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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9 화

두 사람은 행사장으로 들어섰고, 선물상자를 든 정계산이 한 눈에 들어왔다. 그는 몸을 가만 두지 못하고 왔다갔다 하며 몹시 불안해 보였다.

“아빠.”

정몽연이 그를 불렀다.

“너희들이 어떻게 온게냐?”

정계산이 의외인 듯 말했다.

그러자 정몽연이 강책을 가리키며 말했다.

“책이가 친구에게 부탁해서 두 자리를 구해왔어, 우린 그냥 와서 구경이나 하다 가려고.”

“강책이 참가 자격을 구할 수 있다고?”

“제가 서경에서 군 생활을 했을 때 친해진 저의 전우가 이번 취임식을 준비하는 분과 아는 사이여서요, 그 사람을 통해서 자리를 구하게 됐습니다.”

강책이 웃으며 말했다.

정계산이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런 거였군.”

“아빠, 여기서 뭐 하러 빈둥거리고 있는 거야?”

정몽연이 물었다.

“선물을 전해줄 일을 고심하고 있지 않니? 양준 가게에서 파는 술을 사 왔는데, 문제는 정말 줘도 되는지 의문이라는 거다. 한 병에 천 원도 되지 않는 싸구려 술을 선물하는 게 정말 맞는다고 생각하니?”

정계산이 미간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그러자 강책이 말을 꺼냈다.

“그 책임자가 병사들과 생사를 같이 한 관리라면 이 술을 분명 좋아할 겁니다.”

“그랬으면 좋겠군.”

이 때, 배불뚝이 중년 남성 몇 명이 다가왔고, 그 중 한 명은 머리가 벗어져 있고 안경을 쓰고 있었다.

“아이고, 정 어르신, 이런 데서 다 만나네요.”

“조 어르신 아닌가.”

정계산이 정몽연과 강책에게 말했다.

“이 분은 시장부의 조동 아저씨란다, 내 동료지.”

정몽연은 정계산의 말을 듣자 곧장 알아차렸다. ‘조 아저씨’는 정계산의 철천지원수였고, 평소에는 두 사람 사이가 화목해 보였지만 실제론 곳곳에서 서로 죽일 듯이 싸우는 관계였다.

두 사람은 모든 것을 서로 겨루고 있었고, 이번에는 같은 자리를 놓고 암암리에 겨루고 있었다.

이번 취임식에서 잘 보이면, 분명 상대를 누르고 부주임의 자리와 한 발자국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정계산은 집에서 조동 얘기를 꺼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고, 대부분 좋은 말은 아니었기 때문에 정몽연도 조동에 대해 호감이 있지 않았다.

“조 아저씨 안녕하세요.”

정몽연이 냉담하게 말했다.

“오, 몽연이 오랜만이구나. 눈 깜짝할 사이에 이렇게 크다니.”

조동은 실눈을 뜨며 정몽연을 바라보았고, 옹졸하게 침을 한 번 꿀꺽 삼켰다.

정몽연은 몹시 불쾌해하며 뒤로 한 걸음 물러서 정책 뒤에 섰다.

“이 분은?”

조동이 강책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 사람은 내 사위, 강책이라네.”

정계산이 대답했다.

“아, 그 아버지가 실종되고, 남동생은 자살하고 갈 길이 없어서 장인 집에서 빈둥댄다는 그 못난이? 내 익히 들어서 알지.”

조동이 신나서 말을 했다.

그러자 정계산과 정몽연의 얼굴이 동시에 일그러졌다.

조동은 강책의 기분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정 어르신, 어떻게 저런 사람을 어르신 집에서 놀고먹게 놔둘 수 있습니까? 저였으면 바로 집에서 쫓아내 딸과 이혼시켰을 텐데. 조금 안 좋게 말하자면, 저 같이 늙은이가 어르신 사위가 돼도 저 밥통보다는 사람 구실할 거 같은데 말이죠.”

“조 어르신!’

정계산이 소리치며 조동을 불렀다.

그러자 조동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이고, 화나셨어요? 저는 그저 농담한 거일 뿐인데, 하하, 신경 쓰지 마시죠. 그, 제가 다른 볼 일이 있어서 이만.”

조동은 일부러 강책의 옆을 지나치며 도발적인 눈빛으로 그를 쳐다본 뒤 강책의 뒤에 있는 정몽연을 바라보다가 참지 못하고 그의 아랫입술을 햝았다.

그의 눈빛에서 새어나오는 옹졸한 웃음기가 사람을 메스껍게 했다.

