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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빈칸의 가격

Author: Jino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16 18:42:25

거래처 담당자는 네 번째 신호음이 울린 뒤 전화를 받았다.

“한 대리님. 견적 때문에 전화하셨죠?”

“네. 소량 생산 조건도 확인됐을까요?”

“계산은 하고 있는데, 기존 견적하고 차이가 좀 납니다.”

서윤은 새로 만든 비교표를 화면 한쪽으로 옮겼다.

“어느 항목에서 차이가 나나요?”

“금형 비용이요. 수량이 줄어도 처음 들어가는 비용은 같으니까요. 포장도 최소 주문 수량이 있고요.”

“항목별로 나눠서 보내 주세요. 뚜껑 단품 포장은 별도 표로 부탁드립니다.”

“내일 오전까지 드리겠습니다.”

“확인되면 바로 연락 주세요.”

통화를 마치자 민재가 의자를 돌렸다.

“온대?”

“내일 오전.”

“표정 보니까 좋은 소식은 아닌데.”

“단가가 올라갈 거라네.”

“얼마나?”

“받아 봐야 알아.”

서윤은 빈칸에 ‘견적 회신 예정’이라고 적었다. 그 아래에는 ‘초기 비용’을 넣었다.

판매량을 줄이면 부담도 줄 줄 알았다.

하지만 수량과 상관없이 드는 돈이 있었다. 그것부터 확인해야 했다.

◇

3월 6일 오전 9시 17분, 견적서가 도착했다.

서윤은 첨부 파일을 열었다. 수량이 적어질수록 개당 원가가 빠르게 올랐다.

마지막 줄까지 읽고 다시 첫 줄로 돌아왔다.

숫자는 그대로였다.

민재가 옆에서 물었다.

“왔어?”

“응.”

“어때?”

서윤은 화면을 그쪽으로 조금 돌렸다.

민재가 입을 다물었다. 잠시 뒤 자기 책상에서 계산기를 가져왔다.

“이러면 지금 판매가로는 안 되겠는데.”

“유통 수수료 넣으면 더 줄어.”

“포장은?”

“완성품은 왔어. 뚜껑 단품은 아직 확인 중.”

서윤은 견적을 기존 계산표에 옮겼다. 소량 출시안의 예상 이익률이 바뀌었다.

어제까지 비어 있던 칸이었다.

숫자가 들어가니 더 오래 들여다보게 됐다.

박 팀장이 다가왔다.

“견적 받았어?”

“네. 소량 생산 단가가 예상보다 높습니다.”

박 팀장은 출력된 견적서를 받았다. 숫자 두 곳을 짚더니 넥타이를 당겼다.

“그러니까 처음 계획대로 가자고 했잖아.”

서윤은 입을 다물고 기다렸다.

“품목도 늘리고 수량도 늘리면 단가는 내려가네. 반년 준비한 걸 굳이 작게 시작할 필요가 있나.”

“단가는 내려갑니다. 대신 처음 지급할 총액이 커집니다.”

“물건이 있어야 팔지.”

“남으면 보관 비용도 들어갑니다.”

박 팀장이 서윤을 봤다.

“그럼 소량으로 해서 이익도 못 남기는 안을 올리자는 거야?”

“그대로 올리지는 않겠습니다.”

“내일 마감이야.”

“알고 있습니다.”

“사장님이 숫자를 보겠다는데, 이 숫자로 뭘 설명해.”

서윤은 견적서 아래쪽을 짚었다.

“금형 비용을 다시 확인하겠습니다. 기존에 가진 걸 쓸 수 있는지요.”

“신제품인데 기존 금형이 맞아?”

“몸체 규격이 가까운 제품이 있습니다. 수정 범위를 확인해 봐야 합니다.”

박 팀장이 종이를 내려놓았다.

“괜히 된다고 써 놓지는 말고.”

“답을 받은 부분만 쓰겠습니다.”

