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HF그룹이 현재 처한 위기는 백이천도 이미 인터넷을 통해 알고 있었다.지나윤이 피자를 먹는 동안, 백이천은 단 한마디도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고 계속해서 쓸데없는 농담을 해주었다.백이천은 원래 농담을 좋아하는 사람도 아니었고 잘하는 편도 아니었다.그랬기에 지나윤은 백이천이 이렇게 하는 건 모두 자신을 위해서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피자 두 판을 다 먹고 나서야, 백이천은 지나윤에게 물었다.“HF그룹 지금 주가 폭락했잖아, 주주들이 분명 책임을 요구할 텐데,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야?”지나윤은 잠시 침묵했고, 백이천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HF그룹 이사회는 내가 맡으면서 물갈이했지만, 주주 중에는 여전히 유씨 집안과 크고 작게 얽혀 있는 사람들이 많아.”지나윤의 입에서 유씨 집안이라는 말이 나오자, 백이천은 참지 못하고 미간을 찌푸렸다.“아까 올라오기 전에 유시진한테 전화가 왔어. 그 사람이 백기사 도입을 제안했어.”“안 돼!”지나윤의 말이 끝나자마자 백이천은 강하게 반대했다.백이천은 목소리를 높이며 말했다.“유시진은 절대 좋은 의도로 그런 게 아니야! 이런 상황에서 유씨 집안의 돈을 끌어들이라는 건, 완전히 불난 집에 기름 붓겠다는 거나 다름없어.”“하지만 세이만 테크놀러지가 계속 HF그룹 주식을 사들이고 있어. 나는 그게...”“그 세이만 테크놀러지가 적대적 인수라고 해도 유씨 집안이라고 다를 게 있겠어? 유시진이 이렇게 나오는 건 결국 HF그룹을 다시 손에 넣으려는 거야.”“나윤아, 그 함정에 빠지면 안 돼.”지나윤이 말없이 있자 백이천은 말을 이었다.“고진수가 있던 회사도 처음부터 유시진이랑 연결되어 있었어. 어쩌면 고진수가 유시진이 보낸 산업 스파이였을 수도 있어.”“널 궁지로 몰아넣고 자연스럽게 백기사를 끌어들이게 하려고.”백이천의 말은 듣기에는 그럴듯했다.실제로 많은 기업이 적대적 인수를 막기 위해 백기사를 들였지만, 결국 또 다른 인수자에게 넘어간 경우도 적지 않았다.하지만 지나윤은 유시진이 그렇게까지
곧이어 지나윤은 전화받았다.“유시진?”지나윤이 막 말을 꺼내자 수화기 너머로 유시진의 낮은 웃음이 흘러나왔다.[맞아. 내가 아니면 누구일 거라고 생각했어?]유시진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분하고 자신감이 넘쳤다.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지나윤은 유시진이 이경성에게 감금된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아차렸다.“지금 어디야?”[비밀이야.]뜸을 들이는 유시진의 태도에 지나윤은 미간을 찌푸렸다.“하루 무단결근했지? 내일 회사 나오면 인사팀을 통해서 바로 해고할 거야.”지나윤의 말은 단호했고 조금의 여지도 없었다.원래도 유시진과 더 얽히고 싶지 않았기에 이번 기회에 내보낼 구실이 되었다.그러자 전화기 너머에서 잠시 침묵이 흘렀다.“지금은 나를 해고할 때가 아니지 않나?”그 말은 곧 HF그룹에 문제가 생긴 걸 이미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그래서 전화한 이유가 뭐야? 불난 집에 기름 부으려고?”[내가 꼭 불난 집에 기름 붓는 사람이어야 해?][도와주려고 전화한 걸 수도 있잖아.]유시진의 말에 지나윤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지나윤은 계단을 오르지 않고 근처 벤치에 앉아 남자의 말을 차분히 들었다.[HF그룹 지금 스캔들 터져서 주가 폭락한 거 알지? 세이만 테크놀러지라는 회사 조심해.][개인 투자자랑 소액 주주들한테서 주식을 계속해서 그리고 은밀하게 사들이고 있어.]“그 회사는 나도 확인했어. EYSG 그룹이 지배하고 있더라고. 근데 EYSG그룹은 H섬에 등록된 회사라서 지분 구조를 확인할 수가 없어.”[그래 EYSG그룹을 실질적으로 다루는 회사는 K섬에 있는 리셸컴퍼니라는 회사야.”유시진의 말에 지나윤의 가슴 깊은 곳에서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이런 식으로 여러 단계로 얽혀 있는 회사 구조는 한편으로는 세금을 줄이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대부분은 불법적인 사업이나 실체를 숨기기 위해 사용되었다.또한 유시진이 찾아낸 K섬의 리셸컴퍼니 역시 본부가 아닐 가능성이 컸다.“누가 HF그룹 공매도를 걸고 그 틈을 타서 적대적 인수를 하려는 거야?”
