙耶は無意識に腹部へ手を添えた。

ここにいる。

怜司との子供が。

胸の奥から込み上げた喜びに、目頭が熱くなる。

けれど、その感情に身を任せるより早く、別の思いが浮かんだ。

怜司は、喜んでくれるだろうか。

黒崎怜司《くろさき・れいじ》は沙耶を愛していない。

そのことを、沙耶は三年前から知っていた。

夫婦として求められる夜はあった。

抱かれるときだけは、彼の熱も腕も確かに自分のものになる。それだけで、いつも少し期待してしまった。

いつか、この人の心もこちらを向くのではないか。

けれど夜が明ければ、怜司はいつもの怜司へ戻った。

冷静で、隙がなく、必要以上の言葉を口にしない夫。

身体の距離がなくなっても、心の距離だけは消えなかった。

それでも三年間、沙耶は諦めきれずにいた。

沙耶と怜司の結婚は、高瀬メディカルと黒崎グループの提携をより確かなものにするために決められた。

誰が見ても政略結婚だった。

けれど、沙耶にとっては違う。

結婚が決まるより前から、彼を愛していた。

だから、選ばれたときは嬉しかった。

理由が会社でもよかった。

最初は愛されなくても、同じ家で暮らし、同じ時間を重ねていけば、いつか。

そう思っていた。

だが怜司の心には、ずっと別の女性がいた。

五年前に彼の前から去った、一ノ瀬美玲。

沙耶がどれだけ近くにいても、その人の記憶だけは怜司の中から消えなかった。

それでも今日は、少しだけ夢を見てもいい気がした。

三度目の結婚記念日。

そして、二人の子供を授かった日。

今夜、伝えよう。

驚くだろうか。

いつもの無表情が、少しだけ崩れるだろうか。

もしかしたら――喜んでくれるかもしれない。

そんな期待を抱く自分が、ひどく幼く思えた。

それでも沙耶は、超音波写真と母子手帳を受け取るための案内を、折れないよう大切にバッグへしまった。

夕方、黒崎邸へ戻ると、自ら食卓を整えた。

怜司の好物は、三年の間にだいたい覚えた。

味の濃すぎるものは好まないこと。

魚なら白身を選ぶこと。

仕事で疲れている日は、重い料理より温かいスープをよく口にすること。

ワインも彼の好みに合わせた。

自分のグラスには、色の似た炭酸水を注ぐつもりだった。

気づいてくれるだろうか。

酒を飲まない理由を尋ねてくれるだろうか。

そんな小さな仕掛けまで考えている自分が可笑しくて、沙耶は一度だけ笑った。

怜司が帰宅したのは、料理が冷め始めた頃だった。

「お帰りなさい」

玄関へ迎えに出る。

怜司は無言で上着を脱いだ。

右は漆黒。

左は淡い灰青色。

生まれつき色の違う瞳が沙耶へ向けられたが、すぐに逸れた。

「食事の用意ができています。今日は――」

「話がある」

声を遮られた。

いつもより硬い。

沙耶の胸の奥に、冷たいものが落ちた。

それでも何も言わず、怜司を食堂へ案内する。

用意した料理を前にしても、彼は箸を取らなかった。

向かいへ座ると、白い封筒から一枚の紙を取り出した。

食卓の上を滑ったそれが、沙耶の前で止まる。

文字は読めているのに、意味が頭へ入ってこなかった。

離婚届。

その文字より先に、怜司の署名が目に入った。

もう、書いてある。

沙耶が今日一日、どうやって妊娠を伝えようかと考えている間に、怜司はこの紙へ自分の名前を書いていた。

数時間前に聞いた小さな心拍音が、耳の奥で蘇った。

命が始まったと知らされた日に。

夫婦の終わりを告げられている。

「どういう……意味ですか」

尋ねる必要などなかった。

それでも声が出た。

怜司は目を逸らさなかった。

「美玲が帰国した」

その名前だけで、十分だった。

五年前、怜司を残して別の男と国外へ去った女性。

一ノ瀬美玲《いちのせ・みれい》。

三年間妻だった沙耶よりも長く、怜司の心の中に居続けた人。

その女性が戻った。

ただ、それだけでこの結婚は終わるのだ。

「彼女と、やり直すのですか」

自分の声なのに、ひどく遠く聞こえた。

「そのつもりだ」

迷いのない答えだった。

沙耶は膝の上で手を握った。

バッグの中には、怜司に見せるつもりだった超音波写真がある。

今、言えばいい。

あなたの子供がいます、と。

その一言で、きっと何かは変わる。

怜司は責任から逃げる男ではない。

少なくとも、立ち止まりはするだろう。

その想像に、心が一瞬だけ縋った。

けれど。

それで、どうするのだろう。

子供がいるから残る夫を、毎日隣で見続けるのか。