박 팀장이 돌아간 뒤 민재가 낮게 말했다.

“처음부터 수량 늘리면 안 팔릴 때는 또 우리 책임이겠지.”

서윤은 대답 대신 사내 자료 폴더를 열었다.

“예전 보관 용기 도면 찾아줄 수 있어?”

“판매 중인 거?”

“응. 높이 다른 제품도 같이.”

민재가 자기 모니터 앞으로 돌아갔다.

“금형 목록까지 찾아볼게.”

◇

오전 내내 두 사람은 용기 도면을 봤다.

서윤은 민재가 찾은 금형 목록에서 입구 규격이 가까운 제품을 골랐다. 사용 중인 것과 창고에 보관된 것이 나뉘어 있었다.

“이거, 뚜껑은 다르네.”

민재가 도면을 확대했다.

“몸체 입구도 완전히 같지는 않아.”

“그래서 어디까지 바꿔야 하는지 물어보려고.”

서윤은 제조사 기술 담당자에게 도면과 새 규격표를 보냈다. 얼마 뒤 전화가 왔다.

“새로 만드시는 뚜껑을 기존 몸체에 맞추겠다는 거죠?”

“네. 같은 규격 안에서는 높이가 달라도 함께 쓰게 하려고 합니다.”

“몸체 쪽 금형은 활용 가능성이 있습니다. 뚜껑이 걸리는 부분을 봐야 해요.”

“체결부만 수정할 수 있을까요?”

“도면상으로는 가능해 보입니다. 공용 뚜껑 금형의 체결부를 조정하면 몸체 금형을 전부 새로 만들 필요는 없을 것 같고요.”

서윤은 펜을 들었다.

“그 경우 초기 비용을 얼마나 줄일 수 있나요?”

“수정 견적을 내봐야 합니다. 다만 새 금형 제작보다는 적게 들겠죠.”

“사용성이나 밀폐 성능은요?”

담당자의 대답이 조금 늦어졌다.

“그건 샘플로 확인해야 합니다. 맞물리는 치수만 맞는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서요.”

“그럼 비용 절감 가능성과 별개로 시험이 필요한 거네요.”

“맞습니다. 실제 금형 상태도 확인해야 하고요.”

“가능한 수정 범위와 필요한 시험을 메일로 부탁드립니다. 비용이 확정되지 않았다면 예상 범위와 산정 조건을 나눠 주세요.”

전화를 끊자 민재가 메모를 봤다.

“완전히 새로 안 만들어도 된대?”

“몸체는 쓸 가능성이 있대. 공용 뚜껑 체결부를 수정하는 쪽으로.”

“그럼 좀 내려가겠네.”

“아직은 가능성이야.”

서윤은 비교표에 ‘기존 금형 활용’을 추가했다. 옆에는 ‘제조사 검토 중’이라고 적었다.

민재가 고개를 끄덕였다.

“메일 오면 근거 붙이면 되겠다.”

“응. 시험 비용도 받아야 해.”

“줄어드는 돈만 보면 안 되고?”

“수정하고도 안 맞으면 다시 들어가니까.”

민재도 시험 비용을 메모했다.

정오가 조금 지난 뒤 민재가 일어났다.

“밥 먹고 하자.”

“메일 하나만 보내고.”

“아까도 하나만이라고 했어.”

서윤이 화면에서 눈을 뗐다.

민재는 재촉하지 않고 기다렸다. 서윤은 전송 버튼을 누른 뒤 의자를 밀었다.

“가자.”

◇

오후 2시가 넘어서 제조사의 회신이 왔다.

몸체 금형은 상태 확인 후 재사용을 검토할 수 있었다. 공용 뚜껑의 체결부 수정안도 왔다. 비용은 낮출 수 있지만, 시험 결과에 따라 추가 작업이 필요했다.

서윤은 그 조건까지 비교표에 옮겼다.

민재가 물었다.

“위험 항목 따로 만들게?”

