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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Author: 주광
이 사람들과 같은 공간에 단 1분, 1초라도 더 있는 게 예진에겐 고통 그 자체였다.

하지만, 그녀가 목발을 짚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병실을 나서려는 순간, 윤제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날아왔다.

“당신 진짜 이혼할 생각이면, 앞으로 이안이는 못 본다고 생각해.”

이혼 얘기를 먼저 꺼낸 쪽은 예진이었지만, 사실 먼저 마음이 떠났던 건 윤제였다.

그런 그가 마치 버려진 사람처럼 행동하며 아이를 볼모로 삼다니, 예진은 속으로 너무나 어이가 없었다.

‘진짜 웃긴다. 먼저 마음이 떠난 사람은... 당신이잖아.’

‘지금 와서 피해자인 척한다고?’

그녀는 돌아보지 않았다. 단지 잠시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안이 양육권은 당신이 가져요. 앞으로 나는... 이안이 엄마가 아니니까.”

그 말이 끝나자, 예진은 단호하게 병실을 떠났다.

뒤에서, 아린의 입꼬리가 아주 미세하게 올라갔다.

그러다 곧,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오빠... 감정적으로 굴지 마. 예진 씨 저대로 그냥 가게 놔두면 안 돼. 얼른 따라가 봐.”

하지만 윤제는 이제 예진에게 단 1%의 관심도 없어 보였다.

“저 혼자 퍼붓고 나가는 걸 어떻게 해. 그냥 먹자.”

말을 마치고 자리에 앉은 윤제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다시 수저를 들었다.

도순희도 얼른 아린 앞에 삶은 달걀을 까서 건넸다.

“걱정하지 마, 잘 된 거야. 어차피 할 이혼이면 미룰 것 없지.”

이안도 아린에게 우유를 건네며 말했다.

“맞아, 고모. 엄마가 없으면... 고모가 계속 이안이 곁에 있어 줄 수 있잖아.”

아린은 애정을 담은 손길로 이안의 머리를 쓰다듬고, 우유를 조용히 마셨다.

...

병원 복도를 나선 예진은 코끝을 찌르는 소독약 냄새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하지만, 끝끝내 눈물은 떨어지지 않았다.

‘울면 지는 거야. 지금은... 일단 여기서 벗어나야 해.’

예진은 상처로 무뎌진 다리를 끌고, 텅 빈 머리로 목발을 짚어가며 혼잣말처럼 속삭였다.

“조용한 데 가서, 혼자 있고 싶어... 조금만, 나 자신을 좀 추슬러야 해.”

택시에 올라탄 예진은 겨우 정신을 가다듬고, 핸드폰을 꺼내 서은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날 술을 마신 은주는 여전히 몽롱한 상태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누구...?]

예진의 떨리는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자, 순간 잠이 확 깨버린 은주는 바로 외투를 챙겨 입고 집을 나섰다.

...

예진이 짐을 다 챙겨 나올 무렵, 은주의 차가 집 앞에 도착해 멈췄다.

예진은 한 손에는 목발, 다른 한 손은 캐리어 손잡이를 쥐고 그림자처럼 문을 나서고 있었다.

은주는 뛰어 내려와 예진의 캐리어를 받아 들며 친구의 어깨를 붙잡았다.

“야, 너... 이게 무슨 꼴이야. 어디 아파? 왜 이렇게 초췌해?”

예진은 고개를 가볍게 저으며 말했다.

“나중에 말할게. 지금은... 여기서, 일단 벗어나고 싶어.”

은주는 예진을 부축해 조수석에 태운 뒤, 차에 올랐다.

그리고 그 후 10분 동안 예진이 털어놓은 어제와 오늘의 이야기를 들은 은주는, 말을 잇지 못하다가 결국 도로 한복판에서 급브레이크로 차를 세워버렸다.

“뭐?! 부윤제 그 개XX, 그리고 네 그 싹수없는 아들놈까지?! 야, 당장 병원으로 가자! 내가 다 엎어버릴 거야!”

예진은 깜짝 놀라 은주의 팔을 붙잡았다.

“야, 나 이제 이혼할 거야. 굳이 더럽게 끝낼 필요 없어.”

은주는 헉헉 숨을 고르며 분을 삭였다가, 한참을 뜸 들이다 다시 물었다.

