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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화

Author: ikkuyot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04 05:3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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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우는 집이라면 누구나 그렇듯, 주말은 늘 고민거리였다. 특히 다희가 있을 때는 주말의 대부분을 그녀가 아이와 함께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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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엔 회사에 묶여 있던 그녀는, 주말만큼은 아이에게 시간을 온전히 쏟았다. 좋은 아내는 아니었을지언정, 나쁜 엄마만큼은 되고 싶지 않았던 그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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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제, 주말의 돌봄은 고스란히 준호의 몫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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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호는 처음엔 혼자서 아이를 데리고 나가보려 했다. 하지만 혜정은 말없이 그 곁을 지켰다. 아이 엄마의 빈자리를 그녀는 알았고, 그 자리를 비워두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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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정은 아이에게 줄 간단한 도시락을 싸고, 외출에 필요한 옷과 물건들을 차근차근 챙겼다. 큰소리나 부산함 한번 내색하지 않고 준비하는 그녀의 손길을 준호는 조용히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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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숙한 동작, 익숙한 리듬. 그 안에 스며든 수십 년 삶의 무늬. 그리고—어젯밤 떠올린 상상이 불현듯 가슴 한켠을 찔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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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요, 장모님... 내가 무슨 생각을 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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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시선에는 고개를 들 수 없는 마음이 얹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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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의 햇살은 이마를 눌렀고, 저녁의 바람은 팔을 스치며 끌어당겼다. 덥고도 쌀쌀한, 익숙한 일상이 미묘하게 어긋나는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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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날, 혜정은 오랜만의 외출을 앞두고 옷장을 열었다. 이사를 했음에도 아직 풀지 않은 케리어에서 꺼낸 원피스가 오늘의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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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평소에도 돈을 목적 있게 쓰는 사람이었다. 불필요한 자리에선 삼천 원짜리 티셔츠도 마다하지 않았지만, 필요한 자리에선 꼭 그 차림에 맞는 백을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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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름이 가늘게 패인 손가락엔 늘 금붙이나 다이아로 그 흔적을 덮었고, 엄마나 할머니의 자리로 돌아왔을 때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깔끔하고 정갈한 자세로 돌아왔다. 그녀는 사치와 검약을 적절히 분배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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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원피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눈에 띄게 비싸 보이지는 않았지만, 재질과 색감, 실루엣 하나까지 무심히 고른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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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에 신은 구두는 차 조수석의 광택을 따라 반짝였고, 그녀가 타자 공간 안은 샴푸와 향수가 뒤섞인 향기로 채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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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호는 그 향기에서 무심코 다희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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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희 역시 그런 여자였다. 겉은 담백했지만 포인트를 정확히 아는 여자. 명품 한두 개로 균형을 맞추고, 정해진 자리에선 절대 후줄근하게 보이지 않던 태도. 지금의 혜정과 닮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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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안, 준호는 힐끔 조수석을 보았다. 모호한 실루엣이 겹쳐들자, 순간 두 여자가 하나로 포개지는 듯했다. 그리고 그때—어젯밤의 장면들이 불쑥 되살아났다. 향기와 움직임이 다희와 겹쳐지는 찰나, 그의 머릿속은 아찔하게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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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히 모녀가 아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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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호는 서둘러 창밖을 향했다. 황금빛 햇살이 조수석에 내려앉아 있었고, 그 빛 위에서 혜정의 손가락에 낀 반지가 조용히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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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들이가 거의 끝나가던 무렵, 햇살은 주황빛을 길게 늘어뜨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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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킥보드가 고르지 못한 인도를 달리던 순간, 앞바퀴가 턱에 걸렸다. 아이는 앞으로 휘청이며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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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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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뒤따르던 혜정이 손을 뻗었지만 제대로 붙잡지 못했고, 그녀 역시 중심을 잃은 채 무릎부터 바닥에 주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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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어머님도 괜찮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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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호가 서둘러 달려왔다. 아이도 놀랐는지 울음을 터뜨렸고, 혜정은 무릎을 감싸쥔 채 얼굴을 찡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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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찢어진 치마 자락이 바람에 젖혀 올랐다. 허벅지 안쪽의 매끄러운 살결, 그 위로 아슬하게 드러난 팬티의 윤곽까지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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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호는 숨을 삼켰다. 황급히 아이를 달래며 가방을 뒤져, 혹시나 싶어 챙겨온 타월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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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거라도 두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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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무릎을 오므린 채 앉았고, 준호는 타월을 펼쳐 허리 쪽으로 감싸주려 다가갔다. 그 순간, 그의 손등이 스치듯 그녀의 엉덩이에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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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럽고도 묘하게 단단한 감촉. 찰나였지만, 어젯밤 영상 속 장면이 떠올랐다. 