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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화

Author: 봄빛산새
차에 탄 한가을의 휴대폰으로 서준혁이 보낸 메시지들이 쉴 새 없이 쏟아졌다.

저장된 이름 옆의 빨간 하트 이모티콘을 보니 지난날의 애틋했던 감정들이 스쳐 지나갔다.

소년 소녀의 감정은 풋풋하면서도 진실했다.

서로 좋아하는 걸 알면서도 조심스러워하다가, 재난을 겪고 나서야 겨우 마음을 확인했었다.

하지만 아무리 진실한 감정이라도 언젠가는 퇴색하기 마련이었다.

한가을은 한참 동안 화면을 응시하다 결국 서준혁의 모든 연락처를 차단했다.

모든 일을 끝내고 후련한 듯 한숨을 내쉬던 그녀는 이내 김세희와 눈이 마주쳤다.

당황해서 변명거리를 찾던 찰나, 김세희가 다정하게 머리를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가을아, 너랑 준혁이 사이는 우리도 대충 눈치채고 있었어. 우리가 그렇게 막힌 사람들은 아니잖니. 선만 넘지 않는다면 연애하는 것도 괜찮지만, 갑자기 왜 그렇게 준혁이를 싫어하게 된 거니?”

“악몽을 꿨거든요. 깨어나 보니 갑자기 마음이 식어버렸어요.”

“악몽?”

한가을은 눈을 내리깔며 쓴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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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잔인한 환생   제27화

    한가을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고개를 저었다.“아니. 엄마 친구 소개로 만난 사람이야. 집안끼리도 잘 맞아서 곧 결혼할 거야.”서준혁은 주먹을 꽉 쥐고 포기하지 못한 채 물었다.“들어보니 사랑해서 하는 결혼은 아닌 것 같은데.”한가을이 웃으며 대꾸했다.“사랑이 있든 없든 그게 왜 중요해? 있어 봤자 부질없다는 거 이미 겪어봤잖아.”서준혁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한참의 침묵 끝에 그는 억지 미소를 지으며 진심에도 없는 축복을 건넸다.“그래... 행복해라.”“너도 잘 지내.”한가을은 예의 바르지만 거리감이 느껴지는 미소를 짓고는 카페를 나섰다.서준혁은 멀어져 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두 사람의 인연은 이제 완전히 끝이었다.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던 한가을의 시야에 낯익으면서도 이질적인 누군가의 실루엣이 들어왔다.세월의 풍파를 정면으로 맞은 듯 초췌한 얼굴의 한 여자가 빛바랜 옷을 입고 노점상과 악을 쓰며 싸우고 있었다. 그녀의 곁에는 어린 자식 둘이 자지러지게 울어대고 있었다.임유라였다.몇 년 만에 마주한 그녀의 삶은 몹시도 고달파 보였다.실랑이는 계속되었지만 한가을은 더 이상 지켜보지 않았고 신호가 바뀌자마자 미련 없이 차를 몰아 자리를 떠났다.과거의 일들은 이미 가슴 속에서 털어냈기에 이제 더는 중요하지 않은 사람 때문에 마음을 어지럽히고 싶지 않았다.그날 이후 서준혁을 만나는 일은 없었다. 대리인마저 다른 사람으로 교체된 것을 보며 한가을은 그도 이제는 마음을 정리했을 거라 생각했다.시간은 쏜살같이 흘러 어느덧 가을의 결혼식 날이 밝았다. 단풍이 그 어느 때보다 찬란하게 물든 늦가을이었다.예식을 마친 한가을은 서준혁이 20억의 축의금과 함께 특별한 선물을 보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급스러운 상자 안에는 단풍잎을 모티프로 한 고가의 주얼리 세트와 두툼한 편지 한 통이 들어 있었다.“한번 읽어봐.”남편이 다가와 한가을을 다정하게 감싸 안았다.한가을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이런 건