“응. 밀폐 성능, 열고 닫는 힘, 반복 사용 뒤 변형. 시험 전에는 확인됐다고 쓰면 안 돼.”

“일정도 밀릴 수 있잖아.”

“그것도 넣어 줘.”

소량 출시안은 초기 비용과 재고 부담이 작았다. 대신 개당 원가가 높았다. 확대 출시안은 그 반대였다. 기존 금형 활용은 두 안에 공통으로 붙였다.

박 팀장이 다시 와서 표를 봤다.

“소량 쪽만 유리하게 쓴 건 아니지?”

“같은 항목으로 비교했습니다.”

“수정 금형 쓰면 원가가 이만큼 내려가는 거고?”

“확정 단가는 아닙니다. 제조사가 준 범위입니다.”

서윤은 표 위의 ‘조건부 검토’를 가리켰다.

“시험 비용과 추가 수정 가능성도 반영해야 합니다.”

박 팀장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자료가 복잡하네.”

“조건을 빼면 숫자는 더 좋아 보입니다.”

서윤은 화면을 조금 내렸다.

“대신 판단을 잘못할 수 있습니다.”

박 팀장은 넥타이 매듭을 만지다가 손을 내렸다.

“알았어. 내가 먼저 볼 테니까 완성되면 보내.”

그때 사장실 비서에게서 사내 메신저가 왔다.

[생산 수량별 견적이 회신됐으면 비교표를 먼저 전달해 주시겠습니까? 대표님께서 오후 검토 자료에 함께 보실 예정입니다.]

서윤은 답을 보냈다.

[기존 금형 활용 조건을 추가 확인 중입니다. 현재까지 확인된 자료로 전달드리겠습니다.]

출력 버튼을 누르자 민재가 프린터 쪽을 봤다.

“또 걸리면 불러.”

“오늘은 괜찮겠지.”

종이는 막히지 않았다.

대신 마지막 장을 빼다가 손끝이 따끔했다.

서윤은 검지 옆면을 봤다. 얇게 베인 자리에 붉은 선이 생겼다. 종이를 내려놓고 휴지로 눌렀다.

“베였어?”

민재가 물었다.

“조금.”

“밴드 있나?”

민재가 서랍을 열었다. 서윤은 휴지를 접어 손끝에 감았다.

“금방 멎어. 다녀올게.”

자료에는 묻지 않았다.

서윤은 집게를 끼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

6층에 도착했을 때 사장실 문이 열렸다.

도현이 다른 직원과 함께 나왔다. 재킷을 입고 있었다. 손에는 얇은 서류철이 들려 있었다.

서윤은 엘리베이터 앞에서 한 걸음 비켜섰다.

“검토 자료는 재무 쪽에 공유해 주십시오.”

직원에게 하는 말이었다.

서윤은 자료를 고쳐 들었다. 도현의 목소리는 멀리서 들을 때와 달랐다. 끝맺는 소리가 가까이서 또렷하게 들렸다.

직원이 고개를 숙이고 지나갔다.

도현은 서윤을 보고 걸음을 멈췄다.

“한 대리.”

서윤의 손에 조금 힘이 들어갔다. 집게 아래로 종이 끝이 눌렸다.

“요청하신 비교표 가져왔습니다.”

자료를 내밀었다. 휴지로 감싼 손가락이 집게 아래로 드러났다.

도현의 시선이 거기서 멎었다.

“손은 왜 그렇습니까?”

서윤도 제 손을 내려다봤다.

“종이에 베였습니다.”

도현이 자료를 받았다.

서윤은 손을 놓는 순간을 살폈다. 도현의 손가락은 서윤이 잡은 곳을 비켜 종이를 쥐었다.

손끝은 닿지 않았다.

그런데도 빈손을 거두는 게 조금 늦었다.

「왜 이러지.」

“소량 생산 견적이 나온 겁니까?”

서윤은 손을 몸 쪽으로 당겼다.