“진짜야? 진짜 이혼할 거야?”

예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혼이 장난이겠어?”

그 말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그녀의 마음은 처음으로 이렇게 조용하고 평온했다.

‘8년 동안 내가 쏟아부은 모든 정성과 시간이... 결국 그 사람들에게는 아무 의미도 아니었구나.’

‘그래도... 지금이라도 끝내서 다행이야.’

“은주야... 변호사 좀 소개해 줘. 제대로 된 사람으로.”

은주는 단번에 예진의 어깨를 딱 치며 말했다.

“당연하지. 내가 아는 이혼 전문 변호사 중에 제일 싸움 잘하는 사람으로 알아봐 줄게. 뺏길 거 1도 없어. 류아린 그 여우 같은 여자한테 절대 쉽게 넘겨주지 말자.”

예진은 몸이 다 낫지도 않은 상태로 갑자기 집을 나온 바람에, 당장 혼자서 살 집을 구하는 건 무리였다.

그래서 짐을 챙겨 은주의 집에서 당분간 머무르기로 했다.

...

그 시각, 병원에서는 이안과 아린 모두 정밀검사 결과 큰 이상이 없다는 진단이 나왔고, 윤제는 곧바로 퇴원 수속을 밟았다.

도순희는 윤제가 바쁘다며 이안과 아린을 부씨 가문의 본가로 데려갔다.

그리고 윤제는 마치 아무 일 없다는 듯 회사에서 걸려 온 전화를 받고 다시 일에 복귀했다.

그날 밤, 윤제는 거래처와 술자리를 갖고 꽤 많은 양의 술을 마셨다.

비틀비틀 집에 돌아온 윤제는 갑자기 위에 통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속이... 미친 듯이 쓰리네...’

평소 같았으면, 예진이 말없이 미리 준비해 둔 해장국이나 따뜻한 죽이 상에 놓여 있었을 텐데, 오늘은... 집 안이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윤제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이모님, 예진이 좀 불러줘요. 속 좀 달래게 해장국 좀 끓여달라고 해줘요.”

그 말에, 주방 쪽에서 오미자가 조심스레 다가왔다.

“도련님... 사모님은 오늘 오전에 나가셨어요. 짐도 다 챙겨 가셨고요. 서랍에 있던 서류며 신분증까지 전부 챙겨 가셨어요.”

윤제는 오미자의 말을 듣고 잠시 멍해졌다. 이마 한가운데에 미세한 주름이 잡히며, 표정이 서서히 굳어졌다.

“하... 어디까지 가나 두고 보자고.”

그는 짜증 섞인 숨을 내쉬며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고 예진이에게 톡으로 음성 메시지를 보냈다.

[적당히 하고 당장 돌아와. 계속 이런 식이면 나 진짜 화낼 거야.]

메시지를 보내자마자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낀 윤제는, 예진이 자신의 연락처를 차단했다는 사실을 그제야 눈치챘다.

윤제의 얼굴빛이 순식간에 싸늘해졌고, 눈엔 불쾌감이 서렸다.

그는 전화도 했지만, ‘연결할 수 없는 번호’ 라는 음성사서함의 안내 음성만 반복되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전화를 걸었지만, ‘현재 전화를 받을 수 없는 번호’ 라는 차가운 안내음만 되풀이됐다.

‘진짜 나랑 연락을 끊으려고? 진짜, 날 끓어?’

윤제는 이를 꽉 물고 오미자를 노려보았다.

“이모님도 한 번 해봐요. 전화해 보세요.”

오미자는 조심스럽게 핸드폰을 꺼내 예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시각, 예진은 병원 진료실에서 상처 소독을 받고 있었다.

핸드폰이 진동했고, 화면에 ‘오미자 이모님’이라는 이름이 떴다.

‘뭐지... 내가 뭘 놓고 나왔나?’

예진은 아무 생각 없이 통화 버튼을 눌렀다.

[사모님... 도련님이 술을 너무 많이 드셔서 속이 안 좋으시대요. 사모님이 끓여주신 해장국 찾으세요. 지금이라도 오시면...]

예진은 순간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해장국? 그걸 얼마나 싫어했는데...’

머릿속을 스치는 장면... 정성껏 끓인 해장국 앞에서 윤제가 했던 말.

“또 국이야? 제대로 밥 좀 없어?”