  • 잔인한 환생   제26화

    한가을은 대꾸도 없이 부모님을 따라 차에 올라탔다.곁에서 지켜보던 집사가 안쓰러운 듯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준혁 도련님, 이제 그만 돌아가세요. 몸 상하게 이게 무슨 짓입니까.”하지만 서준혁에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듯 한기 서린 몸을 바들바들 떨며 중얼거렸다.“후회스러워... 대체 왜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멀어지는 엔진 소리가 그를 현실로 끌어내리자 서준혁은 눈을 부릅뜨고 비틀거리며 차를 쫓아갔다.“가을아! 가지 마!”하지만 한계에 다다른 몸은 더는 버티지 못했다. 그는 몇 걸음 못 가 울컥 피를 토해내며 눈밭 위로 고꾸라졌다.차에 앉아 있던 한가을은 무심결에 뒤를 돌아보았고 마침 서준혁이 무력하게 바닥으로 고꾸라지는 모습을 목격했다.눈발 속에서 보이는 그의 야윈 뒷모습은 한없이 쓸쓸해 보였으나 이제 그녀에게 그 모습은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한가을은 일렁이던 감정을 추스르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Y국에서의 생활은 평온했다. 한가을은 입학 후 많은 친구를 사귀었고 예전 동창들도 앞다투어 안부를 물어왔다.호기심 많은 이들은 그녀와 서준혁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대놓고 묻기도 했다. 남들이 보기에 두 사람은 그야말로 천생연분이었기 때문이다.한가을은 그때마다 적당히 둘러대며 말을 아꼈다. 회귀라는 사실은 누구에게도 믿기 힘든 기상천외한 이야기였으니까.그녀는 친구들을 통해 서준혁의 근황을 전해 들었다. 병원에서 깨어난 그가 Y국으로 가겠다며 난동을 피우다 결국 서 회장에게 호되게 꾸지람을 듣고 근신 처분을 받았다는 소식이었다.그날 이후 그는 거짓말처럼 조용해졌다. 서씨 가문의 후계자 후보는 차고 넘쳤고 그가 아무리 우수해도 언제든 대체될 수 있다는 현실을 깨달은 모양이었다.그 소식을 들어도 한가을의 마음엔 아무런 동요가 일지 않았다.서준혁의 인생 궤적은 전생과 다를 바 없었지만, 그 삶 속에 더 이상 한가을은 존재하지 않았다.그거면 충분했다.세월은 쏘아 올린 화살처럼 흘러 어느덧 10년이 지났고 한가을은 가업을 성공

  • 잔인한 환생   제25화

    쾅 소리와 함께 문을 박차고 들어온 서준혁이 가방에 달린 부적을 거칠게 낚아채 바닥으로 내동댕이쳤다.한가을은 분노하며 서준혁을 밀쳐냈다.“너 미쳤어? 너랑 상관없는 일이니까 제발 좀 꺼져!”그녀는 바닥에 떨어진 부적을 챙긴 뒤 강우진에게 미안하다며 사과했다.서준혁은 핏발 선 눈으로 한가을을 노려봤다.“이제 저 녀석 받아주기라도 하겠다는 거야? 꼭 이렇게까지 나를 비참하게 만들어야겠어? 왜 나한테는 단 한 번의 기회도 안 주는 건데!”한가을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눈을 흘기며 차갑게 쏘아붙였다.“정신병원에나 가서 정밀 검사나 받아봐!”서준혁은 분노로 온몸을 부르르 떨며 강우진을 잡아먹을 듯 노려보았다.“경고하는데, 가을이는 내 거야! 헛꿈 꾸지 마!”강우진은 미간을 찌푸리며 차분히 대꾸했다.“서준혁, 가을이는 누구의 소유물도 아니야. 누군가를 좋아한다면 그 사람의 의사부터 존중하는 법을 배워.”서준혁이 짐승처럼 포효했다.“네까짓 게 뭔데 나를 가르치려 들어? 네 시커먼 속내 모를 줄 알아? 당장 가을이한테서 떨어져!”때마침 수업 종이 울리고 교실로 들어온 선생님이 험악한 분위기를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너희 지금 뭐 하는 거야? 수업 시작한 거 안 보여!”한가을은 서준혁이 있는 한 절대 조용히 넘어갈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선생님께 사과를 전했다.“선생님, 저희 집에서 연락받으셨죠? 오늘은 친구들에게 마지막 인사만 하러 온 거예요. 전 이만 가볼게요.”말을 마친 한가을은 정중히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당황해하는 친구들을 뒤로한 채 교실을 빠져나갔다.“가을아!”서준혁이 다급히 뒤쫓으려 했지만 선생님이 앞을 가로막았다.“서준혁, 상황 설명부터 해!”서준혁은 막무가내로 선생님을 뿌리치고 나갔지만 한가을이 탄 차는 이미 멀어진 뒤였다.그는 미친 듯이 한가을의 집으로 쫓아갔으나 경호원들에게 가로막혀 문턱조차 넘지 못했다.그때 한성훈이 나타나 서늘한 목소리로 쐐기를 박았다.“우리 가족은 내일 이민을 떠난다. 그러니 헛된 희망은 버려.