처음 손끝이 살에 닿았을 때의 긴장과 떨림이 현재로 이어진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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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으세요…? 상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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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호는 애써 시선을 피하며 물었다. 그러나 이미 너무 많은 것을 보았고, 깊이 느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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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정은 아이를 끌어안은 채 괜찮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의 울음은 조금씩 잦아들었고, 상황은 차분히 진정되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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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준호의 눈에는 타월 아래로 드러나던 희미한 곡선, 그리고 방금 스쳐간 손끝의 촉감이 오래도록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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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이는 금세 잠에 들었다. 뒷좌석 카시트에서 느리게 오르내리는 숨결이 유일한 리듬이었다. 집까지는 삼십여 분 남짓. 아이를 재우느라 틀었던 동요의 볼륨을 줄이자, 조용한 배기음만이 차창을 가볍게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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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라도 틀 걸 그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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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금에서야 틀기엔 오히려 어색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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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얘기를 몇 마디 주고받은 후 두 사람 사이엔 다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무슨 말을 꺼낼까 고민하던 찰나, 준호의 뇌리에 어젯밤의 장면이 번쩍 스쳤다. 그 방 너머 들려오던 신음소리. 베개에 묻혀 짓눌리던 숨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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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호는 상상을 밀어내듯 억지로 말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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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면증은… 좀 괜찮으세요? 불편하시면 약을 좀 드셔보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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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정은 창밖을 본 채 짧게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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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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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고 낮은 말이었다. 그러곤 잠시, 웃는 듯 말하는 듯 모호한 말투로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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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뭐, 몇십 년째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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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가위 눌리고 그러시면, 힘드시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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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에 혜정은 작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살짝 떨궜다. 그리고 무릎 위, 찢어진 치마를 덮은 타월을 내려다보았다. 준호는 그 시선을 따라 타월을 바라보았다. 그 속에 감춰진 아까의 살결과, 자신이 스쳤던 감각이 스멀스멀 되살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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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의 정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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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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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도… 어머님 소리에 깼어요. 너무 괴로워하시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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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 근데, 약을 먹으면… 낮에도 너무 피곤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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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약국 위에 후배가 하는 내과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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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호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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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 한번… 가볍게 처방 받아보시는 것도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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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정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창밖을 바라보며 혼잣말처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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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좀 달라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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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안은 여전히 조용했다. 하지만, 방금 전의 고요와는 어딘가 결이 달랐다. 뒷좌석에서 잠들어 있던 아이가 작게 몸을 뒤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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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이가… 자면서도 참 많이 뒤척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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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정이 말끝을 흐리며 안전밸트를 풀고 몸을 틀어 아이 쪽으로 돌아앉았다. 불편한 자세로 꺾여진 머리를 고쳐주려는 듯, 무릎을 돌리고 몸을 뒤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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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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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자리에서 그녀를 바라보던 준호의 시야에, 내려앉은 타월 자락 너머로 가려져 있던 속살과 속옷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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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보았던 바로 그것. 얇은 레이스가 섞인 속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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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기능성 대신, 취향이 드러나는 선택. 몸을 따라 흐르는 곡선이 단정하면서도 은밀하게 드러났다. 중심을 부드럽게 감싸며 살짝 파고든 그 형태는 그녀의 나이를 잊게 할 만큼 단정하면서도, 지극히 ‘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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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속에서, 문득 살결의 냄새가 코끝에 닿는 듯한 착각이 밀려왔다. 