‘그땐... 정말 최선을 다했는데.’

‘지금 와서 그걸 내놓으라고? 이혼 통보까지 받고 나서?’

예진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속 아프면 병원으로 가라고 하세요. 국을 먹고 싶으면 요리사 부르시고요.”

“이모님, 저희... 이혼하기로 했어요. 그 사람 일, 이제 더는 제 일이 아니에요. 다신 저에게 전화하지 마세요.”

그 말을 끝으로 예진은 전화를 끊었다.

이번엔, 정말로 무언가를 정리한 듯한 얼굴이었다.

‘이제 정말 끝이야. 다시는, 돌아가지 않겠어.’

...

스피커폰으로 울리는 목소리는 한 단어, 한 문장도 빠짐없이 윤제의 귀에 꽂혔다.

예진의 마지막 말이 끝나자, 윤제의 얼굴은 순식간에 흙빛으로 굳어졌고 자기도 모르게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감히 나랑... 이혼해? 지금 누구 마음대로 끝내는 건데.’

옆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오미자는 직감적으로 위험을 느꼈다.

‘예전 같았으면 아무리 화가 나도 사모님은 늘 도련님 중심이었지.’

‘툭하면 돌아와 해장국을 끓이고, 심한 잔소리를 들어도 웃으며 참으셨어.’

‘그랬던 사모님이... 이제 정말 끝내려는 분위기인데...’

이렇게 생각한 오미자가 침을 한 번 꿀꺽 삼키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도련님... 그럼 제가 국 좀 끓여드릴까요?”

윤제는 이를 악물고 고개를 저었다.

위통 탓에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필요 없어요.”

그 말투는 더 이상 건드리면 안 될 정도로 날이 서 있었다.

하지만 오미자는 차마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조심히 물었다.

“도련님... 정말 사모님하고 이혼하시는 건가요...?”

윤제와 예진의 관계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 중 하나가 오미자였다.

그 누구보다 윤제를 사랑했던 예진.

심지어 ‘고예진은 부윤제 없으면 숨도 못 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동안 부부가 다툰 적은 많았다.

예진이 종종 속상해하며 방에 들어가면, 윤제는 신경도 안 썼다. 하지만, 결국 언제나 예진이 먼저 나와 밥을 차리고, 아무 일 없던 듯 다시 예전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오매불망 윤제 도련님만 바라보던 사모님... 정말로 이혼을 원한다고?’

오미자의 질문에 윤제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리고 뭐든 물어뜯을 듯 이를 악물고 말했다.

“이혼? 그 사람이 감히 날 떠나겠다고? 그냥 또 감정적으로 구는 거야. 며칠 지나면 알아서 기어들어 오겠지.”

윤제는 말을 마치자마자 핸드폰을 들었다.

“고예진 명의로 된 카드 전부 정지시켜.”

‘돈이 끊기면,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어디 한번 지켜보자.’

...

다음 날 아침.

예진은 평소처럼 조용히 눈을 떴다. 습관처럼 주방으로 가 조리대를 정리하고, 냉장고를 열어 아침 식사를 준비했다.

이틀 동안 제대로 먹지 못해 몸이 허전했기에, 몸에 좋은 재료로 정성껏 밥상을 차렸다.

얼마 후, 방에서 꾸물꾸물 나온 은주가 고개를 갸웃거리다 코를 킁킁거리더니 식탁 위를 보고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헐... 너 뭐야? 이건 거의 호텔 조식 뷔페 수준 아냐?”

상 위엔 따뜻한 미역국과 계란말이, 연어구이, 제철 채소 무침까지 놓여있었다.

예진은 잔잔한 미소로 말했다.

“습관이 남아 있는 건지, 손이 저절로 움직이더라고.”