心では別の女性を求めている人を、父親という役目だけでここへ縛りつけるのか。

「両社の提携は、離婚後も継続する。高瀬社に不利益が出ないよう手配する」

怜司の言葉に、沙耶はゆっくり顔を上げた。

離婚を告げた直後に、彼が口にしたのは会社のことだった。

高瀬と黒崎。

契約。

利益。

責任。

三年間、同じ家で暮らしてきた妻に対して、まず心配するのはそこなのか。

自分はそんなふうに見えていたのだろうか。

会社との関係さえ守られれば、納得する女だと。

離婚を告げられたこととは別の痛みが、胸の奥に広がった。

沙耶はバッグへ伸ばしかけていた手を、静かに膝へ戻した。

「分かりました」

怜司の眉が動く。

「沙耶?」

「離婚に応じます」

今度は自分でも驚くほど、はっきり言えた。

怜司の表情がわずかに揺れた。

すぐ承諾されるとは思っていなかったのかもしれない。

その反応を見て、ほんの少しだけ胸が疼いた。

引き止めてほしかったわけではない。

そう言い聞かせる。

「ただ、今夜は署名できません。少し考える時間をください」

「ああ」

怜司は短く答えた。

そして離婚届を食卓へ残したまま立ち上がる。

「今夜は書斎で休む」

夫婦の寝室には戻らない。

その意味くらい、説明されなくても分かった。

沙耶は引き止めなかった。

廊下を進む足音が遠ざかり、やがて書斎の扉が閉まった。

広い食堂に、一人きりになる。

目の前には、手をつけられなかった料理。

怜司のために選んだワイン。

結婚記念日のために整えた食卓。

ほんの一時間前まで、ここで妊娠を伝える自分を想像していた。

沙耶はしばらく動けなかった。

やがてバッグを開き、超音波写真を取り出した。

離婚届の隣へ置く。

一枚は、夫婦の終わりを告げる紙。

もう一枚は、二人の間に生まれた命の証。

あまりにも残酷な並びだった。

沙耶は震える指で、小さな影をなぞる。

今から書斎へ行けばいい。

この写真を怜司へ見せればいい。

「あなたの子です」と言えばいい。

きっと彼は、無視できない。

けれど、それは愛ではない。

沙耶は目を閉じた。

「ごめんね」

声が震えた。

子供を使って、愛されない結婚へ怜司を縛りつけたくない。

そして、この子にもいつか、自分が誰かを引き止めるための理由だったなどと思わせたくない。

沙耶は腹部へ両手を添えた。

そこにはまだ何も感じない。

けれど確かに、あの小さな鼓動がある。

「あなたのことは……まだ言えない」

今夜、怜司へ渡すはずだった言葉を、沙耶は自分の胸の奥へしまっ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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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Bab
00. 프롤로그
“이 시간에 이런 꼴로 나타나면 그쪽으로 생각해도 되는 거지?”“무슨…!”“말했지. 이젠 더한 짓도 할 수 있다고.”혜서의 턱 끝을 가볍게 그러쥔 정한의 눈빛이 평소보다 더욱 서늘했다.“이, 이거 놔!”돌연 그가 혜서를 들어올렸다. 강제로 그의 어깨에 걸쳐진 혜서가 연신 발버둥 쳤지만 강압적인 힘을 이길 수가 없었다.“뭐하는 거야?”정한이 조금 더 따뜻한 실내로 혜서를 들인 뒤 소파에 내려놓자마자 노려보며 따져 물었다.“…….”정한은 말 없이 혜서의 앞에 무릎 꿇어 눈을 맞췄다. 손끝에서 전해지는 혜서의 체온이 하염없이 차갑고 시리자 눈가를 찌푸렸다. 바들바들 떨어대는 몸이 가여워보이기까지 했다.그럼에도 굽히지 않고, 흐트러진 모습으로 노려보기만 하는 고집에 헛웃음이 새어나오기도 했다.혜서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알고 왔는지는 몰라도 지금 그딴 건 안중에도 없었다.혜서의 젖은 몸이 적나라하게 곡선을 드러내 자극하고 있었고, 붉어진 뺨과 입술은 자꾸만 눈길을 사로잡았다.게다가 울기까지.이런 꼴로 무작정 찾아와 파혼을 했다 말하는 게 진혜서는 지금 얼마나 무모하고 위험한 행동을 하고 있는지 조금도 이해를 하지 못하는 것 같아 계속해서 웃음이 났다.“이런 꼴로 네가 이렇게 울고 있는데도 존나 기쁘면… 나 개새끼지?”