“네. 당초 예상보다 높습니다. 기존 금형을 활용하는 조건도 함께 정리했습니다.”

도현이 첫 장을 넘겼다.

종이 넘기는 소리가 가까웠다. 서윤은 두 손을 모았다. 손끝을 감싼 휴지가 조금 느슨해졌다.

도현이 읽는 동안 서윤의 시선은 자료에 머물렀다. 정확히는 종이 끝을 받친 손가락에.

서윤은 표의 제목으로 눈을 옮겼다.

“여기 비용은 확정입니까?”

“아닙니다. 제조사가 제시한 예상 범위입니다. 실제 금형 상태와 수정 샘플을 확인해야 합니다.”

도현의 시선이 표 아래로 내려갔다.

“추가 수정 비용은 빠져 있군요.”

“시험 결과에 따라 달라져서 아직 넣지 못했습니다. 위험 항목에 적었습니다.”

도현이 다음 장을 봤다.

서윤은 휴지 끝을 눌렀다. 느슨해진 부분만 다시 감쌀 생각이었다.

아주 작은 움직임이었다.

그런데 도현이 고개를 들었다.

서윤의 손이 멈췄다. 도현은 손끝을 보고 나서 서윤의 얼굴을 봤다.

서윤은 다친 곳이 아니라 얼굴에 열이 오르는 게 더 신경 쓰였다.

「그냥 종이에 베인 건데.」

도현이 서류철과 자료를 한 손에 겹쳐 들었다.

“잠깐만요.”

방금 비용을 물을 때보다 목소리가 낮았다.

서윤은 짧게 숨을 들이켰다. 대답하기도 전에 도현이 비서 자리로 향했다.

밴드가 있는지 묻는 소리가 들렸다. 비서가 서랍을 열었다.

서윤은 모은 손을 내려다봤다. 휴지 끝이 들떠 있었다. 그 부분을 누르려다가 그대로 뒀다.

도현이 밴드 하나를 받아 돌아왔다.

서윤 앞에서 멈췄다.

아까보다 조금 가까웠다. 시선을 들자 재킷 깃이 먼저 보였다. 서윤은 그 위로 천천히 눈을 올렸다.

“붙이세요.”

흰 포장지 끝이 도현의 손가락 사이에 있었다.

서윤은 바로 받지 못했다.

밴드보다 내민 손을 먼저 봤다. 자료를 받던 손이었다. 조금 전에는 종이 너머에 있던 손이 이제 바로 앞에 있었다.

도현은 더 다가오지 않았다.

손을 잡으려 하지도 않았다.

그저 서윤이 받을 때까지 기다렸다.

그 짧은 기다림에 서윤은 괜히 입술을 다물었다. 숨소리가 너무 크게 들릴까 신경 쓰였다.

「얼른 받으면 되잖아.」

서윤이 빈손을 내밀었다.

도현은 포장지의 방향만 바꿨다. 다치지 않은 손으로 끝을 잡기 편하게.

서윤의 손끝이 흰 포장지를 눌렀다. 도현은 서윤이 쥔 뒤에야 손을 놓았다.

“감사합니다.”

생각보다 작은 목소리가 나왔다.

서윤은 밴드를 자료를 들었던 손에 쥐었다. 얇은 포장지인데도 손안에서 자꾸 느껴졌다.

도현이 손을 내렸다. 다시 비교표를 봤다.

서윤도 시선을 따라 내렸다. 방금 전과 같은 표였다. 그런데 문장이 곧바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수정안이 비용을 낮추는 조건인지, 출시가 가능한 조건인지 구분해 주세요.”

업무를 말하는 목소리로 돌아와 있었다.

서윤은 허리를 조금 폈다.

“네. 아직은 비용 검토 단계입니다.”

“최종안에도 그 구분은 남겨 두십시오.”

“알겠습니다.”

대화는 거기서 끝났다.

