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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Author: 타로볼 망고
소찬미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들어 전시장에 걸린 작품들을 바라보았다.

임세영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

“서윤 그룹은 지난 몇 년간 모던 한식 스타일을 중심으로 한 디자인 개발과 협업에 힘을 쏟고 있어. 주얼리부터 의상까지 전방위로. 그리고 그 분야, 네가 가장 잘하잖아. 찬미야, 돌아와.”

임세영이 언급한 서윤 그룹은 소찬미에게도 낯설지 않았다.

서윤 그룹은 최근 몇 년 사이 급속도로 성장했고 특히 실물 산업 쪽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었다.

젊은 나이에 그룹을 쥔 서태윤은 냉정하고 과단성 있는 인물로, 안목이 남다르기로 유명했다.

임세영이 서윤 그룹과 손잡고 모던 한식 스타일이라는 새로운 길을 열고자 하는 것 자체는, 전혀 의외가 아니었다.

다만 과연 자신이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까.

소찬미가 그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조금 떨어진 곳에서 박성미의 차갑고도 오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새언니? 엄마를 돌보지 않고 여기서 뭐 하는 거예요?”

박성미는 박성주의 여동생이자, 하경대 출신의 소위 말하는 금수저였다.

소찬미가 박씨 가문에 시집온 이후로 박성미는 줄곧 그녀를 탐탁지 않아 했다.

남자에게 기대기만 하고 정작 본인 힘으로는 아무것도 이룬 게 없는 여자, 그건 박성미가 가장 혐오하는 유형이었다.

소찬미 역시 이런 자리에서 박성미를 마주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녀는 길게 설명하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

“전시를 보러 왔어요.”

“여기 작품들은 예술적 가치가 굉장히 높아요. 가장 평범해 보이는 디자인조차도 새언니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닐 거예요.”

박성미는 무심하게 말을 이었다.

“곧 오빠랑 우환이, 은심이도 돌아오니까, 쓸데없는 데 신경 쓰지 말고 가정에나 집중해요.”

박성미가 담담히 말했다.

그녀 눈에 소찬미는 그저 운 좋게 박씨 가문에 들어온 여자에 불과했다. 학벌이 괜찮고 예전에 재능도 좀 있었다 한들, 결국은 남자 뒤에 숨어 사는 여자 아닌가.

소찬미는 그녀의 말에 멈칫했다.

박성주가 돌아온다고?

가슴 한쪽이 씁쓸하게 저려 왔다.

이혼을 앞두고 있다 해도 아이들과 함께 돌아오면서 어떻게 그녀에게 한마디 알릴 생각조차 없었던 걸까.

그의 마음속에서 그녀는 아주 가벼운 모양이었다.

박성미는 더 할 말이 없다는 듯 몸을 돌리려다 문득 뭐가 생각난 듯 덧붙였다.

“아, 그리고 시간 나면 멸치볶음 좀 해서 가져와요. 엄마가 계속 드시고 싶어 하셨어요. 어차피 언니는 할 일 없잖아요. 요리는 그나마 언니가 할 줄 아는 거기도 하니까.”

박성미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예전 같았으면, 소찬미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박씨 가문의 인정을 받기 위해 그녀는 수없이 많은 일을 해 왔다. 김영화가 입만 열면 아무리 번거로운 음식이라도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미안해요. 나도 요즘 바빠서 요리는 셰프에게 맡기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박성미의 미간이 즉각 좁혀졌고 눈빛에도 불쾌함이 스쳤다.

처음으로 소찬미가 그녀의 말을 거절했다.

바쁘다고? 소찬미가 대체 무슨 일로 바쁘단 말인가.

그때, 누군가 박성미의 곁으로 다가왔다.

방금 소찬미와 박성미가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그대로 지켜본 모양이었다.

“성미야, 저분은 누구야?”

박성미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별일 아니라는 듯 무심하게 답했다.

“그다지 친하지도 않은 사람이야. 신경 쓸 필요 없어.”

그 말을 듣는 순간, 소찬미는 속으로 자조했다.

그녀는 명목상으로는 박성미의 새언니였다.

하지만 박성주도, 박성미도 단 한 번도 그녀를 제대로 된 가족으로 대한 적이 없었다.

박씨 가문에 들어온 뒤로 소찬미는 지극정성으로 헌신해 왔다. 돌이켜 보면 그렇게 살아온 지난 세월이 정말로 집안의 가정부만도 못했던 것 같았다.

박성미가 자리를 떠난 뒤, 소찬미는 고개를 돌려 임세영을 바라보며 천천히 말했다.

“아까 말한 제안, 생각해 볼게요. 하지만 디자인을 놓은 지가 너무 오래돼서, 선배를 실망시킬 것 같아요.”

그제야 임세영은 안도의 기색을 드러내며 웃었다.

“무슨 소리야. 너, 한때 꽤 유명했던 ‘Smile’이잖아.”

소찬미는 오랜만에 옅은 웃음을 지었다.

지금껏 오래 잠잠히 지내 왔던 것만큼 이제는 정말로 그녀만의 인생을 살아야 할 때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밤, 박성주는 아이들을 데리고 해성으로 돌아왔다. 물론 고원희도 함께였다.

해성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아이들과 함께 먼저 본가에 들렀다.

김영화는 기다렸다는 듯 불만을 쏟아냈다.

“일주일 동안 얼굴 한 번 비추질 않아. 그동안 먹는 것도 시원찮고 잠도 제대로 못 자서 피부도 다 상했어.”

김영화는 그동안 소찬미의 손길에 익숙해져 있었다.

소찬미가 있을 때는 잠자리에 들기 전마다 숙면에 좋다며 직접 조향한 향으로 베개를 훈증해 주곤 했다.

식사는 말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소찬미는 돌아온 뒤로 단 한 번도 본가에 발을 들이지 않았다.

박성주는 대수롭지 않게 넘기며 김영화를 달랬다.

“사람 몇 명 더 붙여 드리면 되잖아요. 다 똑같습니다.”

똑같다니?

김영화는 미간을 찌푸리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

어떻게 같단 말인가. 게다가 소찬미는 시중드는 일 말고는 내세울 것 하나 없으면서도, 시어머니에게는 마음을 쓰지 않았다.

결국 김영화는 불만을 꾹 참고 아들의 성의를 거스르기 뭐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 일행은 함께 신혼집으로 향했다.

집사 말대로 소찬미는 자신의 물건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모두 가져간 상태였다.

아이들 방조차 예전처럼 아늑하게 정돈돼 있지 않았고 집 안에는 온기 대신, 싸늘하고 텅 빈 기운만이 감돌았다.

박성주는 별로 개의치 않았다.

소찬미가 떼를 쓰고 싶다면 그러라지. 설마 자신이 먼저 고개를 숙여 달래 주길 바라는 건가?

웃기는 소리.

다만 박우환은 엄마를 본 지가 너무 오래돼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은 걸까.

동생이 엄마를 차단한 뒤로, 엄마는 다른 번호로 다시 전화해 오지도 않았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박은심이 신난 얼굴로 고원희의 손을 꼭 붙잡고 박성주에게 졸랐다.

“아빠, 이모를 엄마 방에서 지내게 해 주세요. 이모는 몸이 약하니까 햇볕 잘 드는 방이 필요하잖아요. 어차피 엄마는 이미 나갔으니 괜찮을 거예요.”

안방과 아이들 방을 제외하면 햇빛이 가장 잘 드는 방은 원래 소찬미가 쓰던 그 방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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