“……미쳤어.”“미친놈 할게. 개새끼도 하고.”정한의 시선이 느리게 떨어졌다. 천천히 혜서의 눈, 입술, 그리고 다시 눈으로 향했다.“말해도 달라질 건 없다고 생각했어.”“왜… 이유가 뭐야.”“말했잖아, 나 그냥 개새끼 한다고.”숨이 멎은 것처럼 조용해졌다.웃어야 할지, 화를 내야 할지, 울어야 할지.혜서는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감정이 목까지 차올랐다.“진짜… 재수 없다.”품에서 흐느끼는 혜서의 체온이 조금전보다 서서히 따스해지고 있었다.“그만 울어, 나 옷도 안 입고 추운데.”정한의 말에도 혜서는 품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밀어내려 했지만, 본인을 꽉 붙잡고 있는 단단한 팔 힘에 그럴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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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다정한
5월의 작달비가 멈출 줄 모르고 쏟아지던 밤이었다. 사방이 캄캄한 커다란 전원주택은 숨소리조차 삼킨 듯 고요했다.톡, 톡, 톡….거센 빗줄기가 정한의 실루엣이 비친 거실 통 창을 집요하게 두드렸다.습하고 눅눅한 공기가 실내로 스며들어 그의 발목을 천천히 휘감았다.그럼에도 그는 미동도 없이 서서, 그저 내리는 비를 메마른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한참 만에야 그가 흘러내린 앞머리를 무심히 쓸어 넘기자 가늘게 좁혀진 눈매가 서늘하게 빛났다.차가운 공기, 숨 막히는 정적,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그 속에서조차 감출 수 없는 버려진 더러운 기분까지.운치 있는 집은 주인의 성미를 닮아 고독과 적막으로 가득 차 있었다.그는 습관처럼 눈을 감았다.감각을 더듬듯, 기억을 끌어올려 자연스레 해야 할 일처럼 온몸의 감각들을 일제히 일깨우려 애썼다.“…진혜서.”입술 사이로 나온 이름이 유난히 조용하고, 애달프게 흘러나왔다.귓가에 맴돌던 그녀의 상냥한 목소리, 앞서 걷지만 느렸던 발소리와 불안할 때면 뜯던 손톱 끝의 작은 소리.그가 기억하는 그녀는 늘 소리로 남아 있었다.이내 거슬리는 빗소리가 그녀의 생각을 접으라 채근했다.정한의 눈이 거칠게 떠졌다.일그러진 시선이 창 너머 정원으로 향했다. 쏟아지는 빗줄기가 나무를 사납게 때리고 있었다.이래서 비 오는 날이 싫었다.그녀를 떠올리는 방식을 모조리 흐트러뜨리니까.칠흑 같은 어둠 속을 노려보던 눈동자가 점점 더 짙게 가라앉았다.“……진혜서.”이번엔 조금 전과는 달리 단단하게 가라앉은 음성이었다.비스듬히 올라간 입가에는 지워지지 않는 쓸쓸함이 걸려 있었다.다시 그 계절에 너를 만날 수 있을까. 넌 여전히 그대로일까.이런 나의 곁에 넌 또 다가와 머물 수 있을까.아니, 아니다.오지 않으면 제가 가면 그만이었다.*“…온광고등학교 건배!”비가 갠 번화가 한복판에 위치한 술집 안에서 일곱 남녀의 목소리와 잔 부딪히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야, 너희는 어떻게 하나도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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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첫사랑