서윤은 고개를 숙였다. 돌아서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버튼에서 손을 떼고도 잠깐 그쪽을 보고 있었다. 손안의 밴드를 고쳐 쥐었다.

등 뒤에서 도현의 목소리가 들렸다. 비서에게 자료 전달에 관한 말을 짧게 건네고 있었다.

서윤은 돌아보지 않았다.

대신 밴드 포장지를 내려다봤다. 끝에 작은 절취선이 있었다. 다치지 않은 손으로도 쉽게 뜯을 수 있었다.

조금 전 도현이 돌려 내밀었던 쪽이었다.

서윤은 그 끝을 엄지로 가볍게 눌렀다.

「이런 것까지.」

문이 열렸다.

서윤은 안으로 들어가 돌아섰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보니 도현과의 거리가 다시 멀어져 있었다.

문이 닫히기 시작했다.

그 사이로 도현이 고개를 들었다.

시선을 피하기 전에 눈이 마주쳤다.

서윤은 밴드를 쥔 손을 가만히 내렸다. 고개를 돌리지 못했다.

도현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문이 닫힐 때까지.

◇

“밴드 구했네.”

민재가 돌아온 서윤의 손을 봤다.

“응. 위에서.”

“잘 붙여. 키보드 치다가 벌어져.”

서윤은 자리에 앉았다.

포장지를 뜯기 전, 끝을 잠깐 봤다. 도현의 손가락 사이에 있던 부분이었다.

서윤은 눈을 내리고 절취선을 당겼다. 쉽게 뜯어졌다.

휴지를 떼니 피는 거의 멎어 있었다.

밴드를 붙이고 손가락을 굽혔다 폈다. 움직이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손을 키보드 위에 올렸다.

흰 밴드가 눈에 들어왔다.

‘붙이세요.’

짧았던 말이 떠올랐다. 바로 앞에서 들었던 낮은 목소리도.

서윤은 손가락을 조금 오므렸다.

「일해야지.」

화면으로 눈을 돌렸다. 도현이 마지막에 했던 말부터 떠올렸다.

비용을 낮추는 조건인지.

출시가 가능한 조건인지.

서윤은 비용표 제목을 ‘기존 금형 활용 시 예상 비용’으로 고쳤다. 아래에는 출시 여부를 수정 샘플의 성능 검증 후 판단한다는 문장을 넣었다.

민재가 보완한 위험 항목도 붙였다.

숫자가 좋아져도 지우면 안 되는 조건이었다.

서윤은 손을 멈추고 다시 읽었다. 이번에는 문장이 제대로 들어왔다.

밴드 끝이 손가락을 굽힐 때마다 살짝 당겼다. 아프지는 않았다.

서윤은 그쪽을 보지 않고 다음 항목으로 넘어갔다.

저녁 무렵, 비교표가 거의 완성됐다.

서윤은 박 팀장에게 보낼 메일을 열었다. 첨부하기 전 기존 제품의 매출과 재고를 마지막으로 대조했다. 소량 출시가 필요한 이유를 설명하려면 기존 실적도 봐야 했다.

그때 재무팀에 요청해 둔 자료가 도착했다.

[상품군별 손익 및 재고 현황 공유드립니다. 조직별 구분은 두 번째 시트 확인 부탁드립니다.]

서윤은 첨부 파일을 열었다.

첫 번째 시트에는 익숙한 상품명이 있었다. 매출과 매입 비용, 남은 재고를 기획안의 숫자와 맞춰 봤다.

틀린 곳은 없었다.

두 번째 시트를 눌렀다.

부서 이름 옆에 매출과 비용이 정리돼 있었다. 가장 오른쪽에는 ‘검토 구분’이 붙어 있었다.

서윤은 자기 팀이 있는 행에서 멈췄다.

상품기획팀.

수익성 개선 검토 대상.

마우스를 쥔 손이 멎었다.

옆자리에서 민재가 물었다.

“다 됐어?”

서윤은 대답하지 못했다.