또한 좋은 일을 하는 데에는 확인이 필요 없다고 믿었다.특히 그 좋은 일이 고진수의 감사와 인정을 더 받을 수 있는 일이라면 더더욱 그랬다.고아라는 속마음을 숨기는 타입이 아니었다.그랬기에 지나윤은 고아라의 표정만 보고도 이미 그 마음을 다 읽어냈다.“우리 이렇게 오래된 우정이 네 남자친구가 한 말 몇 마디 보다도 못하네.”이게 바로 지나윤이 가장 마음 아파하는 부분이었다.하지만 지나윤은 고아라를 연애에 눈먼 사람이라고 비난하지 않았다.자신 역시 한때 그런 사람이었으니까.한 남자를 사랑하게 되면, 특히 그 사람이 너무나도 뛰어난 사람이라면, 스스로 점점 더 작아지고 그 사람을 위해 모든 것을 내주고 싶어지게 됐다.그렇게 해서라도 그 사랑을 얻고 싶어지기 때문이다.지나윤은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휴지를 꺼내 고아라에게 건넸다.“됐어, 울지 마. 이제 밤도 늦었으니까 얼른 집에 가.”그 말을 끝으로 지나윤은 차 문을 열고 운전석에 올라탔다.흰색 BMW 3시리즈가 고아라 앞을 빠르게 지나갔다.고아라는 눈물을 닦으면서 휴지를 쥔 채, 휴대폰을 꺼내 고진수에게 전화를 걸었다.[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이미 형사님에게서 분명히 들었지만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다.고진수가 어떤 이유로 그랬든, 고아라는 고진수가 자신의 전화를 받지 않을 거라고는 믿지 않았다.‘혹시라도 고진수에게 사정이 있는 건 아닐까?’그래서 다시 한번 직접 만나 본인의 입으로 설명을 듣고 싶었다.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고아라는 고진수에게 50번 넘게 전화를 걸었고 돌아오는 대답은 늘 같았다.없는 번호라는 안내 음성뿐이었다.삼호거리의 오래된 아파트 단지.지나윤은 차를 주차한 뒤, 휴지를 꺼내 눈가를 닦았다.눈가는 붉게 달아올라 있었고 눈에는 실핏줄이 가득 번져 있었다.지나윤은 바로 차에서 내리지 않고 운전석에 앉은 채 감정을 가라앉혔다.오늘 벌어진 일들은 너무나도 많았고 전부 예상 밖이었다.무엇보다 가장 가까웠던 고아라가 산업 스파이의 손에 들린 칼이
“나윤아, 내가 잘못했어! 내가 너무 미안해. 그런데, 그런데 나 진짜 너를 해치려고 한 건 아니야.”고아라는 지나윤의 팔을 세게 붙잡았다.지나윤은 시선을 아래로 떨궜고, 고아라의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굳어 있는 것과 손이 떨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지나윤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고아라는 계속해서 변명했다.“고진수 때문이야. 고진수가 말했어. 네가 돈을 벌고 나서부터는 이익만 생각하고 환자 안전은 안중에도 없다고.”“나는 그 시스템에 진짜 결함이 있을까 봐 걱정됐어. 맞아, 나도 인정해. 고진수한테 잘 보이고 싶어서, 그 사람을 돕고 싶어서 그런 것도 있었어.”“하지만 나도 네가 잘못된 길로 가는 건 원치 않았어. 나는 내가 몰래 시스템만 꺼버리면, 너는 그냥 조금 돈만 잃고 끝날 거라고 생각했어.”“적어도 사람 목숨이 오가는 일은 안 생길 거라고, 그리고 고진수도 도울 수 있고...”고아라는 지금 무슨 말을 해도 이미 늦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그런데도 말을 멈출 수 없었다.어두운 밤, 두 사람은 흰색 BMW 3시리즈 옆에 서 있었다.한 사람은 쉴 새 없이 말을 쏟아냈고 다른 한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래, 이제 축하해. 네 목적은 이뤄졌네, 나 확실히 많이 잃었거든...”“나윤아...”고아라는 지나윤이 자신을 원망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고 그렇게 느낄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지금 고아라가 끼친 피해는 단순히 돈을 조금 잃은 수준이 아니었다.