그랬기에 덩달아 더 새카맣게 타들어가는 현민의 마음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역시 진혜서! 보기랑 다르게 예전부터 시원시원하다니까?”술에 취했는지 눈치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태형의 행동에 모두들 험한 말을 속으로만 삼켜댔다.“그래서 말인데 다정한은 오늘 안 오냐?”“우리랑 급이 맞아 여길 오겠어?”모두가 그를 떠올리며 자연스레 대기업 한성그룹을 따라 떠올렸다.어머니와 단둘이 살던 그가 학창 시절 뒤늦게 국내 재계 1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한성 그룹의 사생아로 밝혀진 후 온광고등학교는 한동안 정한의 이야기로 떠들썩했었다.그랬던 그는 현재 핵심 계열사 한성 백화점의 대표에 위치해 있었다.“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야. 그 시골학교에서 재벌 아들에, 의사에, 아역배우까지… 이쯤 되면 그 학교에 뭐 있는 거 아니야?”“그런데 넌 왜 그러냐 박태형?”“뭐?”새롬과 티격태격하는 모습은 예전과 다를 바 없었다.남 이야기하기를 좋아하고, 눈치 없는 태형과 선혁이 분위기를 계속 건드릴수록, 술자리는 점점 불편해졌다.“너희는 다정한 눈 안 보인다고 가장 무시해놓고 이제 와서 이렇게 이야기하는 거 뻔뻔하다 생각 안 해?”결국 새롬이 터졌다.“내가 언제 무시했어! 그냥 조금 장난만 친 거지.”“장난은 서로가 좋아야 장난이지. 지금이었으면 학폭이야!”“씨발! 그렇게 따지면 네들은? 네들은 뭐 다정한 무시 안 했냐? 솔직히 여기서 진혜서 말고 그때 다정한 상대나 한 놈 있어? 어? 있냐고!”격양되어 소리치는 태형 덕분에 모두들 슬슬 자리를 파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그래, 다정한은 자발적 왕따였잖아. 오히려 걔가 혜서 말고 우리 상대나 해줬냐.”석현까지 거들자 분위기는 완전히 기울었다.“그만.”낮고 단단한 현민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적당히 하자, 태형아. 좋은 날에 없는 사람 얘기로 분위기 흐리는 거 보기 안 좋다.”“…그, 그래.”현민의 차갑게 식은 얼굴을 확인한 태형이 움찔했다.“역시 반장.”반장이었던 현민을 향해 새롬이 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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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곧 결혼도 해
골목 어귀 어둠 속에서, 너무도 익숙한 음성이 흘러나왔다.잊었다고 생각했던 목소리.잊혀야 했던 어투.방금 전까지도 기억해내려 떠올렸던 그리운 음성.분명 다시는 볼 수 없을 거라 믿었던 그 사람.확인하기도 전에 심장이 먼저 알아채고 요동쳤다.서서히, 아주 천천히 혜서가 고개를 돌렸다.희미한 가로등 하나에 의지한 채 드러난 그림자에 더욱 가슴이 떨렸다.“……!”그곳에 다정한이 보였다.기억 속에 멈춰 있던 그 얼굴 그대로, 서늘한 미소를 띤 채 그가 혜서를 향해 부드럽게 웃고 서있었다.“안녕, 진혜서.”무방비 상태인 혜서의 심장이 더욱 빠르게 요동쳤다.혜서는 가장 먼저 정한의 눈동자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반쯤 내려앉았다 번쩍 들린 눈꺼풀 속 짙은 눈동자가 혜서를 또렷이 응시했다.과거 사고로 인해 10년 전에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던 정한의 눈이었다.이제는 다 보이는구나.혜서는 자신을 향해 정확히 고정된 시선과 피하지 않고 꿰뚫듯 바라보는 눈빛이 이제는 오히려 낯설었다.입에는 담배를 문 채, 천천히 초점을 맞추는 그의 모습에 안도감은 잠깐이었다.설명할 수 없는 이질감이 가슴 깊은 곳을 긁어냈다.“날 어떻게 알아봤어?”