화면을 오른쪽으로 더 밀었다. 비고란에 짧은 문장이 있었다.

기존 상품 실적 및 신규 투자 계획 재검토 필요.

서윤은 그 문장을 다시 읽었다.

새 기획안을 잘 만들어 제출하면 되는 줄 알았다. 숫자를 채우고 조건을 확인하면 됐다. 위험도 숨기지 않으면 판단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검토 대상은 신제품만이 아니었다.

서윤은 열린 메일을 봤다. 아직 보내지 않은 비교표가 첨부돼 있었다.

그 아래 재무 자료를 다시 펼쳤다.

“민재야.”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이것 좀 봐.”

민재가 의자를 붙였다. 화면을 읽던 표정이 달라졌다.

“우리 팀?”

“응.”

서윤은 작성 중인 메일로 돌아갔다.

전송 버튼에서 손을 뗐다. 밴드를 붙인 손가락이 마우스 옆에 가만히 놓였다.

내일 제출할 기획안이 무엇을 증명해야 하는지, 이제야 보였다.

(3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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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현은 태블릿을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빈 의자 뒤에 머물던 손이 천천히 내려갔다. 손끝이 의자에서 떨어지는 순간까지 서윤은 보고 있었다.“회사에 온 이유를 묻는 겁니까?”“둘을 다르게 대답할 거예요?”서윤은 책상 모서리에 손을 대지 않았다. 손을 뻗으면 다시 일 이야기로 돌아갈까 봐 망설였다. 손가락을 가볍게 접었다.도현이 입술을 열었다가 닫았다. 대답 전에 숨을 고르는 소리가 들렸다. 가까워서 들리는 소리였다.“다르게 대답해야 합니다.”“그럼 오늘은 됐어요.”서윤이 몸을 돌렸다. 도현은 붙잡지 않았다. 그런데도 등 뒤에 시선이 남아 있었다.서윤이 의자를 당기기 전에 도현이 다시 말했다.“대답을 피하려는 건 아닙니다.”아까보다 목소리가 낮았다.서윤은 돌아보지 않았다.“지금 못 하는 대답이면 준비해서 해요.”의자에 앉자 화면이 눈에 들어왔다. 아직 반품 비용표가 떠 있었다. 서윤은 글자를 읽으려 했다. 읽던 줄에서 눈이 멈췄다.도현의 손이 태블릿 위에 닿았다. 바로 집어 들지는 않았다. 화면 가장자리에 놓인 손끝이 가만히 있었다.“한 대리.”서윤은 화면을 본 채 기다렸다. 대답하면 목소리가 달라질까 봐 입을 다물었다.“업무가 끝난 뒤에 시간을 부탁해도 되겠습니까?”서윤은 그제야 도현을 봤다. 도현은 태블릿이 아니라 서윤을 보고 있었다.「업무가 끝난 뒤.」그 짧은 말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목요일에 패널 시험이 잡히면, 결과부터 정리해야 해요.”“그 뒤라도 괜찮습니다.”도현은 재촉하지 않았다. 서윤이 답할 때까지 손도 움직이지 않았다.서윤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그제야 도현이 태블릿을 가져갔다. 책상 위에서 손이 멀어졌다. 서윤은 시선을 화면으로 돌렸다.발소리가 사무실 밖으로 멀어지고 나서야 등받이에 등을 댔다. 짧게 참고 있던 숨이 나왔다.화면 아래로 빵 포장이 조금 나와 있었다.서윤은 남은 빵을 꺼냈다. 포장을 접는 손끝에 힘이 들어갔다.「무슨 대답을 하려고.」한 입을 먹고, 식어 버린 물을 마셨다. 목