  • 잔인한 환생   제24화

    한가을은 망설임 없이 임유라를 가리켰다.“아빠, 엄마. 다른 애들은 몰라도 얘는 후원 명단에서 빼주세요.”한성훈과 김세희는 곧바로 수긍했다.“알았다, 네 마음대로 하렴.”자신의 우수한 성적이라면 당연히 후원 대상이 될 줄 알았던 임유라는 한가을의 말 한마디에 기회가 날아가자 그 자리에서 울음을 터뜨렸다.“제발 도와주세요! 저 정말 공부가 하고 싶어요. 여기서 멈추고 싶지 않단 말이에요!”한가을은 임유라가 회귀자가 아님을 간파하고 무표정한 얼굴로 대꾸했다.“그럼 딴 데 가서 알아봐. 팁 하나 줄게. 서씨 가문의 막내 도련님 서준혁이라고, 그 애를 찾아가면 네 소원을 들어줄지도 몰라.”그러자 임유라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제발요! 이렇게 부자시면서, 저 하나 더 돕는다고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니잖아요!”한가을은 더 이상 그녀와 엮이고 싶지 않아 경호원들에게 지시했다.“얘 병원으로 데려가서 서준혁이랑 만나게 해 줘요.”서준혁이 죽고 못 살던 여자니, 이번 생엔 자신이 직접 다리를 놓아주기로 했던 것이다.경호원들은 임유라의 비명 섞인 항의를 무시한 채 그녀를 밖으로 끌고 나갔다.한성훈과 김세희는 아무런 불만 없이 뒷정리를 마친 뒤 한가을을 자리에 앉혔다.“서류 절차는 다 끝났다. 내일 학교 가서 친구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렴. 모레면 우린 떠날 수 있어.”“알겠어요.”기분 좋게 숙면을 취한 한가을은 학교로 향했다. 하지만 차에서 내리자마자 벤틀리 한 대가 그녀의 앞을 가로막더니 서준혁이 모습을 드러냈다.수척해진 그의 안색은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한 유리 공예품처럼 위태로워 보였다.기어이 퇴원을 강행한 모양이었다.한가을은 내심 의아했지만 아무런 대꾸 없이 그를 못 본 척 지나치려 했다.“가을아!”서준혁이 그녀를 붙잡아 세웠다.“이 상황에서도 끝까지 날 속일 셈이야?”한가을이 싸늘하게 되물었다.“내가 뭘 속였다는 건데?”서준혁은 그녀를 뚫어지게 응시하며 몰아붙였다.“임유라를 병원으로 보낸 건 네가 회귀했다는 확실한 증거야