혜서는 궁금했다.10년간 우연히라도 마주친 적 없었고, 그가 먼저 말을 걸기 전까지 목소리 한 번 내지 않았다.그가 어떻게 단숨에 자신을 알아본 걸까.“모를 리가.”짧게 답하던 그가 기대서 있던 벽에서 등을 떼며 몸을 일으켰다.꿈에서만 들었던 목소리가 생생히 전해지자 마치 10년 전으로 돌아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서로의 눈동자 안에 오롯이 서로만을 가둔 채, 10년이라는 시간을 더듬듯 천천히 훑어내릴 뿐이었다.낯선데 익숙했고, 익숙한데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달빛이 기묘하게 그에게만 내려앉은 것처럼 보였다.창백한 피부와 한 뼘은 더 커진 키. 예전보다 훨씬 단단해진 몸과 너른 어깨.혜서의 기억 속 유약했던 소년은 사라지고, 지금은 전혀 다른 남자가 서 있었다.“내가 생각한 그대로네. 혜서 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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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편했던 이유
“어, 현민아….”“네가 너무 안 오길래 걱정돼서 나왔어.”혜서의 곁으로 바짝 다가온 현민의 시선이 천천히 정한에게로 옮겨갔다.곧이어 그 역시 금방 정한을 알아보고선 놀란 눈치였다.“다정한?”“…….”현민의 입에서 정한의 이름이 흘러나오자 혜서가 본능처럼 현민의 옆으로 붙어 섰다.“수술했다더니 이젠 보이는….”“나 알아?”심드렁하게 현민을 응시하던 정한이 말을 잘랐다. 눈빛이 미묘하게 날이 서 있었다.“같은 학교, 같은 반 친구였는데 모를 리가.”“왜 내 기억엔 네가 없지?”“…….”“하긴.”정한의 시선이 혜서에게로 향했다.“내가 진혜서 말고는 관심 있는 사람이 없긴 했지.”그의 말이 농담이 아니란 걸 전부 알고 있었다. 현민이 짧게 헛웃음을 흘렸다.“오늘 동창회 온 거면 어쩌지? 끝나서 모두 돌아갔는데.”“동창회 온 거 아니었대. 우연히 만났어.”“그래?”“가자, 현민아.”급하게 현민에게 팔짱을 껴 돌아서려는 혜서를 정한이 빤히 응시했다.“박현민? 네가 박현민?”순간 둘의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정한은 무언가 떠올랐는지 처음 화색을 띠었다.“결혼한다더니 그 사람이 설마 얘야?”“맞아.”“아.”혜서의 수긍에 정한의 시선이 둘 사이를 천천히 오갔다.이내 그는 짧게 숨을 내쉬더니 갑자기 소리 내어 웃기 시작했다.기괴한 그의 모습에 불쾌해진 혜서가 더욱 걸음을 재촉하려 애썼다.“뭐가 그렇게 웃긴 거야?”정한의 웃음이 거슬렸는지 걸음을 멈춘 현민의 눈빛이 낮게 가라앉았다.“지금은 말해 줄 수가 없고.”여전히 웃음기를 지우지 않은 채, 정한이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얼른 돌아가자.”혜서가 다급히 말을 끊었다.“그럼 만나서 반가웠다.”둘 사이에서 피곤해진 혜서가 서둘러 인사하는 현민의 손을 잡아끌었다.당장에라도 이 숨 막힐듯한 공간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밖에 없었다.“진혜서.”“……!”“또 보자.”그런 혜서의 바램을 짓밟는 그의 음성이 등에 꽂혔다.혜서 역시 그에게 묻고 싶은 것도 듣고 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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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두 번 보면 친한 사이