  • 전 남친이 새 사장으로 왔다   12화. 밤의 두 자리

    서윤은 메일을 끝까지 읽고 4층 버튼을 눌렀다.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파일을 받친 손가락에 종이 모서리가 눌렸다.설문만으로는 안 된다는 말은 맞았다. 서윤도 그 말을 했었다.그런데도 화면에서 눈을 떼는 데 조금 걸렸다.사무실에 돌아오자 민재가 의자를 돌렸다.“어떻게 됐어?”“검토 일정은 그대로래.”“원가가 낮아져도?”“실제로 팔린 건 아니니까.”서윤은 파일을 내려놓고 메일을 전달했다. 민재가 화면을 아래로 내렸다.“그럼 지금 판매부터 하라는 거야?”“품질 확인이 남았어. 그 순서는 못 바꿔.”“우리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찾자.”민재가 빈 문서를 열었다.서윤도 의자에 앉았다. 손을 올렸지만 바로 글자를 치지는 못했다.메일에서 읽은 말이 아직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틀린 말은 아니야.」서윤은 문서 제목부터 적었다.고객 패널 시험안.◇3월 18일 아침, 서윤은 시험안 첫 장에서 구매 의향이라는 말을 지웠다.옆에 적었던 예상 주문도 지웠다.민재가 가방을 내려놓으며 화면을 봤다.“아예 안 물어보게?”“물어볼 거야. 그냥 사고 싶냐고만 묻지는 않고.”서윤은 빈 용기와 뚜껑을 책상 위에 놓았다. 종이 가격표도 옆에 세웠다.“제품을 써 보고, 가격을 보고, 자기 집에 가져갈 구성을 고르게 할 거야.”“안 고르는 것도 가능하게?”“응. 지금 쓰는 걸 계속 쓰겠다는 선택도 있어야 해.”민재는 뚜껑을 집었다가 내려놨다.“좋다고 해 놓고 가격 앞에서는 안 고를 수도 있겠네.”“그걸 봐야 해.”진행 순서는 간단히 정했다. 평소 쓰는 용기를 확인한 뒤 샘플과 가격을 보여 준다. 마지막에는 선택을 바꾸거나 모두 취소할 수 있게 했다.민재가 마지막 칸을 가리켰다.“여기서 결제는 안 받고?”“안 받아. 주문으로 기록하면 안 돼.”“그럼 매출 증거는 여전히 없네.”“맞아. 매출을 대신할 수는 없어.”서윤은 문서 맨 위에 적었다.비판매형 시험. 결제와 주문 접수는 진행하지 않음.선택한 구성과 구매를 포기한 이유는 따로

  • 전 남친이 새 사장으로 왔다   11화. 돌아온 견적

    서윤은 종이 끝을 쥔 손에서 힘을 뺐다.도현의 손이 바로 앞에 있었다. 서류를 건네면 손끝이 닿을 만큼 가까웠다.“여기 있습니다.”서윤은 흩어진 서류를 포갰다. 제목이 보인 종이를 따로 빼지도, 다시 들여다보지도 않았다.종이를 내미는 동안 도현은 손을 움직이지 않았다. 서윤이 끝을 놓은 뒤에야 받아 갔다.손끝은 닿지 않았다. 서윤은 빈손을 무릎 위로 내렸다.도현은 서류를 자료철 안에 넣었다.“감사합니다.”가까이서 들으니 목소리가 낮았다. 서윤은 대답 대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차가 곧은 길로 들어섰다. 서윤은 무릎 위의 시험표를 내려다봤다. 마지막 줄까지 적었는데도 펜을 다시 꺼냈다.아버지 회사.알고 있던 이름 옆에 처음 보는 말이 붙어 있었다. 서윤이 모르는 도현의 시간이 그 자료철 안에 있었다.펜을 쥔 손가락을 고쳐 잡았다. 옆을 보면 도현의 얼굴부터 살필 것 같았다.「묻지 말자.」“한 대리.”펜 끝이 종이 위에서 멈췄다. 서윤은 고개만 조금 돌렸다.“파일 드리겠습니다.”도현이 빈 파일을 내밀었다. 파일 끝을 받으려던 서윤의 손이 잠깐 머뭇거렸다. 도현의 손가락이 접힌 부분을 잡고 있었다.서윤은 반대쪽을 받았다. 시험표를 끼우고 가방 안에 넣었다.“네.”묻지는 않았다.도현도 자료철을 닫았다. 좌석 사이에 놓였던 서류가 사라졌다. 두 사람의 손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었다.서윤은 무릎 위에 손을 모았다. 도현의 소매 끝이 시야에 들어왔다.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보이는 거리였다.숨을 천천히 내쉬었다.서윤은 창 쪽으로 몸을 조금 돌렸다.◇3월 17일 오전, 제조사에서 새 견적서가 도착했다.서윤은 외투를 의자에 걸치다 말고 앉았다. 첨부 파일은 수정 견적서와 포장 변경안이었다.옆자리 민재가 모니터 쪽으로 고개를 기울였다.“왔어?”“응. 포장 비용까지.”“드디어 빈칸 없어지겠네.”서윤은 견적서를 열었다.완성품은 2,000세트 생산 조건이었다. 기존 몸체 금형을 쓰고 뚜껑 체결부만 수정했다. 조립과 기본 포장은