‘그래도... 이제 나는...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나를 위해 밥을 차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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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제는 ‘아직 가능성이 있다’는 말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그는 정석환 교수를 꽉 붙잡으며 물었다.“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골수가 일치하는 사람을 이미 찾았다고요?”정석환 교수는 고개를 끄덕였다.“우리 쪽에서 이미 연락을 취하고 있습니다. 다만, 상대가 동의할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습니다.”‘살 수 있어... 아직 가능성이 있어.’윤제의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무슨 조건을 내걸어도 괜찮습니다. 골수가 일치하는 사람만 있다면, 모든 걸 해결할 수 있으니까요. 당장 그 사람의 정보를 제게 보내주세요.”정석환 교수는 곧 배호수라는 남자의 정보를 전달했다.윤제는 그걸 비서에게 넘겼고, 다음 날 아침에는 이미 그 남자의 위치를 알아냈다.그는 H시가 아닌 B시에 있었다. 그것도 카지노였다.윤제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곧바로 항공권을 끊고 B시로 향했다.카지노 앞에 도착했을 때, 마침 삼십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배호수가 맥주병을 들고 걸어 나왔다.그는 병 속의 술을 단숨에 들이마신 뒤, 그대로 땅바닥으로 내던졌다.깨진 병조각이 바닥에 흩어졌다. 지독하게 깨진 모양이었다.윤제가 손짓하자, 비서와 경호원들이 곧장 움직였다.경호원들에게 붙잡힌 배호수는 곧바로 차 안으로 끌려 들어갔다.“야, 놔! 이 미친 놈들아! 누군데 사람을... 이게 나라야, 뭐야!”비서는 남자의 눈을 가리고 있던 천을 거칠게 벗겨냈다.욕설을 내뱉던 배호수는 윤제의 싸늘한 눈빛과 마주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누, 누군지 알아요. 부윤그룹 대표님... 맞죠?”윤제는 조용히 손짓해 다른 사람들을 밖으로 내보냈다.“배호수 씨, 이렇게 무례한 방법으로 모셔서 죄송합니다. 이미 제 얼굴을 아신다니, 돌려 말하지 않겠습니다.”“오늘 제가 이렇게 직접 온 이유는 제 아들 때문입니다. 제 아이가 백혈병을 앓고 있는데, 배호수 씨와 골수 형질이 일치했습니다.”“배호수 씨가 골수 기증만 해주신다면, 제 아들에게도 희망이 생깁니다.”배호수의 눈이 커졌다.“부 대표님, 물론 압니

  • 전남편도, 아들도 내 발밑에 매달렸다   제565화

    윤제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약이... 듣질 않는다?’그 한 문장이 머릿속을 쿵 하고 울렸다.곧바로 아린이 이안에게 약을 먹이던 장면들이 윤제의 머릿속을 미친 듯이 스쳐 지나갔다.“약이 효과가 없다고요?”정석환 교수가 고개를 끄덕였고, 이마엔 깊은 주름이 생겼다.“이게 참 이상합니다. 사실 아이가 처음 왔을 때만 해도 상태가 지금보단 훨씬 안정적이었어요.”“부 대표님 말씀대로, 저희가 처방한 약은 전부 가장 고가에, 효과가 검증된 약이었습니다. 정상적이라면 이렇게 빠르게 악화될 이유가 없는데...”정석환 교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윤제는 귀 안에서 ‘윙’ 하는 소리를 들었다.이와 동시에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설마... 류아린? 류아린이 그런 짓을?’“부 대표님? 뭐라고 하셨습니까?”정석환 교수가 윤제를 바라봤지만, 윤제는 이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있었다.그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곧장 이안이 머물던 병실로 달려갔다.서랍을 뒤적이던 그는 손끝에 익숙한 약통 하나를 집어 들었다.아린이 매일 이안에게 먹이던 그 약통이었다.거의 뛰다시피 다시 복도로 나온 윤제가 정석환 교수의 손에 약을 쥐어 주며 말했다.“교수님, 제발 이 약 좀 봐주세요. 뭔가... 뭔가 이상한 것 같습니다.”정석환 교수는 순간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곧 조심스레 약통을 열었다.그는 손바닥 위에 알약을 몇 개 떨어뜨렸다. 눈으로 한참 들여다보더니, 코끝에 가져가 냄새를 맡았다.그리고는 아주 살짝 혀끝으로 맛을 봤다.정석환 교수의 표정이 급격히 굳어졌다.“이게... 이안이 계속 복용하던 약입니까?”윤제는 불안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서요? 약에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정석환 교수는 깊게 숨을 내쉬며 손에 든 알약을 바라봤다.“이건... 제가 처방한 약이 아닙니다. 아니, 애초에 이건 약도 아닙니다.”“뭐라고요?”“이건 비타민이에요. 성분이 전혀 다릅니다. 제 이름으로 처방된 병에 비타민이 들어 있다니...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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