‘앞이 안 보이는데, 안 쳐다보는 걸 어떻게 알아?’귀찮은 듯 자세를 고쳐 앉은 정한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기울였다.‘알아.’‘뭐?’‘봐. 너도 지금 내 얼굴 뚫어져라 보고 있잖아.’늘 여유롭게 대처하던 그는 마치 눈앞이 훤히 보이는 사람처럼 굴었다.‘잘생긴 얼굴 처음 봐?’뻔뻔한 말도 참 많이 했지만 정말로 잘생겼기에 반박하기 어려웠다.늘 조용히 혼자 지내던 그가 유독 눈에 띄고, 아이들 입에 수없이 오르내리던 건 오로지 잘생긴 외모 때문이었다.본인은 몰랐겠지만 몰래 그를 따라다니던 여자애들이 적지 않았다.‘참 나, 잘생기긴… 너 서울 가면 엄청 흔한 얼굴이야.’‘넌 안 봐도 알 거 같아.’‘뭐?’‘보나 마나 평범하겠지. 눈은 작고, 키도 작고. 또….’‘다 틀렸거든? 나는…!’발끈해서 반박하려던 혜서가 소리쳐 벌떡 일어나자 주변에서 따가운 시선이 느껴져 도로 앉았다.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허탈한 숨을 내쉬었다.‘하, 됐다. 여기 다신 안 온다.’이후에도 종종 도서관을 찾는 혜서의 발길이 많았다. 까칠할 것만 같던 정한은 생각보다 혜서와 대화를 잘했다.순식간에 가까워진 둘은 늘 함께였지만 이대로 행복하기만 할 것 같던 시간은 불의의 사고로 순식간에 멈추어버렸다.그 사건으로 정한이 해외로 떠나고, 혜서와 헤어졌다.혜서는 다시 돌아올 그를 굳게 믿으며 슬퍼하지도 않았다. 그때는 그런 믿음이 확고했다.학업에 집중했고, 새롬과 함께 같은 대학에 진학해 조향사로 같은 길을 택했다.현재 여운도 함께 공동으로 운영 중이었다.“그래서 뭐래?”“뭐가? 아무 말도 안 했어.”“거짓말.”앞치마를 두른 채, 병에 라벨을 적고 있는 혜서를 빤히 보던 새롬이 단번에 단정 지었다.“물어봤어? 왜 10년 동안 연락 한 번 없었는지. 왜 약속 장소에 한 번도 안 나타났는지.”“아니. 안 물어봤어.”“왜! 그렇게 궁금해하고 기다렸으면서!”“내가 언제.”“봐, 지금도! 지금도 궁금해 죽겠단 얼굴이야.”그 말에 혜서의 손이 우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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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속 끓는 마음
검은색 슈트를 입은 그가 긴 다리를 조금 움직이자 작업실은 금방 그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었다.정한이 중앙에 놓인 긴 나무 테이블 위에 줄지어 있는 손바닥만 한 유리병들을 하나씩 들어살폈다.창가에서 스며든 빛이 정한의 손을 스쳤고, 그 안에 담긴 액체들이 각기 다른 색을 머금으며 흔들렸다.그런 그를 살피는 혜서의 미간이 구겨졌다.‘꼭 다시 만나자. 내가 널 찾으러 갈게.’과거 정한의 음성이 여전히 생생해 여전히 가슴이 저렸다.매년 같은 날, 같은 장소.혜서는 둘만의 약속을 되새기며 매일을 그를 만날날만을 간절히 기다렸다.단 한번도 나타나지 않았던 사람은 정한이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혜서는 매번 약속 장소에 나갔다. 또 매번 혼자 돌아왔다.처음엔 아직 한국에 돌아오지 못했겠지, 회복중이라 못 오는 거겠지 생각하며 그가 본인과의 약속을 저버린것에 대해 부정했다.6년째 되던 해에는 그가 모든 기억은 지운 채 잘 살아가고 있다는 걸 인정해야만 했다.결국 혼자만의 추억과 그리운 감정으로 남아 그를 기억한 것이었다.그 기억이 스치자, 또 다시 밀려오는 원망으로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고개를 숙였다 든 혜서가 픽 낮은 웃음을 흘렸다.내내 그리워했고, 잊고 싶었으며 그러지 못했던 그가 제 발로 눈 앞에 다시 또 나타나더니 무례한 짓을 서슴없이 하고 있었다.“직원 급여에, 월세에… 대출 빚도 많던데.”