고객 정보 유출, 그것도 건강과 관련된 극도로 민감한 정보였다.이는 어느 업계에서든 중대한 사고였다.지금 HF그룹의 주가는 폭락했고, 시가총액도 크게 줄었으며, 창사 이래 가장 심각한 신뢰 위기에 직면해 있었다.그리고 이 모든 일은 고아라가 지나윤의 노트북에 그 USB를 꽂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고아라는 자신이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질렀다는 걸 분명히 알고 있었다.지나윤이 자신을 용서하지 않더라도 그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아라는 지나윤이
“아라야, 너 무슨 짓 한 거야?”지나윤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오자 고아라는 온몸이 덜덜 떨렸다.“나윤아, 나...”고아라는 몸을 돌려 지나윤을 마주 봤다.지나윤은 손에 나이프와 포크, 접시를 들고 있었고, 경계하는 시선은 먼저 고아라의 얼굴에 닿았다가 곧 뒤쪽에 있는 노트북으로 향했다.지나윤은 원래 자신의 노트북에 없던 USB를 발견하는 순간,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그래서 곧장 달려가 USB를 뽑아낸 뒤 노트북 화면을 확인했다.화면에는 빼곡한 코드가 여전히 실행되고 있자, 지나윤은 곧바로 정보관리팀 책임자를 불러냈다.그때 휴대폰이 갑자기 울렸는데 발신자는 이원호였다.지나윤은 전화받지 않고 바로 끊었으나 방금 끊은 전화가 다시 걸려 왔다.발신자는 여전히 이원호였다.이에 지나윤은 눈살을 찌푸리며 다시 전화를 끊었다.지금은 이원호의 전화를 받을 때가 아니었다.이씨 집안에 아무리 큰일이 있어도 HF그룹보다 급한 일은 아니었다.‘어차피 나는 더 이상 이씨 집안 사람이 아니야.’낮에서 밤으로 바뀌었다.경찰서.경찰 이호진은 지나윤과 고아라 모두에게 진술받았다.“나윤아, 나, 나도 몰랐어. 진짜 몰랐어. 그 USB 안에 바이러스가 들어 있을 줄은...”“고진수가 말하길, 이걸로 너희가 개발한 AI 보조 진료 시스템을 끌 수 있다고 했어. 그 시스템에 결함이 있어서 계속 사용하면 환자한테 위험하다고 했고...”“나, 난...”고아라는 온몸을 바들바들 떨며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고 지나윤 앞에서 혀가 굳어버린 듯했다.USB를 지나윤의 노트북에 꽂는 순간 경보음이 울릴 줄은 상상도 못 했다.그리고 그 안의 프로그램이 치명적인 바이러스라는 것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그 바이러스는 HF그룹 기밀 시스템의 방화벽을 직접 공격해, FZZL 시스템의 모든 고객 정보를 외부로 유출했다.순식간에 FZZL프로그램을 도입해 사용하던 의료 기관들이 모두 혼란에 빠졌다.이 사건은 곧바로 인터넷에서 큰 파장을 일으켰다.하지만 단순히 온라인을 넘어
“아라야...”고아라를 보자마자 지나윤의 두 눈이 환하게 빛났다.고아라의 손에는 케이크 상자가 들려 있었는데 지나윤은 그 케이크가 분명 자신을 위해 준비된 것임을 알 수 있었다.‘화해를 위해서 이걸 준비한 건가?’“얼마나 기다렸어? 앉아서 기다리지 왜 이러고 있어?”지나윤은 고아라를 자신의 사무실로 안내했다.고아라가 대표실에 들어오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사무실은 넓었고 고아라는 한눈에 책상 위에 놓인 노트북을 발견했다.“나윤아, 지난번에는 내가 잘못했어. 미안해. 내가 오해했어...”고아라는 어색하게 사과하면서 케이크를 상자에서 꺼냈다.“이 케이크는 내가 직접 만든 건데, 너...한번 먹어볼래?”지나윤은 잠시 멈칫했다.고아라가 이렇게 수줍고 조심스럽게 구는 모습은 예상하지 못했다.“무슨 소리야? 아라야, 네가 직접 구운 케이크인데 내가 왜 안 먹겠어?”“그럼 다행이다...”고아라는 억지로 웃어서 그런지 입꼬리가 약간 굳어 있었다.“아, 미안 나윤아, 케이크가 이렇게 큰데 내가 칼이랑 포크, 접시를 준비하는 걸 깜빡했어...”“괜찮아, 내가 준비할게.”지나윤은 자연스럽게 내선 전화를 눌렀다.