  • 전 남친이 새 사장으로 왔다   10화. 남아 있는 습관

    서윤은 방문 손잡이를 잡고 메시지를 다시 읽었다.직접 열어 봐야 한다고 했다. 사진도, 측정값도 없었다.복도 끝에서 도현이 휴대전화를 보고 있었다. 서윤은 문을 조금 더 열었다.“대표님.”도현이 고개를 들었다. 서윤을 보자 휴대전화를 쥔 손이 내려갔다.“제조사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샘플은 나왔는데 내일 직접 열어 보라고 합니다.”“문제가 있다는 뜻입니까?”“아직은 모르겠습니다. 수치를 받아 보겠습니다.”도현의 시선이 서윤의 휴대전화에 닿았다. 가까이 오지는 않았다. 서윤은 화면을 내밀려던 손을 멈췄다.둘 사이에는 열린 문 하나만큼의 거리가 있었다.“확인되면 공유해 주세요.”낮은 목소리였다. 조용한 복도에서는 끝까지 또렷하게 들렸다.“네.”서윤은 객실로 들어왔다. 상자 위에 파일을 놓고, 외투도 벗지 않은 채 제조사 담당자에게 전화했다.“열 때 걸리는 겁니까?”“닫히는 건 괜찮습니다. 그런데 손으로 열기가 좀 뻑뻑합니다.”“측정은요?”“내일 오전에 하려고 합니다.”“지금 여러 번 열지는 말아 주세요. 처음 여는 샘플도 따로 남겨 두시고요.”통화를 마친 서윤은 시험표에 항목을 더했다. 낙하 뒤 닫힘 상태와 처음 여는 힘, 반복 사용 뒤 변화를 적었다. 도현에게도 내용을 보냈다.답은 곧 왔다.「내일 아침 식사 후 출발하겠습니다. 접수대 앞에서 뵙겠습니다.」서윤은 가방에서 충전기를 꺼냈다. 짧게 답하고 휴대전화를 뒤집었다.객실 벽 너머로 문 닫히는 소리가 났다.펜을 들던 손이 멈췄다. 복도에서 들었던 목소리가 아직 귀에 남아 있었다.「내일 또 보겠네.」당연한 일을 새삼 생각했다.서윤은 펜을 내려놓았다. 밴드 끝이 조금 들떠 있었다. 손끝으로 눌러 붙인 뒤 시험표를 다시 펼쳤다.◇3월 15일 아침, 시험실 작업대에 수정 샘플이 놓여 있었다.담당자가 뚜껑 가장자리를 짚었다.“걸리는 깊이를 늘렸습니다. 경사도 바꿨고요.”“어제 실패한 샘플과 표시를 다르게 해 주세요.”서윤은 샘플 번호를 확인했다. 도현은 작업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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