혜서는 안중에도 없는 듯, 가볍게 읊조리던 그가 병을 내려놓았다.“앞으로 계속 운영하려면 여운을 더 키우는 게 낫지 않겠어?”“너 지금 뭐하자는 거야.”정한은 여유롭게 테이블에 몸을 기대며 앉았지만 혜서의 눈동자에는 혼란이 스쳤다.“거래 제안.”“뭐?”“팝업 스토어 제안 때문에 왔어. 우리 한성이랑.”혜서의 얼굴에 시선을 깊게 꽂은 그도 어느새 웃음기가 가셨다.“여운이 두달 뒤에 있을 우리 백화점에서 팝업 스토어를 진행했으면 해.”“다짜고짜 나타나서 한다는 이야기가 협업 제안이야?”잠시나마 그에게 무엇을 기대했던 걸까.허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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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걔랑 잤어?
혜서의 어깨위로 정한이 불쑥 얼굴을 깊숙이 묻었다.그의 뜨거운 숨결이 목더미를 스치자 깜짝 놀란 혜서가 몸을 빼내려 했다. 그 순간 그의 손이 더 빠르게 움직였다.도망치지 못하게 손목을 붙잡은 커다란 다른 한 손은 더욱 단단했다.“진혜서, 난….”갈라진 정한의 목소리가 귓가 바로 옆에서 닿았다. 붙잡고 있는 그의 손끝이 미묘하게 떨리자 몸부림 치던 혜서의 몸이 얌전해졌다.“난 지난 10년 동안… 단 하루도 널 잊어 본 적 없어.”긴장 속에 혜서는 들이마시는 공기가 반쯤밖에 안됐다. 얽힌 숨 사이로 파고드는 진심어린 그의 말에 또 한 번 말문이 막혔다.“혜서야.”잡고 있던 단단한 손이 조금 느슨해졌다. 그럼에도 혜서는 도망칠 수 없었다.“진혜서.”그의 입안에서 멤도는 자신의 이름을 깊숙이 새기며 혜서는 눈을 질끈 감았다.그가 매 순간 본인의 이름을 부를 때면 가슴 깊은 곳에서 일렁이는 무언가를 느꼈다.“지금의 난… 예전과 달라.”겨우 선을 긋듯 내뱉은 혜서의 말에, 정한의 한쪽 입꼬리가 비스듬히 올라갔다.“맞아, 다르지.”순순히 그녀의 말을 받아들인 정한이 품에서 떨어져 나와 혜서를 내려다봤다.“넌 곧 결혼을 할 테고…….”“……!”“다른 새끼 여자가 되겠지.”순식간에 식은 정한의 눈빛이 혜서의 가슴을 후볐다.“근데 나도 달라졌어.”그가 한 발 더 혜서에게 가까이 다가왔다.그만큼 혜서가 뒷걸음질 쳤으나 금세 사이는 제멋대로 다시 좁혀졌다.“이제 내 두 눈으로 직접 널 볼 수 있고.”검은 눈동자가 혜서를 천천히 훑었다.“이렇게 널 만질 수도 있어. 그리고….”“…다정한, 그만!”턱을 들어 올리는 정한의 엄지가 혜서의 아랫입술을 스쳤다.“더한 짓도 할 수 있는데.”“……!”고개를 틀며 혜서가 벗어나려 했지만, 잡힌 힘에 미동도 하지 않았다.“소리 지를 거야.”“질러 봐, 어디 한 번.”다가온 정한의 매끄러운 입술이 어둠속에서도 훤히 보였다.화가 난 듯 건조한 그의 어조에 불안해진 혜서가 탁탁 손톱 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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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결혼 반지
홀로 남은 정한은 여전히 그 자리 그대로 서서 혜서가 남아있던 공간만 바라봤다.비워버린 자리에 대신 남은 혜서의 잔향만이 부족한 공간을 대신 채웠다.“……끝이라.”낮게 중얼거리는 그의 음성이 갈라져있었다.누구 맘대로.이번엔 작은 웃음이 섞였다.정한은 여전히 자리에 남아 그녀가 빠져나간 문만 하염없이 응시하다 손을 잡았던 자신의 커다란 손바닥을 내려다봤다.복잡한 생각과 함께 닿았던 감각이 잊히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피가 끓어올랐다.붉게 물든 손끝에는 여전히 간절함이 묻어 있었다.*“요새 많이 피곤해?”