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진은 미간을 찌푸리면서 꽃다발과 한약 봉투를 내려놓았다.그리고 천천히 핸드폰을 꺼내 지나윤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전화는 연결되지 않았다.유시진은 아내가 집에 없는 날이 있을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그래도 늘 하던 대로 먼저 LP를 올리고, 가장 좋아하는 쇼팽 야상곡을 틀었다.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세 시간이 지나자, 유시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옷장을 열어 보았다.옷장 안에는 지나윤의 옷이 대부분 그대로 걸려 있었는데, 전부 자신이 사 준 옷들이었고 전부 핑크색 계열이었다.그런데 결혼 전에 입던 파란색 정장 두 벌만 감쪽같이 사라진 상태였다.그때, 초인종 대신 택배 기사가 인터폰을 눌렀다.수취인은 유시진이지만, 자신은 아무것도 주문한 기억이 없었다. 택배 상자는 꽤 큰 종이상자였다.포장을 뜯자 안에서 쏟아져 나온 건 온통 화려한 물건들이었다.핑크 장미 모양의 영구 보존 꽃, 핑크 다이아몬드 목걸이, 핑크색 H사 가방, 반짝이는 핫핑크 하이힐, 체리 블로썸 색 드레스가 있었다.또한 핑크 다이아 시계, 금장식 오브제, 복숭앗빛 실크 스카프, 하이엔드 향수, 핑크 다이아 브로치, 차 키, 핑크 다이아 반지까지.유시진의 표정이 점점 굳어지면서, 눈동자 깊은 곳에서 폭풍이 서서히 일어나는 것 같았다.이것들은 전부 예전에 지나윤을 쫓아다니며 선물했던 것들이었다.그리고 핑크 다이아 반지는 프러포즈했을 때의 반지였다.대충 집어 들어 확인해 보니, 그 많은 선물들은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태그조차 떼어지지 않은 채였다.박스 안에서 유일하게 선물이 아닌 것은 서류 봉투 하나였다.유시진은 아무 생각 없이 봉투를 열어 안에 든 서류를 꺼냈다.A시의 밤 풍경은 여전히 화려했다.불빛이 가득했고 금빛으로 물든 도시였다.삼호거리에 있는 낡은 집은 몇 년째 불이 켜진 적이 없었지만 오늘은 예외였다.해 질 무렵 켜진 불이 밤늦도록 꺼지지 않았다.지나윤은 반나절 넘게 걸려 방 안을 말끔히 치웠다.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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