비서인 유시진이 무단으로 출근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장우영을 부르려고 했다.그러나 내선 전화를 걸기도 전에 고아라가 갑자기 전화를 빼앗아 끊어버렸다.이에 지나윤은 의아하게 고개를 기울였다.“왜 그래? 아라야?”“아,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고아라의 눈에 순간 당황한 기색이 스쳤다.“다른 사람한테 부탁하지 말자. 나윤아, 네가 직접 접시 몇 개만 가져와 줘! 나 이번에 회사 몰래 나온 거라서 혹시 누가 보면 좀 곤란해...”고아라의 걱정은 지나윤에게 잘 이해되지 않았다.설령 장우영에게 칼과 포크, 접시를 준비해 달라고 해도, 고아라를 봤다고 해서 그 회사에 가서 일러바칠 일은 없을 터였다.지나윤은 고아라를 바라보며 오늘따라 어딘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하지만 고아라가 신경 쓰인다고 하니 접시를 가져오는 일쯤은
이전에도 지나윤은 조승헌에게 같은 태도를 보였다.사진기자를 상대로 한 전자기기 해킹을 부탁했을 때도 그랬고, 조승헌이 먼저 나서서 심고혁의 약점을 찾아 주겠다고 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조승헌이 ‘채영이’라고 부르면, 지나윤은 아예 응답하지 않았다.하지만 이번에는 호칭에 더 이상 집착하지 않았다.“실검은 네가 내려 준 거지?”[정상적인 방법은 아니었지만 추적은 못 할 거야.]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조승헌의 목소리는 확신에 차 있었다.이에 지나윤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조승헌은 겉으로는 이씨 집안의 운전기사이자 비서였지만
그 미소를 보는 순간, 지나윤은 잠시 멍해졌다.지나윤도 가볍게 웃어 보이자 오히려 유시진의 입가에 걸려 있던 미소가 서서히 내려앉았다.유시진은 지금의 지나윤의 웃음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그 웃음이 마치 말없이 자신을 도발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차갑고 얇은 입술이 살짝 벌어졌고, 유시진은 파티장 안의 서늘한 공기를 한 번 들이마셨다.결국, 유시진은 지나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인공으로 배양한 보석은 하이엔드 주얼리 업계에서는 사실상 가짜나 다름없어요. 박시현 씨가 여왕님께 주의를 드린 것도 순수한 호의라고 생
창문의 유리는 이미 깨져 있었고, 그 덕분에 악취가 가득한 창고 안으로 차가운 바깥 공기가 조금 스며들고 있었다.창문 틈으로 달빛이 비쳐 들어오는 것을 보아, 밖은 이미 어두운 밤이었다.지나윤은 전태지에게 기절당한 뒤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짐작했다.작은 창문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지나윤은 아랫입술을 꼭 깨물었다.실망스러웠다.창문은 너무 작았고 위치도 높아, 기어오를 수조차 없었고, 설령 올라간다 해도 빠져나갈 수 없었다.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지나윤은 깊게 숨을 들이쉬며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공
이준혁이 뒤에서 자신을 위해 그렇게 많은 도움을 준 사실에 대해, 지나윤은 마음속으로 감사하고 있었다.하지만 그때의 도움은 지금에 와서는 되레 반작용이 되어 돌아왔다.저축한 돈이 거의 바닥날 때까지 위약금을 물고 있던 상황에서, 이명우마저 투자를 철회하자 지나윤의 회사는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이 되었다.고급 맞춤 고객들은 이미 오래전에 지나윤을 차단했고, 협회에서도 제명 처분이 내려졌다.그것과 동시에, 이준혁의 파혼으로 가장 직접적인 피해자가 된 박시현은 온라인에 장문의 글을 올렸다.그 글에는 이준혁을 비난하는 말은 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