현민은 조수석에 앉아 내내 차창밖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그녀를 살폈다.저녁 식사 후 두달 전 제작해둔 웨딩링을 함께 찾으러 가는 중이었다.“……미안, 내가 너무 말이 없었지.”현민의 물음에서 의도를 파악한 혜서가 미안한 표정으로 그를 살폈다.며칠 전 공방으로 돌연 찾아왔던 정한의 등장 이후 혜서는 내내 넋이 나간 사람처럼 되어버렸다.‘난 지난 10년 동안… 단 하루도 널 잊어 본 적 없어.’거짓말.정말 그가 지난 10년 간 자신을 그리워했다면 약속장소에 나타났어야 했다.혹시라도 그 약속을 잊었다고 하더라도 연락할 방법은 많았다.사정이 있었다면 다시 만났을 때 설명부터 해줬어야했다.지금 이 시점에서 나타난 건 어디까지나 퍼스트메모리가 필요해서라고 굳게 생각했다.신경쓰지 않으려 하면 할수록 신경쓰이는 그가 머릿속에서 잊혀지지 않았다.‘더한 짓도 할 수 있는데.’정한의 음성이 여전히 귓가에 생생했다. 아랫입술에 스치던 뜨거운 감각 역시 또렷했다.지그시 아랫입술을 깨문 혜서가 그의 생각을 떨치려 애썼다.현민과 5개월 간의 짧은 만남을 하고 있었지만 스킨십은 손잡는 것 외에는 일절 없었다.그랬기에 정한과의 작은 스침은 혜서에게 커다란 죄책감을 불러일으켰다.‘박현민 사랑해?’그 어떤 질문보다도 충격적인 질문이었다. 그의 시선에도 속이 내비쳐졌던 걸까.정한에게서 들으니 자존심 마저 긁히는 물음이었고, 뜸을 들이던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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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 궁금해 한 사람
사이즈가 맞는다며 환하게 웃는 얼굴을 보자, 혜서의 마음 한켠이 점점 불편해져만 갔다.반지를 끼는 순간 결혼이라는 게 확 실감이 났다.‘친구로 더 오랜 시간 함께 했는데 식부터 올리는 게 어떻겠니? 앞으로 현민이 전문의 달면 더 정신없고, 바빠질텐데… 혜서 네가 집에서 뒷바라지 하면 현민이도 바깥 생활에 더 집중 할 수 있고.’어머님의 설득으로 급히 서두르는 결혼을 하게 됐지만 자신에게 그 누구도 이 결혼을 하라며 강요하거나 협박을 하지 않았다.‘네, 그런데 일은 계속 하고 싶어요.’온전히 자신의 선택이었다.매순간 이 선택이 옳다고 믿으며, 함께 살아가다보면 언젠가 현민이 자신의 마음을 채울 거라 스스로를 설득해왔다.‘박현민 사랑해?’정한의 입에서 그런 소리를 들은 후 부터였을까.척척, 순조롭게 진행되어 가는 결혼이 다가올수록 덜컥 겁이 나기 시작한 건.처음부터 현민을 사랑하지 않음을 알고도 시작한 일이었다. 그런데 왜, 마음이 점점 더 깊이 가라앉는 건지 알 수 없었다.“기념인데 오늘 같이 끼고 갈까?”반지를 빼지 않은 채, 현민이 케이스에서 혜서의 반지를 꺼냈다.그가 가느다란 혜서의 손을 잡고 조심스럽게 약지에 끼웠다.나란히 함께 빛나는 반지가 조명을 받아 더욱 눈이 부셨다.“…그러자.”탁하게 내려앉은 혜서와의 마음과는 별개로.두 사람은 근처 호텔 지하에 위치한 재즈바로 자리를 옮겼다.어둠에 가까운 조도로 어두웠으나 답답하지 않게 각 테이블 위에는 캔들이 빛을 내고 있었다.“여기 분위기 좋다… 와 본 곳이야?”“아니. 친구가 여자친구랑 데이트했었는데 좋다고 추천해주더라고.”입구로 들어선 혜서가 연신 주변을 둘러보자 현민이 어깨를 부드럽게 감쌌다.손님들은 많지 않았다. 낮은 목소리로만 대화가 오가고, 웃음조차 크게 터지지 않았다.낮게 깔린 재즈가 흐르는 곳에서 테이블 앞에 앉은 두 사람은 이곳에 모인 다른 연인들처럼 사이좋은 모습이었다.“뭐 마실래? 나는 가볍게 네그로니로 할게, 혜서 넌?”“그럼 나는….”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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