준호의 시선이 그대로 멈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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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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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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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돌리던 혜정이 고개를 들었고— 그와 눈이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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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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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호가 짧게 숨을 들이켰다. 들킨 시선은 재빨리 옆 창 쪽으로 튀었고, 그는 서둘러 사이드미러를 바라보며 더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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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드 미러가 안보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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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정은 잠시 말을 잇지 않았다. 그러곤 흘러내린 타월을 다시 다리 위로 끌어올려 무심한 듯 허벅지를 감쌌다. 자세를 고쳐잡은 그녀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입술을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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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내려앉은 침묵. 그러나 이번 침묵은, 더 많은 것을 남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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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뭐가 어떻게 됐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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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에서 날아온 등기. 딱딱한 문장과 붉은 도장이 딸의 손끝을 마비시키고 있었다. 떨리는 그 종이 너머로 혜정이 불안한 표정으로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숨겨보려 했지만, 결국 들키는 건 시간문제였다. 상황을 파악한 딸 앞에서 터져 나온 것은 한숨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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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희는 성격은 급했지만, 위기의 순간엔 오히려 침착했다. 그 모습이 혜정을 더욱 미안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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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억 원. 온 가족이 몇 년을 모아도 부족할 금액이 공중으로 날아갔다. 그럼에도 다희는 혀를 차는 대신 조용히 계산기를 들었다. 은행이 요구하는 5억을 어떻게 마련할지, 벌써 머릿속으로 숫자를 더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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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정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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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집을 내놓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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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적이 흘렀다. 다희는 머릿속으로 무언가를 계산하다 무심한 듯 흘리듯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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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말이 돼? 그럼 어디서 살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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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룸이라도 들어가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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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되는 소리를 해… 지금 머리아프니까 아무말도 하지마, 생각도 하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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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정은 후회했다. 부산에 사는 사람이 뭐한다고 서울에 땅을 샀을까… 그린밸트가 풀린다는 그 말을 왜 믿었을까… 몇 억이 올랐다고 하던 마지막 기회에서 왜 팔지 않았을까… 번복된 뉴스를 보던날, 그냥 조용히 죽어버릴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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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게는 왜 말을 꺼냈을까.. 무슨 좋은 꼴을 보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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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딸과 사위가 찾아왔다. 놀랍게도, 담담한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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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집은 전세로 돌리고, 우리 집으로 들어와. 하윤이 봐줘. 그리고 모자란 돈은… 우리가 어떻게든 해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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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위를 볼 낯이 없었다. 그런데도 준호는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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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잘됐어요. 하윤이 봐주시면 우리도 돈도 좀 더 모으고… 좋잖아요? 하윤이도, 할머니 좋아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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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을 들으며 혜정은 목이 메었다. 사람답게 산다면, 돈 몇 푼 때문에 딸의 삶을 무너뜨릴 순 없었다. 하윤이를 봐준다는 건 분명 핑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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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렇게 말해주는 사위가 고마웠고, 미안했다. 가족이 없는 사위를 아들로 받아들이겠다던 장모가, 이제는 짐이 되었다는 죄책감이 그녀를 짓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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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뭐라도… 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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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뱉은 말에 준호가 고개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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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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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눈빛이 점점 가까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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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도” 라는 말이… 어떤 의미로 흐르고 있는지 혜정은 직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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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순간— 자신의 몸에 아무것도 걸쳐져 있지 않다는 걸 알아챘다. 어두워진 공간. 텅 빈 방. 그 안엔, 자신과 사위. 단둘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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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어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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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카로운 숨소리와 함께 혜정은 몸을 일으켰다. 숨이 가빴고, 손끝은 떨렸다. 벽 시계의 초침이 새벽 네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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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제… 힘들면 한번 드셔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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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위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혜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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