  • 잔인한 환생   제23화

    “서씨 가문의 도련님이 한씨 가문의 아가씨 때문에 호수에 뛰어들었대. 이마까지 깨졌다는데 정말 지독한 사랑이네!”“열 몇 살짜리가 사랑을 알긴 뭘 알아, 그저 충동적인 거지. 나중에 분명 후회할걸?”“그나저나 그 아가씨도 참 독하네, 사람이 그 정도로 나오면 좀 흔들릴 법도 한데.”“아마 그런 방식이 부담스러운 거겠지. 그나저나 그 도련님은 혼수상태에 고열까지 겹쳤다던데.”한가을은 병실에 돌아오자마자 간호사들이 오늘 밤 일을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었지만, 못 들은 척 씻고 잠자리에 들었다.한편, 서준혁은 이어지는 고열로 몽롱한 사투를 벌이고 있었고 한밤중에는 환각마저 보이기 시작했다.전생의 한가을이 눈시울을 붉힌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그녀의 옷은 갈기갈기 찢겨 있었고 가슴팍에는 서늘한 단검이 깊숙이 박혀 피가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가을아!”서준혁은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에 눈물범벅이 되어 소리쳤다.손을 뻗어 그녀를 만지려 했지만 닿기 직전 그녀는 사라졌고 눈을 뜨니 어둠만이 가득한 병실이었다.베개가 눈물로 젖어 들었지만 서준혁은 한참 동안 천장을 응시하다 가슴을 움켜쥐고 눈을 감았다.“가을아, 난 절대 포기 안 해.”그 후 며칠 동안 서준혁은 껌딱지처럼 한가을의 곁을 맴돌았다.그녀가 산책을 나가면 선물을 들고 쫓아갔고 좋아하는 꽃을 보냈다.매번 무시당하거나 버려졌지만 그는 결코 멈추지 않았다.한가을이 병실에 머무는 동안 서준혁은 늘 문밖 의자를 지켰다. 간호사들도 처음엔 만류했으나 결국 포기하고 그를 내버려 두었다.그렇게 일주일이 흘러 한가을은 퇴원할 정도로 회복했지만, 서준혁은 매일 고통 속에 침잠한 탓인지 몸 상태가 더욱 악화되었다.퇴원 당일, 한가을이 짐을 챙기고 있을 때 젊은 남자가 병실로 급히 들어왔다.“한가을 씨, 저희 도련님이 다시 고열로 쓰러지셨습니다. 지금 반혼수 상태인데 한 번만이라도 봐주시면 안 될까요?”서준혁의 개인 비서였다. 한가을은 그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청아하면서도 서늘한 목소리로 대

  • 잔인한 환생   제22화

    때는 이미 만추에 접어들어 밤공기가 겨울처럼 차가웠다. 주변 사람들은 한가을의 서슬 퍼런 말에 수군거렸다.“저 총각 몸도 안 좋아 보이는데, 아가씨가 너무 박하네.”“사정도 모르면서 함부로 말하지 마요.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누가 알아요?”사람들의 말대로 서준혁은 환자였다. 병원으로 오는 길에 미열이 오르기 시작해 안색은 이미 종잇장처럼 창백했다.찬 바람에 연신 기침을 내뱉던 서준혁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가을아, 정말이지?”한가을이 차갑게 대꾸했다.“믿기 싫으면 관두든가.”서준혁은 주먹을 꽉 쥐더니 미소를 지어 보였다.“그래, 네 말 믿고 뛰어들게!”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서준혁은 인공호수를 향해 전력 질주했다.“어머, 진짜 뛰어들려나 봐!”“빨리 막아! 사람 죽겠어!”구경꾼들이 비명을 질렀지만 정작 나서는 이는 없었다.그사이 서준혁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울타리를 넘었고 이내 거대한 물보라를 일으키며 차가운 수면 아래로 자취를 감췄다.순식간에 호숫물이 그를 집어삼켰다. 살을 파고드는 추위와 통증이 바늘로 온몸을 찌르는 듯 동시에 밀려왔다.서준혁은 물속에서 거칠게 허우적거리다 간신히 가장자리로 헤엄쳐 나와 늘어진 마른 풀을 붙잡았다.그리고는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가을아, 네가 말한 대로 했어. 이제 나 믿어줄 거야?”한가을은 설마 서준혁이 그 많은 사람 앞에서 정말로 뛰어들 줄은 몰랐기에 내심 당혹스러웠다.하지만 마음이 약해지기는커녕 그를 향한 혐오감은 역대급으로 치솟았다.참으로 지독한 아이러니였다.이렇게 목숨까지 걸 정도로 절절하게 사랑한다는 남자가 전생에선 바람을 피웠다니.도대체 무엇이 진실이란 말인가.당장이라도 뒤돌아 가버리고 싶었지만, 의료진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한가을은 끓어오르는 화를 누르며 차갑게 뱉었다.“일단 올라와서 얘기해!”서준혁의 눈에 순간적으로 희망의 빛이 서렸다. “응! 금방 올라갈게!”주위 사람들의 도움으로 뭍으로 올라온 그는 물기를 닦을 새도 없이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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