뒤에 있던 조동의 사람들도 그를 따라 자리를 벗어났다.

그들이 자리를 뜨자 정몽연이 발을 동동 구르며 말했다.

“저 쓰레기 만도 못한 인간!”

정계산의 얼굴은 아직도 일그러져 있었고, 그는 화도 났지만 어쩔 수 없다는 기분이 더 컸다.

조동의 말은 듣기 거북하고 사악했지만, 그의 말에 조금의 일리는 있었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벌써부터 딸을 강책과 이혼시키고, 그 못난 놈을 집에서 내쫓았을 텐데. 정계산은 자신이 너무 인자한 것이 아닌가 생각도 했다.

정계산은 무심코 강책을 쳐다보다가 혀를 끌끌 차며 고개를 돌렸다.

이 때,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건 저 멀리 조동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강책의 눈빛에서 살기가 묻어난다는 것이었다.

그는 ‘어릿광대’의 연기를 보는 것을 좋아하지만, 다른 사람이 그의 아내를 업신여기는 것을 결코 좋아하지 않았다.

강책은 무슨 일이든 담담하게 넘길 수 있었지만, 정몽연과 관련된 일은 절대 쉽게 넘기지 못한다.

정몽연은 강책의 유일한 발작버튼이었다.

이 버튼을 누르면, 아무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그는 말없이 휴대폰을 꺼내들었고, 어떤 내용을 입력했는지, 누구에게 보냈는지도 파악할 수 없었다. 그리곤 그는 휴대폰을 다시 집어넣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정몽연의 곁으로 돌아갔다.

“취임식이 곧 시작하니 자리를 찾아서 우선 앉자.”

강책이 말했다.

“그래.”

두 사람은 지정석에 앉았고, 천천히 막이 오르는 것을 지켜보았다. 사회자는 엄숙하게 이번 취임식의 내빈을 소개했다.

마침내, 미스터리한 책임자가 등장했다.

만인이 주목하는 가운데 건장한 체격을 가진 성인 남성이 걸어 들어왔고, 그가 입을 열자 목소리가 우렁차고 힘이 있었다.

순식간에 행사장에 있던 많은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역시 서경의 고급 장교답게 인물이 훤하네.”

“이런 남자와 결혼한다면, 매일 밤 웃음이 끊이지 않을 거 같아. 게다가 매일 밤 하고 싶을 거 같은걸. “

“너희들도 진 짜 양심없다. 저런 남자가 너네를 거들떠보기라도 할 거 같니?”

사람들의 말이 오가는 가운데, 남성이 말을 하기 시작했다.

“내빈 여러분, 안녕하세요. 제 소개를 하겠습니다. 제 이름은 목양일이고, 이번 취임식의 책임자입니다.”

“우선, 여러분들께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사실 저는 세 구역의 새로운 책임자가 아닙니다. 저는, 그분의 부하일 뿐입니다.”

순식간에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놀라 소리쳤다.

부하 직원 한 명도 이렇게 남다른데, 책임자 본인은 더욱 대단하지 않을까.

목양일은 말을 계속 이어갔다.

“그 분은 얼굴을 드러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시고, 이런 겉치레를 좋아하지 않으셔서 제가 대신 이번 취임식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본격적인 연설을 시작하겠습니다.”

목양일이 단상에서 연설을 할 때, 아래에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설마, 그럼 책임자가 얼굴을 보이지 않겠다는 거야?”

“이건 너무 아니지 않나?”

“쉿, 조용히 말해. 목숨 잃고 싶어? 총책임자가 겉치레를 싫어한다는 말 못들었어?”

“휴, 좀 실망인걸. 책임자가 어떻게 생겼는지 보지도 못하고.”

사람들의 의견을 듣자 정몽연이 강책의 옆으로 바짝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넌 서경에서 5년이나 근무했는데, 누가 책임자인지 못 맞혀? 어떻게 생겼어? 잘생겼어?”

강책이 눈동자를 굴리며 대답했다.

“음, 대답하기 좀 힘든걸. 넌 그냥 나만 보면 돼, 군대에 있는 사람들은 다 나랑 비슷하거든.”

“네가 어떻게 총책임자랑 견줄 수 있어?”

“그럼 내가 총책임자면?”

정몽연이 그를 한 번 흘겨보며 말했다.

“너랑 말 안해, 사람이 진지하지를 못 해.”

강책은 웃는 듯 마는 듯 정몽연을 바라보다가, 그도 잘 모르는 그의 아내가 사실은 매우 귀엽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또, 매우 아름답기까지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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