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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作者: 가을연
30분 뒤, 차는 강변이 내려다보이는 고급 아파트 앞에 멈췄다.

신희애의 부모가 딸의 12살 생일에 선물한 집이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무감각했던 마음 깊숙한 곳에서 뒤늦게 시큰한 아픔이 올라왔다.

벽은 아버지가 직접 손으로 꾸몄고 가구는 어머니가 하나하나 골랐다.

어머니는 당시 12살 신희애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말했다.

“이 집은 우리 희애가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곳이야. 나중에 엄마 아빠가 곁에 없더라도, 언제 어디서든 누구도 이 안식처만큼은 빼앗지 못해.”

부모가 이 세상에 남긴 흔적이 아직 조금 남아 있는 거실에서 신희애는 소파에 몸을 웅크리고 깊이 잠들었다.

그 뒤로 며칠간 신희애는 일부러 하여빈을 떠올리지 않았다.

신희애의 마음을 따라가기라도 하듯 늘 시끄럽던 댓글창도 며칠째 잠잠했다.

...

다음 날, 신희애는 막 귀국한 절친과 쇼핑을 나갔다. 친구가 장난스럽게 물었다.

“웬일이야? 우리 희애 공주님이 오늘은 삼촌 얘기를 한 번도 안 하네?”

친구는 신희애의 핸드폰 배경화면에서 하여빈과 함께 찍었던 사진이 사라진 걸 보고서야 표정이 달라졌다. 신희애의 이마에 손까지 대 보며 혼잣말했다.

“열은 없는데... 그 배경화면 거의 10년 동안 한 번도 안 바꿨잖아. 사진 들어 있던 옛날 폰을 실수로 바다에 빠뜨렸을 때는 생각도 안 하고 뛰어들어서 건졌으면서, 지금은 갑자기 왜...”

남은 말은 창가 대형 전광판에 뜬 하여빈과 한미연의 약혼 사진을 본 뒤 사라졌다.

친구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당장 하여빈을 찾아가 따지겠다며 몸을 돌렸다.

신희애는 별일 아니라는 듯 웃었다.

“됐어. 나도 다른 사람과 결혼할 거야.”

폭탄 같은 소식에 친구는 멍해졌다. 표정이 붉어졌다가 하얘지기를 반복하다 한참 뒤에야 마지못해 받아들였다. 이를 악물고 말했다.

“우리 희애를 놓치는 사람은 반드시 후회할 거야!”

신희애가 친구의 과장된 표정에 웃자 그제야 안심한 친구가 말했다.

“요즘 새로 생긴 오션뷰 레스토랑이 그렇게 인기래. 우리도 가 보자!”

두 사람이 레스토랑에 도착했을 때, 하필 한미연과 하여빈이 노부부 한 쌍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주변에는 취재진도 적지 않았다.

친구의 표정이 바로 굳었다. 신희애의 손을 잡아끌며 돌아섰다.

“하필 여기서 보다니, 진짜 재수 없다. 입맛 다 떨어졌어.”

신희애 역시 얽히고 싶지 않았지만 문을 나서기도 전에 뒤에서 하여빈이 불렀다.

낮고 깊은 남자의 목소리에 의외라는 기색이 묻어 있었다.

“희애? 네가 여긴 웬일이야?”

신희애는 대답하지 않았다.

한미연이 노부부를 데리고 다가왔다. 신희애를 보자 유난히 친근한 미소를 지었다.

“희애 씨도 왔네요! 소개할게요. 제 양부모님이에요. 친부모와 헤어져 살던 동안 저를 정말 잘 키워 주셨어요.”

한미연은 말을 잠깐 멈춘 뒤 수줍은 눈으로 하여빈을 바라봤다.

“여빈 씨가 제가 부모님을 그리워할까 봐 이 레스토랑을 차려 드렸어요.”

“이런 약혼자를 만난 저는 정말 운이 좋은 것 같아요. 원래 여기엔 다른 가게가 있었는데, 제가 바다를 보는 걸 좋아한다고 한마디했더니 여빈 씨가 기존 임대료의 거의 열 배를 주고 계약해 줬거든요.”

말투는 부드러웠지만 신희애를 바라보는 눈에는 우쭐함과 도발이 가득했다.

신희애는 화내지 않았다. 고개만 차분히 끄덕였다.

“숙모, 가게 잘되길 바랄게요.”

한미연이 원한 반응은 그게 아니었다. 눈동자를 굴리더니 별생각 없이 꺼낸 말처럼 덧붙였다.

“아, 깜빡했네요. 여빈 씨가 제가 교통사고 후에 몸이 약해져서 예전 집에서는 재활하기 힘들 것 같다고 했어요.”

“양부모님도 당분간 시댁에서 같이 지내기로 했고요. 그런데... 제 양어머니가 천식이 있어서 남향에 넓고 햇빛 잘 드는 방이 좋대요. 희애 씨, 혹시 방을 양보해 줄 수 있어요?”

한미연의 입꼬리에 남들은 알아차리기 힘든 미소가 번졌다. 예전처럼 신희애가 성을 내기를 기다리는 표정이었다.

친구가 참지 못하고 인상을 쓰며 받아쳤다.

“네가 뭔데...”

신희애가 친구를 붙잡았다. 한미연과 담담하게 눈을 맞춘 뒤 넉넉하게 웃었다.

“물론이죠. 편하게 쓰세요.”

한미연의 얼굴이 굳었다. 하여빈의 깊은 눈에도 복잡한 감정이 어렸다.

친구는 눈까지 붉히며 이를 악물고 낮게 말했다.

“이건 대놓고 사람을 무시하는 거야.”

신희애는 대수롭지 않게 웃고 친구와 함께 돌아섰다.

하여빈이 빠르게 뒤따라왔다. 목소리에는 미안함이 조금 묻어 있었다.

“잠깐만 그러는 거야. 네가 미연 씨를 싫어하는 건 알아. 마침 부모님이 남겨 준 집도 있으니까 오늘 밤은 거기서 지내. 우리 집에 있는 짐은 내가 사람 시켜 정리해서 보내 줄게.”

그제야 신희애는 자신이 이미 이 집에서 나와 산 지 거의 일주일이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런데도 삼촌은 내가 아직도 그 집에서 사는 줄 알았나?’

헛웃음이 날 만큼 어이가 없었다. 말투에도 비꼬는 기색이 묻었다.

“저 진작 짐 싸서 나왔어요.”

한미연의 들뜬 목소리가 신희애의 말을 완전히 덮었다.

“여빈 씨, 이제 우리가 인터뷰할 차례래요!”

하여빈은 곧바로 한미연 곁으로 갔다. 두 사람은 손가락을 맞물린 채 다정하게 섰다.

그제야 신희애는 하여빈의 길고 단정한 약지에 한미연과 같은 커플링이 끼워져 있는 걸 봤다.

‘저것도 은혜를 갚는 과정인 걸까?’

신희애는 시선을 거두고 그대로 떠났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에 올라탄 뒤에야 하여빈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아까 뭐라고 했지?]

신희애는 손가락으로 짧게 답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하여빈이 한참 메시지를 입력하는 중으로 표시되어 있었지만, 끝내 추가 메시지는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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